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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난 집에 기름 붓고 부채질하기 (89/225)

불 난 집에 기름 붓고 부채질하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화민국 장제스 총통의 요청을 받고 광복군에게 산시성 타이위안으로 이동해서 옌시산의 군대를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와는 별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중화민국의 임시 수도가 된 충칭으로 이동했다.

광복군이 장쑤성의 상하이를 떠나서 산시성 타이위안까지의 머나먼 거리를 이동하고 있는 동안, 일본군은 영국과 미국 정부가 당황할 정도의 상상도 못 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1937년 7월부터 시작된 중일전쟁은 중국군과의 격렬한 전투와 상상치 못했던 피해를 보고서야 간신히 상하이를 함락한 일본군은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으로 진격을 하고 있었다.

11월 중순이 되면서부터 더는 수도인 난징을 방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중화민국 정부는 쓰촨성 충칭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탕셩즈 장군과 10만 명 정도의 방어 병력을 남겨서 최후의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전쟁터로 변할 난징에 있던 각국의 외교공관에 철수를 권고했다.

중화민국 정부의 철수 권고를 받은 각국 공관들은 난징에 있는 자국민들을 급히 대피를 시키고 철수를 시작했다.

그리고, 난징 함락 직전까지 남아서 마지막 업무를 보고 있던 미국과 영국의 공관 직원들은, 최후까지 잔류한 소수 민간인과 함께 마지막으로 철수를 시작했다.

이때, 미국 해군 아시아함대 소속 양쯔강 초계 전대 소속이었던 포함 USS 파나이는, 같은 임무를 받은 영국 해군 초계함 HMS 레이디 버드, HMS 비와 함께 난징에서 최후의 탈출 작전을 시작했다.

* * *

“형님, 제가 좀 늦었습니다.”

두웨성이 죽기 전에 나도 모르게‘칭방’의 뒷일을 나한테 떠넘기고 죽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드미트리를 상하이에 남겨서 두웨성이 남긴 사업체와 재산들을 정리하게 했다.

어떻게 보면 영화‘신세계’에서 전무 정청의 뒤를 이어서 골드문의 회장이 되는 영업 이사 이자성의 꼴이 돼버렸다.

물론, 두웨성이 정청이 아니고 내가 이자성이 아니지만, 기분이 조금 묘했다.

그만큼 두웨성은 나와 대한민국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괜찮다. 대형이 남기신 것들은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처리했냐?”

“예, 두 사부님께서 상하이에 남긴 모든 것들은 잘 정리했습니다.”

“혹시, ‘칭방’ 식구들의 소식은 들은 것이 있느냐?”

“두 사부님의 친위 세력들이 모두 자경단에 소속돼 있었던 만큼 사실상 ‘칭방’이 와해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흠….”

드미트리는 대답하면서 품속에서 편지 두 통을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건 뭐냐?”

“이것은 영국과 미국의 상하이주재 총영사님들이 형님께 전해달라는 편지들입니다.”

“브레난과 커닝엄이?”

“예, 형님, 아무래도 이번에 난징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일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사건은 대충 해결된 것 아니었어?”

일본군에게 난징이 점령되기 하루 전인 12월 12일 새벽, 난징에서 철수한 영국과 미국은 함대는 난징에서 상하이 방면으로 항해를 하고 있는데 일본군 포병들이 포격을 가했고, 오후 13시경에는 일본군 폭격기들이 날아와서 영국과 미국의 난징 탈출 함대를 폭격해 버렸다.

그 결과. 미국 해군 소속의 포함인 USS 파나이가 침몰해 버렸다.

“그게 겉으로는 해결이 된 것 같지만, 막상 저를 찾아온 영국과 미국의 총영사들은 상당히 화가 난 것같이 보였습니다.”

“아니, 웃기는 사람들이네. 자기들이 화가 난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형님, 일단 편지를 먼저 읽어 보십시오.”

드미트리 전해준 편지를 읽어 보면 이유를 알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편지 봉투를 뜯었다.

그러나, 편지 내용은 둘 다 별다른 것이 없었고 비슷한 내용이었다.

브레난과 커닝엄 총영사는 중화민국의 주요 지역을 일본군이 점령하게 되면서 그동안 선교사들이나 사업가들로 위장하고 활동했던 영국과 미국의 정보 수집 라인이 붕괴했다고 광복군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편지는 별다른 내용이 없는데, 혹시 나한테 따로 전하라고 한 말이 없었냐?”

“예, 따로 전한 말은 없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가서 좀 쉬어라.”

“예, 형님.”

드미트리가 보고를 마치고 나가자 나는 광복군 정보대를 지휘하는 유자명 선생과 백정기에게 영국과 미국의 총영사가 보낸 편지를 건네줬다.

“이 편지들을 읽어 보시고 영국과 미국에 도움을 줄 만한 것들이 있으면 가끔 그쪽에 정보를 전해주십시오.”

“예.”

둘은 편지를 받아서 다 읽고 나더니 유자명 선생이 의문점을 질문했다.

“조지 대장님. 그런데, 왜 영국은 일본군의 정보가 아닌 소련군의 정보를 원하는 겁니까?”

“아! 그게 이유가 좀 있습니다. 일단, 영국은 독일과 소련 모두를 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Mi -6에서 독일에 관련된 정보는 자기들이 직접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련에 관련된 정보는 아직 침투 루트가 없는 모양입니다.”

“아! 그래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가끔 신경을 써 보겠습니다.”

“예, 그럼 잘 부탁하겠습니다.””

대답하고 바로 일어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은 뭔가 더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요? 뭐가 더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예,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이해가 안 됩니까?”

“옛날에 영국과 미국은 중국이 자국 함선의 국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들인데, 이번에는 군함까지 침몰을 했는데 어째서 가만히 있을까요?”

“그건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국과 미국은 일본과 싸울 준비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국가적인 자존심이란 것이 있을 텐데…. 나는 이해가 안 되네요.”

“하하, 세상 모든 일이 자존심만으로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번에 일본의 대처가 상당히 빨랐고 사과를 한 것도 굴욕적일 정도였잖습니까?”

“바로 다음 날,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과 참모장이 사과하고 실수였다고 해명한 것을 말씀하십니까?”

일본의 사과는 유자명이 말한 것뿐만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일본이 정말로 실수한 일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사과한다고 느낄 정도였다.

내각에서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 차관이 공식적으로 미국에 사과를 했고, 폭격을 한 조종사는 군 형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으며 항공대 지휘관도 문책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 각지에서 시민들이 사과 편지와 함께 죽은 미국인들을 위해서 성금을 보냈다.

물론, 미국 정부는 성금과 사과 편지를 일절 거절했다.

“뭐랄까? 이건 서로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죠. 일본도 영국도 미국도 상대가 왜 그러는지를 아는 겁니다. 다만, 일을 크게 벌일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덮어두고 있는 거죠. 지금 난징에서 수많은 시민이 학살을 당하고 있어도 영국과 미국은 침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백정기는 난징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장 잔혹한 일들을 당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마치 조선인들로 여겨지는지 치를 떨면서

“진짜, 일본 놈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동양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멸종을 시켜야 합니다.”

“멸종이요?”

“예, 제가 알기로는 일본의 일반인들도 이번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이번에 난징에서 벌어진 ‘100명 빨리 죽이기’ 시합 소식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자 도쿄에 사는 인간들이 열광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일본 놈들을 과연 살려줘야 할까요?”

나도 심정적으로는 백정기의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까지 일본은 전쟁으로 성장한 나라였고 전쟁을 해야만 국가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다들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하고 있었다.

정말로 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국민이 그랬다.

“아니요. 나 역시도 일본과 일본인은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확실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지 대장님!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일본 공산당에 더 많이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이제는 백정기도 정보 계통에서 시간을 꽤 보내더니 점점 능구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일본에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말을 유도한 것 같았다.

“후후, 그래서 백정기 대장은 어떻게 지원을 해달라는 겁니까?”

“제가 보기에는 일본 공산당의 무장투쟁이 먹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돈을 왕창 풀어버리면 일본 경제가 쑥대밭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돈으로 공산당원들도 늘리고요.”

“그렇겠죠. 전쟁 중인 상황에서 돈이 갑자기 풀리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겠죠. 그리고, 돈으로 공산당원을 유혹해서 일본 내부에서 분탕질을 치게 하자. 그 말입니까?”

“예, 돈과 무기를 지금보다 더 많이 지원해서 일본 내부가 중국처럼 전쟁터가 되게 만들어 버리면 어떻겠습니까?”

일본이 망가지게 만드는 김에 확실하게 기름을 부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거기에 부채질까지 해주면 불길을 더욱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점점 궁지에 몰리다 보면 역사보다 빠르게 소련이든 미국이든 가리지 않고 전쟁을 벌이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봤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달부터는 일본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늘려보겠습니다. 아! 참, 그런데 국내로 반입된 총기들은 파악이 됐습니까?”

“그건 어느 정도 파악이 됐습니다.”

“어느 정도나 국내로 들어간 겁니까?”

“총기 유입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겨우 20~30자루 정도인데 문제는 이 기관단총들이 독립운동가나 공산당원들에게 들어가면서, 요즘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경찰서와 매국노들이 습격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차라리 국내에도 총기를 풀어버리면 어떻겠습니까?”

행동파인 백정기는 국내에도 총기를 풀어버리자고 말했지만, 이것도 죽어도 안 될 말이었다.

한번 사람들 사이로 풀린 총기는 다시 회수하기 힘들고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다.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앞으로 국내로 총기가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나서서라도 말려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 공산당을 지원할 때 총기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앞으로 지원은 없다고 분명히 경고 하십시오.”

“왜…?”

“총은 성질 급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우리가 의도하지 못 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톰슨 기관단총이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막아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 * *

나와 유자명 그리고 백정기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심각한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일본의 내각과 대본영 그리고 미국 정부도 상황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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