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부님과 하나가 되어서… (88/225)

두 사부님과 하나가 되어서…

1937년 10월 28일.

공동조계 입구에서 일본군 병력을 맞이해서 처절한 전투를 이어가는 두웨성의 인기가 상하이 시민들과 중화민국인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하늘을 찌르기 시작하자 불편해진 사람이 한 명이 있었다.

전략적 판단이었던지 뭐였던지 상하이를 포기한 장제스와 비교하면 일반 중국인들, 특히 상하이 시민들이 보기에는 상하이를 끝까지 지키면서 중국군의 후퇴를 돕고 있는 두웨성은 그야말로 소설 속에 나올법한 영웅이었다.

“두 사부님, 이쯤에서 난징으로 함께 가시든지 아니면….”

“아니면, 끝까지 싸우다가 여기서 죽으라고?”

두웨성의 인기가 치솟자 장제스는 자신의 심복인 국민당 조사통계국장인 다이리를 밀파했다.

“두 사부님,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두웨성은 장제스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잘 알지만, 그래도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너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서로 알게 모르게 밀어주고 당겨주던 동지의 입장이었었는데 말이다.

“다이리! 니가 보기에 내가 인기를 얻고 싶어서 지금 이런다고 생각하냐?”

“아닙니다. 그것은 장제스 위원장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하지만, 내 인기가 치솟고 위원장의 인기가 땅에 떨어지면 국가가 위태로운 전쟁상황에서 정국을 주도하기 힘들다. 뭐, 그런 소린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다이리! 넌 무슨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거냐? 장제스 위원장이 나한테 전하라고 한 말이 분명히 있었을 것 아니냐?”

다이리는 장제스가 전하라고 한 말을 두웨성에게 말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한 명은 현재 충성 바치고 있는 직속상관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게 도와준 은인이었다.

“다이리! 괜찮다. 장제스 위원장이 나한테 전하라고 한 말을 그대로 말해봐라.”

두웨성의 허락에도 다이리는 두웨성의 눈치를 보면서 잠시 더 머뭇거리더니

“장제스 위원장님께서는 두 사부님께서 최선을 다해서 상하이를 끝까지 수호해 주시길 바란다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두 사부님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위원장님의 진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이리는 이곳을 찾아올 때부터 가슴에 꼭 껴안고 왔던 고급스러운 나무상자 하나를 두웨성에게 내밀었다.

나무 상자를 받아 든 두웨성이 상자의 뚜껑을 열자, 나무상자 안에는 중화민국의 국기인 대형 청천백일기가 곱게 게워져 있었다.

“이것으로 장제스 위원장의 뜻은 잘 알았다. 너는 언제 다시 전투가 시작될지 모르니까 이만 돌아 가봐라.”

두웨성의 마지막 인사에 다이리는 이를 꽉 깨물면서

“두 사부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항상 감사했습니다.”

다이리의 사과와 마지막 인사에 두웨성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진짜 죽음을 각오한 얼굴로 청천백일기를 쓰다듬었다.

다이리가 조용히 방을 나가고 량후가 두웨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두 사부님, 왜 탈출을 거절하셨습니까?”

“여기서 물러나는 순간 나는 의리를 지키지 못한 ‘칭방’의 대사부가 된다. 난 영원히 ‘칭방’의 대사부로 남고 싶을 뿐이다.”

“사부님!”

“량후! 그런 신파는 그만하고 오늘도 일본군과 싸워야 할 것이 아니냐? 어서 나가서 방어 진지들을 점검해라.”

두웨성의 결연한 태도에 량후는 자연스럽게 감명을 받아서 두웨성과 끝까지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 량후, 이 깃발을 창고의 옥상에 게양해라. 내가 죽는 그 날까지 이 깃발은 곧 나다. 깃발이 쓰러지는 순간이 내가 상하이를 떠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사부님.”

사행 창고 옥상에 커다란 청천백일기가 펄럭이기 시작하면서 일본군 사령부는 눈이 완전히 돌아가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는데, 이제는 중화민국의 상징인 깃발까지 하늘 높이 쳐든 것이었다.

“이마누! 이마누!”

“예, 사령관님.”

일본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인 마쓰이 이와네 대장은 망원경에 보이는 사행 창고 옥상의 청천백일기가 눈에 거슬려도 너무 거슬렸다.

“넌, 나를 보좌하는 참모장이 되어서 겨우 저런 창고 하나를 점령하지 못해서 끝까지 나를 조롱거리로 만들 셈이냐?”

며칠째 창고 하나를 점령하지 못해서 상하이를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고 있는 참모장 이누마 마모루 중장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너, 저기 펄럭이는 깃발을 보기는 한 거냐?”

“예, 저도 조금 전에….”

“넌,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지배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저런 것이 펄럭이도록 놔두는 거냐?”

일본군은 20년도 전부터 중국과의 전쟁을 예상하고 도상 연습을 할 때마다 중국인을 지배하는 방법으로 몽골군이 중국인들을 지배한 방법을 차용할 생각을 했었다.

강력한 폭력과 공포만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만주로 진출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폭력의 지배 기술을 사용했다.

일본군은 중국인의 반항과 저항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과 더 잔인한 폭력으로 다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놈이 저걸 저대로 둔다는 말이냐? 어서 빨리 내 눈앞에서 치우지 못해!”

“예, 당장 치우겠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의 치열하고 장렬한 전투가 또다시 시작됐다.

사행 창고 안에 쟁여져 있는 어마어마한 폭발물 때문에 상하이 자경단과 일본군은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공격은 서로 하지를 못 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전투를 이어나갔다.

“죽여! 저 새끼들을 죽여!”

“탕! 탕!”

“타 타 타탄!”

“타당!”

상하이 자경단의 총알을 막기 위해서 두꺼운 철제 방패를 든 일본군 병사들이 창고를 향해서 다가오자 상하이 자경단 병사들은 미친 듯이 총알을 퍼부었다.

창고를 향해서 다가가는 일본군 병사들도 살기 넘치는 모습으로 총을 쏘면서 전진을 시도했다.

“죽여라! 저 새끼들만 죽이면 전쟁이 끝이다.”

“타 당!”

“탕!”

“탕!”

그리고, 어느새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힌 양쪽의 병사들은 바로 착검을 하고 서로를 향해서 돌격을 시작했다.

“와와! 죽여라!”

“시발, 다 죽여!”

피아 식별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사람이 서 있으면 무조건 찌르고 베고 봤다.

“으악!”

“죽어! 개새끼들아!”

“아악!”

“모두 죽여라!”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사행 창고를 거점으로 방어를 하던 두웨성의 상하이 자경단은 어느새 병사들이 다 죽어갔고 이제는 800여 명 정도의 병사만이 겨우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를 찔리고 베인 상처가 수두룩한 병사들을 보면서, 두웨성은 이제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여기가 내 인생의 끝인 건가?”

“사부님!”

두웨성은 끝까지 자신을 지키고 있는 량후를 보면서

“량후, 너는 이만 떠나도 좋다. 여기는 내가 지켜야 하는 자리지. 니가 낄 자리가 아니다.”

“사부님!”

“왜? 너도 나처럼 영웅이 되고 싶은가?”

“사부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량후야, 개똥처럼 살아도 이승이 좋다고 하잖느냐? 너는 이 정도 했으면 됐다. 부상당한 병사들을 데리고 공동조계로 떠나라.”

“사부님! 그럴 수 없습니다.”

두웨성은 여기서 모든 상하이 자경단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진정으로 상하이를 사랑하는 ‘칭방’의 제자들이 여기서 전부 죽는다면, 상하이 ‘칭방’의 대통을 누가 있겠는가?

“량후! 너는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나서 공동조계에서 미래를 대비해라!”

“사부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다 같이 죽고 나면 상하이는 누구 땅이 되겠느냐? 장제스? 아니면 영국 놈들? 그것도 아니면 일본 놈들? 모두 아니다. 누가 뭐래도 상하이는 우리 ‘칭방’의 땅이다.”

“두 사부님!”

“잊지 마라! 너는 아침에 부상한 병사들과 함께 떠나라!”

다이리가 다녀간 후 영국 총영사 브레난도 상하이 자경단과 일본군 사이를 중재하려고 찾아왔었다.

브레난 총영사의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공동조계 안으로 피한 병사들의 목숨만큼은 책임을 지겠다고 말을 했었다.

1937년 10월 29일.

상하이주재 영국 총영사 브레난과 일본군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마쓰이 이와네 대장은 서로 합의하고 절대로 공동조계 안으로는 일본군이 진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공동조계도 앞으로는 절대 중국군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마누! 이마누!”

“예, 사령관님.”

“오늘은 끝을 내라! 더는 저 깃발이 내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라.”

“예! 반드시 오늘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중국군 패잔병 놈들은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예.”

공동조계 측과 합의를 하고 돌아온 마쓰이 이와네 대장은 참모장인 이누마 마모루 중장에게 중국군 패잔병을 끝까지 색출해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마쓰이 이와네 대장은 가장 잔인한 보복만이 적에게 확실하게 공포를 준다고 믿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사행 창고를 중심으로 상하이 자경단과 일본군 사이의 공방전은 시작됐고, 싸움은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이는 일본군 쪽으로 서서히 승기가 기울어져 갔다.

“량후! 넌, 왜 아직도 떠나지 않았느냐?”

“저도 두 사부님과 하나가 돼서 상하이의 별이 되고 싶습니다.”

“뭐? 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부상한 병사들은 어쩌려고 그러느냐?”

함께 철수하라고 했던 부상병들까지 총과 칼을 들고 주위로 모여들었다.

“우리도 두 사부님과 하나입니다.”

“우리도 끝까지 두 사부님과 하나가 돼서 함께하겠습니다.”

“두 사부, 일체!”

“두 사부, 일체!”

죽음을 불사하고 나서는 상하이 사나이들의 외침에 두웨성은 소리 없이 눈물을 지으면서 자신도 직접 총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좋다. 멍청이들아. 다 같이 상하이의 별이 되자!”

“와! 와!”

“가자! 일본 놈들로부터 상하이를 지키자!”

그렇게 시작한 양쪽의 치열한 전투는 두세 시간쯤이 지났을까?

사행 창고 옥상에서 이틀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청천백일기는 옥상 바닥에 내팽개쳐져서 일본군의 군홧발에 짓밟혔고, 대신 일본군의 욱일승천기가 높이 올려지면서 바람에 펄럭이기 시작했다.

* * *

장제스는 상하이 전투 현장에서 전투를 지휘하다 난징의 정부 청사로 복귀했다.

그러나, 방어 시설이 전혀 없는 난징은 전략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다시 우한으로 이동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원장님, 두웨성 사부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중요한 서류들을 챙기던 장제스는 손가락에 힘이라도 빠졌는지 들고 있던 서류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서둘러 서류들을 챙겼다.

“오늘 죽었나?”

“예, 오늘 사망하셨습니다.”

장제스는 비장한 목소리로 보고를 하는 다이리를 보면서

“그럼, 전국의 모든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서 상하이를 끝까지 지키다 죽은 두웨성 사부의 자랑스럽고 애국적인 죽음을 모든 중화민국인이 알 수 있게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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