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팔백 용사의 최후
나와 대한민국의 독립에 대한 이해타산을 떠나서 두웨성을 상하이에 혼자 남겨두고 갈 수가 없었다.
지난 7년 세월 동안 물씬 양면으로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준 두웨성을 버리고 나 혼자만 살겠다고 상하이는 떠나자니 내 자신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의리가 없는 새끼로 보였다.
“대형! 공동조계 안으로 들어가서 뭘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군인과 일반인은 분명히 다릅니다. 사람을 언제든지 쉽게 죽일 수 있게 훈련받은 것이 바로 군인입니다. 대형의 자경단은 진짜 군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상하이의 나를 따르는 수많은 제자를 두고 나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자니 내 자존심이 허락지를 않는다.”
“대형!”
두웨성은 이번 생에서는 다른 선택을 해버렸다.
홍콩으로 도망쳐서 끝까지 항일투쟁을 하고도 상하이 사람들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 생에서는 상하이의 제자들과 함께 죽어서 별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조지야, 나는 상하이서 태어났고 상하이에서 살았고 상하이에서 죽을 생각이다.”
“대형!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이번에 상하이에서 죽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형! 미국의 도움을 받으면 상하이를 빼앗기더라도 다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잠시만 피난을 가시죠?”
두웨성은 내 말을 듣고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왜요? 미국이 도움을 거절했습니까?”
“아니, 거절도 아니고 승낙도 아니었다. 그리고, 문제는 지금 일본군은 우리 눈앞에 당장 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지원을 결정한다고 해도 상하이는 이미 일본군에게 잃고 만다.”
“대형! 그러니까 잠시만 피해 있자니까요?”
“아니다. 난 이미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서 나한테 건네줬다.
“대형, 이건 뭡니까?”
“만약, 내가 죽게 되면 내 모든 재산은 남은 상하이의 제자들을 위해서 사용해 주겠느냐? 너라면 그렇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두웨성은 나한테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짐을 떠넘기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부탁을 하는데 나중에라도 두웨성을 봐서라도 어떡하든지 상하이 사람들을 챙겨줘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 과연 그럴만한 여유와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대형! 대형께서 직접 상하이의 제자들을 챙겨 주십시오. 이 부탁은 내가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두웨성이 내민 봉투를 밀어내면서 분명히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조지야, 내 마지막 부탁인데, 들어주지 않겠다는 거냐?”
“대형! 대형의 부탁은 거절한다니까요. 앞으로 모든 일은 대형께서 직접 하십시오.”
내 눈을 한동안 쳐다보던 두웨성은 내가 얼마나 강하게 거부하는지 깨닫고는 봉투를 다시 집어넣었다.
“알았다. 아무튼 나는 상하이에 남을 테니까, 너는 너대로 너의 길을 떠나거라.”
그리고, 두웨성은 몸을 돌려서 내 집을 떠나갔다.
“두 대형! 만약에 상하이를 지키다가 힘들어서 후퇴하실 생각이라면 북쪽이나 공동조계가 아니라 서쪽으로 오십시오. 두 대형이 오실 때까지 제가 그래도 며칠간만이라도 버텨보겠습니다.”
왠지, 오늘따라 축 처져 보이는 두웨성의 두 어깨가 안타깝게 보이기는 했지만, 나도 나의 삶이 있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와이탄에 마련됐던 광복군 지휘부는 모두 철수 준비를 끝마쳤고 항저우만의 진산웨이를 방어하던 병력도 서서히 뒤로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군에 넘어가면 안 되는 광복군과 중국군 장비를 모두 파괴했다.
“14인치 해안 포대는 정리했나요?”
“예, 깔끔하게 파괴했습니다.”
내가 박시창 소령과 14인치 해안 포대의 대포를 파괴했는지 묻고 있을 때 김경천 중령이 옆으로 다가왔다.
“조지 대장님, 독일이 지원한 3호 전차는 어떻게 할까요?”
김경천 중령의 말처럼 독일군이 시험용으로 넘겨준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자주대공포가 문제였다.
“글쎄요. 그것들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기차를 이용해서 철수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전차와 장갑차 같은 장비들은 없으면 광복군의 전력에 문제가 생기는데 어떡하든지 함께 움직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유달리 전차에 애착이 강한 김경천 중령이 자기 의견을 말했지만 사실상 실천하기는 어려운 의견이었다.
“전차는 나도 꼭 있어야만 하는 장비라는 것을 잘 알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얼마 끌고 가지도 못하고 고장이 날 겁니다.”
“우리 정비병들이 실력이 괜찮은데 한번 믿고 끌고 가면 안 될까요?”
아무리 정비병들의 실력이 좋다고 해도 고장이 난 전차의 부품을 교체할 수 없다면 그건 헛짓이었다.
독일에서 전장 시험용으로 대대급 편제에 맞춰서 45대를 보내준 전차의 부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김경천 중령님, 아무리 아깝고 아쉬워도 포기할 것은 포기합시다.”
“음…. 알겠습니다.”
한참을 대답을 못 하던 김경천 중령은 마지못해 대답하고 전차를 파괴하러 밖으로 나갔다.
“솔직히 우리는 할 만큼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더 우리 병사들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중화민국 장제스에게 우리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의 힘을 이 정도 보여줬으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화베이 지역으로 이동해서 조선이나 만주 그리고 연해주를 탈출한 조선인을 단 한 명이라도 더 흡수해서 광복군의 병력을 보충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맥아더가 미국 군사고문단장으로 중국을 오게 된다면 그때는 맥아더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전과를 보여줘야 하겠지만, 아직도 맥아더의 중국 파견은 감감무소식이었다.
* * *
광복군 전차 대대와 포병 대대 그리고 보병 대대들이 진산웨이를 철수한 것이 결정타가 돼서 항저우만으로 밀려드는 일본군을 막지 못해서 상하이를 방어하던 중국군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상하이를 빠져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칭전으로 밀고 들어온 일본군의 9사단과 항저우만 진산웨이에 상륙한 8사단이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1937년 10월 26일.
“지금 후퇴를 하지 못한 중국군들이 공동조계 안으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뭐라고? 패잔병 놈들이 도망가는 것을 못 막았단 말이냐? 쫓아가서 모두 죽여라.”
“사단장님, 공동조계인데 괜찮겠습니까?”
“너는 그럼 중국 놈들을 그냥 보내줄 생각이냐? 끝까지 찾아내서 죽여라!”
“예.”
일본군은 언제나처럼 중국군을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하이 전선에서는 뜻밖에도 외국 열강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정도의 큰 피해를 보았다.
무려, 20만에 가까운 병력을 투입하고 두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 4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남기고서야 중국군을 상하이 밖으로 간신히 밀어낼 수가 있었다.
이런 처참한 결과를 맞이한 일본군은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말단의 일반 병사들까지도 중국군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서로 간의 적개심은 중국군도 마찬가지로였다.
상하이에 투입된 일본군들은 중국군을 중국군들은 일본군을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다.
“시발! 사부님! 귀신 놈들이 우리 병사들을 또 죽이고 있습니다.”
공동조계로 들어서는 입구에 중국군들이 마지막 보루로 진지를 구축해놓은 중국 4대 은행 창고(사행 창고) 옥상에서 중화민국 정부의 관활 지역을 점령한 일본군들이 중국군 패잔병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내려다보면서 상하이 방어 사령관인 량후가 두웨성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공동조계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몇 명의 중국군이 또 일본군의 시퍼런 군도에 맞고 목이 잘리고 있었다.
“크헉…. 죽은 병사들이 비록 내 제자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가만히 눈 뜨고 보고만 있기는 힘들구나.”
“두 사부님, 탈출하는 병사들을 구출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이빨을 꽉 깨물었으면 입가 주위로 가늘게 피까지 흘리고 있는 두웨성은 더는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사행 창고를 지키고 있는 우리 자경단을 내보내서라도 아군들의 철수를 도와줘.”
“예, 두 사부님!”
중국군은 장제스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정예사단의 병력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일본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상하이 북부와 공동조계 사이에서 방어진을 형성하고 일본군을 저지하던 상하이 자경단은 상하이 방어 사령관 량후의 지휘 아래 중국군의 탈출을 돕기 위해서 일본군을 향해서 돌격을 시도했다.
“귀신 놈들을 죽여라! 우리 동포들을 구출하라!”
“와! 와!”
갑작스러운 중국군의 돌격에 처음 몇 분 동안은 대처하지 못하던 일본군 9사단 병사들이 마주 보며 달려왔다.
“죽여! 내 형제와 내 이웃을 죽인 중국 놈들을 죽여!”
“죽여라! 내 친구를 죽인 중국 놈들을 죽여!”
서로 대포를 쏘고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공동조계 입구에서 최소한 두 개 연대 정도의 병력이 맞부딪혔다.
좁은 공간에서 군인들끼리 만나면 공간의 제약 때문에 살기 위해서 더욱 잔인해지기 마련이었다.
“오우! 쉣! 이건 전쟁이 아닙니다.”
“전쟁이 이렇게 사람을 만들다니…. 이런 전쟁은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병사들이 서로의 목에 칼을 박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이빨로 상대방의 목을 물어뜯는 장면은 상하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취재하러 온 많은 외국인 기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사행 창고 주위에서 벌어진 전투는 다음 날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두 사부님, 사부님 이제 그만 난징으로 떠나십시오.”
량후는 두웨성의 안위가 걱정돼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난징으로 탈출을 건의했다.
하지만, 두웨성의 태도는 단호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 중국군 병사들을 한 명이라도 더 탈출을 시키는 것에 신경을 써라.”
“두 사부님!”
“난 이미 목숨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날이 밝은 아침, 사행 창고 주위로 이번에는 항저우만에서 상륙한 8사단 병력이 진입해서 들어왔다.
8사단의 병력은 어제 공격을 시도한 9사단 병력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공동조계 안으로 유탄이 떨어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대포를 쏘아댔다.
그리고, 항저우만에 상륙하면서 사용하지 못한 가스탄도 있는 대로 터트렸다.
“량후! 량후!”“예, 두 사부님. 저 미친 새끼한테 이곳 사행 창고 안에 얼마나 많은 폭발물이 있는지 알려줘라.”
“예, 두 사부님.”
상하이를 방어하는 중국군의 모든 포탄과 탄약을 관리하던 곳이 바로 두웨성이 농성 중인 사행 창고였다.
두웨성과 량후는 처음부터 탄약 걱정은 할 필요 없이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행 창고를 차지한 것인데, 창고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일본군 8사단장이 건물을 날려버릴 기세로 대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창고에 엄청난 폭발물이 있다. 그러니까 싸우고 싶으면 총칼로만 싸우자. 만약, 저 창고가 날아가면 상하이 반이 사라진다.”
“뭐라고? 그런 개 소리를 믿으라는 말인가?”
“못 믿겠으면 따라와라. 직접 확인을 시켜 주겠다.”
그때부터 사행 창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투는 가장 원초적이고 잔인한 전투가 돼버렸다.
서로의 총탄을 막기 위해서 방패를 들고 전진하고 서로가 진지에서 튀어나오게 하려고 보는 앞에서 상대 병사의 멱을 땄다.
그리고, 일본군은 창고 안의 병력을 몰살시키기 위해서 줄기차게 가스탄을 사용했다.
상하이 자경단의 사행 창고 농성 사흘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