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를 죽여야 할까? 강도와 함께한 부역자를 죽여야 할까?
유자명 선생이 ‘피의 금요일’에 일본에서 납치해 온 세 사람은 서로 스승과 제자 사이로 일본의 핵물리학 분야에서는 독보적일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처음, 광복 후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모태를 만들어나갈 준비를 할 때는 우리는 핵물리학 분야를 연구한 사람도 없고 돈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연구이기 때문에 많이 망설였었다.
그리고, 돈을 들인다고 해서 결과물이 바로 나오는 학문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은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 출신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받아들일 때 의외로 이 분야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새롭게 준비한 계획이었다.
“조지 대장님, 이 세 명은 어떡할까요?”
“쓰촨성 바중의 비밀 연구 시설로 보내서 일을 시키고 말을 잘 듣고 일을 열심히 하면 저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십시오. 예를 들자면, 가족을 만나게 해준다든가 뭐 그런 것으로요.”
“예, 알겠습니다.”
유자명 선생은 대답만 하고 납치한 세 명과 함께 사무실을 나가질 않고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는지 그대로 서 있었다.
“유자명 선생님, 왜요? 또,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예, 어쩌면 조금 심각한 문제인 것 같은데…. 판단이 서질 않아서요.”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일본 공산당을 지원한 총기들이 국내로 흘러 들어간 것 같습니다.”
“국내라면, 조선을 말하는 겁니까?”
“예.”
유자명 선생이 전해준 소식은 내가 단 한 번도 상상을 해본 적이 없던 이야기여서 그런지 좀 쑈킹햇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 간의 연계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단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톰슨 기관단총이 국내에 얼마나 많이 들어갔습니까?”
“정확한 수량은 아직 파악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수십 정 이상이 국내로 반입됐고, 권총과 수류탄도 흘러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니, 국내로 기관단총과 무기들이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가 있나요?”
“지금, 일본과 조선은 여기서 벌어진 전쟁 때문에 겨우 한 개 사단도 안되는 군대와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다 보니까 경계망이나 항만 검색이 상당히 많이 부실해진 모양입니다.”
“음…. 기관단총에 수류탄이라니….”
우리가 일본 공산당의 폭동과 테러를 유도하기 위해 풀어버린 총기가 국내로 들어가서 생각지도 못한 테러에 이용된다면 큰일이었다.
일본이야 어찌 되든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국내는 다르다.
성질 급하기로 유명한 우리 민족의 손에 총과 수류탄을 들려주면 다음에 일어날 일은 너무나 뻔했다.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예측이나 대책은 있습니까?”
“현재는 대책을 세울만한 정확한 정보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큰 일입니다.”
“음…. 일이 이런식으로 진행될 줄은 나도 전혀 예상을 못 했습니다. 일단, 어떡하든지 일본 공산당이 총기를 누구누구에게 넘겼는지 추적을 좀 해주십시오.”
“예.”
* * *
영남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남인들의 후손으로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한 국채보상 운동을 시작했고, 1910년 나라를 빼앗겼을 땐 가장 먼저 간도와 만주로 건너가서 무장투쟁을 시작한 곳이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독립투쟁을 전개한 대구와 영남 출신 젊은이들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서 오늘도 대구 사범학교의 한 교실에 모여서 독립 의지를 다지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지금, 일본에서 난리가 났는데 보통 난리가 아니라고들 합니다.”
박제민은 일본에서 전해진 소식을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요? 우리도 두어 달 전에 경성에서 총독이 죽고 조선군 사령관도 죽고 총독부가 박살이 났다고 하더니 일본도 그런답니까?”
“예, 일본에서는 며칠 전에….”
처음 말을 꺼낸 박제민은 다른 동료들에게 일본의 상황은 경성의 사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럼, 일본군이나 경찰들이 시위를 전혀 진압하지 못한다는 겁니까? 우리는 국치일 날 경성에서 시위가 있었지만 모두 체포되고 해산당했다고 하던데….”
강두안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모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경성의 소식을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대구에서도 경성과 함께 일제에 대항하는 시위를 벌였을 것이다.
“그때는 우리가 경성 소식을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만약, 경성의 소식을 조금만 일찍 들었어도 우리 대구에서도 경성과 함께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까요. 그것이 정말로 아쉽습니다.”
너무 늦게 전달된 경성의 소식 때문에 경성의 독립투쟁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학생들은
“아니, 그런데, 일본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위에 나섰길래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질 못한답니까?”
“시위하는 사람들 숫자가 수만 명이 넘고, 시위대가 총으로 무장까지 했답니다.”
“시위대가 총으로 무장을 했다면 그것은 반란이나 폭동이지 않습니까? 그게 일본 내에서 가능한 이야깁니까?”
“일본 공산당의 ‘인민 전선’이 어떻게 무기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장을 했다고 합니다.”
“이야! 그거 진짜 부럽네요. 우리도 무기를 구할 수만 있다면 죽일 놈들이 천지에 널려 있는데….”
“우리도 무기만 있다면 진짜 죽여야 할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렸을 텐데….”
일제에 빌붙어서 동토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매국노들을 죽이지 못하는 것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박제민이 되물었다.
“정말로, 일본의 공산당처럼 무기가 있다면 매국노들을 쓸어버릴 생각들입니까?”
“그거야 당연하지요. 우리가 칼을 들고 가봐야 접근이나 가능합니까? 총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대구에도 죽여야 할 놈들이 어디 한두 놈입니까? 내 손에 총만 있었다면 진즉에 죽였을 겁니다.”
박제민은 나머지 동료들이 친일 매국노들을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땅에서 방금 파낸 것 같이 흙이 잔뜩 묻은 상자 몇 개를 가지고 왔다.
“일본에서 보내준 무기입니다.”
박제민은 흙 묻은 상자를 열고 안에 든 무기를 보여줬다.
열린 상자 안에는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자태의 톰슨 기관단총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건, 진짜…. 총이군요.”
“예, 톰슨 기관단총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일본에서 시위가 진압되질 않는답니다.”
“시위를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총으로 무장을 했다는 겁니까?”
“아니요. 그것은 아니고, 시위 진압에 참여한 경찰이나 경찰서를 찾아가서 이걸로 보복을 한답니다.”
“아! 그러니까 경찰들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무서워서 쉽게 진압을 하지 못하는 거군요.”
“예. 시위 참여자가 경찰에 잡혀가면 그 사람을 잡아넣은 경찰을 찾아가서 죽인다고 합니다.”
박제민의 자세한 설명에도 서진구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본 놈들이 평소와 다르게 어찌 그렇게 일을 허술하게 한답니까?”
“그 이유가 모두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때문에 다른 곳에 한눈을 팔 처지가 아니랍니다.”
대구지역 항일 애국 단체‘태극단’의 회원들도 벌써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과의 전쟁 이야기를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 동지는 이 총들을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박제민은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인 강두안, 박찬웅, 장세파, 서진구의 얼굴을 보면서
“제 종형이 일본에서 공장에 다니면서 공산당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조선의 독립운동에 쓰라고 몰래 보내준 겁니다.”
“아!”
“그런데, 박 동지, 우리는 총을 한 번도 쏴보질 않았는데 우리가 그냥 쓸 수 있습니까? 혹시, 따로 연습은 안 해도 됩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게 의외로 사용이 간단하답니다.”
“그래요? 그럼, 박 동지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나는 경성으로 올라가서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선생님들을 구출하고 싶습니다.”
박제민이 호기롭게 신간회 간부들을 구출하자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박 동지,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우리한테 총이 생겼다지만, 겨우 다섯 자루로 서대문 형무소를 습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괜히 애꿎게 선생님들만 다치시면 어찌합니까?”
“맞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서대문 형무소는 좀 무리인 것 같습니다.”
“동지들, 멀리 있는 선생님들을 구출하러 가느니 차라리 근처에 있는 강도 놈들을 때려잡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강도 놈들을 잡아 죽이던지 아니면 강도 놈들에게 빌붙어서 부역하는 놈들을 죽이던지 합시다.”
다섯 명의 ‘태극단’ 회원들은 의견 일치를 보고 대구에서 누가 가장 민족에 해를 끼친 놈인지 선정하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오늘 결행을 합시다. 그놈들이 사는 집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혹시 이 중에 의거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습니다. 이 무기들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다가는 남들에게 들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바로 결행합시다.”
“없습니다. 드디어, 내 한목숨을 나라를 위해서 바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다섯 명의 ‘태극단’ 단원들은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남기는 유서를 쓰고 톰슨 기관단총을 들고 사범학교 교실을 빠져나갔다.
* * *
벌써, 겨울이 다가오는 11월이다.
날씨가 아무리 북쪽 지방보다는 따뜻하다고 하지만 상하이도 한창 낙엽이 지고 있었다.
‘벌써, 상하이에 온 지 7년째인가? 이제는 여길 떠나야만 할 시간이군.’
장제스의 결정으로 다칭전의 방어 병력이 광둥성 성 방위군으로 교체되고 나서부터는 상하이 북부 전선은 하루에 몇 km씩 일본군에 밀리고 있었다.
덕분에 상하이 북부 전선에서는 하루에 수천 명 이상의 사상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광복군과 상하이 자경단은 별다른 사상자 없이 상하이 남부 전선의 항저우만 일대를 잘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작전상 후퇴를 해야만 할 시간이었다.
“조지야!”
“예, 대형.”
내가 정원의 낙엽들을 보면서 생각에 빠진 사이에 언제 왔는지 두웨성이 집에 와있었다.
“너도 피난 준비를 하는 거냐?”
“예, 상하이 북부가 일본군 수중에 들어가면 포위가 되는데 계속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 그렇지.”
“그런데, 대형께서는 피난 준비를 하지 않으십니까?”
“난…. 아직도 결정을 못햇다.”
두웨성이 상하이를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인 상하이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시간을 너무 질질 끌고 있었다.
“대형, 빨리 결단을 내리십시오. 시간만 보내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생깁니다.”
“조지야! 난 아무래도 상하이를 버리질 못하겠다.”
“예? 그럼 남으시겠다는 말입니까?”
“응. 나는 자경단과 함께 공동조계 안으로 들어갈까 생각 중이다.”
“대형! 공동조계 안으로 들어가서 일본군과 싸움을 이어가게 되면 일본과 공동조계를 관리하는 나라 간의 협잡질로 아무것도 못 하고 대형은 잡혀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상하이를 버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