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 (5)
히틀러는 나치 독일이 소련의 볼셰비즘과 공산주의를 물리칠 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작년에 발생한 스페인 내전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극우주의자 프랑코 장군을 지원하면서 소련과 스페인에서 간접적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독일이 가는 것 같지만 히틀러의 무식한 전쟁 준비로 인해서 독일은 전쟁이 아니라면 경제가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일본의 현재 상황 역시도 전쟁이 아니라면 일본이라는 국가와 사회 전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쓰오카 요스케와 관동군의 지지를 받는 도조 히데키가 독일과 확실한 군사 동맹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26 반란으로 황도파가 괴멸한 상황에서 통제파의 독주를 아무도 막지 못할 겁니다.”
“당신, 누굽니까?”
“나는 그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하는 미국인일 뿐입니다.”
도고 시게노리는 일본 군부와 내각의 은밀한 상황까지 모두 알고 있는 나를 미국의 정부가 파견한 정보 요원으로 알고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대사님도 잘 알겠지만, 대사님이 아무리 잘나고 일을 잘해도 당신은 결국 조센진 일뿐입니다.”
“크….”
도고 시게노리는 내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도고 시게노리는 일본에서도 엄청난 대우를 받는 외교 공무원인데도 조선인 후손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하지 못하다가 서른이 훨씬 넘어서야 간신히 독일에서 유대인 출신 아이 넷 딸린 대사관 직원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부인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또 이렇게 외교관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대사님, 지금 당장 대사님께 뭘 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내가 말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게 되면 그때는 반드시 나서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사님도 살고, 대사님 가족도 살고, 조선인도 살고, 수많은 일본인도 죽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나는 좀 더 강한 힘이 섞인 목소리로 도고 시게노리에게 강조를 했다.
“박무덕 대사님! 독일도 곧 전쟁을 시작할 겁니다. 이제 세상은 온통 피튀기는 전쟁터로 바뀔 겁니다. 그리고, 일본은 중국보다 더 큰 적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그럼, 군부의 미친놈들이 매일 주장했던 것처럼 독일과 동맹이 돼서 기어코 소련과 전쟁을 한다는 소리요?”
“대사님 말처럼 일본군이 워낙 미친놈들이어서 소련과 전쟁을 할지 영국과 전쟁을 할지 아니면 미국과 전쟁을 할지 그것도 아니면 셋 모두와 전쟁을 할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더 큰 전쟁은 결국 일어나게 됩니다.”
“음….”
도고 시게노리는 지금 보다 더 큰 전쟁이 일어나서 모든 세상이 전쟁터가 된다는 말에 막아보겠다고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겨우 도고 시게노리 따위가 고민하고 고심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전쟁이었다.
“박무덕 대사님! 대사님이 아무리 말려도 이미 전쟁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대사님의 역할은 전쟁을 끝내야 할 때입니다.”
“당신! 미국 정부가 보낸 사람이 아니오? 어째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같이?”
“대사님, 사실은 미국도 전쟁을 원하고 있거든요. 뉴딜정책을 실시했지만, 단기간에 경제가 살아나지를 않아서 미국도 고민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당시 모든 강대국들은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다들 전쟁을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경제가 침체하고 망가질 때, 전쟁만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좋은 수단이 없었다.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전을 하지 않고 전쟁 물자만 팔아도 얼마든지 경제를 살릴 수 있었다.
“설마…. 미국마저도….”
“대사님이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 사회에서는 어떤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여론 중에도 은근히 전쟁을 바라고 뒤에서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나한테 진짜로 원하는 게 뭐요?”
“박무덕 대사님! 미국이 아니고 납니다. 나는 대사님이 전쟁이 종료되는 시점이 될 때까지 내각의 직책을 모두 거절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천황의 측근들과 교감을 자주 가져야 대사님이 삽니다.”
워낙 충격적인 대화를 나눠서 그런지 흥분돼서 얼굴까지 붉어진 도고 시게노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쟁이 종료되는 시점까지는 절대로 내각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그리고, 스즈키 간타로와 친하게 지내십시오. 대사님,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베를린 최고급 호텔인 에들론 호텔 레스토랑에서 동양인 두 명이 오랫동안 함께 앉아 있는 것도 독일의 게슈타포나 일본 대사관 직원들의 눈에 띌 수 있어서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아! 그리고, 내년에 대사님이 모스크바로 임지를 옮길 때 저희 쪽 사람을 한 명 보내겠습니다. 아마, 대사님도 아는 얼굴일 테니까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구를 보낸다는 말이오?”
“장철수라고 이미 아시죠?”
“아! 장철수.”
“예, 저희 쪽 요원이니까 잘 보살펴 주십시오. 그 친구의 손에 큰일이 걸려 있습니다.”
도고 시게노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저는 이만…. 나중에 또 봅시다.”
* * *
바이에른 BF 항공기의 사장인 빌헬름 메서슈미트는 5년 전 우연히 만났던 동양인 투자자 한 명 때문에 인생이 바뀌기 시작해서 요즘은 정말 살맛이 났다.
1935년부터 독일의 재무장이 시작되면서 BF 항공사에서 만든 bf 109는 엄청난 수량의 주문을 받았고 독일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전에 봤을 때보다 얼굴이 활짝 핀 것을 보니까, 요즘은 사업이 크게 번창하는 모양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조지 리 사장님 덕분입니다. 하하.”
“사업이 잘되는 것처럼 보여서 다행입니다. 내가 중국에서 테스트하고 단점들을 보완해달라고 보고서를 보냈는데 수정은 많이 됐습니까?”
“예, 조지 리 사장님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단점을 보완해서 이번에 스페인에 보냈는데 조종사들의 반응이 최고입니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헤르만 괴링 공군 사령관하고는 여전히 관계가 좋으시죠?”
“예, 덕분에요. 옆에서 지원을 해주셔서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나는 여기서 독일 전력 상승을 위해서 좀 더 조언할까?
아니면, 여기서 멈출까?
잠시동안 고민을 했다.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일본과 미국의 전쟁보다 늦게 끝나도록 만들어야만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릴 만큼의 엄청난 전력 보강은 또 안 됐다.
“왜요? 조지 리 사장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메서슈미트 사장님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가요? 아니면, 독일의 영광이 목적인가요?”
내 질문에 빌헬름 메서슈미트는 멈칫하면서 바로 대답하질 못했다.
내가 마르틴 보어만을 통해서 헤르만 괴링과 연결되는 것을 측면에서 지원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냥 편하게 말해 보십시오. 나도 사장님과 함께 돈이나 벌어 볼까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뭐, 좋은 것이 있습니까?”
“좋은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사장님이 대답을 안 해주시니….”
“나는 돈이 먼저고, 그다음이 제3 제국의 영광입니다.”
메서슈미트 사장의 대답을 들은 나는 독소전쟁에서 독일군에 가장 부족했던 세 가지를 주문했다.
메서슈미트 사장이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사업을 진행해도 독일에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제3 제국의 영광을 생각하는 메서슈미트 사장님과 내가 몸 담고 있는 중국공군을 위해서 제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4발 엔진의 중폭격기를 만들어 주십시오.”
“4발 엔진의 중폭격기를요?”
“예, 중국에서 일본까지 폭격하러 가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리고, 제3 제국이 끝없이 팽창을 거듭하다 보면 그런 폭격기가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 겁니다.”
“흠…. 하지만, 중폭격기를 개발하려면 개발비가 엄청나게 들어서….”
개발비가 부족하다는 메서슈미트 사장을 위해서 나머지 두 가지도 마저 말을 해줬다.
“메서슈미트 사장님, 미국에서 트럭을 수입해서 트럭을 군에 납품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군용 트럭 납품 사업이요?”
“예, 내가 듣기로는 독일의 자동차 회사들은 전차를 만드느라 트럭을 거의 생산할 수가 없다던데, 전쟁에서 트럭만큼 중요하게 필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분명히, 사업은 대박이 날 것입니다.”
“그것 괜찮네요. 우리 회사 생산 시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수입 군용 트럭 납품 사업의 대박 가능성을 읽고 좋아하는 메서슈미트에게
“그리고, 이건 헤르만 괴링 공군 사령관이 정말 좋아할 사업인데….”
나는 일단 말을 한번 끊었다.
처음 말한 4발 엔진의 중형폭격기 개발사업을 제외하면 모두 BF 항공사와 관련이 없는 사업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뭔데, 그러십니까?”
헤르만 괴링과 관계를 유지해야만 에르하르트 밀히 항공부 장관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메서슈미트 사장은 눈을 빛내며 나를 재촉했다.
“이게 사장님네 회사와는 연관이 전혀 없는 사업이어서요.”
“아이고, 괜찮습니다. 헤르만 괴링 공군 사령관님이 좋아하실 일이라면 내가 먼저 나서서 해드려야죠.”
“그래요?”
“예, 헤르만 괴링 공군 사령관이 좋아하실 일이라면 뭐가 됐든 내가 먼저 합니다.”
“하프 트랙에 대공포를 탑재한 자주 대공포를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대공포도 하늘과 관련이 있으니까 공군이지 않습니까?”
조금은 벙찐 듯한 표정을 짓던 메서슈미트 사장은 바로 표정을 바꿨다.
아마, 헤르만 괴링이 나를 통해서 말을 전한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한 모양이었다.
“이야! 하프 트랙에 88mm 대공포를 달고 나가면 이거 다른 나라의 전차도 모조리 때려잡고 적의 전투기를 향해서 화망을 구성해 사격하면 전차들도 확실하게 보호하겠군요.”
“예, 바로 그걸 원하는 겁니다.”
“그건 내가 확실히 하겠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생각이 없으십니까? 4발 엔진 중폭격기는 1941년까지 생산이 된다면 지금 선금을 드리고 구매도 많이 하겠습니다.”
“음, 그건 지금 당장 대답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연구 개발진들과 상의를 해봐야 알 수가 있어서…. 그럼, 며칠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결정이 되는 동안 나는 에리히 레더 제독을 만나고 오면 되겠군요.”
“에리히 레더 해군 제독도 알고 있었습니까?”
“하하, 내가 독일군과는 좀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요. 4발 엔진 중형폭격기도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조지 리 사장님이 이렇게 부탁하시니 웬만하면 개발을 해보겠습니다.”
“아이고,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주는 선물을 가지고 독일군이 최대한 오래 버티기만을 빌 수밖에는 없었다.
소련까지의 보급선을 유지해 주는 트럭과 T-34를 잡을 수 있는 88mm 자주 대공포 그리고 4발 엔진의 중폭격기가 있다면 아무리 끝판왕 미국이 참전한다고 해도 독일이 쉽게 끝장나지는 않을 것이다.
* * *
독일에서의 모든 일을 마치고 스웨덴으로 방공구축함을 인수하러 떠나는 최선학에게 넌지시 속삭였다.
“Mi- 6의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에게 방공구축함에 레이더와 소나를 좋은 걸로 교체해주면 독일군의 최신 정보를 하나 주겠다고 하십시오.”
“어떤 정보를요?”
최선학 소령에게 독일 공군이 강력한 중폭격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레이다 기지를 촘촘히 보강하라고 전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양쪽에 한 가지씩 공평하게 정보를 줬으니까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