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 (3) (78/225)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 (3)

Mi- 6의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과 어렵게 어렵게 협상을 끝내고 우리 일행은 런던을 떠나서 독일로 가는 배에 간신히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배에 오른 나는 손원일과 최선학이 전과 달리 나를 왠지 멀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원일, 최선학. 둘 다 갑자기 왜 그래? 혹시, 내가 너희 둘을 버리고 떠나겠다고 해서 삐친 건가?”

“예.”

“저, 그게 아니고….”

손원일에게 있어서 나는 큰형과도 같은 사람으로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해군 장교로 만들어 준 사람이어서 그런지 바로 삐쳤다고 대답했고, 최선학은 아직은 낯을 가리는지 대답을 못 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둘은 몰랐겠지만,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 방에는 Mi -6가 설치한 도청 장치가 있었다. 그래서, 둘에게 따로 설명해 줄 여유가 없었다.”

“그 방에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습니까?”

“그래. 둘 다 영국의 Mi -6이라는 조직을 너무 만만히 보지 말도록. Mi -6는 전 세계에서 정보를 가장 빨리 알아내고 또 그것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곳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지 대장님이 혼자서만 독일로 가시겠다고 하시니까 이번에는 솔직히 진짜 놀랐습니다.”

“그랬었나? 둘이 속을 정도였었으니까 Mi –6도 그래서 속았었나 보군.”

“예?”“아니야. 그건 그렇고 둘 다 이번 일을 겪어봐서 알겠지만, 세상은 힘이 없으면 언제나 이런 식이다. 세상은 힘이 없는 우리에게 원하지 않은 일을 하게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하게 만들지. 그것이 국제적인 힘의 논리야. 그러니까 반드시, 독립한 우리나라는 이런 힘의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만 해.”

나는 손원일과 최선학이 힘없는 자들의 설움이 어떤 것인지 모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와 같은 일을 다시 겪을 수도 있어서 미리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조지 대장님. 설마, 독일에서도 이럴까요?”

“그건 모르지. 독일에서도 이런 일을 겪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독일도 영국의 Mi -6처럼 정보를 담당하는 기관이 있을 테니까”

“독일에서는 좀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조지 대장님은 영국과는 어떤 협상을 하신 겁니까?”

우리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젊은 손원일은 조금 전까지 구금을 당했었다는 것도 잊고 내가 영국과 협상한 내용이 더 궁금한 모양이었다.

1933년 히틀러의 나치당이 독일 집권을 시작한 이후 독일은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공산주의자들을 끊임없이 탄압하고 척결해 나갔다.

그리고, 1935년 재무장을 선언하고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후 잃어버렸던 영토인 라인란트를 회복했다.

나치 집권 하의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완전히 파기했으며, 군수산업과 중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고 아우토반과 같은 사회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건설해서 독일을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독일의 이런 엄청난 성장 뒤에는 미국의 자본이 있었다.

이렇게 독일이 성장하고 옛 독일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외치는데 어째서 영국과 프랑스는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그 이유로는 대공황과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일을 통해서 소련의 견제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견제 때문이었다.

영국은 미국이 독일을 통해서 유럽과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고 싶었고, 독일이 빠르게 성장해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을 공격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프랑스는 영국과는 달리 독일을 항상 경계했으며 1935년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하자 소련과 조약을 체결하고 독일의 침략을 받게 되면 서로 돕기로 했다.

“Mi–6 와의 협상 내용을 모두 알려줄 수는 없지만 대충 정리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독일과 소련에서 얻는 정보를 Mi –6에 공유해 주기로 했다.”

“그럼, 우리만 손해가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대신 다른 것을 협조받기로 했어. 그리고, 정보를 공유한다고 했지. 모든 정보를 넘겨주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 공유라는 걸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군요.”

“후훗.”

소련이라면 이를 갈고 있는 최선학은 소련과 관련된 일이나 정보에는 좀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조지 대장님, 우리는 소련에 정보원을 따로 파견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정보를 얻어서 Mi –6에 넘겨줄 생각입니까?”

“이번에 독일에서 만날 사람에게 협조를 받을 생각입니다.”

“독일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협조를 받아요?”

“예, 그런 게 있으니까 나중에 보시면 알 겁니다.”

말을 마치고 바다를 보면서 Mi- 6의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과 협상했던 내용이 하나씩 떠올랐다.

“자! 조지 리 씨, 지금부터는 우리 서로 가면을 벗고 제대로 이야기를 한번 해봅시다. 어떻습니까?”

“저는 계속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께서 그렇게 받아드리지 않으신 거죠.”

전 세계 최고 정보 조직의 수장이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듣도 보도 못한 망명정부를 지원하는 사람을 대우해 주겠나?

이해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동등한 상태에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내 급이 상승한 것이다.

“좋습니다. 먼저, 조지 리 씨, 어째서 마르틴 보어만에 대한 접근을 막는 겁니까?”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 나는 한 번도 막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Mi –6가 접촉을 시도하면 충분히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접촉을 시도하면 의심을 받기 때문이요.”

“그것은 Mi –6의 문제지. 우리가 방해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현재 접촉하고 관리하는 독일의 고위층의 정보원은 마르틴 보어만 한 명뿐입니다. 물론, Mi –6가 모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지만, 그 사람은 독일 정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Mi –6에서 모르는 다른 한 명은 내가 직접 접촉해서 지금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는 빌헬름 메서슈미트와 BF 항공사 사장과 그를 통해서 소개받은 헤르만 괴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절대로 영국에 노출할 생각이 없었다.

“흠…. 그래요?”

“예.”

“좋습니다. 서로가 감추고 싶은 비장의 카드를 한 장 정도씩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죠. 그럼, 중국에서 실시한 독일군 무기들의 성능테스트 결과는 알려줄 수 있겠지요?”

“예, 중국 전선에서 테스트하고 독일 육군과 공군에 올린 보고서를 그대로 제공하겠습니다.”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은 무언가 더 원하는 것이 있는지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협상을 좀 더 유리하게 하려고 가볍게 잽을 한번 날렸다.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은 독일이 영국에 침투시킨 정보원들은 모두 파악하고 계신 모양이군요?”

“뭐,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파악하고 있소.”

“그래요? 혹시,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십니까? 다른 요원들의 실적은 별론데, 특별한 누군가는 검거 실적이 계속해서 좋은 요원이 있죠?”

“그런 요원들이 있기는 있소.”

“그럼, 그런 요원들은 다른 요원들보다 실력이 월등히 좋은 걸까요? 아니면, 남들 모르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걸까요? 왜 그런 경우도 있잖습니까?”

“조지 리 씨의 말은 우리 요원 중에 누군가는 남들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내 말을 이해를 못 한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던 스튜어트 멘지스는 내 말뜻을 이해하고는 처음으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우리 내부에 타국의 첩자가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그야 나는 잘 모르죠. Mi –6에 있을 수도 있고, Mi –5에 타국에서 파견한 첩자들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거요? 없다는 거요?”

“내가 알기로는 있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 이렇게 귀중한 정보를 설마 공짜로 달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내 솔직한 마음은 영국은 별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나는 소련이 1949년에 핵 개발을 하는 것을 절대로 하지 못하게 막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영국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뭘 원하는 거요? 조지 리 씨, 원하는 걸 한번 말해 보시오.”

스튜어트 멘지스는 조직 내부의 스파이 문제가 불거지자 당황한 얼굴로 마음이 급해진 것 같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많이 급한 것 같은데 무얼 해달라고 할까?

영국에는 뭘 해달라고 할만한 것도 사실 별로 없었다.

아! 있다면, 딱 한 가지가 있었다.

“우리가 스웨덴에서 건조 하고 있는 구축함을 운용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것 말고는 영국에 원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구축함들의 운용 훈련만 도와주면 되는 거요?”

“예, 그것 말고는 딱히 영국에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도와주겠소. 누가 우리 내부에서 암약하는 첩자요?”

“내가 그 사람을 지목하면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은 아마 믿지 못하실 겁니다. 그리고, 진정한 그들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이 직접 조사를 하셔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와 연결된 사람까지는 완전히 파악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게 누구요?”

“모두 케임브리지 동창생인데 킴 필비, 가이 버제스, 도널드 매클린, 앤서니 블런트, 존 케른크로스 이렇게 다섯 명입니다. 도널드 매클린과 존 케른크로스는 현재 외무부와 재무부에서 일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소련에서 간첩 교육을 받고 돌아와서 현재는 정부 기관이나 정보기관에 침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더군요.”

스튜어트 멘지스는 얼마나 놀랐는지 말하는 것도 잊고 눈만 깜빡거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다섯 명의 출신이 범상치 않은데 어쩌다 그들이 소련의 간첩이 됐는지 궁금해했다.

“그들이 어떻게 소련의 간첩이 될 수 있죠? 왠지, 조지 리 씨가 잘못 안 것 같은데….”

“우리가 알기로는 그들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인 모리스 도브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고, 스탈린의 신경제정책 성공을 지켜보면서 공산주의가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음…. 정말로 확실한 정보가 맞습니까?”

“이 정보는 소련에서 흘러나온 정보입니다. 아! 그리고,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 이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도 포섭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스튜어트 멘지스는 말이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그들이 소련의 NKVD가 넘겨주는 정보를 가지고 영국에 침투한 독일 간첩들을 파악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조사를 자세히 해보십시오.”

“조지 리 씨, 정말 고맙습니다. 당장 조사를 해봐야겠군요.”

“Mi –6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국에 필요한 정보는 공유해드리겠습니다.”

* * *

Mi- 6의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과 협상했던 장면을 회상하다 보니 어느새 함부르크 항이 눈앞에 들어왔다.

“드디어, 독일에 도착했네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잠수함을 인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손원일은 환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