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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 (1) (76/225)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 (1)

스튜어트 멘지스는 내가 쉽게 나오지를 않자 협박에 가까운 말까지 하면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더니 막상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니까 또 입을 다물고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앉아만 있었다.

그런데, 스튜어트 멘지스는 이런 고전적인 심문 방법으로 나를 대하면 내가 당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스튜어트 멘지스에게는 불행하게도 내 기억 속에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요원이었던 이윤호의 기억도 있다.

“아함….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왜 갑자기 물어볼 게 없어졌습니까?”

하품을 하면서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빨리 물어보라고 재촉을 했다.

그러나, 스튜어트 멘지스는 여전히 말이 없이 빈정거리는 나를 쳐다만 봤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제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마르틴 보어만이요.”

“마르틴 보어만이 누군데요?”

“조지 리 씨의 부하들이 관리하는 대상인데 모르는 거요?”

안다.

내가 어떻게 마르틴 보어만을 모를 수가 있겠나?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마르틴 보어만을 Mi -6 와 직접 연결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 사람이라면 그리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당신들도 충분히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부탁합니까?”

“우리는 마르틴 보어만이라는 카드를 마지막 조커로 쓸 생각입니다.”

잠깐, 그럼, 히틀러가 미친 짓을 벌이기 시작하면 마르틴 보어만을 통해서 암살하든지 아니면 히틀러에 대한 극비정보를 얻겠다는 말인데….

“이런, 미친…. 이보세요.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 그만합시다. 그냥, 당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죽이던지 살리던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것은 절대로 안 될 말이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내가 성인이나 군자였다면 유럽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조지 리 씨, 잘 생각해서 결정하십시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결정했다가는 나중에 낭패를 당할 겁니다.”

“아니요. 거절합니다. 그냥, 당신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럼….”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내고 더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 * *

영국 Mi -6 와의 접촉이 아무런 성과가 없이 무산되자 우리 일행은 바로 다음 목적지인 독일로 가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움직였음에도 역시 예상대로 우리 출국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영국으로 들어갈 때는 우리 마음대로 입국할 수 있었지만 떠나는 출국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었다.

미국 영주권자인 나를 제외한 손원일과 최선학이 문제였다.

가짜 중국인 신분인 손원일과 최선학은 중국 영사관의 확인이 끝날 때까지 출국이 금지됐다.

“진짜 이 새끼들 더럽게 나오네.”

“조지 대장님, 이제 어떡합니까?”

역시, 나는 아직까지는 하수였다.

진정한 고수들은 상대를 얼마든지 비웃으면서 무자비하게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그 길로 바로 Mi -6의 책임자인 스튜어트 맨지스에게 연락을 했다.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 제 동료들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영국 정부가 책임지고 먹여 주고 재워 주신다고 하니까 너무 감사합니다.”

“이봐요. 조지 리 씨.”

나한테서 연락이 왔다는 소리에 드디어 항복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았겠지만 나는 결코 Mi- 6의 조건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전화 통화를 끝낸 나는 바로 손원일과 최선학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둘은 독립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영국에 머물러야만 할 것 같다. 만약, 운이 좋다면 좀 더 일찍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러기는 힘들 거다.”

상대가 무식하게 나오면 나도 같이 무식하게 행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호구가 된다.

“조지 대장님….”

“조지 대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둘은 놀라다 못해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로 나를 쳐다봤다.

“일이 그렇게 됐다. 둘을 놔두고 혼자만 떠나는 내가 지금은 배신자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나를 이해하고 몇 년만 참고 기다려라.”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몇 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경비를 손원일과 최선학의 손에 쥐여주고 바로 항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독일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내 옆으로 중절모를 눌러쓴 스튜어트 멘지스가 그의 부하들과 함께 급하게 다가왔다.

“런던을 떠나시나 봅니다?”

“예, 좋은 사람이라고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만났는데 상대가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알고 보면 정말로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하하, 내가 가진 밑천을 모두 달라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사람일 수가 없죠.”

“그래요? 그러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밑천까지도 사라질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내가 소개받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못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밑천이 겨우 그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좀 웃깁니다.”

나와 스튜어트 멘지스는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빠르게 주고받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단호한 내 대처에 스튜어트 멘지스는 말문이 막혔는지 또 뜸을 들였다.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내가 타야 할 배가 승선을 시작하는군요.”

나는 급하게 가방을 들고 배를 타려고 걸어갔다.

영국 Mi- 6에 의해서 엠마와 줄리아가 죽고, 손원일과 최선학이 구금을 당해도 대한민국의 독립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왜냐?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가 없을 때는 잇몸으로 살면 된다.

그러나, 히틀러가 전쟁 중에 죽어 버리면 그건 그야말로 재앙 중에 최고의 재앙이다.

그 순간부터 대한민국의 독립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신세가 된다.

여객선 승선용 계단 앞에서 표를 검사하고 배에 오르려고 할 때

“조지 리 씨! 조지 리 씨!”

스튜어트 멘지스와 나 사이에 있었던 배포 싸움은 아무래도 내가 이긴 것 같았다.

* * *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거리를 비추는 도쿄 긴자의 한 선술집에서도 독일과 일본을 무너트리기 위한 모의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있었다.

소련 NKVD가 파견한 독일 출신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와 마이니치 신문사의 기자인 오자키 호츠미는 주위를 신경 쓰면서 서로의 어깨까지 맞대고 작은 목소리로 그동안의 성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에 고토 류노스케의 소개를 받아서 고노에 총리가 설립한 씽크탱크인 쇼와 겐규카이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자키 호츠미의 성과 보고에 리하르트 조르게는 빙긋이 웃으면서

“정말, 잘 됐습니다.”

“고노에 총리의 비서가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비서가 되는 것은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습니다.”

“괜찮아요. 우리는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순리대로 차근차근 접근해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리하르트 조르게는 작은 잔에 사케를 따르면서 뭔가 불만이 있는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일본에 꽤나 오래 있었지만 정말 이 술만큼은 적응되지 않는군요. 술잔은 너무 작고 도수는 또 너무 약해서 도무지 취하질 않으니”

“조르게 선생, 그럼, 술을 위스키로 바꿀까요?”

“예, 큰 컵도요. 아! 이왕이면 위스키도 좀 독한 거로 주문해 주십시오.”

독한 위스키가 나오자 리하르트 조르게는 큰 컵에 가득 따라서 그 많은 위스키를 한번 쭉 마셔 버렸다.

그리고, 그런 조르게의 모습 보면서 오자키 호츠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르게 선생, 프롤레타리아의 세상이 올 때까지는 건강하게 버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들어서 너무 과음하는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질 않고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그럼, 차라리 여자를 한 명 구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리하르트 조르게는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말을 건네는 오자키 호츠미를 보면서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잠이 쉽게 오지를 않네요. 하하”

도쿄에서는 꽤나 유명한 바람둥이이자 카사노바인 리하르트 조르게는 이미 여러 명의 애인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주일 독일 대사관의 무관인 오이겐 오토의 아내도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오자키 호츠미 선생에게 정치 자금을 제공하는 조지 리의 정체는 좀 알아봤습니까?”

리하르트 조르게는 상하이에서 만난 애인 아그네스 스메들리의 소개로 만나서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조지 리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조지 리가 아무리 사업가라고는 하지만 요즘 들어서 쓰는 돈이 너무나 어마어마했다.

특히, 오자키 호츠미를 통해서 정치인들과 군 간부들에게 뿌려지는 자금의 양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은 절대로 일개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외무성의 정보 보고서에는 조지 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고, 참모본부 정보국과 관동군 특무대에는 정보가 있었는데 조지 리를 조선 출신 미국인으로 기록해놨더군요.”

“그것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다른 특별한 정보는 없었습니까?”

“그냥 미국 정부와 연결된 사업가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 주류였고 마약 중개상에 사기꾼에 뭐 대충 그런 식으로 기록이 돼 있었습니다.”

“하아….”

“왜 그러십니까?”

리하르트 조르게의 예감에는 분명히 나중에 조지 리가 제공한 자금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만약, 이 자금에 문제가 생긴다면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정체가 밝혀질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조지 리가 제공한 자금이 얼마나 되죠?”

“계산해보지 않아서 얼만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삼백만 달러 정도는 될 겁니다.”

“정말 엄청나군요.”

“예, 좀 많기는 합니다.”

“그리고, 내가 수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엄청난 돈을 쓰면서도 오자키 호츠미 선생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원하지도 않잖아요? 나는 그게 진짜 의심스럽습니다. 돈을 쓰고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소보다 날카롭고 까칠한 모습을 보이는 리하르트 조르게의 모습에 오자키 호츠미는 그가 계속되는 긴장감과 불안감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NKVD에 전하는 모든 정보는 그를 통해서 모스크바로 전해 주잖습니까?”

“나는 그것도 불안합니다.”

“조르게 선생, 나는 조지 리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군부가 아무리 바보들이라고 해도 계속해서 전기가 엄청나게 소모되고 도쿄에서 진신 전파가 발신되면 우리를 못 찾을까요? 그럼, 우린 프롤레타리아 세상을 만들기도 전에 죽습니다.”

“하아…. 하지만, 그를 통해서 전하는 우리 정보가 모스크바로 제대로 가는지를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까?”

“왜 모릅니까? 내 조직원들과 조르게 선생의 조직원들도 거기 같이 있잖습니까? 믿을 것은 믿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지쳐서 버티지 못합니다.”

* * *

리하르트 조르게와 오자키 호츠미가 폭음을 하면서 내 정체를 의심하고 있을 때 도쿄의 다른 곳에서도 일본을 무너트릴 또 다른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대인 사업가로 위장한 드미트리는 보스인 내 명령으로 요즘 일본에서 잘나가는 젊은 사업가에게 계속해서 위조지폐를 공급하고 있었다.

“후루카와 쥰이치 회장님, 후루카와 그룹이 예전처럼 재건되는 모습을 보니까 내 마음도 같이 기쁩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제 할아버지께서 이룩한 그룹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느꼈던 처참했던 감정이 이제야 조금 사라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모두 드미트리 사장님의 도움이 아니겠습니까?”

“뭐, 도움까지야…. 서로 도움이 되자고 투자한 것뿐인데요.”

“아닙니다. 후루카와 그룹이 무너질 때 은행도 선이 닿아 있던 정치인도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는데, 드미트리 사장님이 저와 후루카와 그룹을 살려주신 겁니다.”

드미트리에게 덕담 비슷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자리에 앉은 후루카와 쥰이치는

“그런데, 이번에는 따로 투자할 곳을 지정하시겠다고 하셨었죠?”

“예,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곳에 후루카와 그룹의 공장을 좀 지어 주십시오.”

“어디에 공장을 지어야 합니까?”

드미트리가 원한다면 지옥을 찾아가서라도 공장을 지어줄 기세로 후루카와 쥰이치가 물었다.

“지금, 중국에서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가 우리 같은 사업가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이죠.”

“그렇죠. 전쟁은 사업가들을 살찌우는 시간이죠.”

“그래서, 나는 중국 전선의 병참 기지가 될 만한 조선에 공장을 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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