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금 Mi- 6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정보는? (75/225)

지금 Mi- 6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정보는?

코델 헐 국무장관은 백악관 회의를 통해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됐다.

헐 장관이 보기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이 더는 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일본의 전쟁에 전면적인 개입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 미국의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전쟁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개입을 통한 경제적 이득과 일본의 팽창에 대한 견제가 핵심이었다.

헐 국무장관은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를 불러서 중재 의견을 한 번 더 내보였다.

물론, 중국과 일본 정부는 절대로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하는 제안이었다.

두 번의 중재 제안을 하고 국제연맹 조사단을 통해서 일본이 불법 침략을 했다는 조사 보고서가 나오면 그때는 일본에 전쟁 행위를 멈추라고 경고를 할 예정이다.

이렇게 루스벨트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외교적인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 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난징 영사관의 엘리슨 영사를 통해서 미국 군사고문단의 파견 문제를 장제스와 협의하라고 명령했다.

* * *

뉴욕에서 출발해서 런던으로 향하는 여객선의 선상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바다는 이제 오래지 않아 전쟁터로 변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우리 광복군 해군 함정들을 어디에 숨겨놔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중국해군이 상하이를 잃게 되면 광복군 해군이 활동할 기지가 사라진다.

아니, 더는 정보 노출 때문에 중국해군 기지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영국과의 협상이 잘돼야 할 텐데, 만약 Mi –6 와의 협상에 실패한다면 또 미국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텐데….’

“조지 대장님, 혼자서 바다를 보고 계셨습니까?”

바다를 보면서 혼자 고민하고 있던 나를 누군가 불렀다.

“아, 최선학 소령, 응. 바다를 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탁 트이고 좋네.”

돌아선 나는 웃으면서 최선학에게 대답했다.

“저는 바다를 보면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 생각납니다.”

“최 소령의 아주 어렸을 적 기억?”

“예, 제가 완전히 꼬맹이였을 때는 우리 가족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았었거든요.”

“아! 최선학 소령의 아버님이 최재형 선생님이셨지?”

“예, 아버님께서 지금 제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저를 자랑스러워하셨을지….”

최선학은 아련한 눈빛으로 바다를 보면서 추억을 회상하는지 말이 없었다.

그런 최선학을 보면서 나도 끊겼던 생각을 이어갔다.

‘Mi -6에는 어떤 정보를 줘야 할까? 소련 첩자들을 알려줄까? 아니면, 독일의 전투기의 성능과 재원을 알려줄까? 아니지…. 뭐, 일단, 만나서 부딪혀 보고 결정하자.’

현재 스웨덴 말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우리 광복군 해군의 방공구축함을 1939년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반드시 인수해서 어디로든 옮겨 놓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주문한 방공구축함은 전쟁 물자로 독일이든 영국이든 둘 중 한 곳에 빼앗기고 말 것이다.

“조지 대장님, 그런데, 이번에 인수하는 구축함들은 승무원이 300명이 넘게 필요하던데, 지금 우리 광복군의 인원으로 감당이 되겠습니까?”

감당이 안 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을 다 합쳐봐야 우리 인원은 2만 명 정도다.

내 계획에는 6척의 방공구축함과 1척의 지휘 통신 레이다 함과 최소한 두 척 이상의 보급함이 필요한데 사람이 없었다.

“아니, 사람이 너무 부족해.”

“그럼, 어떡하시려고 이렇게 무리하게 구축함을 주문하셨습니까?”

“구축함을 주문하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단 필요한 수량을 주문해놔야 나중에 어떻게든 쓸 수 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었네.”

돈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많았다.

찍어내면 바로 사용이 가능한 위조지폐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배를 몰고 싸워 줄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소련에서 넘어온 청년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잖나?”

“저하고 같이 소련 국경을 넘어온 동포라고 해봐야, 겨우 몇천 명인데….”

“알고 있네. 나도 방법을 계속 찾고 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

방공구축함을 정박시켜 놓은 장소도 문제였지만, 막상 구축함에서 전투할 승무원이 너무 부족했다.

방공구축함의 운용 요원은 간신히 맞춰놨는데 전투 요원이 없었다.

구축함 운용 요원과 잠수함 운용 요원 문제를 고민하다가 문득 재밌는 생각이 하나 떠 올랐다.

일본의 소련에 대한 공포심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최 소령, 이번에 해군에 입대한 소련 출신 동포들은 전부 러시아어가 가능하지?”

“예, 소련에서 살았는데 소련말을 못 하겠습니까? 모두들 소련말을 할 줄 압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최선학 소령은 뭔가 의심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보면서

“조지 대장님, 갑자기 동포들이 소련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왜 물으십니까?”

“아니, 나중에 일본 놈들한테 제대로 엿을 먹일 방법이 생각났어. 그러나저러나 승무원하고 항구를 어떡한다.”

* * *

런던에 도착한 나는 상하이 주재 영국 총영사 브레난과 약속한 대로 Mi -6의 부장인 스튜어트 멘지스에게 연락을 했다.

브레난 총영사와의 협상에서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겠다는 이야기는 없었고 다만 서로 한번 만나보자는 이야기만 한 상태였다.

템스강이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의 씁쓸한 맛과 진한 향을 즐기고 있는 내 앞자리에 처음 본 남자가 조심스럽게 앉았다.

“조지 리 씨?”

“예, 스튜어트 멘지스 씨인가요?”

“그렇소. 약속을 지켜 줘서 고맙소.”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렇게 날 만나자고 한 겁니까?”

솔직히 지금 이 자리는 나한테는 전혀 손해 볼일이 없는 자리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소련 간첩들을 알려줄 생각이었고, 독일의 무기나 작전은 끝까지 비밀을 지킬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조지 씨를 한번 만나자고 한 이유는 독일 때문입니다.”

역시, 영국이 나를 만나기를 원한 이유는 독일 때문이었다.

“나는 독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그게 무슨 말이죠?”

무뚝뚝한 표정의 스튜어트 멘지스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사진 두 장을 내 앞에 내밀었다.

“혹시, 이 여자들을 모릅니까?”

사진 두 장의 주인공은 내가 독일에 파견한 공작원인 엠마와 줄리아였다.

‘이 병신 같은 새끼들은 우리 애들을 쫓아다닐 시간에 자기네 나라에 숨어있는 소련 간첩이나 잡지.’

어쩐지 나를 만나자고 하면서 뭔가 내가 모르는 카드를 쥔 것 같더니 그 카드가 바로 엠마와 줄리아였다.

“어디 보자. 어? 이 여자들은 우리 신문사 기자들이네요.”

내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름 연기를 하자 스튜어트 멘지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가 현재 주목하고 있는 여자들입니다. 그 여자들을 통해서 독일의 여러 군수 물자들이 중국으로 건너가고, 중국에서 실전 테스트를 거치고 있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내 신문사의 기자들이 중국에서 독일로 파견한 간첩이라는 말입니까?”

“조지 리 씨,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중국에서 보낸 첩자가 아니라 조지 씨와 연결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흠….”

뭐라 대답을 할까?

뭣부터 시작해서 얻을 것은 얻고 줄 것은 줄까?

순간, 내 머릿속은 엄청나게 회전하고 있었다.

“스튜어트 멘지스 씨의 말처럼 그 여자들은 내가 파견한 사람들이 맞습니다.”

내가 너무 쉽게 시인을 해서인지 스튜어트 멘지스는 눈가가 살짝 흔들린 것 빼고는 뭐라 말이 없이 조용했다.

“이제 사실을 확인했으니까 나는 그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조지 리 씨, 그 여자들을 왜 독일에 파견했습니까?”

“내가 내 신문사의 기자들을 왜 파견했겠습니까? 독일에서 기사를 취재하라고 파견했죠.”

스튜어트 멘지스가 사람을 상대할 항상 쓰는 수법인지, 대답을 했으면 다시 대답을 하든지 묻든지 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중간중간 띄엄띄엄 말을 멈추면서 내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그런 스튜어트 멘지스의 모습이 보기 싫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튜어트 멘지스 씨, 아무래도 대화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때 다시 봅시다.”

“조지 리 씨, 우리는 당신이 지원하는 단체를 도와줄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요?”

“서로 간에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협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불상사라…. 내가 분명히 장담하는데 그렇게 되면 당신들이 나보다 더 크게 손해를 볼 겁니다.”

내 말을 듣고 대답을 하면서 스튜어트 멘지스는 처음으로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뭐랄까?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랄까?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이 스웨덴에 주문한 구축함도 압수할 수 있습니다.”

스튜어트 멘지스의 말에 내 두 눈에서는 불이라도 뿜어낼 것 같이 스튜어트 멘지스를 노려봤다.

“그 말 진심입니까?”

“그러니까 서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협력을 합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자기 조직에서 활동하는 소련 스파이는 몰라봤지만,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영국 비밀정보부에서 우리가 스웨덴에서 건조 중인 구축함을 알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만 협력이라고 말하는 건데, 도대체 우리한테 뭘 줄 수 있다는 겁니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없소. 그래야 당신들의 구축함을 찾게 될 거요.”

이제는 아예 대놓고 협박을 했다.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의 말을 듣고 나 역시 비웃음을 지어줬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그럼, 스웨덴에서 건조 중인 구축함은 당신들이 가져가십시오. 우리는 이번에는 미국에 다시 주문하면 되니까?”

“내가 알기로는 당신이 돕는 망명정부는 가난하다고 알고 있는데 돈이 어디서 난 겁니까?”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영국은 서로 협력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제 보니까 Mi- 6의 입장에서는 소련 스파이 따위는 당장은 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Mi- 6가 현재 가장 간절히 원하는 정보는 독일군과 독일군 무기에 관련된 정보였다.

그러나, 내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정보를 오픈해야 했다.

“Mi -6 정도면 내 재산이 얼마 인지는 금방 파악하시겠죠? 아니, 벌써 알고 있으려나? 스튜어트 멘지스 씨도 알다시피 나는 현재 뤄리리-하둔 재단의 최고 투자 결정권자입니다.”

“그래서, 재단 자금을 유용한 겁니까?”

“아니요. 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특별 국채를 재단 자금으로 사줬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이 독립하면 지급되는 이자가 엄청나거든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베팅을 한 겁니까?”

“내 고국인 대한민국은 분명히 독립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독립전쟁은 이미 시작이 됐거든요.”

내 대답을 듣고 또 말을 멈춘 채 잠시 나를 보던 스튜어트 멘지스는

“대화가 다른 곳으로 간 것 같군요. 자, 이쯤 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해줄 수 있지 않겠소?”

“스튜어트 멘지스 부장님, 뭘 원하는지 말을 해야 내가 알려주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