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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한반도를 위한 이중 삼중의 덫 (72/225)

하나의 한반도를 위한 이중 삼중의 덫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나와 헤이우드 브룬은 백악관을 나와서 좀 걸었다.

이제 계절이 바꿔서 가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해 질 녘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조지.”

“응?”

“너, 왜 대통령에게 너희 고향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어? 니가 지금 중국에 가 있는 이유도 네 고향의 독립을 위해서잖아?”

어쩌면 헤이우드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을 지원하고 일본과의 전쟁에 간접적으로라도 발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독립에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나는 생각했다.

모든 것은 시간 싸움이었다.

결국, 독일의 패망보다 일본의 패망이 빠르면 된다.

“헤이우드, 난 너와 같은 미국 시민이잖아. 나는 미국 시민으로서 내 고향의 독립을 돕는 거지 미국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고향의 독립을 위해서 미국을 이용할 생각은 없어.”

“뭐라고? 하하. 야! 피해를 좀 주더라도 고향을 위해서 도울 수도 있지. 그렇다고,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나는 웃고 있는 헤이우드를 보면서

“너와 나처럼 친구 관계라도 너무 큰 도움을 받으면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는 부채 의식이 남는데, 하물며 국가 간에 거래에서 겨우 부채 의식만 남겠어? 기브앤 테이크. 받았으면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는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하기 싫다는 소리지?”

“그래. 결국은 모두 빚이잖아.”

“너도 참 어렵게 산다.”

“내가 어렵게 사는 것이 아니고 국가 간의 문제라서 그런 거야.”

“그건 그렇고, 대통령을 만난 것이 뭐라도 도움은 좀 된 것 같아?”

“응,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러고, 도와줘서 고맙다.”

그렇게 몇 걸음 더 걷던 헤이우드가 다시 나를 보면서

“그런데, 조지. 너 혹시 소련을 싫어하냐?”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까 대통령에게 이야기할 때 은연중에 니가 소련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여서”

“헤이우드 너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일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일? 뭔데? 무슨 일인데?”

“그 이야기를 길에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고 어디든 들어가자.”

헤이우드 브룬과 함께 백악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헤이우드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헤이우드. 내가 전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싫어하지 않았던 건 너도 알지?”

“응, 그런데?”

“내가 이렇게 변한 것은 스탈린 개새끼 때문에 우리 민족과 다른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서 그런 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넌 기자라면서 소련 소식은 전혀 안 듣냐?”

“나야 스포츠 담당이라서 양키스 경기만 쫓아다니지.”

헤이우드 브룬, 이 자식은 게을러서 이런 핑계를 대는 것이다.

이 당시의 기자들은 현대처럼 전문적으로 영역을 나눠서 취재 담당을 정하진 않았었다.

“게으른 자식. 야! 시간 나면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소련에 한번 가봐라. 지금 소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니가 직접 한번 봐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야? 뭘 좀 알고 가야 더 잘 볼 수 있을 것 아냐?”

“정말 소련에 가보기는 할 거냐?”

“그래. 까짓것 한번 가보지 뭐.”

“한번 가서 슬쩍 보고는 소련인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살고 있는지 모를 거다.”

“야! 그게 무슨 말이야? 좀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봐.”

“스탈린이 중앙 집중 계획 경제를 한다고 해서 지난 10년간 경제를 완전히 통합시킨 건 알고 있지?”

“응, 그 덕분에 소련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하잖아?”

“그래, 어느 정도는 성장을 했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겠지.”

헤이우드는 계속해서 이야기해주기를 바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협동 농장을 만든다고 땅을 조금이라도 가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전부 부르주아로 몰아서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를 보냈어. 그래서, 쫓겨난 사람들의 반 이상이 rmfadj서 죽었어.”

“뭐라고 진짜야? 굶어 죽었어?”

“그래. 스탈린 이 개새끼의 미친 짓은 그것뿐만이 아니야. 소련 내의 우리 동족을 일본군 첩자 몰아서 모조리 이주시킬 계획이란다. 전부 살던 곳에서 아무것도 가지지도 못한 채 쫓겨나게 생겼어.”

“야! 넌 그걸 알면서도 못 막는 거야?”

“그걸 어떻게 막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어디로 이주를 시키고, 뭘 로 먹여 살리냐?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수백 명도 안 돼.””

대공황 시기에 어느 누가 소련에 사는 한인들 수십만 명을 받아 주겠는가?

스탈린 개새끼는 우리 동족을 그냥 도살한 것이었다.

내가 직접적인 복수를 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동족이 고통받은 만큼 소련인들도 고통받게 할 것이다.

그리고, 스탈린을 내가 온 힘을 다해서 괴롭혀 줄 생각이다.

“그뿐 아니다. 사상이 의심스럽고 문제 된다고 해서 벌써 천만 명 이상을 조용히 잡아다가 죽였다.”

헤이우드는 점점 늘어나는 희생자들의 숫자에 놀라서 이제는 되물을 정신도 없는지 입만 벌린 채 눈을 깜빡이고만 있었다.

“내 말이 믿기지 않지? 하지만, 이건 모두 사실이다. 소련을 탈출한 우리 동포들의 증언이야. 그래서, 나는 소련이나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

내가 굳이 헤이우드 브룬에게 소련 여행을 권하고 소련의 실상을 알도록 이야기해주는 이유는 헤이우드 브룬 역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개인적인 조언자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루스벨트 대통령 주위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그래서, 소련의 스탈린에게 비교적 관대했고 스탈린의 흑심을 눈치를 채 지도 못 했다.

나는 헤이우드 브룬을 통해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생각을 비틀어 버릴 생각이었다.

“조지, 니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테고, 소련이 진짜 그런 상황인지는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헤이우드, 만약, 소련을 여행할 생각이라면 서두르는 것이 좋을 거야. 대통령과는 중국과 일본의 전쟁 이야기만 했지만 사실 독일과 소련도 언제 전쟁을 시작하게 될지 아무도 몰라.”

“독일과 소련도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고?”

“응,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일본 군부에서 소련을 공격하자는 소리가 얼마 전까지도 들렸어. 그래서, 그걸 아는 소련은 중국에 군사고문단을 보낸 것이고.”

“알았다. 서둘러 가서 직접 보고 확인하고 올게.”

“그래. 네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나서 대통령께도 말씀 잘 드려라. 내가 보기에는 대통령께서 소련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처럼 보이더라. 특히, 스탈린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봐서 알려드려.”

* * *

나는 일본이 상하이를 공략하기 위해서 항저우만으로 상륙하기 전에 일을 모두 끝마치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에 이어서 만나야 하는 사람은 미국 내에 있는 소련의 첩자 조직에서 중간관리를 하는 인간이었다.

제이 비비안 체임버스는 근래 들어서 주위의 다른 공산당원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분명히 소련의 소행이라고 생각됐고 자기도 남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될까 봐서 두려웠다.

잡지사 일이 끝나고 퇴근하는 시간, 체임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잡지사 사무실에는 몇 명의 기자가 남아서 기사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내일들 봐요.”

“그래. 체임버스 내일 봐.”

사무실에 남은 동료들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 체임버스는 그때부터 신경을 집중해서 혹시라도 미행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면서 바삐 집을 향해 걸었다.

체임버스는 납치를 피하려고 집으로 가는 동선마저도 큰길만을 택해서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도착한 집.

“딸칵!”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관자놀이에 차가운 금속이 와 닿았다.

“이제 끝났나? 오늘도 고생했다.”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문 뒤에서는 건장한 백인 한 명이 총을 겨눈 모습으로 나왔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겠지?”

“예, 누구십니까?”

체임버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괴한에게 물었다.

“곧 알게 될 테니까 조금만 참고,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방안에 기다리고 있으니까 먼저 방으로 가자.”

체임버스는 관자놀이에 총이 겨눠진 채로 방으로 걸어갔다.

방안에는 모르는 동양인 한 명이 의자에 앉아서 자신을 쳐다봤다.

“잡지사에서 이제 퇴근했나 보군. 일은 할 만한가?”

“에, 잡지사 기자 일도 할 만합니다.”

“아니, 그것 말고 소련의 첩자 노릇은 할만하냐고?”

“예?. 누구십니까?”

그동안 자신을 관리하던 마스터의 얼굴은 워낙 짧은 시간 동안 살짝 스쳐본 것이라서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방안의 두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당신들 누구야?”

“왜? 우리가 겨우 두 명뿐이라서 갑자기 용기라도 생겼어?”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묻고 너는 대답하고 알았지? 지금부터는 무조건이다. 거절은 내가 거절하니까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알았지?”

작달막한 키에 건장한 체격 그리고 잠을 잘 자지 못한 건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의 체임버스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대답을 해야지. 난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닌데….”

“예, 알겠습니다.”

체임버스는 죽기는 싫었는지 바로 대답했다.

“그래, 아주 착하네. 그런데, 소련 간첩으로 일하는 건 할만했어?”

“......”

“다시 한번 말할게. 나는 묻고 너는 대답하고 오케이? 이번이 마지막이야.”

“예.”

“소련 간첩으로 일하는 건 할 만했어?”

“모르겠습니다.”

체임버스는 내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애매한 대답으로 대신했다.

“퍽!”

“으악!”

권총 손잡이로 관자놀이를 한 대 맞고 수많은 별을 보면서 체임버스가 비명을 질렀다.

“이건 경고. 다시 묻는다. 소련 간첩으로 일하는 건 할만했어?”

* * *

“빌리, 체임버스의 주위를 철저히 감시해서 소련의 첩자들을 한 명도 빼지 말고 끝까지 찾아줘.”

“조지, 걱정하지 마. 내가 이런 일을 좋아하잖아. 하하.”

원래는 공부해서 첩보원이 되고 싶었다는 빌리의 너스레에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믿고 부탁할게. 우리 미국과 내 고향 대한민국의 운명이 너한테 달렸어.”

“아, 참 걱정하지 말라니까.”

뉴욕 아이리시 마피아 대장인 빌리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내 생각처럼 제2차 세계 대전이 풀려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체임버스 카드를 가지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소련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리고 소련의 아시아 참전을 막을 생각이었다.

이제 미국을 팔아먹은 소련 간첩 엘저 히스, 해리 덱스터 화이트 그리고 소련의 원자탄 개발을 도운 엘리자베스와 폭스는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들은 죽기 싫어서라도 나한테 협조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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