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다시 만난 끝판왕.
70. 다시 만난 끝판왕.
김규식과 이야기를 할 때는 피곤함이 엄청나게 느껴지더니 막상 자리에 누우니까 잠은 오질 않고 온갖 잡생각들이 떠올랐다.
특히, 내일 면담을 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맥아더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지가 제일 고민이 됐다.
‘뭐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일본이 지금은 중국을 공격하고 있지만 몇 년이 지나면 미국을 공격할 거라고 준비를 하라고 할까?’
이런 말을 해봐야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아 보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루스벨트 대통령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새벽이 지나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대통령 각하를 전에 뵐 때는 뉴욕주 지사셨는데 이제는 어엿한 미합중국 대통령이시군요.”
내 첫인사에 루스벨트는 한참 기억을 더듬더니
“하하, 조지, 우리가 처음 만난 지가 그렇게 오래됐던가?”
“예, 각하, 벌써 8년 정도 지난 것 습니다.”
“이런···. 그럼, 그동안 나를 가장 크게 후원해준 사람을 8년 만에 다시 만난 건가?”
“예, 각하. 그리고, 제 후원을 너무 크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각하께서 베풀어 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지. 아니지. 내 선거 캠프 회계 담당이 조지의 기부금액을 보고 깜짝 놀라서 나보고 조지하고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네. 그동안 언제나 나를 지지해줘서 고마웠네.”
정치가에게 가장 좋은 후원자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열성적으로 계속해서 지지하고 후원을 해주는 사람일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있어서 나는 바로 그런 열성 지지자였다.
“각하, 아닙니다. 저는 빈곤 계층도 같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각하의 정책이 좋아서 지지한 것뿐입니다.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그랬었나? 아무튼 고맙네.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 대한 지지를 계속 부탁하네.”
“예, 각하. 그건 당연합니다.”
“그래.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강력하게 면담을 요청한 건가?”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맥아더의 관계 설정.
그리고, 미국과 일본, 중국의 관계.
그러니까 루스벨트 대통령이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아시아 정책의 기본 틀을 갖게 만들어야 했다.
“각하, 제가 각하 덕분에 제 원래의 계급을 회복하고 시작한 사업이 항공 운송 사업이었습니다.”
“오! 그랬었나?”
“예,”
“그런데, 왜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각하, 제가 사업을 하던 곳이 중국의 상하이였습니다.”
“아! 그랬었나?”
확실히 8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고 다시 만나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부족했다.
그때, 그래도 친구라고 헤이우드 브룬이 옆에서 나를 돕고 나섰다.
“조지는 각하 덕분에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으니까 앞으로도 후원을 많이 하고 각하를 끝까지 지지할 겁니다. 하하.”
“그것은 당연하다고 좀 전에도 말했잖아. 앞으로도 각하에 대한 지지는 계속될 겁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헤이우드 브룬이 루스벨트에게
“각하, 역시 조지가 최곱니다. 오늘 조지가 각하께 면담을 강력하게 요청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고 조지가 사업을 하면서 느낀 아시아 문제를 각하께 알려드리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아시아 문제? 중국과 일본의 전쟁을 말하는 건가?”
미국의 대통령인 루스벨트는 유럽에 비하면 아시아는 그다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역이었다.
확실히 중국과 일본의 전쟁을 크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예, 조지는 앞으로 아시아에서 일본 때문에 미국이 난처해질 일들이 생길 것 같다고 하는군요.”
헤이우드 브룬의 설명을 들은 루스벨트는 고개를 돌려서 나를 봤다.
“대통령 각하, 제가 상하이에서 항공사를 운영하면서 상하이와 도쿄를 왕래하면서 느낀 아시아 정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어디 외교관이 아닌 사업가가 현장에 느낀 아시아는 어떤지 한번 들어보세.”
나는 충실한 미국 시민으로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아시아 정세를 설명해야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의심할 만한 의혹을 만들면 안 됐다.
“각하, 미국에 있어서 중국은 그저 그런 시장은 아닐 겁니다.”
“그렇지. 우리 미국에 중국은 꽤나 중요하고 큰 시장이지.”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그래. 일본도 미국의 상품을 많이 사주는 곳이지.”
루스벨트의 대답은 별다른 특별한 것이 없이 그저 그랬다.
“각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미국의 중요한 시장인 아시아의 두 국가가 지금 국가의 명운 걸고 서로 전쟁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고?”
“예, 중국과 일본에 파견된 외교관들이 각하께 어떻게 보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업가인 제가 보기에는 중국과 일본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조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뭔가?”
이제야 루스벨트는 조금 관심을 보였다.
“각하, 제 사업 파트너들이 중국 국민당의 최고위급 인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잘 아는데 그들은 상하이를 잃는 순간 국가 재정의 반이 날아가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서, 나도 눈에 띄지는 않지만, 중국을 조용히 돕고 있네.”
미국이 중국을 돕는 것이 설마 그런 이유 하나만 있어서 그럴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이 전쟁하면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어디서 살까?
그곳은 바로, 미국이다.
양쪽 전력의 균형을 맞춰주고 계속해서 전쟁을 하게 만들면 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전쟁 물자를 파는 것만으로도 이익을 볼 수 있다.
“각하, 제가 보기에는 그 정도의 지원으로는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오래 버티지를 못합니다.”
“중국군의 상태나 국민당 정부의 상태를 나도 어느 정도 알지만, 미국이 그들의 전쟁에 개입할 명분이 없어. 우리가 직접 상하이를 지켜 줄 수는 없지 않나?”
루스벨트는 내가 상하이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 전쟁 때문에 사업에 지장을 받아서 찾아온 것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각하, 전쟁에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밀리면 미국의 이익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겁니다. 지금, 장제스는 상하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미국의 이익에 심각한 손해가 생길 수 있다는 말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서 좀 더 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중국을 지원할 명분이 없다니까?”
“각하, 하지만 소련은 중국을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지, 자네는 우리도 소련처럼 중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차관을 지원하자는 말인가?”
“예, 그리고, 소련처럼 미국도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일개 사업가가 대통령에게 정보 전달 차원에서 전하는 의견이 아니었다.
이런 조언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칫 오해해서 사업가 주제에 국가 정책에 관여하려 한다고 받아들이면 나는 앞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새벽까지 내가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모험을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조지, 우리가 일방적으로 중국을 지원하면 일본 정부의 반발은 어떡하라는 말인가? 일본이 중국보다 더 큰 시장이야.”
“각하, 지금 일본은 우리가 개항시킨 그때의 일본이 아닙니다. 일본은 독일에서 수입할 수 없는 물자만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음···.”
미국이나 일본이나 서로를 가상의 적국으로 규정하고 서로 상대를 상대할 대책을 만들고 있었다.
다만, 공업생산력이 약한 일본이 먼저 마수를 내보인 것뿐이었다.
“각하, 제가 듣기에도 일본이 중국에서 크게 승리한다면 미국의 국익에 심각한 손상이 올 것 같은데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헤이우드 브룬이 은근슬쩍 지원사격을 했다.
“각하, 일본이 중국에서 대승을 거두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도 일본의 반식민지가 돼서 미국의 상품이 중국에서 더는 팔리지 않을 겁니다.”
“그럼, 우리 미국은 4억 중국 시장을 잃게 되는 건가?”
아직도 대공황의 여파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하, 제가 볼 때도 그렇게 될 것 같은데요?”
다시 한번 헤이우드 브룬이 날 도왔다.
그리고, 점점 표정이 변하는 루스벨트를 보면서 좀 더 강하게 내 주장을 밀어붙여도 될 것 같았다.
“대통령 각하!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독일과 소련 군사고문단의 지휘를 받아서 전쟁을 수행했지만 얼마 전에 소련 군사고문단장이 암살을 당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이 바로 미국이 나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중국의 미국 군사고문 단장이라···.”
“대통령 각하, 저는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종결이나 휴전 중재가 안 된다면 군사고문단 파견만이 미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대승을 거둔다든지 일본이 원하는 만큼 중국의 영토를 차지하게 하면 안 됩니다.”
루스벨트는 그다지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일본이 의외로 큰 문제라는 내 말에 이제는 표정이 심각해졌고 깊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문제고 아시아는 일본이 문제군.”
“각하, 독일과 일본은 방공 협정으로 둘은 현재 동맹입니다.”
“프랭키, 독일과 일본이 문제라고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요. 방공 협정은 그저 눈속임이라니까요. 독일이나 일본이나 전쟁으로 대공황을 타개할 생각이라니까요.”
친구인 헤이우드 브룬이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 굳이 왜 따라왔나 했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었다.
“조지, 소련이 중국에 어느 정도를 지원했는지 혹시 들은 것이 있나?”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중국에서 전해진 정보는 한계가 있고 전달 시간은 많이 늦는 것 같았다.
“예, 각하. 소련은 중국에 1억 달러 차관과 1억 5천만 달러 상당의 무기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었고?”
“예, 거기에 더해서 300명의 군사고문단도 파견했습니다.”
루스벨트는 양손에 깍지를 끼고 턱을 바친 채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그런데, 소련은 무엇을 믿고 중국에 그런 지원을 했을까?”
“모스크바에 유학 중인 장제스의 아들이 소련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답니다.”
“장제스의 아들? 장제스의 아들이 다음 중국 지도자라도 된다는 것인가?”
“중국은 절대로 민주주의로 나라가 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랬다가는 나라가 수십 개로 분열될 겁니다.”
루스벨트는 설마 하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미국인들은 아시아를 너무 몰랐고 아예 관심도 없었다.
“중국은 2천 년이 넘는 시간을 황제가 지배한 나라고, 일본은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사들에게 지배를 받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장제스도 황제가 되고 싶어 한다는 말인가?”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럴 겁니다. 그렇지 않고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통치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성의를 표시해야 하겠군.”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회사의 경영자와 같다.
그리고, 미국은 절대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루스벨트도 역시 중국이라는 시장을 놓치기 싫어했다.
“예, 대통령 각하! 그래서, 제가 계속 일본의 너무 큰 승리는 안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일본은 무사들의 지배를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무사, 즉 군인이 힘을 가지면 계속해서 전쟁할 생각만 합니다.”
“천년이라는 시간을 군인들이 나라를 지배했다는 말이지?”
“예, 지금 일본은 군인들이 너무 힘이 쎄서 관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전쟁을 마음대로 일으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잠시동안 루스벨트는 말이 없었다.
“좋아. 그럼, 일단 중국에 대한 침략을 중지하라고 국제적인 압력을 넣어 보자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지.”
“대통령 각하! 만약 일본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때는 중국을 지원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은 그때 가봐야 하지 않겠나? 국무장관이나 보좌관들하고도 의논을 해봐야겠지.”
“대통령 각하! 만약 중국을 지원하신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미국 최고의 장군을 중국에 군사고문단장으로 보내주십시오. 예를 들면 맥아더 장군 같은 사람으로요.”
“맥아더?”
“예, 맥아더 장군 정도는 와야지만 수백만 명의 중국군을 지휘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루스벨트를 만나서 내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제 남은 것은 루스벨트가 나라는 존재를 얼마나 큰 후원자로 생각하느냐만 남았다.
나를 자신의 가장 큰 후원자라고 생각하고 미국 최고의 시민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원하는 조치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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