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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저걸 그냥 죽여버릴까? (69/225)

69. 저걸 그냥 죽여버릴까?

69. 저걸 그냥 죽여버릴까?

상하이 전선의 지지부진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일본군은 조만간 국제적으로 금지된 가스탄까지 사용하는 초강수와 함께 기존의 작전을 버리고 상하이 남부 항저우에 상륙 작전을 시도한다는 것을 아는 나는 하루하루의 일정을 빨리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미국과 독일 그리고 스웨덴과 영국에서 일을 보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야만 했다.

“대장님, 우리,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것 아니에요?”

우리는 일행 중에 가장 젊은 손원일마저도 지쳐서 눈에 다크서클이 생길 정도로 쉬지 않고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손 대장은, 많이 힘들어?”

“예, 제 기억에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을 뻗고 누워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워낙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워싱턴에 도착하면 쉴 수 있게 해줄 테니까.”

“대장님, 이렇게 서두르시는 이유가 궁금한데···. 이러시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일행인 손원일과 최선학에게도 말해줄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1937년 12월에 필리핀 군사고문단장으로 있던 맥아더가 군대를 완전히 떠나고 전역을 한다.

그런데, 나중에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 맥아더는 이번에 전역하면서 가지게 되는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사이의 앙금 때문에 자기 멋대로 전쟁을 수행한다.

나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 지금은 궁금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워싱턴에 도착하면 니미츠를 만나서 내가 말한 것이나 잘 말해주게.”

내 말에 손원일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장님, 대장님이 니미츠 대령에게 전해 주라는 내용도 좀 이상하고 나는 대장님이 지금 무엇을 계획하고 움직이는지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손원일 대장,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훨씬 나은 경우가 있어.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주게.”

“뭐, 알겠습니다.”

손원일은 이렇게 일정을 서두르고 니미츠를 만나면 해야 할 말까지 코치하는 이유가 궁금한 표정이었지만 참는 것 같았다.

워싱턴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김규식이 워싱턴에 머물면서 활동하고 있는 사무실을 찾아갔다.

김규식이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내가 여유가 없어서 뤄리리-하둔 재단이 소유한 은행 한쪽에 사무실을 마련해줬지만, 내가 돈을 얼마든지 마음껏 찍어 낼 수 있게 된 다음에는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임시정부 건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크고 화려한 건물을 사줬다.

“이야! 진짜 화려하고 멋진 건물이네요.”

“내가 보기에는 조지 대장님의 선택은 탁월한 것 같습니다.”

손원일과 최선학이 동시에 임시정부 외교부 건물을 보고 감탄하면서 칭찬을 했다.

한글과 영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부’라고 쓰인 커다란 현판이 보이는 건물을 지나가는 미국인들은 건물의 화려함에 압도돼서 다들 건물을 한 번은 더 쳐다보고 지나갔다.

“나라를 잃은 우리가 없는 사람처럼 태를 내고 불쌍한 사람처럼 태를 내면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는 것은 다들 알지?”

“예.”

“그래서, 이런 건물을 사서 외교부의 사무실을 마련한 거야.”

“맞습니다. 없을수록 더 깨끗하고 반듯하게 차려입어야 남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것은 그것이고, 자! 바쁘니까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우리 일행이 김규식의 방으로 안내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방안에서는 누군가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혹시, 안에 손님이 있습니까?”

“예, 우남 선생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우남이면···. 이승만이요?”

“예.”

“그 사람이 여기는 왜 온 겁니까?”

“그게···. 안에 들어가 보시면 아실 겁니다.”

내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승만은 김규식에게 삿대질까지 하면서 기도 차지 않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보시오. 우사. 내가 분명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이자 미국의 외교를 책임지는 구미연락사무소를 맡고 있는데 어째서 내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일을 해서 외교에 혼선을 주는 거요.”

“우남, 내가 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임시정부에서는 이미, 우남의 대통령직을 박탈했습니다. 그리고, 구미위원회도 더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당신들이 마음대로 정하는 거요?”

“그럼, 임시정부의 의정원이 아니면 누가 정한단 말입니까?”

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는지 김규식도 화를 내면서 언성을 높였다.

“누가 하느님이 나에게 준 소명을 마음대로 바꾼다는 말입니까?”

“우남, 우남은 우남대로 하느님의 소명을 받들어서 독립을 위해서 일하면 됩니다. 다만, 임시정부의 직책이나 권한을 사용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이 말이 된다고 말을 하는 겁니까? 내가 이미 미국인들에게 대통령이라고 소개를 하고 그렇게 활동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대통령이 아니라고 말하라고요?”

“우남, 당신이 그렇게 존중하고 떠받드는 미국도 대통령을 평생 하지는 않습니다.”

“그거야 미국은 계속해서 선거해서 대통령이 바뀌니까 그런 것이고, 우리는 그럴 수가 없지 않소?”

“무슨 소립니까? 우리 임시정부도 의정원이 있습니다. 우남은 의정원에서 탄핵해서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잃지 않았습니까?”

“그 의정원이 미국처럼 정상적으로 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진 의회는 아니지 않소?”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목숨을 건 듯한 이승만은 자신을 어디서 대통령으로 선출이 됐는지를 잊어버린 듯한 말을 했다.

“우남! 우남이 대통령이 된 것도 대통령의 직책을 잃은 것도 모두 의정원의 결정이었습니다.”

“내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당시의 의정원과 나를 탄핵한다고 난리를 치던 의정원은 분명 다르지요.”

나와 일행이 방 안에 들어왔는지를 알면서도 김규식과 이승만의 말다툼은 멈추질 않았다.

‘빌리를 시켜서 저걸 그냥 죽여버릴까? 살아 있어 봐야 아무짝에 쓸모도 없고 나중에 미국의 반공주의자들에게 이용만 당할 놈인데···.’

이승만이 하는 짓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가 개미 콧구멍만큼이라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일했다는 점을 생각해서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을 잠시 참았다.

“두 분, 남들 보기에 창피하니까 그쯤 하시죠?”

내가 둘의 다툼을 말리고 나서자 이승만은 싸움판에서 말리는 사람에게 꼭 시비를 거는 사람처럼

“당신은 누구야?”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항공대장이요.”

“아! 누군가 했더니 세계정세도 모르고 문명국 사람답지 않게 테러나 일삼는 놈이었군.”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김규식에게

“내가 이런 테러리스트들하고 어울리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점점 멀어진다고 몇 번을 말했소?”

“뭐라고요?”

“이보시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이승만이라는 존재를 알 리가 없는 손원일과 최선학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승만을 험악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문명국 사람이라면 말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을 총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병신.”

내가 이승만의 대답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오자 이승만은 바로 발작했다.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알고···.”

“당신이 누군지 잘 아니까 헛소리는 그만 지껄이고 이만 밖으로 나가주시오. 그리고, 앞으로 미국 사람들 만날 때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다니면 내가 당신을 죽여버릴지도 모르겠소.”

“뭐라고?”

“못 알아들었습니까? 이만 나가주시고 앞으로는 대통령이라는 소리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말라고 했소. 만약에 당신이 대통령의 대자라도 꺼내면 내가 당신을 죽여버리겠다고.”

이승만은 김규식과 우리 일행을 한차례 훑어보고는

“이젠 임시정부도 다 됐군. 이런 상종 못 할 종자들이 모인 곳이라니···. 흥!”

헛소리를 지껄이고 방을 나가려는 이승만의 뒤통수에 대고 나도 지지 않고 한마디 해줬다.

“나는 분명히 당신한테 경고했습니다. 더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모욕하지 말고 대통령을 사칭하고 다니지도 마시오.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당신의 집을 잘 알고 있으니까”

돌아서서 방 밖으로 나가려던 이승만은 다시 몸을 돌렸다.

“뭐라고?”

“모가지를 잘 지키려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소리요. 잘 가시오.”

“에잇···. 상종 못 할 인간들!”

이승만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 더하려는데 김규식이 내 팔을 붙잡고 말리고 나섰다.

“조지 대장, 그만하시오. 그래도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인데”

“저 사람, 언제부터 여기를 찾아왔습니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 현판을 달고 보름쯤 지나니까 그때부터 찾아와서 저렇습니다.”

“생활비가 잘 안 걷히나 보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규식은 아직 이승만이 어떤 인간인 줄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재미동포들의 애국 성금이 대한인국민회로 모이니까 저렇게 난리를 치는 거라는 말입니다.”

“설마···.”

“아니요.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뭘 가지고 미국에서 저렇게 부유하게 살아가겠습니까?”

김규식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나를 굉장히 신뢰하는 손원일과 최선학은 이승만을 생각하면서 이를 갈았다.

“설마···.”

“와! 진짜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군요. 어쩐지 말하는 꼬락서니가···.”

“짝! 짝!”

“여러분 지금은 이승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한가한 시간이 없습니다. 이승만은 나중에 처리하고 지금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손뼉을 쳐서 사람들을 정신을 차리게 하고 어서 서둘러서 일하자고 말했다.

“김 선생님은 제 친구와 함께 조사해 보라고 했던 것은 모두 조사를 하셨습니까?”

“아! 예. 헤이우드 브룬 씨와 협조해서 알아보라는 사람들을 좀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찾았습니까?”

“예, 조지 대장이 말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혹시, 제이 비비안 체임버스를 찾는 동안 헤이우드에게 모든 것을 말한 것은 아니시죠?”

“그렇게 당부하셨는데 내가 그랬겠습니까? 그냥 뭘 좀 알아봐야 한다고 혹시 미국 공산당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냐고 좀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헤이우드 브룬이 제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도 사회주의자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예, 잘 압니다.”

김규식의 대답을 듣고 일단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제이 비비안 체임버스는 나중에 미국 고위 관료 출신 간첩을 폭로한 신문기자였다.

신문기자라고 하니까 취재를 통해서 소련 간첩을 폭로한 것으로 알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고 본인 역시도 간첩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관리했던 대상을 폭로한 것이었다.

“그리고, 김 선생님, 해리 홉킨스 국장과의 친분은 좀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홉킨스 씨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만나서 대화를 하는 수준까지는 가까워졌습니다.”

“이야! 다행입니다.”

“그런데, 조지 대장은 개인적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아는 사이면서 왜 해리 홉킨스 국장과도 친분을 만들라고 한 겁니까?”

“제가 아무리 루스벨트 대통령과 안면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안면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루스벨트를 움직이는 사람들과 친분을 만들어서 우리 대한민국에 유리한 정세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 그랬었군요. 어째서 대통령 주위의 사람들과 친해지라고 했는지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김규식에게 부탁했던 일들이 모두 이뤄졌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느껴졌다.

“긴장이 풀리니까 쌓였던 피로가 느껴지네요. 일단 오늘은 좀 쉬고 내일부터 또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십시오. 지금 다들 얼굴들이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서들 쉬십시오.”

“예,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뵙겠습니다.”

내일은 루스벨트 대통령과 개인적인 특별한 면담 약속이 있었고 제이 비비안 체임버스도 찾아가서 만나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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