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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공짜로 뭘 바라는 거야? (68/225)

68. 공짜로 뭘 바라는 거야?

68. 공짜로 뭘 바라는 거야?

상하이를 떠나기 전에 뤄리리-하둔 재단 문제만큼은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었다.

뤄리리를 상하이에 남겨 둔 채로 떠났다가 일본군이 상하이를 완전히 점령한다면 일본군이 뤄리리의 수천만 달러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언제나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에게는 길가다 줍는 횡재나 다름없는 돈이었다.

“뤄리리 여사, 지금 상하이를 침략한 일본군을 중국군이 간신히 막고는 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서서히 눈이 멀게 된 뤄리리의 옆에는 뤄리리의 수족과 같은 여집사가 뤄리리를 부축하고 같이 앉아 있었다.

“조지 씨, 이곳은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공동 조계인데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한다고 해봐야 설마 큰 위험이 있겠습니까?”

뤄리리의 여집사는 내 말에 의문을 가지고 돼 물었다.

“칭칭 씨, 지금은 일본이 중국군하고만 전쟁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공동 조계를 관리하는 다른 나라와도 반드시 전쟁을 하게 될 겁니다.”

“아니, 왜요? 설마, 일본이 미치지 않고서야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고요?”

“예, 칭칭 씨도 알다시피 내가 돈을 잘 버는 이유는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투자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영국, 미국과도 전쟁을 하게 될 겁니다.”

칭칭은 내 말을 듣고 더는 궁금한 것을 묻지 못하고 뤄리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기가 아무리 뤄리리의 수족과 같은 여집사라고 해도 결국 중요한 결정은 언제나 뤄리리의 몫이었다.

“조지, 정말로 일본군이 상하이를 완전히 점령할 거라고?”

“예, 뤄리리 여사, 그렇습니다. 지금도 영국과 미국의 영사들과 대사들이 상하이 침공 때문에 일본 정부에 엄청난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긴, 일본군이 요즘 미친 것 같기는 했지.”

“뤄리리 여사, 일본은 다른 나라가 거세게 항의하면 잠시 고개를 숙이는 척하겠지만 나중에는 또 뒤통수를 칠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일본의 경제가 너무 안 좋아서 전쟁밖에는 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뤄리리는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 얼굴 쪽으로 돌린 채로

“그래서, 조지의 말은 내 목숨과 내 재산이 위험하다는 말인 거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지. 나는 이곳 상하이를 떠날 생각이 없는데 어떡하지? 난 살 만큼 살았고 혹시 죽더라도 그냥 상하이에서 살고 싶은데.”

“그게 아니고, 뤄리리 여사가 가진 재산 때문에 목숨이 위험하다니까요!”

“그럼, 내 재산을 조지의 승낙 없이는 나라고 해도 쓰지를 못하게 만들어 놓으면 되질 않나?”

“예?”

“조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예? 예···.”

“내가 그동안 조지, 당신을 살펴본 결과 당신은 내 재산에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던데. 당신은 진심으로 나와 하둔을 위해서 도와주는 사람처럼 보이더란 말이야.”

“그거야 뤄리리 여사와 약속을 했으니까···.”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약속을 지키는 조지라면 내가 죽더라도 처음 나와 약속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겠어?”

내가 위조지폐를 만들지 못했다면 나도 어쩌면 뤄리리와 하둔의 재산을 욕심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돈을 찍어 낼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푼돈을 노리고 은혜를 베풀어 줬던 사람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뤄리리 여사는 이번 기회에 아예 나를 뤄리리-하둔 재단의 관리인으로 만들겠다는 말입니까?”

“그래, 내 재산이지만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재산이라면 누가 나한테 관심이나 두겠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일본 놈들은 워낙 무지막지한 놈들이라서···. 뭐,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변호사와 다시 와서 재단 관련 서류를 정리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아! 그리고, 우리 칭칭이도 조금만 챙겨주고.”

뤄리리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 자신의 수족이 되어준 여집사까지도 챙기는 너그러움을 보여줬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뤄리리 재단의 확실한 재단 관리인이 되기 위해서 변호사와 함께 서류를 들고 상하이 주재 영국 총영사관을 찾아갔다.

다들 알겠지만, 외국에 파견 나가 있는 외교관들은 대부분이 주재국의 정보를 빼내고 주재국의 정치 상황에 관여하는 스파이 역할은 한다. 

그리고, 영국은 특히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조지 씨, 우리는 그동안 조지 씨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커닝엄 총영사가 말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조지 씨는 불행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뤄리리-하둔 재단 관련 서류를 등록하기 위해 찾아온 나를 붙잡고 상하이 총영사 브레난이 협박을 했다.

미국 영주권자인 나를 상대로 협박을 할 정도라면 나한테서 반드시 알아내야 할 정보가 있다는 소리였다.

“브레난 총영사님, 나는 미국 영주권자이고 사업가일 뿐인데,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조지 씨, 당신은 상하이 주재 영국 총영사관 사람들이 모두 바보인 줄로 아는군요?”

‘상하이 총영사관은 바보들이 모인 곳이 맞지. 이제야 겨우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독일과 관련된 정보를 캐내려고 하다니···.’

“브레난 총영사님은 일본이 이런 짓을 벌일 줄 모르셨습니까?”

브레난 총영사는 내가 독일이 아닌 일본을 꺼내자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하···. 나 원참, 이것 보세요. 조지 씨.”

“예,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서 조지 씨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줄 압니까?”

“그럼 뭡니까? 나는 도쿄는 자주 왕래해서 일본에 대한 정보는 좀 알지만 다른 나라는···. 아! 중화민국 장제스 정부 때문에 그러십니까?”

영국 정부가 나한테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독일과 관련된 정보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넘겨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독소전쟁에서 소련이 힘겹게 독일을 겨우겨우 이기기를 원했다.

그래서, 영국과 독일이 어느 정도 서로 균형을 잡을 정도의 정보만 알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지 씨, 우리는 이번에 독일의 함부르크와 스웨덴의 말뫼에서 몇 가지 수상한 물건들이 이곳 상하이로 보내졌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혹시, 그에 대해서 아십니까?”

독일 함부르크 항에서 보내진 물건들은 전차를 비롯한 육군용 무기들과 그에 필요한 탄약들이었다. 

그리고, 말뫼에서 보내지는 것은 잠수함용 어뢰였다.

“함부르크와 말뫼요? 거기는 내 사업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인데 거기서 뭘 보냈다는 겁니까?”

“조지 씨! 정말 이럴 겁니까? 두 군데 모두 두웨성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로 물건을 보냈다고 하는데 당신은 정말 모른다는 말입니까?”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말해주지 않자 정보원으로서 외교관으로 실격인 자세가 나왔다.

브레난 총영사는 절대 내 앞에서 화를 내면 안 됐다.

화를 내는 순간 그의 조급함이 눈에 보였다.

“브레난 총영사님, 두웨성 대형에게 보내진 물건이라면 두 대형에게 가서 물어보면 되잖습니까?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를 붙잡고···.”

“조지 씨, 내가 하나 장담을 하죠. 아마 그 화물선들은 아프리카 해안을 지날 때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서 바닷속으로 침몰할 겁니다.”

“아! 그래요? 그럼, 두웨성 대형께서는 영국의 보험 회사로부터 거액의 보상금을 받으시겠네요.”

“이봐요. 조지 씨!”

“흥!”

브레난 총영사는 중국의 실세인 두웨성을 건들지는 못하겠고 만만한 나를 X으로 보고 협박질을 하고 있었다.

“조지 씨, 당신이 우리 영국 정부에 협조해준다면 우리도 당신이 원하는 그만한 대가를 제공하겠소.”

내가 미국 정부와 연결돼있고 상하이 밤의 제왕인 두웨성의 의제라는 것은 브레난 총영사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만약, 내가 허접한 사람이었다면 납치라도 당하고 고문이라도 받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다.

“브레난 총영사님,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다니까, 왜 그러십니까? 나는 진짜로 모르는 일입니다.”

“흠···.”

내 생각에 브레난 총영사는 분명히 Mi- 6 소속의 정보원일 것이다.

아마, Mi- 6 런던의 본부는 독일의 재무장 선언과 함께 중화민국에서 신형 무기들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런던의 Mi- 6본부에서는 브레난 총영사에게 독일군의 신형 무기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라고 닦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론은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브레난 총영사님, 이 서류나 빨리 등록해주십시오.”

나는 뤄리리-하둔 재단의 관리인 변경에 관한 서류를 브레난 총영사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뤄리리 여사가 나를 뤄리리-하둔 재단의 최종 관리인으로 확실히 못을 박는 서류입니다.”

대답을 들은 브레난 총영사는 이 문제를 가지고 나를 또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눈이 반짝거렸다.

“브레난 총영사님, 그 서류는 영국 쪽에서 승인하지 않아도 나한테는 별다른 영향이 없습니다. 총영사님도 알다시피 뤄리리-하둔 재단의 사무실과 재단의 재산은 모두 미국에 있습니다.”

“아···.”

이런 경우가 생길지 몰라서 뤄리리-하둔 재단을 설립할 때부터 이미 미국으로 모든 것을 옮겨 놓았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시고 그냥 서류를 처리해 주십시오.”

“조지 씨, 내가 뭘 해주면 되겠습니까?”

항복 선언을 하는 브레난 총영사를 보면서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브레난 총영사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줄 만한 힘도 없으시고요.”

“예? 그게 무슨···. 그러니까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겁니까? 아닙니까?”

“저는 정말 브레난 총영사님이 원하는 정보가 뭔지도 모릅니다.”

“아···.”

브레난 총영사는 나를 보면서 더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내 얼굴만 뚫어지게 노려봤다.

“서류 처리나 빨리 부탁합니다.”

나는 브레난 총영사를 놀리듯이 서류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브레난 총영사에게 내밀었다.

“이···. 이···.”

브레난 총영사는 더는 화를 내지는 못하고 내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낚아채서 영사관의 다른 직원들에게 넘기고는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뤄리리-하둔 재단과 관련된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오면서 내 일을 도와준 영사관 직원에 한마디 해주고 나왔다.

“내가 한 달쯤 후에는 유럽에 갈 일이 있어요. 그런데, 아마 그때 독일과 스웨덴을 방문할 것 같은데···.”

* * *

나와 손원일 그리고 최선학이 한 달 일정으로 미국과 유럽을 돌아보기 위해서 상하이를 떠나는 날 항구에는 독일과 스웨덴에서 출발한 화물선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 화물선에서 나온 물건들이 일본군의 턱 쪼가리들을 아주 박살을 내주겠군요?”

“독일군 신형 전차와 새로 만든 대전차 무기 그리고 박격포에 가스탄까지 실려 있을 테니까 아마 그렇겠지.”

“사장님, 독일군이 시험하려는 신무기들의 성능이 어느 정도길래 그러십니까?”

“3호 전차는 일본군의 모든 전차를 박살을 낼 수 있고 소형화한 라케텐베르퍼 43은 진지와 차량 등등 모조리 다 부술 수 있어.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가스탄이야.”

“가스탄은 독일이 자랑하는 그 가스탄입니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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