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총알 한 발, 폭탄 한 발의 결과는···.
67. 총알 한 발, 폭탄 한 발의 결과는···.
경성의 조선 총독부를 폭격하고 돌아오는 광복군 항공대 대원들의 표정은 내일이라도 당장 광복을 맞이할 수 있을 것처럼 희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광복에 대한 희망으로 들떠있던 대원들의 표정은 연료 게이지를 쳐다보면서 급격하게 어두워져만 갔다.
“대장님, 총독부를 공격하면서 무리하게 급격한 기동을 한 것 때문인지 상하이로 바로 돌아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박하성의 무전을 받은 나는 바로 연료 게이지를 확인했다.
내가 탄 전투기의 남은 연료 역시도 상하이로 돌아가는 것은 어림도 없었고 산둥성에 숨겨 놓은 비밀 활주로로 돌아가기에도 간당간당한 양이었다.
“모든 대원에게 알린다. 지금부터 비행경로는 모두 선도기를 따라서 산둥성으로 향한다.”
“로저.”
“로저.”
무전을 받은 편대장들은 각자 전투기의 기수를 산둥성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선도기의 뒤를 따라서 오십여 대의 bf 109 전투기들이 편대 비행을 시작했다.
* * *
산둥성에 마련해뒀던 비밀 활주로를 이용해서 다음 날 상하이로 돌아온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소식이 전해졌다.
“먼저, 조지 대장님과 항공대원들의 작전 성공을 축하드리겠습니다.”
유자명은 조선인들의 소원이었던 조선 총독부 폭파 소식에 한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축하부터 하고 나섰다.
“고맙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앓던 이가 빠진 느낌입니다. 그동안 총독부를 반드시 불살라버리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축하할 일이 또 있습니다. 조지 대장님이 홍범도 장군님께 부탁했던 일도 성공했습니다.”
“정말입니까? 이야! 하늘이 우리를 돕는지 일들이 잘 풀리는군요.”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바실리 추이코프의 암살 소식은 나한테 만큼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아! 참, 그런데, 홍범도 장군님은 무사하십니까?”
“예, 무사히 일을 마치시고, 지금은 드미트리의 호위를 받으시면서 쓰촨성 바중으로 돌아가시고 계실 겁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 광복군에서는 홍 장군님께서 최고의 명사수셔서 부탁을 드렸던 일인데···. 속으로는 괜한 일을 부탁한 건 아닌가하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내가 기뻐서 활짝 웃는데도 보고를 하는 유자명의 표정은 무엇 때문인지 그리 밝지 않았다.
“왜? 혹시 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예, 바실리 추이코프가 암살되면서 전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나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유자명의 표정을 보아하니 중국군이 일본군에게 박살이 난 모양이었다.
“전황이 어느 정돈데 유 선생의 표정이 그럽니까?”
“한참 일본군을 밀어붙이던 중국군 2개 사단이 지휘 계통에 혼선이 생기면서 갈팡질팡하다가 일본군의 반격에 갈려 나갔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또 2개 사단이 갈려 나갔다고요?”
“예, 전투를 총괄해서 지휘해야 하는 사령관이 사라지면서···.”
내가 보기에 중국군의 문제는 병사가 아니라 지휘관이었다.
중국군 지휘관 중에는 작전 명령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문맹인 장교가 부지기수이니 전투에서 작전이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황은 어떻습니까? 설마, 그동안 독일 군사고문단과 함께 구축해놨던 방어진지까지 완전히 잃었습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이젠 공세를 펼칠 능력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결국 언젠가는 일본군에게 패배하지 않겠습니까?”
“흠···.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광복군도 상하이에서 철수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부터 그것은 내가 의도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철수할 때는 하더라도 그대로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본군에게 마지막 한 방은 먹여주고 갈 생각입니다.”
“차라리 상하이를 거점으로 일본군을 막아내는 것이···.”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될 겁니다.”
내가 따로 생각해 놓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 유자명은 출격 전에 따로 부탁했던 일들을 전부 처리했다고 보고했다.
“인천과 부산의 고무신 공장은 오자키 호츠미의 협조를 받아서 요코하마 고무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켈리 씨와 머피 씨는 당장 조선을 떠나라고 연락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럼, 마약 거래 건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것도 조지 대장님이 말한 대로 사순 양행의 샘슨 사장에게 거래를 넘겼습니다.”
“이제 정리해야 할 것은 뤄리리-하둔 재단만 남았군요. 그것만 처리하면 광복군은 철수를 준비하면 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자키 호츠미가 소개해 준 후루카와 상사 쪽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잘하던가요?”
“이미 망해서 사라진 회사를 다시 살려주는데 말을 듣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하죠. 요코하마 고무가 조선 내의 공장을 인수하는 것도 일사천리로 해결했습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상하이 foreign Y.M.C.A에서 만난 오자키 호츠미와 리하르트 조르게에게 엄청난 금액의 공작금을 지원해서 그들의 스파이 활동을 도와줬다.
그리고, 반대로 오자키 호츠미와 리하르트 조르게는 일본의 주요 인사들을 나한테 소개해 줬었다.
소개받은 사람 중 한 명이 1920년대 제1차 세계 대전 특수가 사라지면서 망해버린 재벌 회사인 후루카와 상사의 후루카와 쥰이치였다.
“내가 신경을 쓰지 못하더라도 후루카와 쥰이치는 잘 관리하십시오. 나중에도 필요한 사람입니다.”
“에, 알겠습니다.”
* * *
와이탄에 있는 내 회사의 사무실은 상하이에 머무는 광복군의 장교단의 사령부가 설치돼 있었다.
내가 유자명을 만나고 밖으로 나오자 사무실 안에 있는 광복군 장교단의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조지 대장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통쾌했습니다.”
여러 장교의 축하와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
“내가 혼자 한 일도 아니고 항공대원들이 모두 함께 한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 다들 모여 있어서 잘됐습니다.”
바실리 추이코프가 암살당하면서 소련 군사고문단의 지휘를 받지 못하는 중국군에게서는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광복군의 육군 장교단까지도 사무실에 모두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예, 상황이 이제 급하게 돌아갈 것만 같습니다. 분명히 일본은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본토의 동포들에게 보복할 겁니다.”
내 말을 들은 광복군 지휘관들은 두 손을 불끈 쥐고 인상을 찌푸렸다.
보지 않아도 일본이 앞으로 어떤 짓을 저지를지는 이미 1919년 기미년에 경험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조지 대장님은 어떻게 하시자는 말입니까?”
“나는 광복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 동포가 한 명이 희생되면 반드시 일본 놈들을 한 명이라도 죽여서 보복할 생각입니다.”
“저는 찬성합니다. 당하고만 사는 바보짓은 이제 그만 합시다.”
“옮소!”
“맞습니다. 우리가 당한 만큼 반드시 갚아줘야죠.”
“조지 대장, 어떤 좋은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광복군 지휘관들이 나를 보면서 어떤 계획이 있는지 어서 빨리 말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먼저, 김원봉 대장의 해병대는 일본에서 조선인들이 주로 일하는 광산을 모두 폭파하십시오.”
“광산이요? 그럼, 거기서 일하는 우리 동포들도 많이 다치지 않겠습니까?”
“김 대장님, 나는 우리 동포들이 이번에 조금 다치고 마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광산들을 없애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우리 동포들은 짐승처럼 계속해서 일할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조선에는 일자리가 없고 먹고살기가 힘이 들어서 일하러 가는 건데···.”
“꼭 일본에 가야 일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주에도 일자리는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에 대한 대책을 만들 생각입니다.”
김원봉은 대책 없어 보이는 내 계획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 작전에는 동의를 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어느 광산을 공격합니까?”
군함도로 유명한 나가사키의 하시마섬과 후쿠시마현과 이바라키현에 걸쳐있는 조반 탄광, 이바라키현의 히타치 광산 그리고 니가타현의 사도 광산을 김원봉에게 알려줬다.
“이상 내가 알려준 광산들은 주로 조선인 근로자들이 일하는 곳으로 너무나 힘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반드시 폭파해서 없애 버리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한 광산들은 모두 일본 본토에 있는데 침투 방법은 어떡할 생각입니까?”
“이번에 일본인 협력자가 영국 선적의 해운 회사를 인수합니다. 그때부터 그 선박들을 이용해서 작전하면 될 겁니다.”
“아무리 협력자라고 해도 일본인인데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돈은 귀신도 부릴 수 있게 만들어 주더군요. 나를 믿으십시오.”
“그럼, 우리는 뭘 합니까? 지금처럼 계속 구경만 하고 놀아야 합니까?”
그동안 전투보다는 주로 독일과 소련 군사고문단을 참관만 하고 다녔던 광복군 육군 지휘관들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물어왔다.
“여러분도 다들 느끼시겠지만, 상하이 전투는 이제 끝났습니다. 일본군의 공세를 막을 수 없어서 후퇴하는 중국군을 엄호하는 역할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중국군 후퇴를 도우라고요?”
“예, 중국군에게 그동안 진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시고 중국군을 한번 살려줍시다.”
김경천과 지청천도 작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시원하게 일본 놈들을 죽이고 싶은 여러분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전쟁도 아닌데 우리 조선 청년들을 남의 전쟁에서 희생시키지는 맙시다.”
“무슨 생각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 중국군이나 장비는 거의 비슷한데 우리만으로 일본군의 공세를 막아 낼 수 있겠습니까?”
“몇 년 전부터 독일과 협력해서 준비한 무기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번에 그 무기들을 사용하면 충분할 겁니다.”
“혹시, 새로운 전차도 있습니까?”
“새로운 전차도 있고 그것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전투를 참관하고 올린 보고서를 기초로 보완한 무기들과 새롭게 만든 무기들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김경천을 비롯한 육군 장교들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왜 안 그러겠는가? 군인에게 있어서 좋은 무기를 쥐여 주는 것만큼 즐겁고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저···. 조지 사장님, 그럼 우리는?”
“손원일과 최선학 두 사람은 나하고 같이 독일과 스웨덴 그리고 미국을 좀 다녀옵시다.”
“전에 약속하신 대로 물건을 받으러 가는 겁니까?”
“예, 물건도 넘겨받아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서 같이 만나봅시다.”
홍범도 장군이 바실리 추이코프에게 쏜 총알 한 발 때문에 중국군은 그동안의 기세를 잃고 일본군의 공격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고, 나와 광복군 항공대가 조선 총독부에 떨어트린 폭탄 한 발 때문에 조선 내의 독립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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