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 국치일의 복수 2. (65/225)

65. 국치일의 복수 2.

65. 국치일의 복수 2.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 그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공격 목표와 내용을 바꾸고 있는 나를 보면서 유자명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경성의 총독부를 날려버릴 생각이십니까?”

“일왕 놈 새끼의 모가지를 날려버리는 일과 총독부를 날려버리는 일은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던 일이 아닙니까?”

“두 가지가 모두 이뤄진다면 한없이 즐겁고 기쁘겠지만 이번에도 또 위험한 것 아닙니까?”

유자명은 걱정하고 있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고 쉬운 일이 빈집을 터는 겁니다. 이번에 우리 민족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유자명과의 대화를 끝내고 바로 훙커우 비행장으로 향했다.

훙커우 비행장에 도착해서 출격 대기 중인 조종사들에게 작전 브리핑을 하려고 가는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조지 중위!”

중화민국 공군의 항공 고문인 클레어 세놀트가 중화민국 공군 소속의 P- 26 전투기 사이로 걸어오면서 나를 불렀다.

“예, 세놀트 중령님.”

클레어 세놀트는 쑹메이링의 항공 위원회 요청으로 중화민국 공군을 맡아서 교육하고 훈련하고 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만날 때마다 계급으로 나를 깔아뭉갰다.

“조지 중위, 이제부터는 일본 항공대와의 전투에서 빠진다고 하던데. 그게 진짠가?”

“예, 그렇습니다.”

“아니, 이런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지?”

“예?”

‘이 자식이 뭘 잘 못 먹었나? 우리가 중국군도 아니고 빠지고 싶으면 아무 때나 전쟁에서 빠질 수도 있지···.’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동맹으로까지 받아 줬는데, 중화민국이 어려운 이 시기에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냐는 말일세.”

“세놀트 중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른다는 건가?”

“아니, 다짜고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조지 중위, 자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예.”

“지금 중국 공군은 숙련된 조종사가 부족해서 상하이 시내에 오폭까지 해서 욕을 먹고 있는데, 이럴 때 자네들처럼 뛰어난 조종사들이 빠지면 되느냐 그 말일세.”

“세놀트 중령님, 그것이 중령님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쑹메이링 위원장님의 생각입니까?”

“누구의 생각인 것이 뭐가 중요한가?”

“그 문제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중화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의견이라면 제가 대처할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 차원에서 대처할 것이고···.”

“흠흠···. 그것은 내 개인적인 의견일세.”

자신을 내세우기 좋아하고 잘난척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까 봐서 세놀트 중령은 낄 때 안 낄 때 구분하지 못하고, 지금 광복군 공군의 문제에 나섰다는 소리였다.

“세놀트 중령님, 중령님과 제 입장은 같습니다. 중령님께서 중화민국 정부에 고용돼서 공군을 담당하고 계시듯이 저도 용병 자격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군을 담당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중위는 지금 나한테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말아라. 그 말인가?”

“예, 맞습니다. 저도 중령님처럼 고용된 사람일 뿐이니까 저한테 뭐라고 하시지 마시고, 만약,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하시기 바랍니다.”

클레어 세놀트 중령은 내 말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내가 알기로는 조지 중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숨겨진 실세라고 하던데, 사실이 아니라는 건가?”

“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일개 용병 신분인 제가 어떻게···.”

“내가 듣기로는 중국 정부 당국자들이 암암리에 그런 소리를 하던데, 조지 중위는 정말 아니라는 말이지?”

클레어 세놀트 중령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깜빡하고 있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중령님, 저는 그저 용병일 뿐입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절대 아니라고 말을 좀 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던 세놀트는

“그럼, 쑹메이링 여사가 잘 못 알고 있다는 건가?”

“예,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하면 저는 그저 일개 용병일 뿐이라고 말을 좀 해주십시오.”

“알았네. 아무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번에 공군 출격을 거절한 것은 크게 실수한 거야. 그러니까 조지 중위도 자네의 고용주한테 말을 잘하게.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나는 클레어 세놀트를 보내고 광복군 항공대가 머무는 사무실로 급하게 뛰어갔다.

“헉헉···. 지금 바로 유자명 선생을 비행장으로 들어오라고 해.”

“유자명 선생을 부르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직을 보고 있던 통신병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래.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들어오라고 해라.”

“예, 대장님.”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건물 밖에서 강렬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찾으셨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혹시, 무슨 큰일이 생긴 줄 알고 놀란 얼굴로 나를 보는 유자명을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잠시만 걸으면서 이야기합시다. 아무래도 안에서는 비밀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유자명은 그런 나를 보면서 조용히 따라서 걸었다.

“유 선생, 인천과 부산의 고무신 공장을 지금 당장 팔아야만 하겠습니다.”

“예? 갑자기 그런 결정을 왜 하신 겁니까?”

“아무래도 고무신 공장을 통해서 국내 조직망을 만드는 것도 이제는 끝난 것 같습니다.”

“혹시, 누가 잡혔습니까? 아니면, 누가 밀고라도?”

그동안 독립운동을 하면서 밀정들에게 당하고 일본 경찰에 잡혀간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었겠는가?

유자명은 이번에도 그런 사건이 생긴 줄 알았다.

“그것은 아니고, 내 신분이 일본에 노출된 것 같습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다른 사람과 다르게 내 신분이 노출됐다면 일제는 나와 관련된 사람들을 한 번쯤은 반드시 점검할 것이다. 

그리고, 조사하다가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잡아들여서 고문하고 심문할 것이다.

“이거 정말 큰일 났군요.”

“예, 잠시 일본 첩자들의 눈을 망각한 내 잘못입니다.”

벌써, 동쪽 하늘에서는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유자명을 붙잡고 앉아서 한가롭게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 일본으로 연락해서 인천과 부산의 고무신 공장을 빨리 인수하라고 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포기할 것은 포기합시다. 그리고, 나를 대신해서 사순 양행에 가서 샘슨 사장을 만나서 관동군과 거래하던 마약 거래를 샘슨의 회사로 넘기십시오.”

“혹시, 오늘 돌아오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아니요. 나는 언제나 전투에 참여할 때는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나갑니다. 그래서, 내가 없더라도 임시정부와 광복군에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유자명은 내 말을 듣고 잠시 숙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결연한 표정으로 바꿨다.

“또,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만약, 내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드미트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를 달라고 해서 그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예.”

“그럼, 저는 이만 출격하러 가보겠습니다. 내가 부탁한 것은 바로 처리하십시오.”

“예.”

나는 유자명을 두고 다시 급하게 조종사들이 대기 중인 작전 브리핑실로 향했다.

“다들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미안하다. 내가 일이 좀 있었다. 그리고, 다들 출격할 전투기들의 무장은 모두 바꿔 달았지?”

“예, 대장님.”

그동안 꿈에 그리던 본토로 비행을 떠난다는 소리에 광복군 항공대 조종사들은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눈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경성으로 침투했던 해병대가 정보 부족으로 일본 총독 암살에 실패했다.”

“아···.”

“이런···.”

광복군 항공대 조종사들은 각자 아쉬운 마음을 짧은 탄식과 함께 내비쳤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일을 대신할 생각이다.”

“우와! 정말입니까?”

“대장님, 진짭니까?”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오늘,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이미,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더는 눈치 볼 생각이 없다.”

항공대 조종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오늘, 그날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생각이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떤가?”

“좋습니다.”

“이참에 아예 도쿄 일왕의 집도 조져 버리죠?”

“그건 우리가 가진 전투기의 항속 거리 때문에 불가능하다.”

나는 이왕에 항속 거리 이야기가 나온 김에 대원들에게 경성의 총독부를 폭격하고 돌아올 루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경성 작전 역시도 항속 거리가 문제다. 먼저, 여의도 비행장의 일본군을 견제할 편대들은 비행장 정리가 끝나면 바로 여기 장쑤성의 비밀 비행장으로 돌아온다.”

“예, 알겠습니다.”

“만약, 연료가 충분하다면 그냥 이곳으로 돌아와도 좋다.”

“예, 그것은 저희가 판단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여의도 비행장의 일본군 항공대를 견제할 두 개 편대의 대원들이 대답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총독부를 공격할 편대들은 총독부를 날려버리고 산둥성 비밀 비행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다들 할 수 있겠나?”

“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보하이만과 산둥성을 날아다닌 날이 얼만데, 그 정도를 못 찾아가겠습니까?”

“그래, 좋다.”

나는 광복군 항공대 대원들에게 공격 순서를 정해주고 총독부를 공격할 때는 최대한 고도를 낮춰서 거의 땅에 붙어서 공격하라고 지시를 했다.

“총독부 주위에 특별한 대공 무기가 설치돼 있다는 정보는 없었다. 그러니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공격하기를 바란다. 알겠나?”

“예, 대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총독부 건물이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졌다고 해도 두들겨 맞다 보면 어디 한 귀퉁이라도 부서지겠죠.”

“저···. 대장님, 그런데 총독부 뒤편이 경복궁인데 괜찮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최대한 고도를 낮추고 정밀 타격을 하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경복궁에 대한 부담은 잠시 잊어라.”

나는 대원들이 경복궁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부담을 가질 것 같아서 

“만약, 경복궁이 부서지거나 불타면 내가 지금보다 더 멋지게 다시 지어줄 생각이다. 이미 망한 조선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궁전으로 말이다.”

“하하. 역시 대장님이십니다.”

“휘익! 브라보!”

“그러니까 너희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자신 있게 공격하기를 바란다.”

내 말을 듣고 어느새 부담감을 털어버린 대원들은 밝은 표정을 지은 채, 드디어 본토에 광복군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의 전투기를 향해서 다가갔다.

8월 말, 이른 아침 동쪽 하늘에서는 붉은 태양이 어느새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하늘 위로 50여 기의 BF 109 전투기들이 관제탑의 신호를 받고 하나둘씩 날아올랐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