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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국치일의 복수 1. (64/225)

64. 국치일의 복수 1.

64. 국치일의 복수 1.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 그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경성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934년에 조선 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매국노의 길로 들어선 최린의 집으로 수상한 그림자 몇 개가 다가왔다.

1919. 3. 1.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최린은 이제는 조선에서 대표적인 매국노 중의 한 명으로 변신을 해서 일본을 추종하면서 잘살고 있었다.

주위를 살피면서 조용히 담장을 넘은 수상한 그림자들은 최린이 주로 머무는 안채와 서재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 아···!”

여자관계가 복잡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최린의 집 안채에서는 야릇하고 끈적끈적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발놈!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팔아먹더니 지는 아주 천국 같은 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이렇게 저 혼자만 잘 먹고 잘살고 싶어서 그렇게나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을 섰는가 보지.”

의열단은 김원봉과 윤세주 등 황포군관학교 출신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해병대를 창설하기 위해서 의열단에서 빠져나가고 난 후부터는 백정기가 맡아서 광복군 정보대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장님, 어떡할까요?”

“최린 저 새끼는 죽는 순간까지도 천국을 거닐다 가게 생겼구나. 빨리 폭탄을 설치하고 다음 목표로 넘어가자.”

“예.”

백정기의 지시에 대원들은 넓은 집안 곳곳으로 흩어져서 폭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백정기와는 다른 루트를 통해서 입국한 김원봉은 평생 그렇게 죽이고 싶었던 조선 총독을 드디어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작은 흥분을 느끼면서 경복궁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북악산의 산기슭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미나미 지로, 이놈은 전해진 정보대로 확실하게 총독 관저에 머물고 있겠지?”

“예, 전해진 정보대로라면 오늘은 관저에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제발, 어디 이상한 곳에 가지 말고 얌전히 집구석에 처박혀서 기다려라”

8월 29일 새벽 4시, 전국에서 동시에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미나미 지로를 죽이려고 왔던 김원봉과 대원들은 막상 총독 관저에 도착해서 보게 된 장면은 그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총독 관저에서 대략 1Km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서 쌍안경으로 총독 관저를 살피던 김원봉과 해병대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장님, 관저 입구에 군견이 두 마리나 있습니다.”

대원들과 함께 쌍안경으로 총독 관저 주위를 살피던 김원봉은 쌍안경을 내리면서

“아무래도 미나미 지로를 조용히 암살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김원봉은 일이 시끄러워지고 작전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같이 침투한 다른 대원들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말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대장님, 우리가 작전 시간을 앞으로 당기면 백정기 대장 쪽이 위험해집니다.”

“대장님, 군견도 문제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게 감춰진 초소 두 곳도 동시에 해결해야 합니다.”

같이 총독 관저 주위를 살피던 대원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번 작전의 문제점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경성에 거주하는 정보원들이 여기는 접근하지를 못하니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못한 것 같다.”

김원봉을 비롯한 해병대원들은 이번 작전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만약 작전에 실패한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물론이고 다른 대원들의 생사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은 형태도 마음도 피도 살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 같은 놈을 눈앞에 두고 그냥 갈 수도 없고···.”

안타까워하는 김원봉을 보면서 다른 대원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관저보다는 다른 곳에서 미나미 지로를 노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총독 관저로 조용히 접근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건다면?”

“우리가 목숨을 건다면 암살은 성공할 겁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전쟁이 터지고 비행기의 항속 거리 문제 때문에 워낙 급하게 추진된 작전이다 보니 너무나 허점이 많았다.

“씨발! 목표를 눈앞에다 두고 그냥 가야만 하다니···.”

“대장님, 저희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저 새끼는 꼭 죽이고 싶었습니다.”

총독 관저를 보면서 이를 가는 김원봉을 보면서 함께 침투한 대원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이번 작전은 실패다. 일단 돌아가서 다시 준비하자.”

“예, 알겠습니다.”

총독 관저의 경계 태세를 모르고 접근했던 김원봉과 해병대원들은 다음을 다짐하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김원봉과 해병대가 실패하고 경성을 빠져나갈 때쯤 서해안 곳곳에 침투한 광복군 정보대의 대원들 또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것은 매한가지였다.

안내원 한 명의 인도를 받아서 도착한 군 경찰서는 규모가 생각보다 컸고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경찰서에 머무는 경찰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경찰서를 지키는 숫자가 만만치 않군요?”

전라남도 영광군 경찰서가 보이는 곳에서 광복군 정보 대원 김두철은 안내자인 박치우에게 경찰서 폭파 작전의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좀 많죠? 그런데, 왜 이렇게 급하게 작전을 시작하게 된 겁니까? 그것도 경찰서를 폭파하는데 딸랑 혼자서 오다니요?”

“사연이 좀 있습니다. 이번에 중국군이 상하이를 빼앗기면 국내로 침투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급하게 작전이 추진된 겁니다.”

“아! 그럼 혹시, 일본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닌데 윗분들 생각에는 언젠가는 중국군이 상하이에서 후퇴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박치우는 김두철의 대답에 한숨을 쉬면서

“후유···. 큰일이군요. 작년에 새로 부임한 총독 놈이 보통이 아니어서 앞으로 우리 조선 인민들이 얼마나 고생할지 모르겠는데 일본은 그렇게 잘나간다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윗분들은 그래도 우리가 이긴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보다 다들 더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김 선생 말씀처럼 정말로 우리가 일본을 꼭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김두철은 박치우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공격 목표인 경찰서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를 한번 쳐다보더니

“박 선생은 이제 그만 돌아가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어떡하든 처리하고 돌아가겠습니다.”

“혼자서 저 큰 경찰서를 공격하실 생각입니까?”

박치우의 말을 들은 김두철은 침투할 때부터 메고 있었던 배낭을 땅에 내려놨다.

그리고, 배낭 안에서 수류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거면 충분할 겁니다. 괜히 저를 돕다가 신분이 발각되지 마시고 어서 댁으로 돌아가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박치우는 김두철의 말에도 불구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정말로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내가 도우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돌아가십시오.”

김두철의 단호한 대답에 박치우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조용히 경찰서 앞에서 멀어져 갔다.

전라남도 영광군 경찰서 폭파를 노리고 잠입한 김두철은 황해도 해주 경찰서를 폭파하기 위해 침투한 박정식에 비하면 행복한 편이었다.

한참 동안을 해주 경찰서를 노려보던 박정식은 드디어 오늘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저···. 정말로 혼자 오신 겁니까?”

“예. 경찰서 하나당 한 명씩 할당을 받았습니다.”

“아! 절대 안 됩니다. 혼자서는 죽어도 안 됩니다.”

“하하, 제가 보기에도 저 혼자로는 불가능한 임무인 것 같네요. 하지만, 명령을 받았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미 여러 번 국내 침투 작전을 성공시켰던 김동욱은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안내를 맡은 정재신은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다 김동욱이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아서 말리고 나섰다.

“임시정부에서 정말로 김 선생을 보고 죽으라고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침투해서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면 철수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자존심상 이대로 물러날 수가 없네요.”

“아니, 김 선생! 목숨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합니까?”

정재신은 김동욱의 말에 화를 내면서 말리기 시작했지만, 김동욱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할 생각인지

“혹시, 근처에 기름을 구할 곳이 있겠습니까?”

“기름이야 구할 곳이 있지만, 이 새벽에 요란스럽게 움직이면 일본 경찰들에게 들키지 않겠습니까?”

“기름만 있다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니, 기름이 있다고 해도 이 새벽에 그것을 옮기다가는 모두 들킨다니까요.”

김동욱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정재신은 도저히 설득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나도 같이합시다. 김 선생 혼자만 위험하게 놔둘 수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정 선생은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잖습니까? 이번에는 저 혼자 하겠습니다. 기름이 있는 곳만 알려주시고 돌아가십시오.”

정재신은 다시 한번 김동욱의 눈을 봤지만 굳은 결심으로 가득한 김동욱의 눈동자만 보게 됐다.

“정말로 실행할 겁니까?”

“예, 제가 의열단에 들어가면서 했던 첫 번째 맹세가 적을 앞에 두고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후···. 알겠습니다.”

정재신은 김동욱을 경찰서 근처에서 랜턴용 기름을 파는 석유 집으로 안내를 해줬다.

“이 석유 집의 주인 놈은 친일파 놈이니까 굳이 살려 두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럼, 저는 여기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제발 무사하시기를 두 손 모아서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정재신에게 김동욱은 고개를 꾸뻑하면서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정 선생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해방된 조국의 하늘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 * *

8월 29일 새벽 4시, 국치일 날 대대적인 공격을 계획했던 작전은 반은 성공했지만 반은 실패를 하거나 임무를 포기했다.

그리고, 무리한 작전 때문에 아까운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 버렸다.

미나미 지로의 암살에 실패하고 돌아온 김원봉은 잠수함에 오르자마자 바로 상하이로 무전을 치라고 했다.

“코드 원, 작전 실패”

김원봉뿐만 아니라 작전에 실패한 대원들은 복귀하자마자 상하이로 작전 실패에 대한 무전을 쳤다.

“저···. 이번 작전은 반 정도가 작전에 실패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유자명의 보고를 받은 나는 처음 작전을 세울 때부터 급하고 어설프게 짠 작전이라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패한 작전이 돼버렸다.

“실패한 건 상관이 없지만, 혹시 대원들이 많이 다치거나 죽었습니까?”

내 질문을 받은 유자명은 인상이 굳어지면서

“예, 다섯 명의 대원들이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다섯 명이나 내 명령 때문에 죽엇다는 소리를 듣자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도구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명의 유해를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찾을 수야 있겠지만 일본 경찰들이 순순히 내주겠습니까?”

“흠···.”

죽어간 대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도 비록 지금도 전투기를 타고 일본군과 싸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내 명령 때문에 죽어간 대원들에게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어설픈 작전을 명령해서 꽃다운 여러분들을 하늘로 보내버렸네요.’

훙커우 비행장에서 출동 대기 중인 박하성에게 무전을 보냈다.

‘삐라 살포 취소 모두 폭탄 탑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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