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 꼬인 실타래는 더욱 꼬여만 가고···. (57/225)

57. 꼬인 실타래는 더욱 꼬여만 가고···.

57. 꼬인 실타래는 더욱 꼬여만 가고···.

1936년 11월 25일에 독일은 베를린에서 히로히토의 일본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왕국과 함께 독일 - 일본 - 이탈리아 3국 방공(공산당 반대)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면서 독일은 장제스의 중화민국과는 경제, 군사적인 면에서 끈끈한 협력을 이어오는 사이였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아시아의 두 동맹국인 일본과 중국 두 나라 중 어떤 나라와의 관계도 포기하기는 아까웠다.

그래서, 독일은 일본과 중국의 전쟁을 말리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불붙은 전쟁의 기운은 독일이 중재하려고 한다고 해서 꺼질 리가 없었다.

“팔켄하우젠 단장, 내가 미안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장제스는 베이징과 톈진을 방어하기 위해서 병력을 북진시키고, 독일 군사고문단장인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단장을 불렀다.

“장 위원장님께서 어쩐 일로 나를 찾으셨습니까?”

장제스는 자기보다 십 년 이상 연상이었고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팔켄하우젠에게 정말로 어려운 부탁을 하기 위해서 불렀다.

“팔켄하우젠 단장님···.”

“뭘 그렇게 주저합니까?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보십시오.”

“단장님은 우리 중화민국에 있어서 상하이가 어떤 곳인지 잘 아시죠?”

“‘동양의 진주’이고 ‘중국의 보물’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상하이는 왜요?”

장제스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다가 

“단장님, 상하이를 지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상하이를 지키기 위한 방어 작전은 이미 수립돼 있고 방어 작전에 맞게 병력 배치도 끝나지 않았습니까?”

팔켄하우젠은 주중 군사고문단장에 부임한 이후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상하이와 난징의 방어선 구축이었다.

팔켄하우젠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지형지물에 맞게 방어선을 깔고 구축했었다.

“아니요. 난 우리 중화민국 장성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팔켄하우젠 단장님이 그 방어선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장제스는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서자 팔켄하우젠에게 정말 어려운 부탁을 마지 못 해서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중에 외교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전투를 참관할 수 있지만, 직접 중화민국군을 지휘하게 되면···.”

팔켄하우젠이 절대로 승낙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재 장제스의 처지에서는 기댈 언덕이 팔켄하우젠 밖에는 없었다.

“그럼, 전투를 참관은 하실 겁니까?”

“일본에서 그것까지 뭐라 하지는 않겠지요.”

장제스는 팔켄하우젠이 거절할 때를 대비해서 생각해 뒀던 것을 말했다.

“전투를 참관하면서 우리 중화민국군의 장교가 아닌 타국의 장교들과는 전술 토론은 해도 되겠지요?”

“그거야 전장에 참관단이 일상적으로 하는 거니까 가능하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상하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반드시 참관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 정도는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약속하겠습니다.”

* * *

전쟁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한 상하이는 일본의 조차지와 중화민국군의 경계 지역에는 벌써 병력이 집결해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누가 총을 한 방만 쏴도 전투는 바로 시작될 것만 같았다.

“드미트리! 드미트리!”

전쟁은 전쟁이고 일단 내가 상하이에서 챙겨서 피난을 보내야 할 사람들과 시설들은 빨리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예! 형님.”

“뤄리리-하둔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중요 연구자료와 자재들은 다 챙겼냐?”

“쓰촨 바중에 마련해 뒀던 제2 캠퍼스로 짐들을 먼저 옮기고 있습니다.”

“이런, 그럼 절대 안 된다. 드미트리, 너는 아직도 중국인들을 믿는 거냐? 빨리 짐을 관리하고 분류할 줄 아는 사람들도 같이 보내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드미트리는 자신의 이마를 쳤다.

“아!”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어서 서둘러라!”

“예, 형님.”

쓰촨의 바중까지 짐만 따로 보낸다면 나중에 우리는 그 중요한 것들을 하나도 찾지 못할 것이 뻔했다.

드미트리가 서둘러서 나가자 우리 동포들과 유대인들의 피난을 맡은 유자명을 불렀다.

“유자명 선생! 유자명 선생!”

“예.”

유자명도 상하이 탈출 계획을 점검하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피난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우리 동포들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유대인들이 문제네요.”

“아니 왜요?”

“유대인들은 일본군이 자신들에게는 어떤 패악도 끼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쓰촨까지 피난하려는 사람이 없네요.”

아! 이런 미친놈들.

일본이 유대인을 우대한다고 선전한 것이 먹힌 모양이었다.

경제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미국의 유대계 자본가들에게 일본은 유대인을 우대하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선전을 해댔으니 선전이 먹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나 피난을 가지 않겠다고 합니까?”

“반수 이상은 그냥 상하이에 있겠답니다. 그런데, 이 반 이상이 그대로 머무는 것을 본다면 다른 유대인들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된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 난다.

내가 독일에서 유대인을 데려올 때는 내 나름의 큰 그림을 그리고 데려왔었다.

독일에서 상하이로 대피시킨 2,000여 명의 유대인은 모두가 기술자였고 과학자였고 의사였다. 

그들은 나중에 미래 대한민국의 거름이 돼줘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유자명 선생, 멜리타 실러를 불러 주십시오.”

“조지 씨 저를 찾았다면서요?”

멜리타 실러는 상하이로 오게 되면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여자였다.

만약, 독일에서 계속 살았다면 유대인 출신 조부 때문에 언젠가는 비참하게 죽어 갈 사람이었다.

“실러 씨,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본군의 공격이 예상돼서 어쩔수 없이 피난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멜리타 실러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정말 일본군이 상하이를 공격할까요?”

“예, 다음 달 초에 공격이 시작됩니다. 일본군 통신을 감청한 내용이니까 이 정보는 확실합니다.”

상하이로 오기 전까지 독일 국방부 항공연구소에 일했던 여자였기 때문에 군사작전이나 감청이나 이런 것들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일본군이 우리 유대인도 탄압하고 죽일까요?”

“전쟁터에서 총알이 어디로 날아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일본군은 나치보다 더 미친놈들입니다. 상하이에 사는 유대인 여성들이 모두 일본군에게 집단 강간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멜리타 실러는 설마 그럴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본군이 만주를 점령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관동군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본 본토에서 7만 명이 넘는 여자들을 창녀로 데려갔습니다.”

“정말이요?”

“예, 이것은 미국 영사관에서 나온 정보입니다.”

아무리 상하이에서 지내기가 편하고 일본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의 딸과 아내가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 앞에서는 피난을 떠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조용히 알려주고 빨리 피난 준비를 하라고 해주십시오. 이것은 내가 당신들을 보호하겠다고 했던 약속 중의 하나입니다.”

“정말, 일본군이 그렇게 야만적으로 나올까요?”

“예.”

그나마 아시아에서 선진국에 가까운 일본이 그런 짓을 할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일본인의 광기는 아무도 못 말린다.

“일본군은 반드시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것에 내 모든 재산을 걸 수도 있습니다.”

“하아···.”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한숨이나 쉬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빨리 피난 준비를 하십시오.”

“예, 알았어요.”

“아! 그리고, 독일에서 상하이로 파견한 기술자 중에서 필요한 사람은 미리 알려주십시오.”

현재 상하이와 항저우에는 중국과 독일의 합작으로 만든 공장에는 독일 출신의 많은 기술자가 일하고 있었다.

그들도 나중에는 미래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계에 훌륭한 거름이 될 것이다.

“그들은 왜요?”

“실러 씨, 우리도 전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럼, 전쟁하는 동안에도 정비와 수리를 하고 무기를 생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지 씨. 지금 상하이나 항저우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나치 신봉자들도 많은데요?”

“꼭 필요한 사람만 고르십시오. 혹시라도 나치 신봉자가 있다면 우리가 정신 개조를 확실하게 시켜 드리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멜리타 실러에게 서두르라고 강조하고 내보냈다.

* * *

화베이에서는 이미 7월 28일부터 전투가 시작됐지만, 상하이에서는 아직까지는 긴장감만 높은 채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정말 중국 놈들이 하는 짓을 보면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습니다.”

두웨성의 상하이 자경단과 함께 상하이 남쪽을 방어하는 김원봉이 나를 찾아와서 언제 전투가 시작되느냐고 묻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어차피 벌어질 전쟁이라면 선방을 처야 하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김원봉의 말은 백번 맞는 말이다.

이미 북쪽에서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전쟁이 시작됐는데 상하이에 주둔 중인 1만여 명도 되지 않는 일본 해군 육전대를 왜 가만히 놔두는지 나도 궁금할 지경이었다.

일본군의 상륙 거점을 먼저 정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외교적인 문제가 생길지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이건 아니었다.

어차피 해야 할 전쟁인데 굳이 적에게 유리한 거점을 왜 남겨 둔단 말인가?

“모두 방탄복과 방독면은 휴대했지요?”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일일이 검사를 다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일본군은 공격이 막히면 어떤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항상 방탄복과 방독면을 휴대하고 다니고 후퇴하는 훈련도 완전히 숙달했죠?”

“그런데, 후퇴 훈련은 왜 그렇게 시킨 겁니까?”

“세계 모든 전투와 전쟁에서 일방적인 학살이 일어나는 경우는 후퇴를 잘하지 못한 경우였습니다. 후퇴를 제대로 하는 군대가 진짜 강한 군대입니다.”

한창 김원봉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드디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는지 상하이 북부 중화민국과 일본 조차지 접경지역에서 불빛과 함께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일본군의 의도적인 도발인지 아니면 미친놈 한 놈의 일탈이었는지 모르지만, 상하이에도 전쟁의 불씨는 이미 타오르고 있었다.

지난 8월 9일, 일본 해군 육전대 오오야마 이사오 중위가 중화민국 공군의 기지가 있는 훙차오 공항에 난입하려다가 사살이 됐다. 

일본은 언제나 하던 방식대로 이를 트집잡아서 홍차오 공항에서 중국군 보안대 철수와 오오야마 이사오 중위의 죽음에 대한 공동 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군은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상하이 방어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걸 본 일본군은 상하이를 공격하기로 하고 8월 13일 오전 9시 15분, 일본 해군 육전대 1개 분대가 횡병로, 보흥로의 중국군 기지에 도발을 감행하는 것으로 일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일본 육전대의 정찰조인 모양입니다.”

“좀 더 끌어들여서 처리해!”

“예.”

횡병로를 지나서 보흥로로 진출하려던 정찰 분대는 길 양쪽 빌딩에 숨겨져 있던 기관총탄의 세례를 받아야 했다.

“두 두두도 두 퉁!”

“타 다다 다당!”

길 양쪽 빌딩에 숨겨져 있던 중국군 중기관총과 경기관총의 교차사격에 정찰을 나왔던 일본군은 모두 그 자리에서 고립된 채 하나둘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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