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 아니, 우리가 왜? (54/225)

54. 아니, 우리가 왜?

54. 아니, 우리가 왜?

bf 109 전투기가 도주하는 홍군의 머리 위로 기관총을 쏘고 지나갔다.

숲이나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 기암괴석 지대와 사막이 쭉 이어진 땅 위로 기관 총알이 퉁겨졌다.

“타 타 타 탕!”

“타 다다 당!”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면서 전투기들이 지나가고 사라지자. 땅바닥에 엎드려서 몸을 숨기고 있던 홍군의 제1 방면군 병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지나갔나?”

“예, 지나갔습니다.”

저우언라이는 오늘도 공습을 하고 지나간 광복군 전투기를 생각하면서 이를 갈았다.

“마오 주석의 상태는 어떤가?”

“어디든 빨리 자리를 잡고 치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오 주석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덩샤오핑을 보면서 저우언라이는 괜히 이 어린 청년을 사회주의 혁명의 대열로 끌어드린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면서 

“공습이 없을 때 빨리 이동하자. 다들 일어서라!”

저우언라이의 외침에도 홍군 제1 방면군의 패잔병들은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했다.

“일어서라! 너희도 2, 4 방면군처럼 처참하게 죽고 싶나? 빨리 일어나라! 서둘러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저우언라이가 티베트로 도주하다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홍군 2, 4 방면군을 거론하자 병사들은 그제야 삐쩍 삐쩍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저우언라이의 눈에 병사들의 들것에 실려 가는 마오쩌둥의 모습이 보였다.

마오쩌둥과 주더, 저우언라이 등의 공산당 주력이 포함된 홍군 제1 방면군은 국민당군의 추격을 피해서 간쑤성으로까지 쫓겨왔다.

중국 지도를 잘 보면 서로는 칭하이성 남으로는 쓰촨성 그리고 동으로는 산시(섬서)성에 둘러싸인 개껌 같은 모양의 간쑤성을 볼 수 있다.

북으로는 마쭝산, 허리산, 룽저우산이 있고 남으로는 치렌산, 아얼진산으로 감싸진 길고 좁은 평야 지대가 펼쳐진 지역이었다.

* * *

장제스의 부탁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공산당 토벌에 나서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사령부는 쓰촨성 바중에서 간쑤성 란저우로까지 이동해 왔다.

“나는 임시정부의 결정에 따르고는 있지만, 우리가 왜 이 짓을 해야 합니까?”

한때는 중국인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해서 일본군과 싸워왔던 장병들은 중국공산당을 추격하고 싸우는 일에 회의적이었다.

특히, 양세봉이나 김원봉과 연관이 있는 장병이 그런 경향이 강했다.

“우리 임시정부의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하게 됐습니다.”

김구는 광복군 내에 많은 반발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직접 그런 소문을 진화하기 위해서 란저우까지 오게 됐다.

“아니, 우리가 왜 장제스의 사냥개가 돼야 합니까?”

“이건 분명히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가 굳이 중국 내의 문제에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까?”

김구에게 광복군 장교들의 반수 이상이 이의를 제기했다.

“여러분, 나도 이렇게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있습니다.”

김구는 광복군 반 이상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서 혼신을 힘을 다하고 있었다.

“우리를 이렇게 장제스의 개 노릇이나 하게 만들려면 국무령 자리에서 물러나십시오.”

“국무령은 이 상황을 책임을 지십시오.”

광복군이 출범하면서 간신히 봉합을 시켜놨던 사상 문제가 또 튀어나와 버렸다.

“여러분 잠시 진정들하고 내 말을 들어 보기 바랍니다.”

김구는 중국공산당 토벌에 반발하는 장병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장제스와 있었던 일을 어느 정도까지는 알려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 국무령, 어서 오시오.”

김구는 장제스가 급한 일로 찾는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장제스 국방위원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장제스 위원장님, 안녕하셨습니까? 급하게 찾았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그래요.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김 국무령을 찾았습니다. 거기 앉으세요.”

김구가 자리에 앉자

“김 국무령, 요즘 내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일이 뭔지 아시죠?”

“예, 장 위원장님께서는 중화민국군의 현대화와 공산당 토벌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내가 요즘 그 두 가지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장제스가 중화민국군 현대화 때문에 자신을 불렀을 일은 없을 것이고, 아무래도 공산당 토벌 문제 때문인 것 같은데 김구는 어쩐지 느낌이 싸했다.

“내가 요즘 참 골치가 아픕니다. 아무리 공산당 놈들을 때려잡으려고 해도 잘만 도망을 다니니···.”

역시나 장제스가 원하는 것은 김구의 예상처럼 공산당 토벌 문제였다.

그리고, 그때 다이리가 김구에 뭔가 서류를 가져다줬다.

“김 국무령 그걸 한번 봐보시오.”

김구는 속으로 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공산당의 첩자가 있다고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이건 뭡니까?”

“읽어봐요. 그러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다이리가 넘겨준 서류는 국민당 조사통계국이 첩자로 의심하는 국민당 간부와 장군들의 명단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의도적으로 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람들은 없었다.

“어떻소? 좀 심각하지요?”

장제스의 물음에 김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련된 의심자들이 좀 많군요?”

“그 명단에 있는 간부들이나 장교 장군들이 모두 첩자들은 아니겠지만, 그들 때문에 공산당 토벌이 끝을 보지 못하고 있소.”

장제스의 말을 김구는 이해가 됐다.

공산당과 관련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 모든 사람이 중국공산당의 첩자라면 국민당은 삼분지 일은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김 국무령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나만 하고 싶소.”

김구의 싸했던 예감이 역시 맞아떨어졌다.

“우리 쓰촨성 군을 대신해서 북쪽으로 도망친 공산당 놈들을 토벌해 주시오.”

“저···. 장 위원장님, 우리는 이미 쓰촨성 군의 공산당 토벌을 돕고 있는데···.”

“거기에도 공산당의 첩자가 있는 것 같소.”

장제스는 김구가 말하려는 것을 중간에 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했다.

김구는 장제스의 부탁을 사실상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장 위원장님, 우리가 현재 공산당 토벌을 지원하는 것도 우리 사이에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독으로 공산당 토벌에 나선다면···.”

“그래서, 김 국무령에게 부탁하는 거요. 조선은 적인지 아군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시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선은 중국의 편이요? 아니면, 일본의 편이요? 그것도 아니면, 소련 공산당의 편이요?”

장제스의 말을 듣는 순간, 김구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어금니는 자동으로 꽉 깨물어졌다.

다시 한번 16년 전에 자유시에서 있었던 사고와 똑같은 선택이 강요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음···.”

“나는 확실히 내 편이 아닌 군대는 앞으로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오.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된 마당에 더는 후방에 불안 거리를 두고 싶지 않소.”

김구는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는 수모를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우리 병력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기껏 해봐야 1개 단(연대)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서북쪽으로 도망을 간 놈들도 이제 오천 명 정도나 남았을 거요.”

“지금처럼 계속 쓰촨성 군을 지원하면 안 되겠습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더이상은 쓰촨성장을 믿지 않기로 했소.”

어떡하든지 남의 집안싸움에는 끼고 싶지 않았던 김구는 갖은 노력을 다 해봤지만, 장제스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예 협박까지 해왔다.

“만약,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다면 일본군과의 본격적인 전쟁 전에 중화민국을 떠나시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하는지는 김 국무령이 더 잘 알 거요.”

일본의 지배를 받는 민족을 자기도 이제는 믿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정말 거지 같은 운명이었다.

딱, 16년 전에도 이랬었다.

그리고, 애써서 키운 독립군들이 모두 죽었었다.

현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상황이 너무나 비참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북쪽으로 도주했다는 공산당의 토벌을 맡겠습니다.”

“좋소. 김 국무령이 그렇게 결정을 해주니까 내가 한시름 놓겠소.”

김구는 장제스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김구가 밖으로 나가자 다이리가 장제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로써 이이제이가 된 것인가?”

“예, 위원장님.”

장제스와 다이리는 처음부터 점점 병력이 늘어가고 장비를 갖춰가는 광복군이 부담됐다.

중국의 다른 군벌들처럼 허접한 장비의 무장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광복군은 독일의 조종사들과 협력하면서 전투기와 폭격기 전력까지 갖춰나가자 이제는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 * *

김구의 설명을 들은 광복군은 각자의 사상을 떠나서 16년 전의 그 일을 다시 떠올리면서 모두가 분개했다.

“이 모든 것이 나라 잃은 설움입니다. 나는 앞으로 더는 사상을 따지지 않겠소.”

한 명이 나라가 없는 민족이 겪어야만 하는 설움을 이야기하자 다른 광복군들도 이구동성이었다.

“앞으로 내 앞에서 사상을 이야기하는 놈을 제일 먼저 총으로 쏴 죽여버릴 것이오. 나는 나라를 찾고 나서 그때 가서 사상을 이야기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나도 그렇소.”

“나는 일본 놈과 소련 놈 그리고 중국 놈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평생 잊지는 않을 것이오.”

“나도 마찬가지요. 나라를 찾고 언젠가는 이 수모를 반드시 갚아줍시다.”

김구와 장제스와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난 광복군은 또 한 번의 각성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공산당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국무령님 왜 간도나 연해주에서 넘어오는 청년 중에 학교에 다녔던 청년들은 모두 딴 곳으로 데려가는 겁니까?”

광복군들은 이왕 김구와 이야기를 하게 된 상황에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가끔 광복군 간부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었다.

그러나, 김구도 질문에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현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 수뇌부 몇 명만이 아는 가운데 극비로 김원봉과 손원일을 주축으로 한 가지 작전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는 여러분께 말해 줄 수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니, 국무령님 병력 중에 그나마 배운 녀석들이 없으니까 밤마다 병사들 교육하기도 힘듭니다. 뭔가 조치를 해주십시오.”

“그것도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광복군에 병력 충원이 힘들 것 같습니다.”

학력이 있는 병사들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한술 더 떠서 앞으로 병력은 충원마저 없다고 하자 광복군 병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국무령님, 우리는 조국을 해방할 병사들이 아닌 겁니까?”

모든 병사에게 속 시원하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기 때문이다.

“지금은 말을 해줄 수가 없습니다. 다만, 다른 청년들도 다른곳에서 다른 훈련을 받으면서 여러분처럼 독립을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