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내가 군문에 든 지 어언 25년, 오늘처럼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다.
53. 내가 군문에 든 지 어언 25년, 오늘처럼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다.
1937. 7. 7일. 베이징 근교.
“대대 전 병력은 오늘 밤에 야간사격 훈련을 한다.”
지나 주둔군 1보병연대 3대대장인 이치키 기요나요 소좌는 휘하 중대장들에게 야간에 사격 훈련을 한다고 준비를 시켰다.
지나 주둔군은 2만여 명에 가까운 병력을 증강하면서 중화민국군을 계속해서 도발했지만, 중화민국군이 예전처럼 반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투를 회피하자 지나 주둔군은 중화민국군을 더욱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중화민국군 진지 근처에서 사격 훈련을 하는 것으로 도발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대대장님, 사격장은 어디로 합니까?”
“오늘은 좀 더 자극해보자. 중국 놈들 진지 근처에 사격장을 설치해라.”
“예, 대대장님.”
“대대장님, 오늘도 중국군에게는 따로 통보는 하지 않습니까?”
이치키 기요나요 소좌는 쓸데없는 것을 묻는 휘하 중대장의 정강이를 걷어차면서
“퍽!”
“넌 적에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주고 작전을 하나?”
“윽! 아닙니다. 대대장님.”
“그럼, 빨리 사격 준비들이나 해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두 시간에 걸친 사격 훈련에도 중화민국군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저 병신같은 놈들은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사격 훈련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나?”
“대대장님, 겁이 나서 그렇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치키 기요나요는 지속적인 도발에도 겁먹고 꼬리 내린 개새끼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화민국군을 보면서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상부에서 구두로 내려온 명령에는 어떡하든지 전투를 벌일 명분을 만들어내라고 했는데 전혀 반응이 없으니 조만간 자신이 문책을 당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되면 조작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탕!”
“탕!”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몇 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또 몇 발의 총성이 들렸다.
“탕!”
“타당!”
“무슨 일이냐?”
“잘 모르겠습니다. 중대장님.”
“빨리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병력은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라!”
“예, 중대장님.”
“중대장님! 병사 한 명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 누가 없는데?”
“이등병 한 놈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칙쑈!”
8중대장 시미즈 세쓰오 대위는 대대장인 이치키 기요나요 소좌에게 병사 한 명이 실종됐다고 보고를 했다.
그리고, 이치키 기요나요 소좌도 연대장인 무타구치 렌야 대좌에게 역시 같은 보고를 올렸다.
“연대장님, 어떻게 합니까?”
“일단 보고는 해야겠지. 사령부에 보고를 해라.”
지나 주둔군 보병 1연대에서 벌어진 일이 관동군 사령부에 보고가 됐고 관동군 특무대는 바로 베이징 주둔 중화민국군과 접촉을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관동군 특무대와 베이징 주둔 중화민국군 그리고 도쿄의 수상관저에까지 보고가 이뤄지고 사건 해결을 위해서 외교적인 협상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총성과 함께 우리 병사 한 명이 실종됐으니까 이에 대해서 해명을 하시오.”
“우리는 그 시간에 누구도 총을 쏜 병사가 없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그럼, 우리가 총을 쏘고 우리가 병사를 죽였거나 숨겼다는 소리요?”
관동군 특무대장 마쓰이 대좌의 말에 펑즈안 37사단장은 마쓰이를 노려보면서
“안 그랬다고 보기도 어렵지 않소? 우리는 분명히 그런 적이 없는데 그쪽은 계속해서 그런 일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좀 수상하지 않습니까”
“뭐라고요? 그럼, 우리가 이번 일을 조작이라도 했다는 말이요?”
“흥! 그것을 누가 알겠소?”
“좋소. 그럼, 공동 조사를 합시다. 당신네와 우리가 조사단을 꾸려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이 조사를 해봅시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우리 중화민국 국경 안으로 당신들을 들일 이유가 없지 않소?”
관동군 특무대장 마쓰이와 중화민국군 37사단장 펑즈안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무타구치 렌야 대좌는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협상장을 빠져나왔다.
“당번병! 당번병!”
“예, 연대장님.”
“무전병 어딨나?”
급하게 당번병을 찾은 무타구치 렌야는 다시 무전병을 찾았다.
“야! 3대대장 연결해!”
무전병에게 3대대를 연결하라고 명령한 무타구치 렌야는 3대대장 이치키 기요나요 소좌에게
“이치키! 너 지금 어디야?”
“연대장님 저희 대대는 현장에서 대기 중입니다.”
“현장이라고?”
“예, 연대장님.”
“너 지금 바로 너 눈앞에 있는 지나 놈들을 모조리 죽여!”
“예? 연대장님 진짜로 공격합니까?”
“그래! 너 눈앞에 있는 지나 놈들을 공격하라고!”
“연대장님, 지금 협상 중인데 정말 공격 합니까?”
“뭐가 겁나나? 너와 나는 자랑스러운 황군이다. 지금 당장 공격해라!”
“예, 알겠습니다.”
이치키 기요나요 소좌가 보기에 어쩐지 철수 명령도 없고 대 보병용 산포 중대까지 지원을 나온다 했더니 연대장인 무타구치 렌야는 바로 이것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연대장의 명령을 받은 이치키 기요나요 소좌는 바로 3대대 병사들에게 눈앞의 중화민국군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꽝!”
“꽈 광!”
“돌격 앞으로!”
이치키 기요나요 소좌의 3대대는 보병용 산포를 수차례에 걸쳐 쏴대더니 포사격이 끝나자마자 중화민국군 참호를 향해서 돌격을 시작했다.
“타앙!”
“탕!”
“막아라! 막아!”
이미 한 달 전부터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던 일본군의 공격에 중화민국군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처럼 총소리가 들리고 일본군이 돌격을 시작하면 내빼기 바빴던 모습은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 4시경부터 시작된 일본 지나 주둔군과 중화민국군 전투는 쉽사리 끝나지 않고 오후까지 이어졌다.
무타구치 렌야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리는 여단장인 가와베 마사카즈 소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와! 세상에 이런 미친놈이 있나? 무타구치 렌야 이 새끼 지금 어딨어?”
“전투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습니다.”
“내 차 가져와! 이런 미친놈을···.”
“예, 여단장님.”
가와베 소장은 급하게 차를 타고 무타구치 렌야가 전투를 치르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여단장님.”
가와베는 무타구치 렌야를 한번 슬쩍 보고는 전투 현황판을 쳐다봤다.
“여단장님, 현재 전투 상황은 제 명령으로 3대대가 이미 완평현성을 점령했고···.”
독단적인 결정으로 전투를 시작한 무타구치 렌야를 질책하기 위해서 왔던 가와베 소장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무타구치 렌야의 전투 보고를 끝까지 다 듣고 고개만 끄덕이고는 현장을 떠나 버렸다.
그런 직속상관을 본 무타구치 렌야는 전투를 승인한 것으로 생각하고 더욱 자신감 있게 중화민국군을 공격했다.
그리고, 자신의 자랑스러운 행동을 일본 전역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신문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연대장님, 신문 기자들이 전투 현장을 취재하려고 모였습니다.”
당번병의 보고를 받은 무타구치 렌야는 거울에 보이는 자기 모습이 뭔가 밋밋해 보였다.
“야! 당번병.”
“예, 연대장님.”
“너 가서 피 묻은 붕대를 좀 구해와.”
“피 묻은 붕대 말입니까?”
“그래!”
당번병은 급하게 의무중대로 가서 부상한 병사들의 몸에서 피를 묻힌 붕대를 가지고 왔다.
“내 팔뚝에 감아라. 이왕이면 피가 묻은 쪽이 밖으로 잘 드러나게 감아라.”
“예, 연대장님.”
당번병은 무타구치 렌야의 명령대로 팔뚝에 피 묻은 붕대를 이쁘게 잘 감아 줬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 뭔가 전투를 한 장군 같잖아.”
붕대가 감긴 팔뚝을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 보던 무타구치 렌야는 신문 기자들 앞에 섰다.
“이 먼 전장까지 황군의 승전보를 취재하러 온 기자 여러분들 수고가 많습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벌써 승리한 장군처럼 너스레를 떨면서 전투 현황을 지시봉으로 하나하나 집어 가면서 새벽부터 이어졌던 전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군문에 든 지 어언 25년, 오늘처럼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 지나 주둔군 제1보병연대는 어제 새벽 있었던···.”
피 묻은 붕대가 감긴 자랑스러운 팔뚝으로 멋지게 작전 상황을 설명했다.
* * *
“후와! 진짜 미치겠군.”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는 관동군의 난동에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작년 2월 26일 벌어진 사건 때문에 이제는 내각도 천황도 군부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일본육군은 ‘황도파’와 ‘통제파’가 서로 대립하면서 내각이 어느 정도 둘의 힘의 균형을 이용해서 통제를 할 수 있었지만, 제1사단의 ‘황도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면서 ‘통제파’의 세상이 되면서 이제는 천황도 군부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총리대신 각하, 절대 지나 침공은 안 됩니다.”
육군 참모본부 작전부장 이시하라 겐지는 어떡하든지 고노에 총리를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봐, 작전부장, 관동군 참모장 도조는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
“도조 히데키 참모장의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지나는 늪입니다. 현재 상태에서 더는 지나를 공격하면 안 됩니다.”
대다수의 육군 지휘부는 고노에 총리에게 빨리 병력 증원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었다.
아니 총리의 허락을 받을 생각 자체도 없었다.
관동군과 조선군은 벌써 전투가 벌어진 현장으로 병력을 증원하고 있었다.
“총리 각하! 절대로 허락하지 마십시오.”
고노에 총리는 어떡하든지 지나 침공을 말리려고 노력하는 이시하라 겐지가 참 답답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배경에는 이시하라 겐지가 저지른 만주사변 때문이었다.
군 장성들과 장교들은 이시하라 겐지가 한 짓을 보고서 선조치 후보고를 전통으로 생각했다.
“할 말 다 했으면 이만 돌아가 보게. 나는 오상 회의에 참여해야 할 시간이네.”
고노에 총리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자 이시하라 겐지는 침통한 표정을 지은 채 참모본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총리대신과 대장대신 그리고 외무대신, 육군과 해군 대신이 회의장에 모였다.
“아무래도 협상으로 시간을 더 끌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까 빨리 결정합니다.”
“파견 병력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고노에 총리의 말에 스기야마 육군 대신은 따로 증원까지 필요하겠냐는 반응이었다.
“지나 군 따위야 지금 파견된 병력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지나 군도 독일로부터 많은 장비를 사들이고 훈련을 받았다는데 정말 괜찮겠소?”
“뭐, 정, 총리께서 걱정된다면 두 개 사단 정도 예비로 파견을 하겠습니다.”
“예산을 증액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이미 많이 증액된 상태여서 문제가 좀 생길 것 같습니다.”
“또 물가가 폭등하겠군요.”
“지나를 빠르게 점령하고 장제스와 협상을 하면 금방 안정이 될 겁니다.”
스기야마 육군 대신은 여전히 중국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석 달이면 중국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럼, 빨리 병력을 증원하고 경제에 무리가 되지 않게 전쟁을 최대한 빠르게 종결합시다.”
만주를 너무나 손쉽게 차지했었던 경험이 있는 일본은 정계와 군부 그리고 언론계와 재벌들 그리고 국민까지도 모두가 하나가 돼서 중국을 내일 당장이라도 점령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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