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제독의 간절한 부탁.
49. 제독의 간절한 부탁.
미국 동양함대의 기함인‘오거스타’의 함장 체스터 니미츠 대령의 옆에는 언제나 통역을 담당하는 손원일이 따라다녔다.
니미츠가 동양함대 사령관 업햄 제독과 함께 동양 각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영어가 모두 가능하고 각국의 풍속과 예절을 잘 아는 손원일은 니미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여름에는 칭다오 그리고 겨울에는 마닐라에서 보내는 ‘오거스타’ 함은 나머지 다른 날은 다른 나라를 친선 방문을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상하이에서 보냈다.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상업과 유흥업이 발달한 상하이는 아시아 최고의 도시였다.
특히, 고향을 떠나서 배를 타는 수병들에게는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천국과도 같았다.
“이 녀석들이 너무 막 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구먼.”
“함장님, 마약만큼은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으니까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다른 문제도 조지 씨가 두웨성을 동해서 잘 통제하고 있습니다.”
해군과 선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마약과 여자 그리고 술 그리고 밀수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상하이에서는 두웨성의 허락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래도, 조지 씨가 신경을 많이 써줘서 병사들과 장교들이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것을 보니까 나는 기분이 좋네.”
“이 사장님은 확실히 좀 대단하기는 합니다. 병사들의 술값을 모두 공짜로 해주시다니.”
“나중에 내가 갚아줘야 할 은혜지. 덕분에 장교들과 병사들이 사고를 안 치고 지내서 정말 좋기는 하네.”
“그 대신 함장님께서는 저를 가르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뭘, 이 정도 가지고···. 겨우, 이걸로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하하, 함장님,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사령관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니미츠의 통역으로 따라붙은 손원일은 미국 해군 최고의 디젤 엔진 전문가이자 잠수함 전문가인 니미츠의 지식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쪽쪽 빨아드리고 있었다.
도쿄항으로 미국 동양함대의 기함인‘오거스타’가 서서히 들어가고 있었다.
일본의 군신이라고 불리는 도고 제독의 장례식 때문에 도쿄항으로 입항하는 ‘오거스타’는 국제적으로 정해진 예방 규칙에 따라서 예포를 쓰고 상대방 국가의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
“함장님, 저 깃발은 일장기가 아닌데요? 도쿄항에 입항할 때는 일장기를 게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쿄항을 둘러보고 있던 니미츠는 생각지도 못한 손원일의 말에
“그게 무슨 소리야?”
‘오거스타’ 함 수병들의 실수를 눈치를 챈 손원일이 즉각 니미츠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저기 수병들이 게양대에 걸려고 들고 있는 깃발은 중화민국의 국기입니다.”
“뭐라고? 진짜?”
“예, 바로 확인 좀 하십시오.”
니미츠는 손원일의 말에 놀라서 국기 게양대가 있는 갑판으로 뛰어갔다.
“이런 미친놈들! 너희는 일본하고 중국의 깃발도 구분하지 못하는 거냐?”
“어? 이게 왜 여깄지?”
“어? 함장님 뭔가 착오가···.”
“뭣들하고 있는 거냐? 어서 빨리 일본 국기로 교체해!”
“예, 함장님!”
예포를 쏘고 나면 바로 일본 국기를 올려야 하는데 국기를 잘 못 달아놨다가 이제야 일본 국기를 찾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일본 국가가 게양되지 않고 게양대 근처가 소란스러워지자 업햄 제독까지 게양대 앞으로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제독님, 병사들이 실수로 국기를 잘못 올릴 뻔했던 것을 바로 잡느라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
니미츠가 업햄 제독에게 보고는 하는 사이에 병사들과 장교들은 예전에 사용했던 일본 국기를 찾아와서 부리나케 달아 올렸다.
“이제 됐습니다. 제독님.”
니미츠 함장의 보고에 업햄 제독은 게양대 주위에 서 있던 병사와 장교들을 한번 훑어보고 아무런 말도 없이 지휘통제실로 올라가 버렸다.
그날 밤, 뒷 갑판에서는 니미츠의 고함소리와 병사와 장교들의 곡소리가 오랫동안 들렸다.
“미국의 체면을 살려줘서 고맙군.”
“뭘요. 배운 것과 달라서 급하게 알려 드린 겁니다.”
가상 적국 일본에 외교적으로 위신이 깎일 뻔한 일을 막아준 손원일에게 니미츠는 한없이 고마움을 느꼈다.
“아니야. 정말 고맙네.”
“에이, 함장님 괜찮다니까요. 하하.”
도고 제독 장례식에 들린 손원일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나중에는 반드시 일본 해군보다 나은 해군을 만들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런, 손원일을 보면서 니미츠가
“괜찮나?”
“예?”
“자네 나라를 지배하는 나라의 제독 장례식에 참가해도 괜찮냐고?”
“예, 괜찮습니다. 일본이 원수의 나라인 것은 맞지만,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냉정한 판단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참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래, 군인은 정치가가 아니니까 항상 그 마음을 잊지 말고 간직하게.”
“예, 함장님.”
국기 게양 사건 이후로 니미츠는 손원일을 전보다 훨씬 더 챙겨줬다.
“꽝!”
“꽝!”
‘오거스타’ 함의 야간 함포 사격훈련이 진행되는 가운데 손원일은 니미츠에게 자신이 느낀 것을 물어봤다.
“함장님, 지금 야간 함포 사격훈련은 일본 해군을 대비한 훈련이죠?”
“응. 그래. 일본은 육군이나 해군이나 야간 공격을 선호하거든.”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야간 전투는 지휘부가 통제를 잘하는 쪽이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니미츠는 손원일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보라고 눈짓을 했다.
“적과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상황에서 빨리 아군을 통제하고 포격 목표를 지정하는 함대가 승리할 겁니다. 이것은 도고 제독이 쓰시마 해협에서 발트함대를 이겼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 도고 제독도 그랬었지.”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표적에 사격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자네 생각이 좋은 생각인 것 같군. 지휘부에서 돌발 상황을 주고 그에 맞춰서 사격훈련을 하는 것을 연구해 보겠네.”
손원일은 이왕 말을 시작한 것, 그동안 가졌던 의문점과 미국 해군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장님께서는 잠수함에 대해서 잘 아시면서 왜 미국 해군 잠수함의 유일한 공격무기인 어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으십니까?”
“어뢰?”
“예, 저는 제가 대한민국임시정부 해군을 맡게 된다면 현실적으로 가질 수 있는 무기가 잠수함뿐이어서 잠수함에 관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느낀 것이 미국 해군의 어뢰는 정말이지···.”
“자네가 보기에 우리 잠수함들의 어뢰가 그렇게 형편이 없던가?”
“예. 불발률이 너무 높습니다. 어뢰를 당장 고치지 않는다면 미국 해군의 잠수함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무기가 될 겁니다.”
“그래? 나는 그 정도인 줄은 몰랐었네. 그렇다면, 어떡하든지 어뢰를 빨리 개량을 해봐야겠군.”
“함장님! 전쟁은 언제 시작한다고 알려주고 시작하지는 않잖습니까? 어뢰만큼은 빨리 바꿔야 할 겁니다.”
“그래. 알려줘서 고맙네.”
다른 지휘관들과 니미츠가 다른 점은 부하들의 의견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원일이 비록 미국 해군 장교는 아니지만, 손원일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 손원일의 의견까지도 귀담아들었다.
손원일은 일본과 미국이 싸운다면 광복군이 미국 해군과 협력할 방법은 잠수함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니미츠에게 어뢰를 바꾸라고 말했고 조지에게는 잠수함을 사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손원일의 의견을 듣고 니미츠가 바꾼 몇 가지 때문에 나중에 태평양 전쟁의 판도가 엄청나게 바뀌었다.
“뛰어! 뛰어! 달리라고!”
“‘오거스타’ 절대 지지 마라!”
니미츠 대령이 ‘오거스타’ 함의 함장으로 근무한 지 벌써 이 년이 되어가면서 이제는 미국으로 복귀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국 동양함대의 모든 장병이 모여서 체육대회를 하고 있는 운동장을 보면서 손원일과 니미츠도 ‘오거스타’ 함의 장병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젠 미래의 제독하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네.”
“본국으로 복귀하십니까?”
니미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이젠 진짜 제독님이 되는 겁니까? 하하,”
“글쎄, 내가 정말로 미국 해군의 제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미래의 불확실성에 약간의 불안한 감정을 내보이는 니미츠에게 손원일이
“함장님, 함장님께서는 분명히 제독이 되실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그리고, 항상 나를 응원해줘서 고맙네.”
둘은 다시‘오거스타’ 함 장병들이 하는 경기를 보면서 승리를 응원하면서 한참 소리를 질렀다.
“손원일, 내가 복귀하기 전에 자네를 좀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뭘 해주면 좋겠나?”
“함장님, 저와 동포 몇 명을 필리핀 해안 경비대 훈련 코스에 입교를 시켜주십시오.”
“필리핀 해안 경비대?”
“예, 함장님.”
“음, 좋네. 그 정도는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군.”
“감사합니다.”
“정말로 미래에는 손원일 자네도 제독이 되어 있기를 항상 응원하겠네.”
“감사합니다. 체스터 W 니미츠 제독님.”
니미츠는 손원일의 경례와 함께 제독이라고 불리자 그래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음을 보였다.
손원일은 니미츠 대령의 추천으로 필리핀 해안 경비대 훈련소에 입교했다.
손원일과 동포들은 더운 날씨에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가운데서도 단 한 번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훈련을 받았다.
* * *
한참 살생부를 뒤적이면서 다음 암살대상을 누구로 할지 고르고 있는데 필리핀 수빅만 미국 해군 기지에서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이게 뭐지? 손원일이 선물이라도 보냈나? 그렇기에는 부피가 작은데?”
소포 안에는 오창호가 가져왔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현대화를 위한 보고서만큼이나 두꺼운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를 위한 보고서라는 문서가 들어 있었다.
“뭐야? 잠수함을 사달라고? 와! 나 미치겠네.”
잠수함 좋다.
잠수함을 사주면 뭐 하나?
잠수함 하나만 있으면 일본 해군의 군함들이 알아서 폭파되고 알아서 바다에 가라앉나?
잠수함을 움직이려면 기름도 있어야 하고 적을 공격하려면 어뢰도 있어야 하고 기뢰도 있어야 하고 항해가 끝나면 독에서 수리도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과 안전한 기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것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잘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는 없었다.
* * *
‘엠마, 보어만을 통해서 헤스와 괴링과 친분을 만들어 봐!’
상하이에서 조지가 보내온 전보를 받은 엠마는 전보를 줄리아에게 보여줬다.
“이번에는 그렇게 어려운 임무는 아니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 친분을 나눠야 할지···.”
나치가 집권을 시작한 이후로는 친위대가 나치당 간부의 주위를 언제나 감시하고 첩자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아! 잘못하면 우리가 노출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 맞아. 그래서, 내가 고민하는 거야.”
“그럼, 사장님한테 여기로 와서 직접 만나 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사장님은 백인이 아니잖아? 나치당 주요 간부들이 동양인의 말을 신뢰할까?”
“에잇!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상하이로 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보고 올게.”
“그래, 차라리 그것이 낫겠다.”
결국, 임무를 수행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줄리아는 전보를 받은 다음 날 상하이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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