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알을 깨고 나온 광복군.
47. 알을 깨고 나온 광복군.
1934년 10월 10일부터 중국공산당은 도주를 준비했고 10월 15부터 본격적인 도주를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은 지금까지는 위험한 순간마다 밀약을 맺은 관동군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버티면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장제스의 국민 혁명군이 독일 군사고문단의 지휘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국민 혁명군의 승리는 허난성의 공산당 토벌 작전에서만 나타난 전과가 아니었다.
허베이성에서도 거의 매일 관동군을 상대로 부딪치고 있었고 국민 혁명군은 독일 군사고문단의 지휘를 받으면서 소규모 전투지만 연전연승을 하고 있었다.
다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국민 혁명군은 만리장성을 절대로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싸움이라면 무조건 닥치고 공격부터 하는 일본군도 이상하게 국경을 넘지 않고 있었다.
“이야! 언제봐도 장관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선배님.”
김경천과 지청천은 독일 군사고문단과 함께 옌시산의 르노 FT -17 경전차와 일본 관동군의 르노 을형 경전차들 간의 전차 기동전을 참관하고 있었다.
양쪽 진영의 전차들이 누런 황토 먼지를 날리면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전투 장면만 아니라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속이 시원하게 펑 뚫리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뚜 두두두두!”
“타 다다닥!”
그렇게 서로 마주 보며 달려서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 도달하자.
전장의 경전차들은 서로를 향해서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달려들었다.
“그런데 선배님, 무슨 전차들의 장갑이 저렇게 약합니까?”
서로의 중기관총 공격에 전차의 강판에 구멍이 쑹쑹 뚫리는 것을 보고 지청천이 김경천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때, 대답은 다른곳에서 들려왔다.
“저 전차들은 보병들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요.”
김경천과 지청천은 대답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이곳에 배우려고 온 것뿐입니다.”
히틀러의 나치당 정부는 소련과의 군사 교류를 중단하고 독일군을 중국으로 파견해서 중국군을 지휘하면서 전략 전술을 가다듬고 여러 가지 무기를 실전에서 테스트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고 있었다.
“그럼, 파견 대장님, 전차의 본래 목적은 보병들의 전진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1차 대전 당시에는 상대방의 참호 선을 돌파하기 위해서 전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점점 용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독일군 군사고문단 허베이 파견 대장은 김경천과 지청천에게 최신 교리를 설명하면서 현대의 전차는 옛날 기병대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차로 적 방어선을 가르고 적 지휘부를 포위하거나 적의 취약지점을 먼저 차지하고 구멍 난 적 방어선을 아군의 진격로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김경천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참관을 하면서 머릿속에만 있었던 궁금한 점을 묻기 시작했다.
“저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전차의 전진을 막기 위한 참호나 도랑 그리고 장애물이 있다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병종 조합이 필요합니다. 현대 전장은 모든 부대가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정찰도 해야 하고 다리나 도로도 이어야 하고 지뢰도 제거해야 하고 여러 가지를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기갑부대 혼자만의 단독 작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파견 대장님, 그럼, 부대의 전진 속도가 너무 늦어지고 은밀성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독일군 파견 대장은 질문하는 지청천을 잠시 보더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전쟁을 지휘하고 있지.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반드시 적보다 먼저 위치해야 할 곳이 있습니다. 은밀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빠른 기동과 함께 점령해야 하는 곳 말입니다.”
그동안 독립군의 전투는 몸으로 체득한 게릴라 전투가 주였다면, 옌시산의 중국군을 지휘하는 독일군은 현대적인 대부대 전술을 쓰고 있었다.
김경천과 지청천이 한참 전술 교리를 배우고 있을 때, 일본군 진영에서 대포가 달린 새로운 전차가 전장에 등장했다.
“이제 저놈이 나왔으니까 내뺄 시간이군요?”
“그래야죠. 우리는 겨우 기관총으로 무장했는데 저 녀석은 그래도 꼴에 전차라고 대포를 달고 있으니까요.”
독일군 파견 대장은 옆에 서 있던 참모장교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무전기 옆의 독일군 통신장교는 바로 전차에 후퇴를 명령했다.
“오늘은 이쯤 하자. 모두 철수해라!”
“예.”
통신장교의 무전 교신을 지켜본 파견 대장은 후퇴를 지원할 포격도 명령했다.
“전차들의 후퇴를 지원하는 포 사격을 시작해라!”
“예.”
옌시산 군의 경전차가 후퇴한 자리에는 일본군 전차들의 전진을 막기 위한 국민 혁명군 포병의 포탄들이 떨어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독일군 장교를 향해서 김경천과 지청천은 서둘러서 다가갔다.
“저···.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군인들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우리의 견문을 넓혀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독일군 장교들을 보면서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김경천을 비롯한 광복군 장교들은 어떡하든지 이번에 인연을 만들고 싶었다.
독일군 허베이 파견 군사고문단 장교들이 파견 대장을 보자 파견 대장은 의외로 시원한 대답을 내놨다.
“어차피 여기서는 할 것도 없는데, 가끔 말동무나 합시다. 한가할 때 숙소로 찾아오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광복군 장교들은 틈이 날 때마다 독일군 장교들이 좋아하면서 부담되지 않게 술이나 간식거리들을 들고 숙소를 찾아갔다.
김경천과 지청천 등 광복군 장교들에게 최신 기갑 전술을 가르쳤던 인물은 바로 하인츠 구데리안이었다.
* * *
하인츠 구데리안은 주중 군사고문당장인 한스 폰 잭트 장군에게 관동군과의 전투 결과를 보고하면서 1호 전차는 전장에서 사실상 쓸모가 없다고 보고하고 빨리 3호 전차를 생산해서 배치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구데리안이 1호 전차는 의미가 없는 전차라고 3호 전차로 바로 넘어가자고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일본군 전차도 상대할 수 없는 1호 전차는 저 역시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호 전차를 차라리 전투 지휘차나 통신 전차로 개조하고 3호 전차 생산에 주력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흠···. 히틀러 총통이 우리 의견을 들어줄지 모르겠군.”
“단장님, 3호 전차는 최소한 우리가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무장입니다. 이것도 어렵다면 독일군의 재건은 솔직히 힘듭니다.”
어떻게 히틀러 총통에게 보고하고 승낙을 얻어서 독일군을 재건해야 할지 한참 고민하던 한스 폰 잭트 단장은
“내가 조만간 건강상 이유를 대고 베를린으로 돌아가서 설득해 보겠네.”
“단장님, 그럼 이곳에 파견된 장교단은 어떡합니까?”
“일단 임시로 자네가 맡아서 전체적으로 관리를 하고 만약 베를린에서 새로운 장교들을 파견한다면 자네들을 복귀시키겠네.”
“알겠습니다.”
에리히 만슈타인은 예비역 상급 대장 한스 폰 잭트 장군이 진정한 독일의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존경하고 따랐다.
* * *
허베이 관동군과 중국군의 접경지.
“그런데 선배님, 우리가 육사를 다닐 때도 그랬지만 일본군을 보면서 저는 자괴감이 듭니다.”
지청천의 말에 김경천은 지청천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조금만 더 빨리 개항을 했다면 아마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테지.”
“지금도 독일군의 지휘를 받는 전차에 매일 깨지면서도 발전이 없는 일본 따위에게 어떻게 나라를 잃은 건지···.”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결단이 너무 늦었어.”
김경천과 지청천뿐만 아니라 구한말을 조금이라도 겪은 독립운동가들은 모두가 어떻게 하잖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잃었는지를 아직도 수긍을 못 했다.
“우리 황제께서는 왜 독립협회를 해산하고 수구적으로 돌아섰을까요?”
“원래 겁이 많으신 분이 아닌가?”
“설마, 백성들이 황제를 내칠까 봐서 두려웠을까요?”
“그랬겠지. 그렇지 않다면 그 당시 일들이 설명되지 않잖은가?”
“지금도 우리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황제께서는 우리를 너무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지난 시절은 충분히 반성하지 않았나? 지금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넘어서기 위해서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네.”
김경천의 말에 지청천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래야죠. 자, 이것은 제가 알아낸 오스발트 루츠라는 장군의 이론입니다.”
지청천은 독일군 군사고문단과 접촉하면서 얻어낸 군사 이론서를 내밀었다.
“자네도 좋은 자료를 얻어왔군. 나는 영국군 퍼시 호바트라는 장군의 다양한 전차 실험 이론을 얻어왔네.”
“그럼, 선배님, 우리 광복군의 젊은 장교들과 같이 한번 연구해봅시다. 서양의 두 강국의 장군들은 기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좋은 기회잖습니까?.”
“그럴까? 그럼, 어서 젊은 친구들을 모아보게.”
김경천과 지청천이 소집한 광복군 장교들은 숙소에 모여서 독일과 영국의 기갑 전술 창시자들의 이론을 배우고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구데리안 파견 대장님의 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전차에 무전기가 있다면 사령관의 명령을 전 부대원들이 제대로 알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보병 부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소대급 이상은 무전기가 모두 필요합니다.”
“저는 기갑을 뒷받침할만한 수송 능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송과 보급이 없는 군대는 시체와 같습니다.”
“맞습니다. 보급체계가 없는 군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체입니다.”
“아! 그것뿐만 아니라 점령지의 민사행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사행정도 중요하지만 저는 정확한 정보 획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보 획들을 위한 부대를 따로 운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복군 장교들은 기갑 전술과 교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군대에 관련된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장교들은 공학을 따로 전공하지 않았으면서도 전차의 구성부터 시작해서 엔진 그리고 장갑의 두께, 금속의 열처리까지 자기들이 알아 온 모든 것을 서로와 공유했다.
그리고, 수많은 토론과 연구를 거쳐서 엄청난 두께의 보고서이자 요청서를 임시정부에 보냈다.
* * *
항저우 매서 슈미트 항공사에서 bf- 109의 시재기가 곧 나올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 좋아서 입이 떡하니 벌어진 나한테 두꺼운 보고서를 내미는 놈이 나타났다.
“이게 뭐냐?”
“대장님, 우리 광복군의 발전을 위한 보고서입니다.”
“오창호, 그러니까 이 두꺼운 것이 전부 보고서라는 소리냐?”
“예, 대장님.”
“그런데, 넌 왜 허베이에 가 있어? 바중에서 건국대학 학생들 교육해야지?”
“대장님께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그동안 제가 배움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한테 육 개월 동안 급조된 사관생도 교육을 받아서 배움이 부족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르친 내 앞에서 그것을 대놓고 이야기하다니 이놈도 참 뻔뻔했다.
“그래서 나보고 어떡해달라고?”
“보고서를 읽어 보시고 광복군과 장차 탄생할 대한민국군을 위해서 돈을 좀 써주십시오.”
“하하, 너 이리 와! 대가리 박아! 이 자식이 이제 좀 컸다고”
오창호의 당찬 모습에 조금은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신에 찬 당당한 모습이 솔직히 좋았다.
하지만, 대가리는 박아야 한다.
“어쭈! 개기냐?”
내 눈치를 보면서 후다닥 대가리를 박는 오창호 말고도 나한테 돈 좀 쓰라고 달려올 사람이 또 있었다.
‘손원일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거기는 무지하게 덥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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