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국가가 왜 존재해야만 하는지 이유를 깨닫게 됐다.
43. 국가가 왜 존재해야만 하는지 이유를 깨닫게 됐다.
그동안 그렇게 애타게 소식을 기다렸던 빈센트 신부가 광주 지역의 학생들 몇 명과 함께 상하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빈센트 신부의 얼굴이 그동안 고생이 상당했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신부님, 그동안 무슨 일이 일었길래 연락이 통 없으셨던 거예요?”
빈센트 신부는 발끈하면서 화부터 냈다.
“나는 이 세상 경찰 중에서 뉴욕 경찰 놈들이 제일 나쁜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더한 새끼들이 조선 땅에는 넘쳐나더라고.”
“그래서, 혹시 또 누굴 팼습니까?”
“내가 그놈들을 패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개 같은 놈들이 항의 좀 했다고 유치장에 잡아넣더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빈센트 신부는 인천항으로 입국해서 켈리를 만나고 광주로 가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들이 광주 학생 만세 운동의 주동자와 협조자를 찾겠다고 나이가 이제 13, 4살도 안 된 학생들까지 잡아다가 반병신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화가 난 빈센트 신부는 경찰들에게 항의했고 너무 강력한 빈센트의 항의에 일본 경찰은 외국인 신부를 차마 구타나 고문을 하지 못하고 경찰서 유치장에 가둬버렸단다.
“그래서, 육 개월 동안이나 유치장에 갇혀 있었어요?”
“아니, 처음에는 한 달인데 내가 다시 항의하고 난동을 피우니까 이번에는 두 달을 가두더라. 그다음에 다시 나와서 또 항의하니까 개새끼들이 석 달을 가두더라고. 쪽발이 새끼들! 개새끼들!”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빈센트 신부를 이까지 갈면서 일본 경찰을 저주했다.
“신부님, 그래서, 몇 명이나 데리고 나오셨어요?”
“학생들이 많이들 다쳐서 당장은 데려오기가 힘들겠더라고 그래서 치료가 끝나면 상하이로 찾아오라고 차비를 쥐여 주고 왔어.”
“음···. 잘하셨네요. 내년에는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생길 것 같으니까요.”
처음 계획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해서 유학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뤄리리 여사의 재단 덕분에 상하이로 해외 유명 학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게 됐다.
“신부님,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는데 혹시 뉴욕으로 돌아가시고 싶은 마음은 없으세요?”
“나보고 뉴욕으로 벌써 가라고?”
“제가 이번에 재단과 은행 일 때문에, 뉴욕을 가야 하는데 여기서 지내시기 싫으시면 같이 가시죠?”
“음···. 그럼, 같이 갔다가 다시 오세. 광주에 제대로 된 병원이 하나도 없어서 다친 학생들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네. 내가 기부를 좀 받아서 광주에 병원을 하나 지어주고 싶네.”
“그래요? 그럼, 같이 다녀 오시죠.”
* * *
세르게이와 빈센트 신부님을 데리고 뉴욕으로 가려던 내 계획은 길림에서 날아온 한 통의 급전을 받고 또다시 보류됐다.
‘길림을 지나던 중 손정도 목사님의 부고를 접하고 들렀다가 목사님의 아들이 첩자로 몰려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윤봉길이 뤼순에 들러서 신채호 선생의 일을 보고 연해주로 가는 길에 독립운동에 몸 바치신 손정도 목사님의 부고를 접하고 빈소에 들렀다가 아들인 손원일이 중국군 첩자로 몰려서 관동군 헌병대로 잡혀갔다는 전보를 보내왔다.
윤봉길이 소식은 전한 이유는 나보고 손원일을 구해 달라는 소리였다.
그러나저러나 관동군에 그다지 힘을 쓸 수 있는 패가 없는 나로서는 참 난감한 구원 요청이었다.
펑톈 관동군 특무대.
“도이하라 겐지 대좌님, 안녕하십니까?”
내 인사에 도이하라 겐지는 니가 여기는 무슨 일로 왔냐는 표정이었다.
“아이고,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제 직원 한 명이 헌병대에 간첩으로 잡혀갔다는 소리를 듣고 왔습니다.”
“간첩이니까 헌병대에서 잡았겠지. 난 또 무슨 일이라고.”
도이하라 겐지는 내가 마약 공급을 끊겠다는 소리만 아니면 그 어떤 일도 상관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에이! 대좌님, 제 직원이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입국했다가 간첩으로 몰렸다니까요? 제 직원들이 어디를 봐서 간첩이겠습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여전히 도이하라 겐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저쪽 길림 쪽에 손정도 목사라고 그 사람 아들인데, 제 상선회사의 항해사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간첩이 되겠습니까?”
“손정도의 아들?”
손정도 목사의 이름을 들은 도이하라 겐지는 그제야 반응이 있었다.
“예, 아버지하고는 다르게 불순한 생각 따위는 갖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입니다. 그리고, 일본 제국에 대한 충성심도 남다르고요. 어떻게 잘 좀 안 되겠습니까?”
“손정도의 아들이라면 의심스러운데?”
“아니, 대좌님, 선원으로 평생을 떠돌아다닌 사람을 무슨 의심을···?”
“이봐! 조지! 난 너도 의심스러워!”
“예?”
“너도 의심스럽다고 너 같은 조센진이 어떻게 미국에서 돈을 그렇게 벌었고 상하이 부자들과 어울리는지도 의심스럽다고.”
“그거야 마누라를 잘 만나서 그렇죠. 제 마누라 집안이 부잡니다. 에···. 아주 많이 부자죠.”
도이하라 겐지,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놈이다.
관상 자체도 너구리처럼 생겨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 회사 직원이니까 한 번만 봐달라는 거냐?”
“예, 대좌님. 죄도 없는데 잡아 두실 필요까지는 없잖습니까?”
도이하라 겐지는 손정도 목사 사망에 관련한 보고서를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조지, 풀어 주면 바로 데리고 갈 거냐?”
“예, 당연하잖습니까? 여기 더 있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길림 파견대가 좀 과잉 반응을 했군. 조문객이 하도 많이 몰리니까 조문객을 막겠다고 아들을 첩자로 잡은 것 같다. 그러니까 데리고 빨리 떠나라.”
“예! 도이하라 겐지 대좌님!”
“너도 항상 조심해라! 내가 너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저 같은 하찮은 것을···. 아무튼 살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넉살 좋게 받아쳤지만, 도이하라 겐지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보내 줄 때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 *
길림 헌병파견대에서 풀려난 손원일은 잡혀간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고문이라도 받았는지 몸 상태가 별로였다.
“혹시, 안에서 고문이라도 받았습니까?”
“예, 저 보고 간첩죄를 자백하라고 하더군요.”
진짜 어이가 없었다.
무작정 잡아서 두들겨 패고 고문해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자백하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나와 함께 손원일의 대답을 들은 모두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개새끼들.”
“어서 빨리 독립을 해야, 이런 더러운 꼴을 안 볼 텐데.”
“쉿! 아직 지켜보는 눈들이 있으니까 말들 조심하십시오.”
나는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서둘러서 각자의 길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으면 계속 지켜볼 테니까 각자 갈 길로 빨리 갑시다.”
“저···. 나는 아직 아버님께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손원일은 손정도 목사의 부음을 듣고 도착하자마자 잡혀간 모양이었다.
“정말요?”
“예.”
“이 새끼들은 사람 새끼도 아닌 놈들입니다.”
“그럼, 아버님 영정은 못 뵙더라도 여기서라도 인사를 올리십시오. 다시 빈소를 찾았다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내 말에 함께 있던 일행 모두가 비통한 얼굴로 변했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돌아가신 아버지 영정도 보지 못하고 절을 해야 하는 세상. 아버지 빈소를 찾았다가 잡혀가는 세상이 과연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이것이 나라 잃은 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혹시라도, 손원일이 죄를 짓기라도 했다면 모르겠다.
생각해보니까 이런 일들이 여기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두만강 너머 연해주에서도 소련에 의해서 우리 동포들이 착취당하고 핍박을 받고 있었다.
“윤 형, 연해주에 가거든 홍범도 선생 말고도 함께 오실 분들이 있다면 모두 모셔오십시오. 만약, 사람이 너무 많으면 내가 배라도 보낼게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경천 장군처럼 일제와 싸우신 분들은 꼭 만나서 함께 하실 생각이 있는지 의사를 물어봐 주십시오.”
“그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돈이 얼마나 들든 나라를 위해서 싸우신 분들은 우리가 받들어 모십시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해주를 한번 쭉 돌아보겠습니다.”
내 생각에 윤봉길도 동의하는지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예, 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십시오.”
그렇게 윤봉길과 헤어지고 나와 손원일은 톈진을 향해서 출발했다.
아버지의 영정도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손원일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많이 힘드시죠?”
“예, 정말 모두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지금 그 마음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되갚아줄 날이 곧 올 겁니다”
“저도 그런 날이 오기만을 하느님께 빌고 또 빌겠습니다.”
그런 날은 몇 년 안에 반드시 온다.
오지 않으면 내가 나서서라도 오게 만들 것이다.
“상하이로 돌아가시면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일단 좀 쉬고 싶습니다.”
단 며칠이지만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뭐, 가는 동안 이야기를 하면 되겠죠.”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계획에는 손원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연을 뱉은 김에 그에게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일할 기회를 주고 싶어졌다.
손원일과 나는 톈진에서 상하이로 돌아오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내후년에 한 명 소개해줄 사람이 있는데, 상하이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지낼 수 있습니까?”
뜬금없는 내 말에 손원일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손 형도 일본을 쳐부수고 싶다면서요?”
“예,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고 싶습니다.”
“불구덩이까지는 필요 없고, 내가 미국에 다녀올 동안 조선 청년 중에 쓸만한 선원들을 좀 구해 놓으십시오.”
“선원들은 왜?···. 설마, 일본 해군과 전쟁입니까?”
“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내가 기회까지는 만들 수는 있지만 싸울 수 있는 실력을 만드는 것은 손 형 당신의 몫입니다.”
“정말입니까? 정말 기회가 있을까요? 중국군도 돈이 없어서 함대가 있으나 마나 한 함대뿐인데···?”
“원래는 없던 계획인데 손 형, 당신 때문에 만든 계획입니다. 기회를 잘 살려 주십시오. 나도 최선을 다해서 지원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누런 황토물이 가득한 서해 바다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국가란 무엇일까?
국가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큰 모임이다.
여기서 목표란, 국가라는 틀 안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안녕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만든 나라는 망해서 사라졌고 나라 없는 우리 민족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고난과 핍박을 받고 있었다.
그럼, 나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국가를 되찾기 전까지라도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안전과 안녕을 보장 할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다.
간도와 만주에서 마적과 일본군에게 죽고 빼앗기고, 연해주에서는 소련군들에게 죽고 빼앗기고 있는 우리 민족이 앞으로는 최대한 덜 다치고 덜 죽게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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