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광복군의 시작 2.
42. 광복군의 시작 2.
뤄리리-하둔 재단과 관련해서 뤄리리의 토지와 건물들은 대부분 팔았고 이제는 미국으로 자금을 옮겨야 하는 시점에서 김원봉이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목표가 어디입니까?”
“이번에는 우리 조선 농민들의 눈물과 한이 서린 곳입니다. 전라도의 쌀이 일본으로 팔려나가는 군산항과 군산 경찰서가 목표입니다.”
“군산이라···. 저번에는 경성이었고 이번에는 군산이라면 거리상으로는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런데, 항구를 공격한다면···. 인원이 부족하지는 않겠습니까?”
“우리만으로 항구 전체를 날릴 수는 없죠. 항구에서 쌀을 선적하는 시설만 박살 낼 생각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선적 시설하고 경찰서를 폭파하려면 폭약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겠군요.”
“예, 이번에는 좀 많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런데, 김 단장은 매번 잠입해서 일제의 시설이나 사람들을 공격만 하고 끝낼 겁니까?”
“예?”
“아니, 여러분들이 국내에 들어가서 삐라라도 좀 뿌리고 그래야 우리 인민들이 독립군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알 것이 아닙니까?”
“아!”
“그래야, 여러분들의 활약에 울분이 풀린 인민들이 자기들도 독립운동을 해보겠다고 나설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뜻이 있는 사람은 어디로 찾아오라는 것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군요.”
“삐라를 많이 뿌릴 필요도 없이 작전 나갈 때마다 근처 학교에 몇백 장씩만 뿌려도 누군가는 삐라를 읽고 소문을 내 줄 겁니다.”
“이번 잠입 작전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제와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일제와 싸워야만 하는지를 알리는 것도 중요했다.
1910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본의 식민지 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불쌍하게도 단 한 번도 자기 민족의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우리가 왜 독립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제가 우리나라를 불법적으로 강탈했는지 알려줘야 했다.
그리고, 일본이 조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너희들의 조국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려줘야만 했다.
“그리고, 김 단장, 혹시 아직도 저우언라이하고 연락을 주고받습니까?”
김원봉이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며칠 전에 다이리가 나를 찾아와서 김원봉 단장을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김 단장도 다이리가 누군지는 아시죠?”
“다이리 그자가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갔습니다?”
“그거야, 김 단장하고 저우언라이하고 사이가 워낙 돈독했으니까 지금도 감시를 하고 있었겠죠.”
“그건 다 옛날이야기입니다.”
“정말로 그냥 옛날이야기일 뿐입니까? 혹시, 최근까지도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고요?”
“내가 저우언라이와 연락을 주고받았으면 이번에 공산당원들과 결별을 했겠습니까?”
“그렇죠? 아무튼 조심하십시오. 나는 김 단장을 믿지만 다이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요.”
“신경 써줘서 고맙습니다.”
* * *
1932년 7월 15일 새벽 2시.
항구 쪽으로 검은색 위장복을 입은 남자 몇 명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단장님, 여기는 경찰들의 경계가 덜해서 다행입니다.”
경성에 비하면 작전을 펼치기가 쉬웠는지 단원 중 한 명이 긴장감이 풀려서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쉿! 작전이 끝날 때까지는 침묵을 유지해라!”
“예.”
무의식중에 한마디를 했다가 주의를 받은 대원들은 침묵을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작전 목표에 폭탄을 하나씩 설치하고 폭탄 주위에 휘발성이 강한 물질들을 가져다 놨다.
군산 항구 주변에 있는 일제와 관련된 여러 시설과 건물에는 한 군데도 빠지지 않고 폭탄이 설치됐다.
“폭탄 설치가 모두 끝났으면 최대한 빨리 근처 학교에 삐라를 뿌리고 돌아가자.”
“예.”
1932년 7월 15일 새벽 4시.
“꽈광!”
“펑! 펑! 펑!”
“꽝!”
“으악!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항구의 미곡 창고에 쌀이 모두 불타고 있어요. 제발, 불을 좀 꺼주세요.”
“꽈 과 광!”
“퍼벙! 펑!”
군산 경찰서, 군산 세관, 조선은행 군산지점, 일본 제18 은행 군산지점 등과 부잔교와 군산항 선적 시설에서는 일제히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잠을 자다 폭발 소리에 깨어난 사람들은 항구 전체를 휘감은 불을 끄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산항에서 한참 떨어진 바다 위에서 불타오르는 군산항을 보면서 의열단 단원들은 오늘도 만세를 소리 높이 외쳤다.
“만세!”
“만세!”
“의열단 만세!”
“모두들 수고들 많았다. 이번에도 다들 고생이 많았다.”
“단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장강 20호’ 위의 의열단 단원들은 불타오르는 군산항을 보면서 축제 분위기였다.
* * *
새벽에 발생한 폭발 사고와 화재로 군산은 아침이 됐어도 여전히 메케한 연기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서가 불타버려서 갈 곳이 없는 경찰들은 범인을 찾겠다고 도시 전체를 들쑤시고 다녔다.
“저기는 모여서 뭐 하는 건가?”
군산 동 소학교 앞을 지나가던 순사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곳곳에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봤다.
“야! 거기 너희들 뭐 하고 있는 거냐?”
순사들의 외침에 아이들은 뭔가를 후다닥 감추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교실로 뛰어 가 버렸다.
“수상한데···. 가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봐.”
“예.”
일본인 순사의 말에 조선인 순사 보조원이 아이들을 쫓아갔다.
“야! 너희들 거기서 뭐 해?. 이 새끼들이 어딜 가는 거야. 거기 가만히 안 있어?”
“이리 와봐. 빨리 안 와?”
“저희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요.”
“그런데, 왜 도망을 가? 너희들 아까 뭐 했어? 뭘 감춘 거야?”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이제,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라서 교실로 들어가는 건데요.”
“거짓말하지 말고 이리 와봐.”
순사 보조원은 아이들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싸가지없는 새끼 봐라. 너 이게 뭐야?”
학교 운동장에 나뒹굴던 삐라를 주어서 읽다가 들킨 아이는 얼굴이 울상이 돼서
“그거 운동장에 나돌아다니길래 뭔가하고 주어서 본 것뿐이에요.”
“뭐? 이 새끼 봐라. 너 이리 와봐.”
순사 보조원이 아이들을 붙잡고 큰소리로 야단을 치는 것을 본 일본인 순사 다가왔다.
“뭔데 그래?”
“저, 이걸 좀 보십시오.”
“뭐야 이건?”
순사 보조원이 건넨 삐라를 읽다 만 일본인 순사는 아이들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짝!”
“네 놈들도 이리 와!”
“짝! 짝!”
“악!”
아이들은 무지막지한 폭행에 소리도 제대로 못 지르고 운동장에 나뒹굴었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들 모두 서로 연행해!”
“예? 저···. 경찰서는 새벽에 불탔는데 어디로 연행합니까?”
“그럼, 학교 교장실로라도 가자.”
경찰서가 폭발해서 사라지는 바람에 소학교의 어린 학생들을 학교 교장실로 끌고 가서 몇 대 더 쥐어박고 훈계해서 보냈다.
그렇지만, 삐라 사건은 군산 동 소학교에서만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군산 시내 모든 소학교와 중학교에는 삐라가 뿌려졌다는 사실이 바로 밝혀졌다.
그리고, 삐라의 내용은 벌써 군산 인근의 옥구와 이리 그리고 전주와 김제까지 조용히 퍼져나간 상태였다.
‘1910년 경술년, 승냥이 강도 같은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불법적으로 훔쳤다.
수천 년 인류 역사,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더러운 협잡질로 우리나라를 빼앗고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있다.
... 중략···.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하는 그 날까지 일제 승냥이 놈들과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싸울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중국으로 오라!
다 같이 손에 손을 맞잡고 힘을 모아서 일제 강도 놈들이 이 땅에서 사라질 때까지 각을 뜨고 멱을 따서 몰아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집에 쌀이 없는가? 왜 없는가? 일제 강도 놈들이 우리의 쌀을 빼앗아가서 없다.
집이 없는가? 왜 집이 없고 농사지을 논이 없는가? 일제 승냥이 놈들이 우리의 땅을 뺏어가서 땅도 논도 없다.
일자리가 없는가? 왜 없는가? 일제 놈들이 우리 땅에 회사를 만들지 못하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가 잘사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단다.
배우고 싶은데 학교가 없는가? 왜 없는가? 일제 겁쟁이 놈들은 우리가 배워서 깨우치는 것이 두려워서 학교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불공평하고 세상이 살기 힘든가? 이것이 누구 때문인가? 바로, 일제 개 놈들 때문이다.
동지들이여! 언제까지 참고 살 것인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인민들이여! 언제까지 일제에 발밑에 엎드려서 구걸만 할 텐가?
이제는 분명히 일어서야 할 때다.
이 세상 만악의 근원은 일제다!
만악의 근원인 일제를 깨부수고 싶은 자들은 모두 중국으로 오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열단장 김원봉.’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알릴 수 있는 삐라까지 뿌려졌으면 더 좋았겠지만, 조소앙이 대한민국 헌법과 정책을 아직까지는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 대한민국에 관한 내용은 아쉽게도 알릴 수 없었다.
* * *
뉴욕의 헤이우드에게서 쓸만한 은행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이제는 진짜 뉴욕으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샤본, 이젠 김순애 씨가 뉴욕으로 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다른 가정 교사를 알아보면 되죠. 그것보다 조지, 정말 세르게이를 미국에 혼자 보낼 거예요?”
이미 어느 정도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눈치를 채고 있던 아내는 정말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실행할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용서를 빌었다.
“샤본, 남들이 보면 자식들까지 이용한다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왜 그런 줄 알아?”
샤본은 대답 대신에 내 눈만 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들한테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원수를 갚을 기회가 있는데 나와 같이 함께 할 거냐고 물어봤었어.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동의했고.”
“조지, 하지만, 그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였잖아요?”
“좋아. 그럼, 이제는 아이들도 어느 정도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까 다시 한번 물어볼게. 만약, 아이들이 나와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면 내 계획을 접을게. 어때?”
샤본은 이번에도 대답 대신에 나를 조금은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샤본, 내가 만약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그 이야기를 한 상황이야. 아이들이 정말로 그것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확인을 해보자고?”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를 보면서 세르게이를 불렀다.
“세르게이! 세르게이!”
“예, 아버지 찾으셨어요?”
“응. 그래, 엄마가 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가보다 그래서 너한테 직접 물어보려고 불렀다.”
세르게이는 샤본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세르게이, 엄마는 니가 미국으로 가서 혼자서 공부하고 대학에 가는 것을 걱정하시는데 너는 어떠냐?”
“엄마, 내가 처음 아버지를 따라서 온 것은 우리 가족 아니 돌아가신 부모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뭘 하는 것은 오로지 제 의지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내는 세르게이를 꼬옥 껴안고 눈물을 보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 형제를 모두 잃고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세르게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느껴졌나 보다.
“너를 어떡하니···. 넌 아직도 한참 커야 하고 앞으로 밝은 미래가 너를 기다릴 텐데···.”
“엄마, 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앞으로 이십 년 안에 저는 복수를 할 수 있데요.”
세르게이의 말이 끝나고 샤본은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하지만, 나도 변명할 거리는 있다.
어린 나이에 삶의 의지를 잃고 죽어가는 아이에게 이렇게라도 희망을 줘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 당장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 다니는 건데···.
“그럼, 미국으로 가서 뭘 공부할 생각이니?”
“기회만 주어진다면 웨스트포인트에 가고 싶어요.”
다시 한번 나를 노려보는 아내의 날카로운 눈빛을 견뎌야만 했다.
“세르게이, 알았다. 엄마가 몇 년 안에 너를 만나러 갈 테니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
“예, 엄마.”
앞으로 웨스트포인트에 보내야 할 아이들이 많은데 아내의 눈빛 공격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벌써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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