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광복군의 시작 1.
41. 광복군의 시작 1.
김구의 질문을 받은 이회영은 알고 있는 모든 독립군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헤아려 봤지만 정말로 장제스의 말처럼 일본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숫자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화민국 국민당군 밑에서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일본군과 싸울 수는 없었다.
“백범, 우리가 아무리 숫자가 적다고 해도 독자적으로 병력을 운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유시에서 당했던 기억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됩니다. 그때도, 지원을 받기 위해서 소련군 밑으로 들어가려다가···.”
이회영 그때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 떠오르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에게 자유시 참변에 관해서 물으면 대답하는 모든 사람이 자유시 참변 때문에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 십 년 이상은 뒤로 후퇴했다고 말할 것이다.
자유시 참변 이후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은 두 번 다시 서로 협력하지 않았고, 신흥무관학교를 통해서 어렵게 모은 독립군 병력이 모두 죽거나 흩어지면서, 자유시 참변 후로는 독립군 숫자가 천명을 넘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당 선생님, 나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나 없습니다.”
사람만 없을까?
이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돈도 없고 무기도 없었다.
독립을 위해서 일본과 싸우고 싶어도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일본과 싸워서 반드시 독립하고 말겠다는 의지 하나뿐이었다.
“백범,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다시 사람들을 모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조지라는 친구가 좌우익 구분하지 말고 한데 모아서 일단 일본을 물리치는 데 힘을 써보라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조지 리가 그랬습니까? 하지만,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당 선생도 그렇습니까?”
“예, 우리의 동지 김좌진을 암살한 것이 누굽니까? 일제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의 동지들이 자유시에서 죽은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고려 공산당 때문입니다. 아닙니까?”
이회영은 암살당한 김좌진과 자유시에서 죽어간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생각나는지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척이나 적대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사람이 너무 없으니까 골수분자들만 아니라면 같이 협력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이회영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그런 협력까지는 거절하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면 그래 봅시다.”
“오다가 들은 정보에 따르면 양세봉이 압록강 너머 남만주에서 활동 중이고, 북만주에는 우리 지청천 장군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지청천 장군은 병력을 모두 이끌고 이곳으로 합류를 하라고 하고 양세봉에게는 협력을 제안하면 되겠군요.”
“나도 그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양세봉의 군대는 중국인 공산주의자들과 뒤섞여 있어서 독립군으로 받아들이기는 좀 어려운 구석이 있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연락해서 대답을 들어봅시다.”
이회영과 김구의 지시를 받은 청년들이 만주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 * *
바중에서 하룻밤을 보낸 김구는 아침 일찍부터 들리는 청년들의 힘찬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신 대한국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 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너무도 익숙한 독립군가가 귀에 들려오자 김구는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백범! 잘 주무셨소?”
언제 일어났는지 이회영은 벌써 옷을 갖춰 입고 청년들과 같이 연병장을 뛰고 있었다.
“아니, 우당 선생 연세도 있는 분이···.”
“나는 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죽지 않고 버텨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몸을 언제라도 단련해야죠.”
이회영은 연병장을 두어 바퀴를 더 뛰다가 김구 옆으로 다가왔다.
“백범도 여기서 지내는 동안에는 아침에 같이 뜁시다. 하루가 아주 상쾌합디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조지 리의 자금으로 만든 겁니까?”
“나보고 그만 은퇴하라고 하길래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돈을 주면서 여기로 보냅디다.”
“그런 것을 보면 좀 맹랑한 친구군요.”
“뭐 그런 면도 있지만,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어서 마음속에 담아두진 않았어요. 그동안 힘들게 고생했으니까 홍콩으로 가서 가족들과 편안하게 지내라고 하는데, 그게 되겠습니까?”
“하긴, 나나 선생이나 독립하는 그 날까지는 죽으면 모를까 쉴 수는 없죠.”
“맞아요. 죽어서 쉰다면 모를까 살아서는 쉴 수가 없지요.”
김구는 어제 도착했을 때는 이회영을 만난다는 생각에 주변을 살피보지 않았지만, 아침에 보니까 건국 대학 곳곳에는 색다른 것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는 어느 군벌 소유의 영역입니까?”
“양썬이라는 군벌한테서 땅을 빌린 겁니다.”
“아! 양썬, 그런데 이제 보니까 무슨 땅굴을 저렇게 많이 파는 겁니까?”
“저것들은 모두 유류 창고와 포탄이나 탄약 창고에요.”
“아니, 저 많은 땅굴이 모두 창고라는 말씀입니까?”
김구의 눈에는 사방에 땅굴이 파여있었다.
“우리 전투기들이 일 년 이상은 기름을 공급받지 못하더라도 싸울 수 있게 연료 창고를 만드는 겁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많은 땅굴을 모두 기름으로 어떻게 가득 채운다는 말씀입니까?”
“조지의 말에 따르면 저것도 부족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되는대로 기름을 모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런 공사를 하고 군인들을 키우고 있어도 양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까?”
“제 놈들을 우리가 지켜 주는 상황인데 무슨 말은 하겠습니까? 저기 보이는 전투기들과 우리가 여기 가져다 놓은 대포가 제 놈들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많아요.”
“아!”
“그리고, 우리가 양썬의 장교들도 같이 훈련시켜고 있어요.”
“예? 혹시, 그러다가 관동군에게 정보가 노출되면 어쩌려고요?”
“노출될 것을 감안하고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소문이 나야만 조선 청년들이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관동군이 우리를 공격하기는 어려워요. 만약, 공격한다면 전투기로 공격하는 것뿐인데 저 산들 위를 보세요.”
이회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산등성이는 곳곳의 땅들이 파여있었다.
“저기는 바로 대공포 진지들입니다. 일본 전투기는 여기 오면 모두 죽습니다.”
“우당 선생, 아직은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그것이 가능합니까?”
“어쩌겠습니까? 일당백이 돼야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들 만능이 돼가고 있습니다.”
* * *
아침을 먹고 연병장에 나온 김구는 건국 대학 학생들이 받고 있는 수업에 관심을 보였다.
교실 안에서는 여러 가지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연병장에서는 군복을 입은 학생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백범, 뭘 그렇게 물끄러미 보고 있습니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뒤쪽을 보자 이회영이 뒷짐을 진 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우당 선생.”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습니까?”
“학생들이 참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까 든든하기도 하고···.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교실 안에서는 중학교 이상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병장에서는 임무 숙달 훈련이라고 미국에서 교육받은 장교들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구는 연병장의 훈련은 이해가 됐지만, 군인을 만드는 학교에서 중학교 수업을 한다는 것은 조금은 의외였다.
“중학교 수업은 왜 하는 겁니까? 군인이 되려면 저럴 시간이 없을 텐데.”
“조종사들과 포병들 그리고 전차병들 때문입니다. 전투기도 대포도 전차도 하다못해 트럭까지도 모두 기계인데 그 작동원리를 모르고 무작정 가르치기만 하면 나중에 죽도 밥도 안되니까 하나하나 가르쳐 나가는 겁니다.”
“그렇군요. 이제 이해됩니다. 전에 중국군들을 보니까 기계를 다루는 병사나 장교들이 무식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겠더군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우당 선생, 이왕 알려주시는 것 연병장에서 하는 훈련도 좀 알려주십시오.”
“저기서 학생들이 하는 훈련은 임무 숙달 훈련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맡은 역할을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겁니다.”
“실제로 총이나 포를 쏘는 것은 아니고요?”
“아! 그게 만약, 내가 포수면 포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고 관측병 역할도 하고 탄약수 역할도 하고 뭐 이런식으로 포병의 모든 것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이회영의 설명을 들은 김구는 지금 학생들이 건국대학에서 교육받으면서 얼마나 정예롭게 탈바꿈해가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키우는 장교와 병사들은 일종의 전문가로 만드는 거지요. 누구 한 명이 다치거나 죽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 그걸 보충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모든 과정이 그렇습니까?”
“예, 그래요. 전투기나 전차 그리고 하다못해 음식을 만드는 조리병까지도 그 분야의 전문가예요.”
“우당 선생, 정말 든든합니다. 이대로 몇 년만 제대로 병사들을 키울 수만 있다면···.”
김구는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예전의 이회영 일가가 만든 신흥무관학교도 그랬었다.
몇 년의 시간만 더 있었다면 진짜로 일본군과 싸워볼 만한 했을 것이다.
“나는 일본 놈들이 여기를 가만히 둘지 그게 걱정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서 조선의 청년들이 찾아오게 만들어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관동군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나는 정말로 걱정이 됩니다.”
그때, 이회영이 김구의 손을 꼬옥 잡고
“백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두 번의 실패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때는 밀정들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노출됐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어떻게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나와 함께 했던 젊은 동지들이 허베이와 산둥 그리고 산시 등 곳곳에서 일본군의 통신을 감청하고 정보를 빼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는 반대로 일본군의 움직임을 훤히 알고 있어요.”
김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회영의 말에 정말로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임시정부와 독립군들은 기껏 해봐야 사람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본군의 모든 통신을 감청하고 있단다.
아마, 일본군은 설마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정찰기들이 500km 밖까지 정찰하고 있어서 일본군 대부대가 움직이면 바로 파악되니까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다면, 이젠 정말, 조선에서 청년들이 이곳을 찾아올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군들부터 합류를 시키고 그렇게 만들어 가야겠지요.”
“아! 예, 그래야죠.”
쓰촨성 바중의 건국대학에서 이회영과 김구가 조선 청년들이 찾아오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을 때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줄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두 번째 국내 잠입 작전을 하고 싶습니다.”
* * *
1932년 만주국이 탄생하고 국제연맹은 일본의 중국 침략을 규탄하면서 만주국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일본 내각이 열강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자 일본의 또라이 군인들이 총리를 또 암살해 버렸다.
이 와중에 장제스는 공산당의 씨를 말리겠다고 4번째 공산당 토벌 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대한의 열혈남아 김원봉은 국내 잠입을 요청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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