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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뤄리리-하둔 재단. (40/225)

40. 뤄리리-하둔 재단.

40. 뤄리리-하둔 재단.

“너희가 만약 장래에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의 용감한 투사가 되어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술 한잔 부어 놓아라···.”라는 유언을 했던 남자.

나 때문에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 의거를 하지 못하게 된 남자.

앞에 앉은 윤봉길을 유심히 살펴봤다.

짙은 눈썹에 심지가 참으로 곧은 사람처럼 보였다.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을 찾는 이유가 뭡니까?”

“고향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가 일왕 암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겁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지금은 김구 선생이 피신 중이라서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셨다니 이야기하기 편하겠군요. 그럼, 앞으로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지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도 윤봉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직접 만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리지를 못했다.

“혹시, 내가 만약 윤 형이 생각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라고 권하면 할 생각이 있습니까?”

“글쎄요. 내가 고향을 떠나면서 맹세한 것이 있어서···.”

“어떤 생각으로 고향을 떠났는지 물으면 실례가 될까요?”

“아닙니다. 뭐 큰 각오를 하고 떠난 것은 아니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뭐가 됐든 이 한 몸 바치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흠···.”

삼십 대인 윤봉길이 훈련해서 군인이나 정보원으로 일할 수 있을까?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보는 윤봉길도 김원봉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처럼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해 보였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군인보다는 다른 일을 찾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윤 형, 혹시, 단재 신채호 선생을 아십니까?”

“예, 이름은 들었습니다.”

“윤 형, 미안한 부탁인데 임시정부를 대신해서 뤼순에 투옥된 그분을 한 번만 만나고 오실 수 있겠습니까?”

“예? 아니. 왜 나한테···.”

“우리는 이미 모두 얼굴이 알려져서 만주로 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임시정부에는 뤼순을 다녀올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예, 임시정부는 윤 형이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이 많고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음···.”

“윤 형이 신채호 선생을 만나고, 연해주로 가서 홍범도 장군을 찾아서 상하이로 모셔오실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왜? 나한테 그런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일단, 뤼순과 연해주를 들려야 하는 일이라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필요했다.

임시정부와 의열단은 모두 일본이 현상금이 내건 상태라서 목숨을 걸지 않으면 절대로 못 간다. 그리고,

“윤 형, 이 일은 일본군을 한 명 죽이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큰일이기 때문에 윤 형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신채호 선생에게 독립하는 그 날까지 제발 몸조리 잘하시라고 용기도 주시고 사식이나 약이라도 좀 가져다주십시오. 그리고, 홍범도 장군은 독립 투쟁을 하시느라 아내도 자식도 모두 잃으셨습니다. 그런 분을 외롭게 혼자 놔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윤봉길은 한목숨 바쳐서 조국의 독립에 이바지할 생각으로 상하이까지 찾아왔는데, 임시정부에서는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일을 시키자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봉길이 고민하는 동안 나도 조선의 독립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 순박한 조선의 청년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했다.

윤봉길에게 피의 길 말고도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내가 워낙 말재주가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 고민이 무색하게도 윤봉길은 내 제안을 들어줬다.

“뤼순과 연해주를 다녀오면 그다음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해줄 겁니까?”

“예, 다녀오시면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윤봉길에게 일을 맡기고, 안전을 위해서 드미트리와 두 명의 칭방 경호원들을 붙여서 뤼순으로 보냈다.

* * *

다시 찾은 뤄리리의 아이리위안은 뤄리리가 새롭게 작성한 유언장 때문에 또 상당히 시끄러웠다.

“어머니,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으십니까?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분명히 저한테 재산을 대부분 물려주려고 하셨습니다.”

뤄리리가 새롭게 만든 유언장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하나도 물려주지 않고, 재단에서 나오는 월급 형태의 보수만 받을 수 있게 만들어 버리자, 하둔이 거둬서 키운 자식들 11명이 떼 거지로 달려와서 항의하고 있었다.

“너는 그럼 우리 부부가 너한테 그동안 아무것도 준 것이 없다는 소리냐?”

큰아들 조지는 운이 좋게도 상하이 최고 부자의 양자로 컸음에도 불구하고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서 성실하게 노력하기보다는 돈만 물 쓰듯이 쓰는 방탕한 생활로 유명했다.

“조지! 너, 니가 먹은 술값 정도는 이제 니가 스스로 해결할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내가 네 술값이나 내주고 있어야 하겠니?”

“그것은 제가 수표책을 가져가지 않아서···.”

“수표책을 가져가지 않았으면서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기녀들에게 보석은 외상으로 사줬니?”

이미 하둔의 재산을 두고 소송전까지 벌였던 모자 사이는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로 갈라선지 이미 오래였다.

“그래도 처음에 아버지께서는 저한테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셨잖습니까? 그럼, 어머니께서도 어느 정도는 저를 챙겨주셔야죠.”

“챙겨주느라고 재단에서 너한테 월급을 주는 거다. 내가 너한테 한꺼번에 재산을 물려주면 그게 남아나겠니?”

뤄리리와 큰아들 조지는 유산을 놔두고 벌써 한 시간이 넘도록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뤄리리 여사님, 재단 일 때문에 보고를 좀 해야 하는데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습니까?”

뤄리리는 반가운 눈빛으로 나를 맞았고 큰아들 조지는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 죽일 기세였다.

그래봤자 상하이 안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내 터럭 하나도 건들 수 없겠지만 말이다.

“어서 와요.”

“흥! 어머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조지, 넌 이제 아이리위안의 출입은 금지하겠다. 더는 이 집을 찾아오지 마라.”

“어머니! 정말 이러실 겁니까?”

“네가 한 행동을 반성할 때까지는 절대로 나를 찾지 마라. 그리고, 너희 형제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더는 이곳에 발도 들이지 마라.”

큰아들 조지와 그의 형제들은 나를 한참 노려보고는 방을 나갔다.

“아직도 좀 복잡하군요?”

“내 남편 하둔이 아이들을 너무 자유롭게 풀어놔서···. 이미, 지난 일을 이야기해봐야 쓸데없는 이야기고,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거예요?”

“중간 보고를 드릴려고 왔습니다.”

“그래요? 내가 조지 씨한테 모든 것을 일임했는데 굳이···.”

“일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어디 들어봅시다.”

뤄리리는 하녀들을 시켜서 최고급 차를 내 앞에 내놨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세금 처리 문제와 재단을 만들기 위해서 했던 일을 보고했다.

“세금을 한꺼번에 내라고 해서 내가 가진 현금과 사순 양행에서 빌려서 납부를 했습니다. 이자는 은행 이자보다는 싸게 했습니다.”

“아! 그랬어요? 조지 씨가 일을 도와주느라 힘들 텐데 이자라도 제대로 받지, 왜 그랬어요?”

“뤄리리 여사하고 제 사이에 이자 몇 푼 더 받아봐야 뭐 하겠습니까?”

나처럼 한 방을 노리는 사람은 상대방이 주는 잔돈 따위는 신경을 쓰면 안 된다.

작은 것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서 상대방이 경계심을 갖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토지와 건물은 임대한 사람들에게 넘기고 있고, 보석과 골동품은 뉴욕에 가져가서 경매를 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 집만 남기고 다른 것들은 모두 정리해주세요. 더는 돈을 달라고 집에 찾아오는 꼴은 못 보겠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자금이 만들어지면 뉴욕의 은행을 하나 인수하려고 합니다. 인수한 은행을 통해서 투자하고 그 이익금으로 상하이에 과학과 의학을 주로 가르치는 대학을 만들 생각입니다.”

“대학은 만들어서 재단의 이름으로 공부를 시키겠다고요?”

“예, 대학에서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평생 뤄리리 여사와 하둔 씨를 칭송하면서 살 겁니다.”

학생들이 평생 칭송을 할 거라는 말에 뤄리리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바로 그런 거예요. 쓸모없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남겨줘 봐야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남는 돈은 기금으로 만들어 뒀다가 상하이에 재난이 닥치면 그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아주 좋아요. 정말, 내 마음에 쏙 드네요.”

내가 보고한 내용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는지 뤄리리는 손뼉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 * *

공짜로 조선의 청년들을 교육할 기회가 생겼는데, 광주로 학생들을 데리러 간 빈센트 신부는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머피를 보냈으니까 곧 연락이 오겠지만,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게 되면서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상하이에서 뤄리리의 부탁으로 뤄리리-하둔 재단을 만들고 있을 때 쓰촨의 바중에서는 김구와 이회영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김구는 그동안 일본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먼지와 때로 얼룩져 있었다.

“아이고! 백범, 이게 무슨 꼴입니까?”

김구를 보자마자 이회영은 김구의 손을 잡으면서 고생한 티가 역력한 김구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나는 괜찮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일본 놈들의 시선을 끌 수 있어서 다행이죠.”

“아니, 뭐하러 이런 고생을 자처합니까?”

“장제스 위원장의 지원 때문입니다. 아무리 도와 달라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으니···.”

김구는 국내와 해외에서 들어오던 독립 후원금이 끊긴 상황에서 어떡하든지 임시정부를 꾸려 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중에 한 방법으로 장제스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중국의 군벌에 비하면 세력이 미미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도박에 가까운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백범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중국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그렇게 잘 싸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짠한 표정으로 김구를 보던 이회영이

“그래서 장제스는 뭐라고 하던가요?”

“조선인 출신들을 한 부대로 만들어 줄 테니까 의용군으로 들어오랍니다.”

“뭐라고요? 이런 개 같은 놈이! 우리가 어찌 뙈놈들 밑에서 싸운단 말이오?”

“장제스 탓만 할 처지도 아닙니다. 우리 조선인들을 모두 모아봐야 1개 단(연대)도 안 되는데 그 병력으로 뭘 할 거냐고 하더군요.”

김구의 말을 들은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자유시로 모이지만 않았어도···.”

“우당 선생, 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렇게 변절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당시의 슬프고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잠시 말을 멈췄던 이회영이 김구를 보면서

“그래서, 백범은 어찌할 생각입니까?”

“일단, 장제스 위원장에게는 임시정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고 결정을 미뤘습니다.”

“결정을 미뤘다고는 하지만 언젠가는 대답을 해줘야 할 것이 아닙니까? 어떡할 생각입니까?”

“우당 선생, 만주와 중국 관내의 조선 청년들을 모두 모으면 얼마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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