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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착하게 살면 뜻하지 않게 하늘이 돕기도 한다. (39/225)

39. 착하게 살면 뜻하지 않게 하늘이 돕기도 한다.

39. 착하게 살면 뜻하지 않게 하늘이 돕기도 한다.

1.28 상하이 사변이 마무리되면서 다시 상하이 도쿄 간 항공 노선의 운항이 재개됐다.

그리고, 나는 변함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제 곧 미국에서 항공 학교를 졸업한 2기생들이 올 텐데. 이번 기회에 하와이 도쿄 노선도 운항해야 할까?’

전투기 조종사들도 계속해서 훈련하지 않으면 조종실력이 줄어든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 조종사들의 실력을 유지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두웨성이 나를 찾았다.

“대형, 부르셨어요?”

“응, 왔냐? 너 요즘 비행기 다시 탄다면서?”

“예, 조종사가 비행기를 타는 것은 당연하죠.”

“야! 그 위험한 건 이제 그만 타고 상하이에서 그냥 나하고 놀자니까?”

“그 말씀 하시려고 저를 부르셨어요?”

“아니, 너 혹시, 쑹메이링하고 중화민국군 항공대를 한번 키워볼 생각 없냐?”

“쑹메이링하고 항공대를 키워보라고요?”

“그래, 이번에 장제스 위원장이 항공 위원회를 만들었다. 항공 위원회에서 항공기 공장과 항공 학교 그리고 항공대까지 만들고 양성할 생각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왜 저예요? 다른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알면서 그러냐? 이놈의 나라는 모두가 도둑놈들이다. 돈이 되겠다 싶으면 그것이 어디에 쓰일 돈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다들 제 뱃속에 처넣느라 정신이 없잖니.”

중국인들의 영원한 고질병, 절대 고쳐지지 않은 국민성인 ‘나만 잘살면 된다.’라는 사고방식이 문제였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북방 민족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어쩔 수 없는 국민성이었다.

아무튼, 중국인들의 부정부패 덕분에 나한테까지 이런 좋은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이미, 독일에서 메서 슈미트와 계약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 일을 맞게 된다면 내 돈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중국 정부의 돈으로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항공 위원회에서 일하게 된다면 내 정체가 일본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위장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은 중국국민당을 지원하는 미국인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는 일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은 상태여서 이것은 좀 위험했다.

“대형,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합니까?”

“아니. 너무 늦지만 말고···. 그래도, 서둘러 결정해서 말해줘라.”

“예, 대형.”

두웨성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샤본이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다가왔다.

“샤본,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니요. 조지, 혹시 이야기할 시간 있어요?”

“응, 당연하지. 당신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겠어?”

“저, 뤄리리 씨에게 문제가 생겼나 봐요.”

“왜? 무슨 문제?”

“이브라힘 하둔 씨가 남긴 재산에 대한 상속세에 문제가 생겼데요.”

내가 작년에 이브라힘 하둔이 죽기 전에 유산에 대한 충고를 몇 가지 해줬는데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 * *

1931년 5월 화창한 봄날. 아이리위안.

“하둔 씨, 전보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요?”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가마에 앉아있는 하둔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조지, 나는 아마 오래는 못 살 것 같네.”

“마음속에 긍정의 기운이 가득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고, 마음속으로 부정의 기운이 가득하면 몸이 알아서 아파진대요.”

“후훗. 그런가? 너희들은 저리 좀 가 있어라.”

하둔은 다시 한번 씁쓸한 웃음을 보이면서 옆에서 보좌하던 하인들을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멀리 쫓아냈다.

“조지, 자네 말대로 유언장을 작성했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해서 가끔 아이리위안을 찾게 되면서 하둔과 몇 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재산권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유언장을 미리 만들라고 조언을 했었다.

“그럼, 뤄리리 여사에게 모두 상속하셨어요?”

“응, 내가 돈을 번 것은 사실 모두 뤄리리 덕분이니까.”

“그럼, 됐잖아요?”

“막상, 뤄리리가 상속할 수 있게 유언장을 작성했지만 나는 아직도 내 큰아들 조지에게 재산을 남겨주고 싶거든.”

이브라힘 하둔은 이야기를 몇 번 해본 결과 정말 고지식하고 앞뒤가 꽉 막힌 노인이었다.

그래서, 괜한 조언을 하다가 서로 관계까지 나빠질까 봐서 유언장을 만들라고까지만 조언하고 그다음부터는 전혀 참견하지 않았었다.

* * *

1932년 5월의 어느 봄날. 아이리위안.

작년 이맘때 아이들과 징안스를 놀러 갔다가 처음 들린 아이리위안의 자태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지만, 우리를 반겨주던 집주인 하둔은 이 세상에 없었다.

“뤄리리 여사, 저를 보자고 하셨다면서요?”

“예, 조지 씨, 어서 와요.”

뤄리리는 하둔이 큰아들인 조지에게 재산 대부분을 물려주려고 할 때, 내가 유언장을 미리 만들라고 해서 뤄리리가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래서, 뤄리리는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조지 씨가 도와줘서 재산을 지킬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내가 참 많이 힘들었어요.”

“원래 부자가 죽으면 사돈에 팔촌까지 유산을 나눠 받겠다고 찾아오고, 막 소송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휴, 말도 마요. 이번에 사람이란 짐승들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게 됐어요.”

뤄리리는 이번에 제대로 마음고생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몇 번씩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동안 못 본 사이에 부쩍 늙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어요?”

“조지 씨가 도와준 덕분에 재산을 모두 상속은 했지만, 상속세가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 나와버렸네요.”

“상속세가요? 도대체 얼마나 나왔는데요?”

“우리 집 재산의 십 분의 일이요.”

하둔의 상속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던 나였지만, 영국 영사관에서는 내가 알던 금액보다 더 엄청난 상속세를 징수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하둔의 재산을 현대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3조 원이 조금 넘는다.

그리고, 세금이 그 재산의 십 분의 일이라면 무려 3,000억 원이다.

“엄청나군요?”

“엄청난 것도 엄청난 거지만, 이것도 깎아준 거니까 현금으로 바로 내라고 하네요.”

“예? 현금으로 바로요?”

“그래요. 조지 씨.”

“여사님에게 그런 현금이 있으세요?”

“없으니까 조지 씨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서 한번 보자고 한 거예요.”

“뤄리리 여사, 나도 현금은 그 정도까지는 없는데···.”

“조지 씨한테 빌려달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영국계 은행에서 돈을 빌려준다고는 하는데 이게 또 이자가 너무 비싸요.”

아! 영국 영사관이 영국계 은행에 대출 서비스까지 알선해줘서 양쪽에서 돈을 더 뜯어냈다고 했었지.

어떡하든지 돈을 뜯어낼 수 있는 만큼 뜯어내는 영국 놈들도 정말 대단한 양아치들이었다.

재판 한번 해주고 한방에 수천억 원을 뽑아가다니···.

“그래서요?”

“조지 씨가 다른 은행을 좀 알아봐 줘요.”

“내가 알아본다고 해도 다들 이자는 비슷할 텐데요?”

“아니에요. 나는 이번 기회에 재산을 전부 정리할 생각이에요. 만약, 이자를 깎아준다면 내 재산을 모두 정리해서 싼 이자로 대출해준 은행에 전부 입금할 생각이에요.”

“뤄리리 여사! 정말로 모든 재산을 정리하시려고요?”

“그래요. 이번에 사람들한테 너무 크게 실망도 했고, 조지 씨의 충고처럼 나는 하둔과 내 이름이 영원히 남는 재단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요.”

뤄리리에게 죽으면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이 있냐고, 차라리 영원히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록펠러처럼 재단을 만들라고 했더니, 정말로 재단을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 일인데. 왜 굳이 바쁜 나한테···.”

“이번에 다른 사람들의 속을 모두 봤거든요. 내가 아들딸이라고 생각하고 키운 아이들. 그리고 나를 황후처럼 떠받들던 사람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니까 모두가 내가 가진 돈의 노예였을 뿐이었어요.”

하둔의 유산 상속 소송에는 입양한 아이들 22명과 저 멀리 고향 이라크에서 살던 친척들 그리고 기타 등등 무려 50여 명의 사람이 소송전을 벌였고 재산 다툼을 벌였다.

“뤄리리 여사, 내가 도와 드리고는 싶지만 나도 시간이 별로 없어서···.”

“조지 씨! 이것은 내가 가진 모든 재산 목록이에요. 조지 씨, 제발 부탁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은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나와 내 남편 하둔의 이름이 이곳 상하이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 만들어줘요.”

이건 내가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전개였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뜻밖의 일거리였다.

내가 계획한 일을 해나가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하지만, 이건 너무 엄청난 돈이었다.

그것도 내 재산의 열 배가 넘어가는 큰돈이었다.

내가 재단 일을 도와준다면 록펠러재단보다는 못해도 어마어마한 돈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뤄리리 여사, 그럼, 부족하지만 내가 뤄리리-하둔 재단을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사실 어마어마한 돈 때문에 내가 해보겠다고 말은 했지만 왜 하필 나였는지가 여전히 궁금했다.

“뤄리리 여사, 그런데 왜 나였습니까?”

“우리 집안을 드나든 사람 중에 조지 씨의 가족만이 유일하게 재산이며 돈이며 보석이며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리고, 조지 당신은 나한테 모든 재산이 상속되도록 일 처리까지 도와줬잖아요? 그래서, 조지 씨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사람 너무 믿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닌데···. 뭐 알겠습니다. 그런데, 뤄리리 여사는 재단에서 무슨 일을 했으면 좋을지 생각해 놓은 것이 있습니까? 재단에서 구호 활동을 할까요? 아니면, 인재 양성을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뤄리리는 잠깐 고민하더니

“구호가 됐든지 인재 양성이 됐든지 뭐든 좋아요. 나는 나와 하둔의 이름이 영원히 남을 수만 있으면 좋아요.”

좋다. 

뤄리리와 하둔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생각이다.

조선 청년들을 상하이로 불러서 일제가 막고 있는 과학과 기술을 교육할 것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시켜서 노벨상을 받아보자! 

그까짓 것 우리 한국인도 한번 타보자!

* * *

뤄리리에게 뜻하지 않는 숙제를 받게 되면서 쑹메이링과 항공 위원회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은 자연스럽게 물 건너가 버렸다.

바로 두웨성에게 연락해서 쑹메이링과는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연락을 해줬다.

그리고, 뉴욕의 헤이우드에게 연락해서 도산 직전의 쓸만한 은행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전보를 보냈다. 

그리고, 뤄리리가 임대한 토지와 건물의 임차인들을 한 명씩 불러서 임대한 토지와 건물을 매입할 생각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토지와 건물을 팔기 시작했다.

비행이 없는 날은 뤄리리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백정기가 나를 찾아왔다.

“대장님, 임시정부를 찾아온 청년들은 다들 일제의 밀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의심을 살만한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던가요?”

“예, 다들 조선의 독립을 꿈꾸는 청년들이었습니다.”

“그중에 윤봉길이라는 청년도 있었죠?”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 어쩌다 알게 됐습니다. 그 청년을 만나보고 싶은데 좀 불러 주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쓰촨에서 이회영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백정기는 나한테 이회영의 편지를 전해주고 윤봉길을 데리러 갔다.

‘독립을 위해서 오늘도 힘쓰고 있을 동지에게 내가 하나 부탁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네.

내가 계속 가슴에 밟히는 사람이 있는데, 동지가 혹시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면 안 되겠는가?

내 마음속의 동지인 단재가 지금 뤼순에서 매일 고문받고 온갖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하네···.’

이회영 선생의 편지는 동지인 신채호의 투옥 생활이 너무 안타까워서 구구절절 애통해하면서 도와달라는 말씀이셨다.

내가 단재 신채호 선생을 구해 낼 방법이 있었다면 이미 구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뤼순 감옥에서 신채호 선생을 탈옥시킬 방법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신채호 선생을 생각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독립 운동사에 길이 남을 사람들인 홍범도와 지청천도 생각났다.

“대장님, 이 청년이 윤봉길입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윤봉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소. 임시로 임시정부의 일을 보고 있는 조지 리입니다.”

“아!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윤봉길은 임시정부에서 사람이 나와서 만나자고 하는 줄 알았는데, 삼십 대 초반의 이름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내가 맞아주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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