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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세 번째 타겟은? (35/225)

35. 세 번째 타겟은?

35. 세 번째 타겟은?

내 계획은 뭔가 거창하지는 않지만, 지방에 사는 조선 인민들에게 독립을 위한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군청이 폭파되고 경찰서가 공격받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엄청난 영향을 준다.

멀리 있는 도쿄에서 일왕이 죽을 뻔했다는 소식보다 당장, 내 눈앞에서 일본과 싸우고 있는 독립군을 본다면, 조선 인민들의 사라져가던 저항 정신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와 의열단이 하겠소.”

꽤나 긴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원봉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작전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을 했다.

“만약, 의열단이 내가 생각하는 작전에 참여하려면 따로 특수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해안침투와 산악 행군과 같은 훈련을 받지 않으면 체력이 버티지를 못할 겁니다.”

“우리 의열단은 이미 준비가 된 사람들이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가슴 아픈 소리지만 의열단은 내가 알고 있는 특수요원들과 비교하면 능력 면에서 차이가 크게 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뭉치기는 했지만, 사격 연습에 들어가는 총알 값도 부족했고 총을 쏴볼 장소도 못 구해서 단원들의 능력이 조금 부족했다.

“단원들이 총은 좀 쏴 보셨습니까? 아니면, 혹시 단원들이 폭탄을 만들 줄은 아십니까?”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김원봉 선생! 동지들의 목숨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선생도 그렇지만 의열단 동지들도 나중에 해방된 조국을 직접 두 발로 밟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동지들에게 죽음으로써 임무를 완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동지’ 같은 뜻은 가진 사람.

같은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서 뭉친 사람.

이런 동지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짓은 보기 싫었다.

“작전 도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희생되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희생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까지 죽여야 하겠습니까? 선생과 의열단이 나와 작전을 같이하고 싶다면 반드시 훈련을 받으십시오.”

“음···.”

김원봉은 대답을 망설이는 것 같더니

“내가 예전에 진짜 죽이고 싶은 놈들이 있었소. 그런데 죽일 수가 없었소.”

김원봉은 나와 이야기를 시작한 후에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들이 누굽니까?”

“조선 왕족인 이준용과 매국노 이완용이요.”

“그 둘은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닙니까?”

“맞소이다. 그런, 친일파 놈들이 편안하게 죽는 꼴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오. 그래서, 다른 놈들이 죽기 전에 죽이려고 내가 서두르는 겁니다.”

김원봉의 마음은 백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바늘귀가 아닌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이 년 사이에 그런 놈들은 죽지는 않을 겁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을 거요. 조선에서 제일로 잘 처먹고 잘사는 놈들인데 쉽게 뒈지지는 않겠죠. 하지만, 나는 서두르고 싶소.”

“누굴 대상으로 생각하길래 그럽니까?”

“이번에는 중추원에서 작위를 받은 놈들을 암살대상으로 생각하는데 가능하겠소?”

“총으로 할겁니까? 아니면, 폭탄으로 할겁니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왕 하는 것 화끈하게 폭탄을 추천해 드립니다.”

“하하. 좋습니다. 이번에는 화끈하게 폭탄으로 합시다.”

“그러니까 폭탄을 쓸 거면 따로 훈련을 받으시지요.”

김원봉은 의열단에 숨어 있던 밀정을 정리하고 공산주의자들과도 결별하고 상하이 외곽에 마련된 비밀 훈련장으로 갔다.

* * *

“머피! 머피!”

김원봉과 협의를 끝낸 다음 날, 조선으로 들어가 있는 빈센트 신부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 너무 걱정됐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예, 사장님.”

“빈센트 신부가 너무 연락이 안 되네요. 아무래도 머피가 좀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반년이죠?”

“그래요. 반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안 되니까 너무 걱정돼서 안 되겠어요.”

“그럼, 사장님, 제가 전라도 광주라는 곳을 찾아가 볼까요?”

“일단은 켈리한테 먼저 들려야 해요. 켈리한테 내가 시킬 일이 있어요.”

김원봉과 협의한 대로 고무신 고장에서 일하는 청년 중에서 몇 명을 골라서 미리 지방에 자리를 잡아 놓을 생각이다.

“켈리한테 가면 내가 전에 부탁했던 청년들을 퇴사시키고 함경도에 세 번째 공장을 만들라고 해요.”

“함경도에 세 번째 공장을 만들라고요? 사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실제로 공장을 지을 생각은 없어요. 단지, 땅 투기를 하려는 것뿐이에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선 총독부가 함경도에 길회선 종단항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곳의 위치가 어딘지 대충 알 것 같아서요.”

“아! 그 종단항 때문에 요즘 상하이에 돈 좀 있다는 사람들도 난리던데 사장님은 어떻게 위치를 아신 겁니까?”

“왜요? 머피 씨도 땅 좀 사게요?”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할 때 내 재산을 가지고 할 생각은 없었다.

내 재산이 아까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 적어서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의 돈을 가져다 쓰고 미국의 물자를 가져다 쓸 생각을 했었다.

“함경도 옹기의 신안면과 나진면 그리고 그 근방 땅들을 살 수 있는 대로 전부 사라고 하세요.”

“사장님, 정말로 종단항이 거기에 들어섭니까?”

“쉿! 샤본에게도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머피 씨도 켈리하고 둘만 알고 있어야 해요.”

내가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고 말조심을 부탁하자, 머피는 놀라서 찔끔하면서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렸다.

“예, 쉿!”

“최대한 세 번째 공장 건설을 서두르라고 하세요. 이미, 좋은 땅들은 남들이 차지했겠지만 그래도 남은 땅이 조금은 있을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인천에서 일을 마치면 바로 광주로 가보세요? 알았죠?”

“예.”

* * *

양쯔강 선박회사의 ‘장강 20호’가 인천항 근처 사승봉도 앞에 닻을 내렸다.

“역시 돈이 좋군요. 국내로 일제의 눈을 피해서 잠입하려면 교통수단을 알아보느라 며칠씩이나 걸렸는데, 이건 뭐 작전 날짜가 정해지니까 바로 배에 태워서 데려다주다니···.”

의열단 대원의 행복한 푸념에 김원봉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왜? 그래서, 싫은가?”

“아닙니다. 단장님. 그동안 국내로 잠입하다가 일제에 들켜서 죽어간 동지들이 생각나서요.”

“나도 먼저 죽어간 동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너희들만큼이라도 지키고 싶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둘의 곁으로 배의 선장이 다가왔다.

“조금 쉬었다가 새벽 3시부터 움직이십시오. 구명정을 타고 상륙지점에 가면 ‘조선 나이키’사의 트럭이 여러분들을 기다릴 겁니다.”

“상륙지점에도 접선할 사람은 나와 있겠죠?”

“예,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선장은 조타실로 돌아갔고 남은 의열단 대원들은 김원봉을 쳐다봤다.

“다들 선장의 말처럼 조금 쉬었다가 움직이자.”

“대장님은 이번 작전에서 빠지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 이완용은 죽이지 못했어도 민영휘와 윤덕영은 내가 직접 죽이고 싶다.”

“대장님은 얼굴이 너무 알려져서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대낮에 종로 거리를 활보할 것도 아니고 괜찮다.”

의열단 단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원봉을 쳐다봤지만, 김원봉은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 * *

새벽 6시, 인천의 ‘조선 나이키’ 고무신 공장에서는 새벽에 고무신을 싣기 위해서 들어왔던 트럭이 경성으로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트럭은 경성 시내 몇 곳을 잠시 들렸다가 주문받은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서 남대문 시장을 향해서 달려갔다.

시간이 흘러서 밤이 깊어지자 낯에 상자를 몇 개 들고 내렸던 의열단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열단원들은 조용히 담을 넘어서 도면을 통해서 수없이 보고 외웠던 친일파들의 집안에 상자를 놔두고 시한장치를 설치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폭탄을 설치한 의열단원들은 다시 담을 넘어서 조용히 사라졌다.

“민병석과 이윤용 그리고 최린의 집에 폭탄은 잘 설치했지?”

남들의 눈에 띌까 봐서 얼굴까지 변장한 김원봉은 단원들에게 작전을 확실하게 마쳤는지 확인을 했다.

“예, 단장님.”

“정확한 시간에 터지게 시간은 잘 맞춰 놨고?”

“예, 그것도 못 하면 안 되죠. 그동안 훈련을 얼마나 했는데요.”

의열단원들이 대답하자 김원봉은 아직도 뭔가 걱정되는 것이 있는지

“이 개놈 자식들은 집들이 하도 넓어서 폭탄이 터져도 제대로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면을 놔두고 최대한 피해를 크게 만들 수 있게 해놨으니까 신이 도와주신다면 모두 죽일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제발 모두 뒈졌으면 좋겠다. 진짜 이럴 때는 신이라도 도와줘야 하는데”

“단장님, 이미 우리 손은 떠났습니다. 그냥, 마음 편히 가지시고 신께 개자식들을 모두 죽여달라고 빌어보죠?”

김원봉은 단원들의 농담에 대꾸하지 않고 단원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폭탄이 터지면 비상이 걸려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너무 풀어지지는 마라.”

“예, 단장님.”

김원봉은 계속해서 손목시계만 쳐다봤다.

새벽 5시 50분, 민영휘, 윤덕영, 민병석, 이윤용. 최린의 집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펑!”

“꽈광!”

“꽈 과 과 광!”

“퍼벙!”

연달아 들리는 폭음은 경성 시내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그리고, 근처의 집이나 상점의 유리창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단장님! 성공했습니다.”

“쉿!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경계를 철저히 하고 트럭이 올 때까지 침묵을 유지해라.”

김원봉과 의열단원들은 ‘조선 나이키’ 사원용 사택에서 일본 경찰과 일본군 헌병들의 눈을 피해서 조용히 숨죽이고 숨어 있었다.

아침 6시, 경성의 폭발 사건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선 나이키’의 트럭은 남대문 시장에 고무신을 배달하고 사원용 사택에 들러서 사람 몇 명을 태우고 인천으로 돌아갔다.

일본에 충성하는 중추원 고문과 참의 들의 집에 폭탄이 터지고 나서 일본 경찰과 일본군 헌병대는 경성의 출입을 통제하고 검문 검색을 강화했지만 다른 날보다 빨리 움직였던 ‘조선 나이키’의 트럭은 놓치고 말았다.

다시 밤이 되기를 기다리던 김원봉과 의열단원들은 국내 잠입을 위해서 타고 왔던 ‘장강 20호’에 오르자마자 목청껏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만세!”

“만세!”

“단장님! 드디어,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에게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게 했습니다.”

“단장님! 신문에 모두 죽지는 않고 중태라고 하던데 혹시 살아날까요?”

고무신 공장에서 봤던 신문의 호외에는 폭탄의 폭발 속에서도 죽지 않고 중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신이 계신다면 모두 죽여 주시겠지.”

다행히도 이번만큼은 신이 계셨다.

그 어마어마한 폭발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던 다섯 명의 친일파들은 며칠 사이에 모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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