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는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34. 나는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제1차 상하이 사변 이후로 뭐가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일본의 밀정과 정보원의 눈을 더는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와 두웨성은 전쟁 기간 내내‘칭방’을 동원해서 첩자로 의심됐던 사람들을 모두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상하이 주재 일본 영사관과 공사관 그리고 해군 육전대 사령부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난징루의 번화가 한가운데를 김원봉이 활보하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깔끔하게 일본인 첩자와 밀정들이 정리됐는지 알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구 선생이 피신 중이라서 내가 대신 나왔습니다. 미국 사는 동포 조지 리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소. 나는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난징루에 있는 고급 중국요리 음식점 ‘도원’에서 김원봉을 만났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는데 어떻게 당신이 김구 선생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겁니까?”
“이야기가 좀 깁니다. 일단, 식전일 텐데 뭐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죠?”
김원봉은 내 정체에 의구심을 보였지만 임시정부의 연락을 받고 나온 사람을 계속해서 의심할 수는 없었는지 나를 따라서 음식을 주문했다.
식사를 어느 정도 한 김원봉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배도 이제 어느 정도 찬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해주시오.”
김원봉에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김구 선생은 당분간 일본의 시선을 끌어주는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럼, 한인애국단은 일제에 대한 응징을 이제는 그만둔 겁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한인애국단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본 내의 적들을 죽여 나갈 겁니다.”
“그래요? 김구 선생도 안 계시는데 누가요?”
김원봉이 보기에는 김구가 잠적 중인 상황에서 누가 나서서 일본을 공격하겠다는 건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하고 몇몇 동지들이 계속할 생각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동지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거요?”
“선생도 잘 아는 사람들이지만, 동지들의 이름은 그냥 비밀로 합시다.”
동지들의 이름을 묻지 않는 것은 일본 밀정들에게 하도 당하다 보니까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아! 미안하오. 내가 아는 무장 투쟁론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서···.”
“예, 맞습니다. 내 조직에도 선생이 아는 사람들이 여럿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음···.”
“나는 전부터 선생과 의열단을 존경했던 사람입니다. 평소에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니까 갑자기 추억을 한번 만들고 싶어지는데 괜찮으시다면 술 한잔하겠습니까?”
김원봉은 대답 대신 내 눈을 쳐다봤다.
김원봉은 눈빛은 내가 술자리를 제의한 이유를 탐색하는 눈빛처럼 보였다.
그리고, 남자 중의 남자 김원봉은 나와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상하이는 두웨성의 영토다.
300만 명의 상하이 사람들은 모두가 두웨성의 식구들이다.
두웨성과 관련이 없는 곳이 단 한 곳도 없고, 두웨성의 사람이 없는 곳이 단 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두웨성의 동생인 나는 상하이에서만큼은 어디를 가도 안전했다.
나와 김원봉은 휘황찬란한 상하이의 밤거리를 한참 걸었다.
“이곳은 어디요?”
“입구에서 보신 것처럼 ‘조선 나이키’와 ‘태평양 항공사’의 사무실입니다. 둘 다 내 회사죠.”
내가 김원봉을 데려간 곳은 일본식 요정도 영국식 신사클럽도 아닌 내 회사의 사무실이었다.
김원봉과의 추억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맹세를 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다.
“김원봉 선생, 잠깐 이리 와보십시오. 저기 보이는 황푸강 강변의 와이탄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나는 장식장에서 꺼낸 술을 김원봉에게 한잔 따라주고 그를 데리고 창문 앞에 섰다.
내가 김원봉과 창밖을 보는 사이에 내 곁을 지키고 있는 드미트리가 나와 김원봉의 술자리를 위해서 몇 가지 음식을 가져다 놨다.
“나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과 타민족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추악한 제국주의가 보입니다.”
이 한마디로 김원봉이라는 사람의 성향과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창밖을 보다가 다시 소파로 걸어와서 앉았다.
“선생이 보기에는 우리가 제국주의 일본을 몰아내고 독립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때까지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김원봉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안돼도 되게 만들어야죠.”
김원봉은 단단히 화가 난 말투로 나한테 따졌다.
“오늘 처음 보는데 개소리를 한다고 너무 화내지는 마십시오. 나는 김원봉 선생의 생각을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딜 가서도 절대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시오. 그런 말은 동포들의 기를 죽이는 소리요.”
“잘 알겠습니다. 이리로 와서 한잔하면서 하다만 이야기를 마저 해보죠.”
김원봉은 들고 있던 양주잔을 한 번에 비워버리고는 내 앞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김원봉 선생은 김구 선생은 왜 찾으셨습니까?”
다시 말없이 내 눈만 보던 김원봉이
“나도 일왕을 죽이고 싶소.”
“아! 죄송합니다. 이번에 실패하는 바람에 당분간은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선생과 선생의 조직은 일본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잖습니까?”
암살 위협을 겪은 히로히토는 이제는 쉽게 일본 국민 앞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김원봉과 의열단은 이미 일본에 노출된 상태라서 일본 입국 자체도 쉽지 않았다.
“우리끼리는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소. 그래서, 김구 선생을 찾아온 거요. 방법이 정말로 없겠소?”
내가 보기에 김원봉은 지금 많이 조급해진 상태였다.
사람이 조급해지면 그만큼 빨리 지치고 실수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이 계속해서 영토를 넓혀 나가고 발전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져만 갔을 것이다.
다들, 이러다가 영원히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1930년대 말부터는 수많은 변절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 참, 그리고, 선생의 조직에도 밀정이 숨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동지들 사이에 밀정이 있다니?”
김구도 김원봉도 곁에 일제가 보낸 밀정이 숨어 있었다.
얼마나 위장을 잘했으면 나중에 독립유공자까지 된 놈들도 있었다.
“나도 김원봉 선생을 도와서 일본으로 의열단을 보내주고 싶지만, 아마 도착하면 바로 체포될 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거요?”
“김구 선생 곁에는 두 명이 숨어 있더군요. 그래서, 그 두 놈은 바로 지옥으로 보내줬습니다.”
김원봉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동지들은 절대로 배신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짚이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설마···. 설마, 그들이···.”
“선생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마 맞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의심이 가는 사람들은 확실하게 정리하십시오.”
김구에게 밀정이 붙었다면 자신 역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자 표정이 상당히 심각해졌다.
“그리고, 함께 하는 공산주의자들과도 결별하십시오.”
“그건 아닌 것 같소. 독립을 위해서 일제와 싸우는데 공산주의자면 어떻고 무정부주의자면 어떻소?”
“선생, 첩자를 일본에서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뭐라고요? 그럼, 누가 나한테 또 첩자를 붙였다는 소리요?”
“중국공산당”
공산주의자들은 김원봉의 이름값을 이용해서 김원봉을 찾아오는 청년들을 공산주의자로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중일전쟁 기간에 김원봉의 뒤통수를 때리고 중국공산당의 조선의용군에 참여했다.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다른 민족들에게 온갖 사탕발림을 하고 있습니다.”
“음···.”
“김원봉 선생이 내가 말한 데로 밀정들을 처리하고 공산주의자들과 결별을 한다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김원봉은 잔을 들고 술을 한잔 마시고 빈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정말로 일왕을 죽이기는 힘들겠소?”
“내 생각에는 앞으로는 힘들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국내 잠입은 가능하겠소?”
“국내 잠입은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단, 잠입할 때마다 여러분의 목숨을 거셔야 할 겁니다.”
“목숨 따위야 항상 걸고 사는 우리요.”
너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방법으로 우리를 국내로 보내줄 겁니까?”
“‘칭방’ 두웨성의 선박회사에서 배를 한 척 임대할 생각입니다.”
“아···. 그럼, 국내 잠입은 확실하겠군요.”
“국내 잠입은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러분들이 국내에 잠입해서 무엇을 할건지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조선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를 죽일 생각이오.”
조선 총독을 죽이면 조선에 사는 인민들이 통쾌하고 시원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당분간은 바뀌는 것은 없다.
왜냐면, 아직도 1945년은 멀리에 있었다.
“김원봉 선생, 그러지 마십시오. 그나마 우가키 그놈은 나은 놈입니다. 만약, 우가키가 죽으면 일본은 잔뜩 독이 올라서 더 악독한 놈을 총독으로 보낼 겁니다.”
“일본에서 보낸 총독 놈이 좋은 놈 나쁜 놈이 어딨소? 그놈들은 우리 조선인에게는 그저 적일 뿐이오. 안 그렇소?”
“일본 총독이 좋은 놈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였다면 다른 방법을 택했을 겁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죽이다 보면 언젠가는 끝이 날것 아니요? 굳이, 딴 방법이 필요하겠소?”
필요하다.
우리의 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길고 먼 전쟁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지쳐서 아니 죽어서 사라질 수는 없지 않은가?
“경성이 아니라 지방의 적들을 죽여나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나는 인원이 좀 되면 앞으로는 지방의 친일파부터 정리할 생각이었습니다.”
“좀 전부터 지방의 적부터 없애 나가자고 하는데 이유가 뭐요?”
“경성에 사는 사람들은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죠?”
“아마, 그럴 것이요.”
“그럼, 반대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정보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지방에 사는 분들에게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으니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음···.”
“지방의 적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일제의 행정 부담은 훨씬 더 증가할 것이고, 여러분들의 안전도 보장되는 결과가 나올 겁니다.”
“혹시, 준비해 놓은 것은 있습니까?”
김원봉이 내 제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 나이키 고무신 공장의 직원은 대부분이 지방 출신들입니다.”
“그런데요?”
“내년부터 지방 출신 직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내 조직의 조직원이 돼서 내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지방에서 대기를 할 겁니다.”
“총독부나 경찰서에서 눈치채지 못할 것 같소?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감시가 들어가는데.”
“1,000명이 넘어가는 직원 중에 고르고 골라서 겨우 몇 명입니다. 의지가 강하고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들만 고르고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과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요?”
“내 계획은 조직원들을 바다를 건너서 침투시켜서 지방의 행정 관서와 경찰서 그리고 친일파를 공격하고 지방 조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복귀하는 계획입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김원봉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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