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독일에는 무기 공장을 미국에는 은행을···.
31. 독일에는 무기 공장을 미국에는 은행을···.
쑹메이링은 나와 대화를 더 하고 싶었는지 차와 다과를 내왔다.
나도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에 정원을 산책하면서 쑹메이링과 장제스가 확실하게 넘어올 수 있게 떡밥을 가다듬었다.
원래부터 부자였던 쑹메이링은 뭣하나 최고급이 아닌 것이 없었다.
정원을 장식하는 수목과 조각까지도 하나같이 예술품이었다.
“조지야,”
“예, 대형”
“국민당 정부와 장제스 위원장에게 도움 될 수 있게 많이 도와줘라.”
“예, 대형. 알겠습니다.”
국민당의 고문을 맡은 두웨성은 국민당만이 중국을 제대로 통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국민당 정권을 위협하는 공산당과 일본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정권을 확고한 토대 위에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쑹메이링의 얼굴은 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빨간색 비단 치파오를 입은 그녀의 얼굴에서는 잔잔한 미소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쑹메이링은 천박하지 않고 교양이 넘치는 미소로 상대를 참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조지 씨의 의견은 정말 좋은 의견인 것 같더군요. 나중에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예, 감사합니다. 그럼, 국민당 정부의 힘을 단번에 상승시킬 방법을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래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쑹 위원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향후 10년간 아무런 일이 없다면 중화민국은 일본을 넘어설 겁니다. 그렇죠?”
내 말에 쑹메이링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우리 국민당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외국계 자본에 안정감을 느끼게 만들어서 중국에 대한 많은 투자를 끌어들였는데 그것을 일본이 망쳤어요.”
“국민당 정부 아래서 중국이 발전하면 안 되기 때문에 공산당과 일본이 협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생길 겁니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지금 중국에 들어와 있는 군사 고문단보다 더 강화된 군사 고문단의 파견을 독일에 요청해 보십시오.”
“독일에 군사 고문단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하라고요?”
“예.”
“독일이 아무런 이유도 없고 이익도 없는데 그렇게 할까요?”
“국민당군을 직접 지휘할 수 있게 지휘권을 일부 넘기겠다고 하시면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국민당군의 지휘권을 넘긴다고요?”
현재 독일군의 상황을 잘 모르는 쑹메이링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독일군 장교들에게 지휘권을 넘겨서 중국에서 전투 경험을 쌓으라고 하십시오.”
“아니, 그러니까 그 말이 무슨 소리냐고요?”
“독일군은 영국과 프랑스의 감시 때문에 병력을 늘릴 수도 없고 장비를 보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곳 중국에서 국민당군을 지휘하면서 일본군과 싸우라고 하시라고요!”
“아···! 하지만, 우리한테는 아무런 이익도 없잖아요?”
독일군의 지휘를 받으면서 만주를 차지한 일본군을 막을 수 있으면서 아무런 이익도 없단다.
정말, 뻔뻔하다.
중국군의 허접한 장교들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제대로 된 독일 장교들과 전투를 하다보면 실력도 엄청나게 늘어날 텐데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신, 중국에서 독일군 장비를 생산하고 독일식 장교와 하사관 교육을 해달라고 하십시오.”
“조지 씨, 의견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사실, 우리는 군사력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해요.”
“자금은 미국에서 투자를 받으십시오. 모든 외국계 은행의 영업을 전면적으로 개방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 중국 경제는 외국 자본에 완전히 종속되는데 개방을 하라고요?”
“중국인 인부는 미국인 인부의 10분 1의 인건비를 받습니다. 은행 영업도 개방하고 공장을 지을 수 있게 지원도 하시면 미국 자본은 중국으로 몰려들 겁니다.”
공산당 치하의 중국은 이런 방식으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연방제 문제보다 더 큰 문제였다.
잘못하면 중국의 모든 경제 활동이 외국에 종속될 수도 있었다.
“쑹메이링 위원님, 인민들이 돈을 벌어야만 세금도 낼 수 있습니다. 인민들이 돈을 벌어야 상업도 활성화가 됩니다. 인민들이 돈을 벌어야 공산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나는 금융 시장을 개방해서 공장을 만들어나가면 생기는 장점을 하나씩 열거하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만 하세요. 나도 그런 장점이 있다는 것은 잘 알아요.”
“장점을 아신다면 하셔야죠?”
“장점이 큰 만큼 단점도 크니까 문제죠.”
“쑹메이링 위원님, 외국계 금융 자본이 이상한 짓을 하면 철수를 명령하면 됩니다. 외국계 자본이 떠나도 공장은 중국에 남습니다.”
“아! 그렇군요. 음···. 그렇지만, 그런 짓을 하면 중국의 대외적인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쑹 위원님, 내 생각에 일본은 몇 년 안에 본격적으로 중국을 공격합니다. 그때가 되면 국민당 정부가 외국계 자본을 철수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중국을 떠날 겁니다.”
“그럼, 외국을 속이자는 말인가요?”
“속이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알아서 철수한다니까요.”
“조지 씨! 그런데, 지금 상하이와 만주에서 전쟁을 하고 있어도 외국인들은 철수하지 않고 있잖아요?”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얼마 전부터 군인들이 정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인들이 정치를 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변국 침략이죠.”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죠?”
“국민당은 일본에 첩자를 보내지 않아서 잘 모르시겠지만, 나는 매주 일본에 가서 정보를 얻습니다.”
“쑹메이링 위원, 조지의 말은 100% 믿어도 됩니다. 조지의 정보는 내가 보증합니다.”
“음···.”
쑹메이링은 지금 들은 정보가 사실이라면 자신과 자신의 남편은 중국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이다.
외국에 공수표를 남발해서라도 군사력을 갖추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중국의 영원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쑹메이링은 국민당 고문인 두웨성이 보증하는 내 의견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일단, 내 의견은 듣기에도 꽤 쓸만하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는 의견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조지 씨는 무엇을 바라고 나한테 이런 도움을 주는 거죠?”
역시나 쉬운 여자는 절대 아니었다.
쑹메이링과 장제스에게 바라는 것은 많았지만 단 한 가지만을 말했다.
“만약, 일이 잘돼서 독일군 군사 고문단이 파견된다면 조선인들도 독일 군사 고문단과 함께하게 해주십시오.”
“중국 관내에 조선인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부탁을 하세요? 차라리 다른 부탁을 하세요.”
“돈이 되는 사업은 굳이 쑹 위원님께 부탁하지 않아도 벌 만큼 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른 부탁은 없는 거죠?”
쑹메이링은 여우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간 보고 있었다.
“제가 드린 부탁도 쉽지 않은 부탁입니다, 쑹 위원님이 들어 주실 수 있다면 꼭 들어주십시오.”
“알았어요. 내가 그것은 꼭 들어드릴게요.”
* * *
난징의 장제스 저택을 나와서 상하이로 돌아가는 길은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좀 피곤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몇 년 후에 학살을 당할까? 아니면, 중국군이 일본군을 막아낼까?’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장제스와 쑹메이링이 내가 내놓은 의견을 받아들여서 최정예군을 양성한다면 일본군은 중국이라는 끝이 없는 늪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독립군들도 체계적인 군대를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 청년들로 구성된 독립군만 있다면 나중에는 많은 작전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아무 생각 없이 차창 밖으로 내가 탄 자동차를 호위하는 두웨성의 부하들을 보고 있는데 두웨성이 나를 불렀다.
“아니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보고 있었어요.”
“쑹메이링이 장제스에게 말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거냐?”
“아뇨. 그건 아닙니다. 쑹메이링 위원이 장제스 위원장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에게 불행이지 제가 걱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니가 그 정도로 장담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인데, 혹시 내가 준비해야 할 일이 있겠냐?”
두웨성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형께서도 군대를 만들 수 있나요?”
“넌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구나. 내가 하려고 마음먹어서 못할 것이 뭐가 있겠냐?”
두웨성의 자신감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했다.
그런 면에서 두웨성은 확실히 상남자였다.
“대형, 항공대와 포병대 그리고 보병 1개 단(연대) 정도를 만들 수 있으세요?”
“네가 말한 것이 모두 몇 명이나 되는 거냐?”
“다 합치면 2,000명이 조금 안 됩니다.”
“2,000명이면 문제없다. 그런데, 무장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해야 하지?”
와! 증편된 1개 연대를 개인이 꾸릴 수 있다고?
두웨성이 돈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진짜 대단했다.
“최소 200만 달러 정도는 들어갑니다.”
“그 정도면 상하이를 방어할 수 있겠냐?”
“아니요. 상하이 방어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상하이 주민들이 피난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습니다.”
“상하이를 방어하려면 어느 정도의 군대가 필요할 것 같은데?”
“최소한 5개 사단은 필요할 겁니다. 이번에 일본군은 3개 사단 정도를 동원했습니다.”
“후유···. 그럼, 돈은 몇천만 달러가 필요하고 사람은 50,000명 이상이 필요하다는 소리냐?”
“예, 대형.”
“에이! 시발! 그럼, 내 힘으로는 상하이를 지킬 수 없다는 소리네.”
욕을 시원하게 내뱉은 두웨성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상하이는 지킬 수 없겠지?”
“예, 아마 힘들 겁니다.”
“그럼, 조지야! 1개 단(연대)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이번에 상하이를 공격한 일본군 정도의 수준이라면 목숨을 걸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일주일이라···.”
두웨성은 다시 말없이 창밖만 쳐다봤다.
“대형, 혼자서 상하이를 지킬 생각을 하지 말고 국민당군과 협력하는 방법으로 상하이를 지키십시오.”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나는 국민당군을 믿을 수가 없다. 사실, 내가 아는 장제스 위원장은 그렇게 의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두웨성은 장제스의 의리를 거론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중국군의 전력이었다.
중국의 군대는 정예병을 제외하면 전혀 믿을 수 없는 허수아비 군대였다.
먹고 살기 위해서 군대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규율도 없고 체계도 없었다.
그리고, 무장은 더 형편이 없었다.
“두 대형! 쑹메이링 위원에게도 말했지만, 상하이에 외국인 사업가들을 많이 모아들이십시오. 그럼, 일본군도 상하이를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겁니다.”
지금도 일본군은 철저하게 중국인과 중국 정부 담당 지역만 공격하고 있었다.
일본 군부가 미치지 않는다면 외국인 공업지역을 향한 공격은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 * *
쑹메이링을 만나고 돌아온 날 영국, 프랑스, 미국의 총영사들은 일본 해군 상하이 분함대장인 시오자와 소장과 일본 공사인 시게미쓰에게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우리 영국, 프랑스, 미국의 정부가 계속해서 요청한 전투의 종결과 삼국인들이 입은 손해에 대한 책임 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삼국은 자치 경비 병력을 먼저 투입해서 삼국의 권리와 이권을 수호하겠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상하이 침공을 좋게 보지 않으니까 한판 하자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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