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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나는 행복한가? (28/225)

28. 나는 행복한가?

28. 나는 행복한가?

“오자키 씨, 여기 이분은 미국인 조지 씨에요. 일본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오자키 씨를 소개해 드리려고요.”

나는 손을 내밀어 오자키에 악수를 청하면서 인사를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지 리 라고 합니다.”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가 아그네스에게 일본인을 소개받으려고 했던 이유는 일본 내에서 조선인 신분으로는 첩보활동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야심 차게 준비 중인 위조지폐 사업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자키 호츠미와 친분을 만들어가고 있던 그때, 창밖에서는 굉음과 함께 밤하늘에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머! 어머! 저게 뭐죠? 설마 포격인가요?”

아그네스는 포격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공산당을 살려줄 일본군의 공격이 기쁜지 호들갑을 떨었다.

“일본군이 포격을 하나 보군요.”

“그럼, 일본군이 중국군을 공격하는 거예요?”

“아마, 그런 것 같군요.”

‘와! 이 미친년! 이미, 일본군의 공격을 알고 있었으면서 가증스럽게 모르는척하다니’

드디어, 일본군 해군 육전대가 갑둑의 중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지금부터는 나도 서둘러 움직여야 할 시간이 됐다.

“아그네스 양, 오자키 씨, 일본군의 포격 때문에 혹시 내 비행정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아! 조지 씨의 비행정들이 황푸강 계류장에 있죠?”

“예, 근처에 포탄이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니까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아그네스 스메들리와 오자키 호츠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서둘러서 미국 영사관으로 향했다.

* * *

Foreign Y.M.C.A.를 나온 나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미국 영사관으로 달려가는 이유가 있다.

이제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미국과 영국이 나서서 일본과 중국의 전투를 중지시키고 중재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도 일본도 승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를 중지시키면, 중국은 자존심이 살고 일본은 자존심이 무너진다.

그래야만 나중에 더 큰 재앙이 된다.

“커닝엄 총영사님을 만나러 왔는데 혹시 계신가요?”

“총영사님께서는 퇴근하셨다가 조금 전에 돌아오셨습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커닝엄은 얼마나 급하게 나왔는지 잠옷 위에 코트만 걸친 채로 미군경비대 정보 장교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잠시, 옆에 서서 정보 장교의 보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 조지 씨, 어서 와요.”

“많이 바쁘신 것 같군요.”

“잽들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커닝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닝엄의 방으로 걸어갔다.

“조지 씨가 온 것을 보니까 뭔가 새로운 정보를 주려고 오신 것 같은데···?”

“총영사님의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저는 이미 총영사님께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말해준 것 같은데요?”

“나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설마설마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는 현실이 됐으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커닝엄은 몇 초 정도 고민하더니

“아직은 좀 더 지켜볼 생각입니다. 과연, 잽들이 조지 씨의 말처럼 움직이는지 한번 지켜볼 생각입니다.”

“음···.”

“그렇다고, 두손놓고 놀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군요. 그런데 경비대는 뭐라고 하던가요?”

“잽들이 중국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더군요.”

“일본군이 그럴 만도 합니다. 지금까지 중국군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제대로 된 반항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는 군대이니까요?”

“아!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렇군요?”

“예, 그래서 일본군이 중국군을 개 무시를 하는 겁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에는 조금 다를 겁니다.”

“이번에는 독일 군사 고문들 덕분에 잽들의 버릇을 고쳐줄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영국과 미국에 문제가 생깁니다.”

“아니, 왜요?”

“중국이 일본군을 물리치면 중국인들의 여론은 다음 타켓으로 누굴 노릴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내 생각에는 아마, 만주의 관동군을 노리든지 그것이 아니라면 외국인 조계지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커닝엄 총영사는 내 의견을 듣고 설마 정말 그럴까 하는 표정이었다.

“총영사님,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른다.’ 중국인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때부터는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아!”

“중국은 그동안 외국 열강들의 침략만을 받아왔기 때문에 일본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없던 자신감도 생겨서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음···. 이거 꽤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러니까 총영사님은 지금이라도 내 충고를 깊게 생각하고 미리 영국 총영사와 이견을 조율해놓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난처한 상황이 될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조지 씨의 말처럼 내일부터 당장 접촉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이제 그만 제 비행기들이 안전한지 확인을 해보러 가보겠습니다.”

* * *

영사관에서 황푸강 비행정 계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가와시마 요시코를 처치하고 돌아온 장웨이를 만났다.

“형님, 가와시마와 다나카는 조용히 처리했습니다.”

“확실하게 처리했지?”

“예, 지금쯤이면 둘 다 용궁에 가 있을 겁니다.”

나는 이쯤에서 장웨이를 단속해놔야 나중에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아서 미리 경고를 했다.

“장웨이!”

“예, 형님.”

“나는 너한테 큰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형과 나에 대한 의리를 지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장웨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듣고 내가 왜 이러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예?”

“나는 너한테 거창한 대의명분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 니가 대형의 식구라면 나를 배신하지 말라는 소리다.”

“형님, 그게 무슨···?”

“다이리에게 내 정보를 넘기는 짓은 이제 그만두라는 소리다. 만약,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쯤에서 대형께 돌아가도 된다.”

내가 다이리를 거론하자. 장웨이는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지금까지는 니가 정보를 넘겨줘도 상관이 없었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 너무 마음 상하지는 말고.”

장웨이는 뭐라고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나만 쳐다봤다.

“그동안 나를 도와준 너에게 어떤 피해도 없을 테니까 다이리와 연결을 끊을 자신이 없다면, 그냥 대형 곁에 머무르길 바란다.”

멍하니 서 있는 장웨이를 남겨놓고 나 혼자 비행정 계류장을 살펴보러 갔다.

* * *

일본 해군 파견함대장 시오자와 소장은 상하이를 4시간 안에 점령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만주의 ‘동북군’과는 전혀 다른 중국군이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시모토! 도대체, 너 뭐 하는 놈이야? 야! 지금 몇 시야?”

“죄송합니다. 함대장님.”

시오자와는 하시모토 대좌의 정강이를 걷어차면서

“이유가 뭐야?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진격로를 개척하던 장갑차가 모두 터졌습니다.”

하시모토 대좌의 보고에 시오자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 놈들이 우리 황군 장갑차들의 진격을 저지했다고?”

“예, 죄송합니다. 건물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수류탄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의 저항이 가장 심한 곳이 어디냐?”

“갑북의 보흥로 일대입니다.”

“항공지원까지 해주면 뚫을 수 있나?”

“예, 충분합니다.”

시오자와는 항공 대장을 불러서 보흥로를 폭격하라고 명령했다.

“지금 당장 돌아가서 중국 놈들을 쫓아내라! 만약, 중국 놈들의 방어를 뚫지 못하면 넌 거기서 죽어라!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새벽 4시,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 20여 대가 중국군 방어망에 대한 맹렬한 폭격을 시작했다.

“꽈광!”

“꽝!”

“두두 두둑!”

“드르륵!”

차이팅카이가 지휘하는 19로 군 35,000명은 일본군 전투기의 폭격과 일본 해군 구축함의 함포 공격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해군 육전대 6,000명을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서 차례차례 포위 섬멸해나갔다.

19로 군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갑북을 사수했고, 오히려, 일본군 해군 육전대가 큰 피해를 보면서 일본군은 더는 진격하지 못하고 전투는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 * *

“조지, 밖이 심상치 않은데 좀 더 일찍 들어오지, 그랬어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걱정했는데.”

황푸강 비행정 계류장을 돌아보고 집에 도착했을 때 샤본의 원망 섞인 말을 들어야만 했다.

밤새도록 포탄이 날아다니고 총소리가 들리면 아내가 당연히 나를 걱정할 것이라는 미쳐 생각하지를 못햇다.

“샤본, 미안해.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까 조금 늦었어. 정말 미안해.”

온몸으로 미안하다는 감정을 표현했지만, 샤본은 다른 때와는 달리 화가 풀리지 않았다.

“조지, 당신은 지금 행복해요?”

아내가 묻는 말이 너무 포괄적이라서 뭐라고 대답하기도 곤란했다.

고무신 사업은 뉴욕에서 타이어를 만들어 팔던 때보다 몇 배는 더 잘되고 있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크고, 나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내가 묻는 말은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샤본, 미안해. 나도 상하이에서 전쟁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조지, 내 말은 그 말이 아니에요.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돼서 행복하냐고요?”

“샤본,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

“이브라힘 하둔 씨의 죽음을 보고 느낀 것이 좀 많아요. 만약, 당신이 진짜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그냥, 우리 미국으로 돌아가요.”

이브라힘 하둔이 죽고 혼자가 된 하둔의 아내 뤄리리는 샤본과 아이들을 자주 초청했다.

아내는 뤄리리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 진짜로 행복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 한가운데를 내 발로 걸어 들어온 건가?’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나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는 중이었다.

내가 그저 평범한 한 명의 미주 한인 동포였다면 이렇게 하라고 해도 절대 하지 못한다.

내가 죽다가 다시 살아나면서 얻은 기억 덕분에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상하이에서 일하는 것은 행복한 감정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의무감 때문인 것 같아.”

“아이들에 대한 의무감이오?”

“응,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의무감.”

아내의 표정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과 내 대답에 대한 궁금증이 겹쳐 보였다.

“샤본, 당신은 아일랜드가 독립했을 때와 독립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똑같았어?”

“아니요. 그렇진 않았죠.”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아이들에게 당당히 독립된 조국을 남겨주고 싶어서 그래.”

“그래서, 지금 그 일을 하니까 당신은 행복해요?”

“행복하기보다는 사실은 좀 두려워. 내가 조금만 잘못해도 우리 민족에게는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으니까.”

내 선택이 옳고 맞기를 빌면서 나는 매일매일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의 대한민국이 반 토막이 나서 독립하는 것도 싫었고,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하는 것도 싫었다.

더구나 친일파가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더 싫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친일파만큼은 모조리 때려잡을 것이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꼭 안아 주면서 응원의 한마디를 했다.

“나는 당신의 표정이 상하이에 오고 나서부터는 점점 심각하게 변해가서 걱정돼서 한마디 한 거예요.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면 웃으면서 즐겁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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