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김구의 변신.
27. 김구의 변신.
김구는 조지 리와의 만난 후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임시정부가 그동안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임시정부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조소앙 선생, 김규식 선생, 우리 임시정부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야 당연히 독립쟁취가 아닙니까?”
“그럼, 우리도 쑨원처럼 해야 하는 걸까요?”
김구의 질문에 조소앙도 김규식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쑨원의 방식은 원칙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순간을 모면하는 미봉책일 뿐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 중국 땅에서 벌어지는 온갖 세력들의 난립이었다.
처음부터 강력한 힘으로 하나씩 통합을 이뤄나갔다면 이런 꼴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상은 좋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못했습니다.”
김규식은 모든 세력을 한 울타리에 모으는 쑨원의 이상은 결국 허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럼, 만약에 쑨원이 소련이 아닌 다른 열강들의 지원을 받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그것도 절대 아닐 겁니다. 열강들은 중국이 갈가리 찢겨 있는 것이 더 좋은데, 뭐하러 쑨원을 돕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떡하든지 우리 스스로 독립을 쟁취해야만 합니다.”
김구도 조소앙도 김규식도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주독립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힘들고 힘든 길이었다.
“내가 얼마 전에 조지 리를 만났습니다.”
조지 리를 만났다는 김구의 말에 둘의 시선이 김구를 향했다.
“조지 리가 우리 임시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더군요.”
“아니, 제깟 놈이 뭘 했다고 우리를 비판합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조지 리도 우리가 모르게 독립을 위해서 열심히 싸우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너무 욕하지는 마십시오.”
김구의 만류에 조소앙은 헛기침을 한번 하는 것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대충 넘겼다.
“커흠, 그랬습니까?”
“예,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자가 무슨 말을 했다는 겁니까?”
“조지 리는 임시정부에는 왜 사람이 모이질 않고, 함께하던 사람들까지 떠나는지를 아냐고 묻더군요.”
“그거야 각자 생각이 달랐고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나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임시정부를 지키고 있는 우리의 한계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던가요?”
“조선인 모두가 원하는 것은 자주독립이 아니냐고 하면서, 떠나간 동지들도 다시 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더군요.”
“모두 같이 손을 잡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현실의 냉혹함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김규식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임시정부의 고충을 이야기했더니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해결책을 말해줘요? 혹시, 미국의 누구처럼 지나가는 입바른 소리는 아니었습니까?”
“그건 아니었습니다. 먼저, 저한테 재정적인 고충을 해결하라면서 10만 달러를 주더군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가 부자인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 부자일 줄은 몰랐습니다.”
“우사는 조지라는 사람을 압니까?”
“예, 제 처가 그 사람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뭐, 그 이야기는 중요한 것은 아니고 조지라는 사람이 또 뭐라고 하던가요?”
김규식은 조지가 했다는 말을 더 듣고 싶어 했다.
“임시정부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면 앞으로 어떻게 일본과 싸울 것인지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지를 모두가 알게 하라고 하더군요.”
“일종의 프로파간다군요. 독립을 위한 모멘텀 선점일 수도 있고요.”
“맞습니다. 사람들의 힘을 모으려면 희망을 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일제와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음···. 그것은 확실히 참고할 만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것 때문에 며칠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농지개혁과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같은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시기로 한 겁니까?”
“우리 인민들이 잘살 수만 있다면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면 어떻습니까?”
“농지를 무상으로 분배하면 다른 인민들은 소외가 되지 않겠습니까?”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농지의 무상 분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인민들과 형평성에도 문제가 되니까요.”
김구는 김규식에게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럼, 어떡하자는 겁니까?”
“농지를 분배하고 10년 후부터 대금을 조금씩 상환하는 것으로 하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상인과 어민 등 다른 인민들에게도 국가에서 10년짜리로 정책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하라고 하더군요.”
“아! 그러니까 임시정부가 인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정책을 선전하라는 소리군요.”
“예, 눈앞에 보이는 정책으로 인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제안도 있었습니다.”
“또, 무슨 말은 했습니까?”
조소앙과 김규식은 어느새 김구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나는 저와 한인애국단의 희생을 원했고, 다른 하나는 모두의 단결을 원했습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와 한인애국단은 앞으로도 계속 일본과 무력투쟁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인제 그만 임시정부를 떠나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예? 아니, 왜?”
“조선에 살고 있는 인민들에게 독립을 위해서 일본과 싸우는 임시정부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혼자서 희생하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내가 나설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괜찮습니다. 임시정부가 조용히 독립을 준비하려면 누군가는 일제의 시선을 끌고 다녀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백범이 할 생각인 거요?”
“예, 그리고, 두 분께서도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조소앙 선생은 모든 인민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임시정부의 정책을 만들어 주시고, 김규식 선생은 미국으로 가서 조지 리가 소개하는 사람들을 만나주십시오.”
김구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놀란 두 사람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앞으로 상하이의 임시정부에는 연락 요원들만 남기겠습니다. 그러니까 조소앙 선생은 쓰촨성으로 가셔서 이회영 선생과 함께하시고, 김규식 선생은 미국으로 가시면 됩니다.”
“우당 선생이 쓰촨에 계셨습니까?”
“예, 쓰촨성에서 신흥 무관학교를 다시 여셨다고 합니다.”
“그 지역 군벌들이 그걸 허락했답니까?”
“조지 리가 교섭해서 해결한 모양입니다.”
김구는 할 말을 모두 끝내고 둘을 보면서
“우리가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싸워나가면 언젠가는 우리 눈앞에 조국의 독립이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들 힘들 냅시다.”
“알겠습니다. 백범도 항상 몸조심하십시오.”
김구의 지시를 받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졌고, 임시정부 청사에는 무선 전신기를 관리하는 연락 요원만 남았다.
그리고, 임시정부 한인애국단의 대원 중 몇 명은 김구와 함께 움직이지 않고, 저장성과 허난성 그리고 산시성 일대에 거대한 농지들을 사들였다.
* * *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한인애국단 장인 김구가 난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잠적하자 김구를 잡기 위해서 상하이에 파견돼 있던 일본의 첩자들이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김구가 난창으로 이동 중이라는 정보를 확보하자 김구를 체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선생님, 조지 씨가 넘긴 정보가 사실이었습니다.”
“공근이, 정말로 이갑성과 한규태가 밀정이었다는 소린가?”
“예, 불행하게도 사실이었습니다.”
안공근의 보고에 김구는 침통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갑성은 3.1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국내에서 일제에 투쟁하다 상하이로 망명해온 독립지사였고, 한규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위해서 일했던 청년.
그런데, 그 모든 행동이 위장이었다.
“우리를 몇 명이나 쫓고 있던가?”
“경성의 총독부와 상하이 영사관 그리고 관동군 참모부와 대본영 헌병감, 도쿄 경시청 등 다섯 곳에서 스물네 명이 쫓아왔습니다.”
“그놈들의 위치와 신원 파악은 확실하겠지?”
“예, 선생님, 이번에 정리하면 임시정부를 추적하는 일제의 밀정은 완전히 소탕됩니다.”
“임시정부가 힘을 키울 동안에는 나만 드러나고, 임시정부는 꼭꼭 숨어 있어야만 하네.”
김구가 스스로 일제의 목표가 돼서 임시정부를 보호할 생각이었다.
“작전 위치에 들어서면 밀정들을 모두 정리하고 떠나세.”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 난징에서 난창으로 넘어가는 도로 주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 시체 수십 구가 발견됐다.
* * *
요즘, 아그네스 스메들리는 일왕 암살 사건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조용히 사라져 버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의 타도에 앞장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취재해서 전 세계에 특종으로 기사를 싣고 싶다고 말했다.
“아그네스, 김구는 왜 그렇게 찾는 거예요?”
“제국주의 일본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사람이잖아요.”
사실대로 말하면 심장에 비수까지는 꽂지 못했고, 히로히토의 몸뚱어리에 파편 몇 개는 심어줬다.
그리고, 김구는 기자회견을 자처한 덕분에 일본 역사상 최고의 현상금이 걸려서 쫓기는 중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에요?”
“아니요. 사실은 그 로켓의 제조법도 알고 싶고요.”
그럼, 그렇지. 역시나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로켓 제조법을 알아서 뭐 하려고요?”
“중국공산당에 알려주려고요.”
‘미친년! 까심 로켓의 제조법을 알려주겠다고? 누구, 좋으라고?’
책으로 만나는 공산주의와 현실에서의 공산주의의 차이점을 모르는 이 철딱서니 없는 여자도 내 살생부에 이름을 올려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죽여야 할 적은 민족의 배신자들과 일왕, 일본군 그리고, 중국공산당이다.
그리고, 이들을 돕는 사람들은 모두 내 적이다.
왜 이들을 적으로 설정했냐고?
그건 내 마음이다.
내가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을 때 Foreign Y.M.C.A. 안으로 예전에 봤던 일본인 기자가 들어왔다.
“오자키 호츠미씨 여기에요.”
“아그네스 양,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그네스가 나한테 오자키 호츠미는 도쿄에 있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사상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나는 태평양 전쟁 당시에 벌어졌던 모든 첩보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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