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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나도 잘살아 보고 싶었다고! (17/225)

17. 나도 잘살아 보고 싶었다고!

17. 나도 잘살아 보고 싶었다고!

그제야, 나를 지나가려던 젊은이 하나가 나를 밀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미친 새끼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규서야, 그만하거라. 그래, 젊은 양반은 내가 어디를 가는 줄은 알고 그런 말을 한 거요?”

“지금 여기서 말해야 합니까? 아니면, 저한테 30분만 내어 주시겠습니까?”

“작은아버지, 이런 미친놈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이회영은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청년들은 나와 머피를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동포 청년이 그렇게 간곡히 원하는데 어디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일단은, 제 말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근처에 아무 호텔이나 가도 되겠습니까?”

“그럽시다. 시간도 없는데 근처의 아무 곳이나 갑시다.”

“작은아버지!”

“규서야, 괜찮다.”

이회영은 이규서가 자신의 안전을 생각해서 말리는 줄 아는지 이규서를 달래는 말투였다.

그러나, 이규서는 이회영을 관동군 특무대에 밀고한 배신자였다.

“거기, 조카분도 같이 갑시다. 아니,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같이 가서 밥이라도 한 끼들 합시다.”

주위의 청년들이 이회영의 눈치를 봤다.

“동포 청년이 밥이라도 한 끼 보태줄 생각인가보다. 다 같이 가서 따뜻하게 밥 한 끼 하자꾸나.”

나는 머피와 함께 앞장서서 일행을 근처 호텔로 안내했다.

사람의 원초적 본능은 식욕과 성욕이다.

내가 시킨 음식을 미친 듯이 집어 먹고 있는 이규서를 보면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불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살아가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몇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규서는 그 마지막 선을 넘은 인간이었다.

“이제, 배도 어느 정도 찬 것 같은데 아직도 이야기할 생각이 없는 건가?”

내가 시켜 준 음식을 드는 둥 마는 둥 하시던 이회영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여셨다.

“아닙니다. 이제는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이규서의 옆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그리고, 재빨리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 이규서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모두 깜짝 놀라서 품속에 손을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그대로 다들 움직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후에 내가 왜 이러는지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나는 이규서 뒤통수를 권총 손잡이로 후려갈겼다.

“퍽!”

“아악!”

“야! 개새끼야! 넌 인간도 아니다.”

내가 이규서를 후려치는 것을 보고 이회영 선생의 일행이 다시 움직이려고 했지만, 어느새 머피도 권총을 빼 들고 위협을 하고 있었다.

“다들 움직이지 마십시오. 움직이면 쏩니다.”

머피는 바보다!

그걸, 영어로 말하면 누가 알아듣나?

어쨌든 그래도 충직한 직원이다.

“여러분! 움직이지 말고 조금만 제가 하는 짓을 구경해 주십시오.”

그리고, 머피를 쳐다보면서 

“여기 젊은이 중에 한 놈은 어쩌면 이놈과 같은 편일 수 있으니까 움직이면 무조건 쏴요.”

머피는 눈에 힘을 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장님.”

“자, 이규서 너는 너의 작은아버지를 얼마에 팔았냐?”

내 말이 끝나자 이회영과 그의 일행들은 소스라치게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규서 옆에 앉은 놈이 손을 품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움직이려던 청년의 팔을 내려치고 멱살을 잡아서 그대로 업어치기로 방바닥에 꽂아버렸다.

방안은 식탁이 자빠지면서 접시들이 깨지고 난리가 났다.

“와장창!”

“으악!”

“어이! 이규서, 너하고 이놈하고 둘이냐?”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이규서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하고 연충열 형은 아무런 죄가 없다.”

병신이 제 입으로 죄가 없단다.

그럼, 죄가 있다고 먼저 시인하는 거잖아?

이회영 선생은 저런, 덜떨어진 조카 놈 때문에 돌아가시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분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손을 좀 보고 싶습니다. 이 두 놈이 선생님을 판 놈들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이규서와 연충열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다른 청년들은 나와 이회영 선생의 눈치를 보면서 어찌할 줄 몰라라 했고, 이회영 선생은 설마 조카가 그랬을까 하고 의심을 하면서 아무런 말도 없었다.

“퍽!”

“악! 그만 때려 개새끼야. 내가 뭘 잘 못 했어? 난 아니라고!”

“뭐, 이 개새끼가···. 야! 내가 좀 전에 특무대의 도이하라 겐지 대좌를 만나고 나온 사람이야. 그런데, 니가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해?”

“퍽!”

“악! 그래, 내가 했다. 나도 좀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서 그랬다. 내가 했다. 어쩔래?”

원하는 대답을 들었지만, 기분은 참 거지 같았다.

그리고,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표정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회영 선생의 표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나도 마음껏 밥 한번 먹어 보고 싶고, 나도 계집 끼고 술도 한번 먹어 보고 싶고, 나도···. 엉엉”

“그래서, 너의 작은아버지를 팔았냐?”

“그래, 작은아버지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살았을 것 같냐? 우리 집은 원래 엄청난 부자였다. 그런데, 작은아버지가···. 엉엉”

“그래서, 작은아버지를 팔아서 잘살아 보고 싶었다고?”

“그래, 나도 잘살아 보고 싶었다. 왜? 나는 잘살면 안 되냐?”

“에잇, 퉤!”

나는 이규서 옆에 가래침을 뱉어 버리고는 이회영 선생을 쳐다봤다.

이회영 선생은 방 천장을 바라보시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이회영 선생님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후회 하실까?

후회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은 분명히 좋지 않으실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결정하는 대로 저는 따르겠습니다. 혹시, 이놈들을 풀어주라고 해도 풀어드리겠습니다.”

이규서와 연충열이 톈진의 관동군 특무대에 나를 고발할 수 있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둘에 대한 처벌을 이회영 선생님에게 맡겼다.

“둘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라!”

이회영의 지시가 떨어지자 다른 청년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발을 묶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서 고개를 숙이셨다.

“고맙네. 그리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네.”

나는 머피에게 밖에 나가서 커다란 쌀가마니를 사 오라고 시켰고, 나한테 사과하는 이회영 선생을 데리고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갔다.

“저한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번 일 때문에 너무 의기소침하지 마시고 언제나 당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갑 안에 들어있던 모든 돈을 꺼내서 이회영 선생님께 드렸다.

그러나, 이회영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을 하셨다.

“아니, 이럴 필요 없네. 나도 돈은 있네.”

“선생님, 그 돈은 차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명함입니다. 반드시 상하이로 와 주십시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싶지만, 저도 일본군의 눈으로부터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나는 지금 다롄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네.”

“거기 가시면 진짜로 죽습니다. 다롄에는 절대 가지 마시고 조직원들과 함께 상하이로 오십시오.”

망설이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톈진의 특무대장이 선생님을 잡기 위해서 다롄에 연락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음···. 알았네. 그리고, 다시 한번 고맙네.”

“그럼, 선생님 다시 만나는 날까지 언제나 건강히 지내십시오.”

이회영 선생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서 수표책을 긁어서 방안에 부서진 집기값을 치르고 영사관으로 돌아왔다.

* * *

다음날, 가와시마가 나한테 약속했던 대로 관동군 톈진 특무대에서 연락이 다시 왔다.

어차피, 나 아니면 아편을 구할 곳도 없으면서, 내가 조선 출신 미국인이기 때문에 길을 들일 생각이었나 본데, 그것은 나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 것이다.

“어때? 생각을 좀 해봤나?”

여전히, 도이하라 겐지는 한 푼이라도 더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대좌님께서는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군요. 저는 가와시마가 기다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상하이행 배에 올라타고 있었을 겁니다.”

“흥! 주둥아리만 살아서···.”

“저는 아편 같은 것을 팔지 않아도 되는 부자입니다. 이쯤에서 그만하시죠?”

대답 대신 나를 한참 동안 노려보던 도이하라 겐지는

“물량은 얼마든지 공급할 자신이 있는 거겠지?”

“예, 원하신다면 페르시아와 튀르크에서 생산하는 모든 물량을 공급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고, 일단 10만 명분부터 시작하자.”

“예,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하겠습니다.”

개자식!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사람을 두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어제 니가 가격을 깎아주는 대신 나한테 원했던 것은 뭐지?”

“저와 동업 관계인 사순 양행에서 직판점을 낼 수 있다면 가격을 깎아 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시, 도이하라 겐지는 살살 간을 보는 눈빛으로 변했다.

“직판점을 몇 곳이나 원하는데?”

“저도 말을 전하는 처지라서 대충 만주와 허베이 지역의 도시 10여 곳으로 들었습니다.”

“대도시 10개에 직판점이라···. 규모는 어느 정도나 생각하고 있나?”

“술도 팔고 아편도 팔려면 못해도 100평은 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0평짜리 10곳이라···. 좋다. 우리가 여자도 공급해 주겠다. 그러니까 공급 가격을 말해봐라.”

확실히, 관동군이 돈이 없기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놈들이 돈이 없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또 얼마나 괴롭힐지 눈에 훤했다.

나는 샘슨과 합의한 금액을 제시했고, 도이하라 겐지는 생각하는 척하더니 동의하고 계약서를 써줬다.

“조지! 품질이 떨어져도 안 되고 수량이 부족해도 안 된다. 그리고, 어디 가서 절대 쓸데없이 주둥이 놀려도 안 된다. 알겠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샘슨과 저 역시도 어디다 떳떳하게 내놓고 하는 장사가 아닙니다.”

“그래, 그러면 여기서 마무리를 하자.”

도이하라 겐지는 계약서를 내밀면서 악수를 청해왔다.

계약을 맺기 전까지는 그렇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계약이 끝나니까 의외로 인간이 깔끔한 구석도 있었다.

“예, 계약에 감사드리고 항상 최선을 다해서 공급하겠습니다.”

“그래, 이만 가보도록.”

내가 사무실 문을 향해서 두어 걸음 걸어가자 도이하라 겐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가와시마 요시코는 앞으로는 만나지 말기 바란다.”

“예? 아니, 왜요?”

“가와시마 요시코는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다.”

조금 전에 가졌던 생각이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다.

이 자식도 지네 쪽발이가 뭔가 대단 민족이고 우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놈이었다.

하긴 출세를 위해서 키우던 사촌 여동생까지 상납하면서 진급한 놈이니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정이 뚝 떨어지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도이하라 겐지가 어떤 조치를 했는지 가와시마 요시코는 내가 사무실 나와서 영사관에 딸린 특무대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정말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된 건가? 괜한 감정을 갖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가와시마 요시코를 다음에 만날 때는 미련 없이 죽일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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