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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회영 선생님? (16/225)

16. 이회영 선생님?

16. 이회영 선생님?

“조지, 내가 조선에 가서 뭘 도와줘야 하는데?”

“신부님께서는 조선의 독립을 원하는 젊은 사람들을 좀 찾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빈센트 신부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흥미가 있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을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너무 오랜 시간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라면 사양하고 싶은데.”

“광주라는 도시의 성당을 한 번만 다녀오시면 됩니다.”

“나보고 성당을 다녀오라고? 거기에 헌금이라도 전해줘야 하는 일인가?”

빈센트 신부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투덜대는 말투였다.

“아닙니다. 2년 전에 광주에서 학생들이 항일 운동을 했는데 많이 죽고 다쳤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쫓겨난 친구들도 많다고 합니다.”

“아! 그랬었어? 그런데, 학생 운동하고 성당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고 성당에 들리라는 말인가?”

“빈센트 신부님, 신부님들은 신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광주에 있는 성당에 들리셔서 신부님들께 아직도 항일의식이 남아 있고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있으면, 유학을 보내 달라고 해주십시오.”

“항일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키울 셈인가?”

“예, 비슷합니다.”

“알았네.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여행 한번 다녀오는 셈 치지.”

“감사합니다. 신부님.”

이 시기 항일의식이 가장 불타오르는 곳은 광주였다.

1928년 학생 운동으로 많은 학생이 죽고 다쳤다.

그리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나는 그 학생들을 가르쳐서 미래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 * *

톈진 특무대장 도이하라 겐지 대좌.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사이에 관동군이 벌인 모든 공작 활동을 주도하고 참여한 인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장제스에 의해서 전범재판을 통해서 교수형을 받은 인물이다.

“조지 리?”

“예, 도이하라 겐지 대좌님”

작은 키에 큰 머리 그리고 날카로우면서도 사악하게 빛나는 눈빛, 이것이 내가 도이하라 겐지를 처음 본 느낌이었다.

아! 그리고, 일본인들 사이에 유행인 코 밑에 살짝 붙은 재수 없는 콧수염까지.

“가와시마 요시코에게 네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

나를 탐색하고 관찰하는 눈동자는 처음 볼 때부터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상하이에서 항공회사를 운영한다고?”

“그것뿐만 아니라 돈이 되는 것은 이것저것 뭐든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른 사업은 무엇을 하고 있나?”

“조선에서 신발을 만들어서 아시아 전역에 판매하고 있고, 상하이 부호들과 작은 것들을 몇 가지 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아편이라는 말이지?”

“예, 그것은 사순 양행과 동업을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혹시 당신 조선인인가?”

대개의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은 나를 처음 보면 그것을 먼저 확인하는데, 도이하라 겐지는 대화가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확인을 했다.

진짜로 묻고 싶은 말은 상대가 안심하고 있을 때나 아니면 생각지도 못하는 타이밍에 던지는 스타일로 보였다.

“조선인 출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인입니다.”

“왜? 조선인이라는 것은 내세우고 싶지는 않고?”

“뭐, 그런 것이 내세울 만하다고···.”

“우리가 조사해보니까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많던데 가와시마는 어떻게 만난 건가?”

“가와시마 공주님이 워낙 아름다운 분이시라서···.”

“남자다 보니까 마음에 들어서 하룻밤 같이 보냈다 이 말이지?”

“솔직히, 이쁜 여자를 보면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 도이하라 겐지와 아편 공급 계약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심문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가격이 좀 비싸던데?”

“대좌님, 싼 것은 비지떡입니다. 이미, 순도가 높은 것을 맛본 사람들에게 순도 낮은 것을 공급해봐야 안 먹힙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지금 당장 아편에 관한 한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라 도이하라 겐지다.

대공황이 일본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줘서 관동군에 지급되던 군사비마저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부담되는 금액이다. 가격을 조정하자.”

“도이하라 대좌님, 국제적인 시세가 있습니다. 마음 같으면 가와시마를 봐서라도 싸게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도 좀 생각해 주십시오.”

“아니야. 우리는 이 가격에는 힘들어.”

“대좌님! 가격만큼은 절대로 안 됩니다.”

아편 공급 가격을 가지고 한동안 실랑이하다 결국에는 지는 척해줬다.

“후우, 가격을 낮춰야만 한다면, 다른 것으로 보충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안돼!”

“대좌님! 그럼, 저는 협상을 여기서 그만두겠습니다. 제가 뭐 아쉬운 것도 아니고···.”

내 말이 끝나는 순간 도이하라 겐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향해 호통을 쳤다.

“이봐! 조센징! 넌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데 너는 천황폐하의 군대인 관동군을 위해서 봉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도이하라 겐지의 말을 들은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봐요. 도이하라 겐지 대좌. 나는 미국인이고, 당신은 지금 미국 시민을 협박하고 있는 겁니다.”

나를 보면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의 도이하라 겐지에게

“여기서 그만합니다. 사람이 호의를 가지고 거래를 하려고 하면 좀 받아주지. 이게 뭡니까?”

나는 그대로 톈진 일본 주재 영사관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하아! 이거 뜻대로 잘 안 되네. 사람이 정도가 있는데 도이하라 겐지. 이 개자식은 해도 너무하네.’

협상하는 내내 옆에 서서 나를 보좌하던 머피는 손에 묻은 식은땀을 바지에 닦고는

“사장님,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습니까?”

“그럼, 어떡합니까? 내가 일본 놈들의 종인 조선인입니까? 나는 엄연한 미국 시민입니다.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샘슨 씨와 이미 약속한 것도 있는데”

“만약,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가 손해를 좀 보면 됩니다. 이런 굴욕적인 조건이나 분위기에서 계약하면, 이들과 거래하는 동안에는 나는 계속 종노릇을 해야만 합니다.”

“하···. 사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머피는 거래를 하다보면 숙여줄 수도 있지 않냐는 말투였지만, 일본과 일본인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일본과는 무슨 거래를 하든지 강하게 맞받아쳐야 손해를 안 본다.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내겠다고 고개 숙이는 순간 그들은 날 꼬붕으로 생각한다.

“조지 상! 조지 상!”

영사관을 나가려는 나를 붙잡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가와시마 공주님, 이곳에 계셨습니까?”

“예, 조지 상의 얼굴도 못 보는 줄 알았어요.”

“그러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저도 공주님을 찾았습니다.”

“왜요?”

“공주님께서 신경 써주신 일이 잘 안 됐습니다. 그래서, 이만 상하이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가와시마는 나를 보면서 굉장히 난처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거래조건이 너무 안 좋아서 거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지 상! 내가 조지 상을 여기까지 불렀는데···. 내가 어떡하든지 거래를 성사시켜 볼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조지 상! 아니에요. 오늘 하루만 톈진에 있어 봐요.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가와시마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척하다가

“그럼, 미국 영사관에서 하루만 더 머물러 있겠습니다. 그리고, 공주님, 일이 안 돼도 상관없으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 * *

미국 영사관에 들러서 하루 동안만 더 머무르겠다고 말하고, 톈진 항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사장님, 이곳 톈진도 상하이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네요.”

미국인인 머피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상하이와 톈진의 아름다움은 중국인들에게는 수치였다.

아! 수치인 것도 모르려나?

힘이 없어서 자기 나라 땅을 외국이 마음대로 빼앗아서 거주지와 교역장을 만든 것은 분명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남 말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나라 친일파들은 일본이 지배해준 것을 감사히 여겼고, 자손 대대로 찬양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여기 톈진도 많은 국가의 조계지가 있어서 그럴 겁니다.”

“저는 아시아나 중국은 잘 몰랐는데 중국도 상당히 발전된 것 같습니다.”

“중국은 일단 기본적으로 인건비가 쌉니다. 뉴욕의 10분의 1 정도 일 겁니다. 그러니까 많은 공장이 들어서는 거죠.”

“그럼, 우리 회사도 중국에 짓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조선은 중국보다 인건비가 더 쌉니다.”

“예? 정말로 그런가요?”

“예”

이탈리안 카페에서 머피와 함께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 놓고 항구를 구경하는 내 눈에 이질적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꾀죄죄한 차림의 중국인들을 일본군 병사들이 호위해서 자동차로 안내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곧 만주사변이 벌어지겠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밝혀진 기밀문서에서 중국공산당이 일본군과 비밀 협정을 맺었다고 하더니 저게 바로 그것인 것 같은데’

“사장님, 뭘 그렇게 유심히 보십니까?”

“아니에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본 거예요.”

“그런데, 사장님 이곳은 상하이보다 중국인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고, 이곳의 조계지들은 상하이처럼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아! 그런 겁니까? 어쩐지 여기도 저기도 동양인들이 뭉쳐서 다니는 것이 신기해서요.”

머피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할아버지가 젊은 남자들과 우르르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할아버지를 어디선가 봤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어!”

나는 자리에서 부리나케 일어나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저분이 아직까지 살아 계셨던 건가?’

“사장님! 어디 가세요?”

“머피 씨는 먼저 영사관으로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나는 한참을 뛰어서 기억 속에 있던 할아버지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 헉헉···. 할아버지···. 헉헉···. 잠시 이야기 좀 할수 있을까요?”

내가 할아버지를 막아서자 청년들이 할아버지를 보호하려는지 나를 경계하면 할아버지를 감쌌다.

“헉헉···. 저는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말해 놓고 나도 모르게 웃긴 말을 하고 말았다.

나쁜 놈이 나는 나쁜 놈이라고 말하고 접근할 리가 없잖나?

“누구신지 모르지만, 우리가 좀 바쁩니다. 길을 좀 비켜 주십시오.”

길을 막은 채로 잠시 숨을 고르면서 머릿속의 기억을 최대한 떠올렸다.

‘저 중에 누가 밀고자지? 분명히 두 명인데.’

“사장님, 어디를 그렇게 뛰어 가십니···.”

나와 청년들이 대치하는 장면을 본 머피는 내 옆으로 와서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

“사장님, 이 사람들은 누굽니까?”

“내가 아는 분 같아서 따라서 온 겁니다.”

앞에서 할아버지를 보호하던 청년이 우리 보면서 화를 냈다.

“두 분, 우리는 지금 좀 바쁩니다. 그러니까 길을 좀 비켜 주십시오.”

“우당 이회영 선생님, 저는 미주 한인 동포로 상하이에서 사업을 하는 조지 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옆에 이 사람은 제 일을 도와주는 머피 씨입니다.”

약간 놀라면서 동요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누구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내 옆을 피해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이회영 선생님, 선생님은 거기 가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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