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 밑자락을 드리우다. (15/225)

15. 밑자락을 드리우다.

15. 밑자락을 깔기 시작했다.

만약, 가와시마 요시코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남만주철도의 간부들을 통해서 관동군과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가와시마 요시코가 내 수고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그럼, 왜 이렇게까지 아편 거래에 집중하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1930년대 관동군은 아편이 부족해지자 만주에서 농사를 짓던 우리 조선인들에게 아편 농사를 강제로 짓게 했다.

그 덕분에 아편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해에는, 많은 조선인이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인이 아편 농사를 짓다 보니까 많은 사람이 아편 중독자가 된다.

거기에 더해서 일본군이 버는 돈으로 독립운동을 할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샘슨과 아편 중계 무역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상하이 총회의 지배인이 나를 찾았다.

“조지 사장님, 가와시마 요시코라는 여성분이 전화하셨습니다.”

관동군 아편 공급 루트를 어떻게 뚫었는지 궁금해하는 샘슨을 잠시 자리에 놔두고 전화를 받으러 갔다.

“예, 공주님, 조지 리입니다.”

“조지 상! 나 어떡해요?”

뭘, 어떡해?

밑도 끝도 없이 어떡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하냐?

“공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젯밤부터 요시모토 상인회장이 연락되지 않는데요.”

“왜요?”

아마, 요시모토는 지금쯤이면 중국인 거주지역 갑둑 어딘가에 산채로 파묻혀있겠지만, 모른 척했다.

“모르겠어요. 요시모토 상이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데요.”

“공주님, 어디 다른 곳에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자는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다들 걱정이 많아서요.”

“제가 볼 때 요시모토 회장도 여자를 참 좋아하던데, 어디서 여자하고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그럼, 다행인데···.”

요시모토 때문에 답답해하던 가와시마는 드디어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조지 상, 만약, 오늘 요시모토 회장이 돌아오지 않으면, 저는 톈진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아요.”

“아니, 공주님, 왜요?”

“제 안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이런이런, 공주님이 상하이를 떠나시면 저는···.”

“나도 조지 상과 헤어지기 싫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그리고, 어제 내가 말했던 일은 잘됐으니까 조지 상에게 따로 연락이 갈 거예요.”

“공주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지 상의 아편을 내가 아는 분이 모두 사주신다고 했어요.”

“공주님, 그깟, 아편은 안 팔아도 됩니다. 저는 그냥 공주님이 이곳 상하이에 머무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조지 상, 나도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그럼, 공주님께서는 언제 다시 상하이로 오십니까?”

“요시모토 회장이 돌아오면 계속 상하이에서 지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톈진으로 가서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요시모토를 죽이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1932년 1월 28일 상하이 1차 사변 때까지는 역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가와시마 요시코가 나한테 푹 빠져 있으면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너무나 컸다.

‘우와! 큰일 날 뻔했네. 이용하기 좋아서 잘해줬는데 조금만 삐끗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일단은···.’

“공주님, 그럼 제가 나중에 톈진으로 찾아가도 됩니까?”

“정말요?”

“예, 어차피 계약하려면···.”

“아! 그렇겠군요. 그럼, 내가 톈진에서 일을 서둘러 진행할게요.”

“예, 공주님께서 서둘러 주셔야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습니다.”

“조지 상, 알았어요. 그럼, 그때 봐요.”

가와시마 요시코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조지, 일은 이제 완전히 마무리된 건가?”

“예, 계약서만 받으면 될 것 같네요.”

“그래? 그럼, 나도 지금부터 준비하면 되겠지?”

“예, 일단 10만 명분을 준비하시면 될 거예요.”

“뭐라고? 10만 명분이라고?”

“예, 아직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매달 그 정도 양은 필요할 거예요.”

“이야! 이거 진짜 장난 아니군.”

샘슨은 큰돈을 벌게 됐다고 좋아서 난리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샘슨하고 이익을 나눠야 해서 실제로는 내가 먹을 양이 너무 적었다.

“저···. 샘슨, 거래량이 많고 앞으로도 꾸준히 거래할 텐데 물건 가격을 좀 싸게 해주세요.”

“가격을 싸게 해달라고?”

“예, 어차피 샘슨은 신경도 안 쓰던 거였잖아요?”

“흠···. 내가 조지하고만 거래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다른 거래처 때문에 그것은 조금 곤란하네.”

누가 유대인이 아니랄까 봐. 

잔머리 굴리는 것 봐라.

“샘슨, 대신 내가 만주에서 유대인들이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점포들을 알아볼게요. 어때요?”

“직접 판매라···.”

“예, 이번에 관동군이 일본에서 여자들도 직접 공수해서 상인들에게 임대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관동군이 공창까지 하겠다는 소린가?”

“예, 내가 듣기로는 7만여 명 정도라고 그랬어요.”

“와우! 이거 구미가 점점 당기는데.”

“아편과 창녀, 이거 돈이 될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물건 가격을 좀 깎아주세요.”

돈이 된다면 뭐든 다하는 유대인이 이걸 거절한다고?

죽어도 그럴 일은 없다.

그럼, 나는 왜 하지 않느냐고?

나는 사람도 조직도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할 수가 없다.

“좋네. 많이는 안 되겠지만, 상점 개수를 봐가면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에이! 좀 깎아줘요. 어차피, 내가 아니었으면 하지도 못했을 일이잖아요.”

“일단, 5%까지는 깎아주겠네. 그리고, 상점을 여는 개수를 보고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고.”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으니까 소설 속에서 맨날 구두쇠로 등장하지. 그래! 그래도, 5%면 돈이 얼마냐?’

* * *

미국에서 항공사 직원으로 위장한 육군항공대 장교들과 병사들이 상하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코르스키 S-38 비행정도 6대가 함께 도착했다.

왜? 수송기가 아니고 비행정이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현재는 기술의 한계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 드디어 우리 태평양 항공사의 비행기가 도착했군요.”

옆에서 인수 서류에 서명하라고 내미는 커닝엄 총영사를 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조지 씨, 저것들은 모두 육군항공대의 재산입니다. 사고 안 나게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해군이 아니고 육군항공대입니까?”

“예. 해군은 요즘 새로운 군함들을 만들어 내느라 돈이 없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때쯤부터 미국 해군의 군함들이 교체되기 시작했다.

“아! 그렇군요.”

“그리고, 이것은 육군부에서 조지 씨에게 보내는 항공사 운영에 필요한 초기자금입니다.”

그러면서 커닝엄 총영사는 내게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조지 씨, 육군항공대가 지원하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예”

“그리고, 육군부 장관님께서는 웬만하시면, 하와이 도쿄 노선은 개통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상황을 봐서 결정하겠지만, 운항을 해서 항로를 익히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훨씬 나을 겁니다.”

“음”

“이 사업은 저한테 모든 것을 맡긴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가 톈진을 며칠 동안은 다녀와야 합니다.”

“갑자기, 톈진에는 왜요?”

“제가 만주와 허베이 지역에 미국의 첩보 조직을 보강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그쪽 영사관에서 나를 좀 찾아와 달라고 해주십시오.”

이것은 내가 톈진에 도착해서 관동군과 협상하고 계약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이었다.

“갑자기, 만주와 허베이 지역에 첩보망을 만들겠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일본을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태평양 전쟁 초반에 정신없이 얻어터졌지.

“일본이 조만간 재밌는 일을 할 것 같다고 합니다.”

“관동군은 이미 재밌는 일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1928년 관동군은 중국 북양 정부의 원수이자 봉천군벌의 수장인 장쭤린을 말을 듣지 않고 관동군의 일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폭사시켜버렸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한 짓은 절대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었다.

“재작년에 있었던 일의 연장선상에서 일을 또 벌일 생각인가 봅니다.”

“그럼, 본격적인 만주 점령입니까?”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장제스의 국민정부가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겠군요.”

“아마도요···.”

외교관은 공식적으로 국가가 파견하는 간첩이다.

미국의 커닝엄 총영사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럼, 조지 씨는 만주의 관동군을 감시해야 한다는 거죠?”

“예, 이미, 관동군을 감시하고 계실 테지만 이번에 좀 더 보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음···. 혹시, 뭐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이번에 사순 양행이 만주에 상점 몇 곳을 오픈할 겁니다. 거기와 연계해서 정보를 수집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순 양행이요?”

“예, 앞으로 한동안은 안정적인 정보 수집이 가능할 겁니다.”

“꽤나 괜찮은 방법이군요. 본국에 보고하고 조지 씨 의견대로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총영사님 잊지 마시고 톈진의 영사관에 연락을 꼭 해주십시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 * *

역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중국에서 벌어진 1, 2차 국공내전과 일본의 중국 침략 시간이 이상하게 서로 비슷한 시간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연히 벌어진 일일까?

미안하지만 그건 절대로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관동군의 첩보 조직과 중국공산당의 합작품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장제스가 관동군과 중국공산당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이다.

장제스 나름대로는 자기가 의도적으로 중국공산당과 일본 관동군을 이용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그만의 착각일 뿐이다.

“사장님, 신부님과 빌리가 집에 도착했습니다.”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아무런 연락도 없이 빈센트와 빌리가 상하이에 도착했다.

“둘은 여전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군요. 그렇지 않아도 한동안 집에 들어가기도 힘들었는데 차라리 잘됐습니다.”

“사장님은 또 어디를 다녀오시려고 그러십니까? 소문에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싸우느라고 사방이 전쟁터라고 하던데.”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어요?”

“제가 바보도 아니고···. 하다못해 길거리 인력거꾼도 아는 정보인데요.”

“하하, 그래요?”

“예, 사장님.”

“나는 잠시 톈진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톈진이요?”

“예, 톈진에 다녀와서는 또 도쿄까지 시험 비행도 해야 하고 앞으로는 좀 바쁘겠군요.”

“사장님,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 걱정하지 마세요.”

가와시마 요시코와 상하이 일본 총영사관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면서, 며칠 동안은 가족들에게 충실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빈센트 신부와 빌리와 밀담을 나눴다.

“신부님, 한동안 몸 좀 추스르셨다가 조선에 좀 다녀오실 수 있을까요?”

“조선에는 무슨 일로?”

“몇 가지 신부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요.”

“몇 가지라면, 한동안은 조선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인가?”

“예, 신부님. 어쩌면 몇 년 정도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빈센트 신부는 샤본 레이놀즈와 결혼하면서 뉴욕의 교구 성당에 다니면서 인연을 맺은 사이다.

십 년 이상을 교류했고, 서로의 가치관과 사상이 통하는 사이가 되면서 더욱 친해진 사이였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