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니가 왜 여기서 나와?
12.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항공기의 활약상을 직접 목격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공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이제는 바다뿐만 아니라 하늘도 영토로 간주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적대국의 하늘길을 낱낱이 파악하려고 무던히들 노력했다.
“요시모토 회장님, 나를 좀 도와주십시오. 눈앞에 돈이 보이는데 돈을 벌 수가 없으니까 사람이 미칠 것만 같습니다.”
회 한 조각을 와사비가 들어간 간장에 찍어서 입에 집어넣고 있는 요시모토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요시모토 회장님, 진짜 떼돈을 벌 수 있다니까요. 항공노선을 만드는데 협조 좀 해주십시오.”
요시모토 히데오.
상하이 일본인 상인회장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흑룡회 출신으로 일본군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아니, 이보시오. 조지 씨!”
“예”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한다고 해서, 되지도 않을 일이 해결됩니까?”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상하이 상인회장이면, 이게 얼마나 큰 감툽니까? 제발 힘 좀 써주십시오.”
요시모토는 내 태도에 기도 차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식아! 말을 할 때는 입안에 음식은 다 처먹고 해라!
아오! 입 냄새!
“요시모토 회장님, 나는 언젠가는 대일본제국이 탈아입구를 이룩하고, 전 아시아를 백인들로부터 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봐요. 조지 씨! 그런 말도 안 되는···.”
뭐가 말도 안 돼 새끼야?
네 놈들 주둥이로 그렇게 외치면서 전 아시아를 전쟁터로 만들었으면서, 하긴 아직은 힘이 좀 부족하겠구나.
“요시모토 회장님, 세상을 크게 그리고 멀리 보십시오. 도쿄 상하이 간 노선이 생기면 일본 해군은 도쿄에서 상하이까지 들어오는 길을 훤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상하이 주둔 중국군의 배치도 하늘에서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설마, 이 자식 육군에서 파견한 첩자는 아니겠지?
내가 알기로는 상하이는 해군 담당이었는데.
“거기에 더해서 하와이 도쿄 간 노선까지 동시에 개설하면, 일본 해군이 알고 싶은 것을 단 한 방에 해결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상하이 도쿄 노선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던 요시모토가 하와이 도쿄 노선은 눈까지 반짝거리면서 흥미를 보였다.
‘그래, 어서 빨리 미끼를 물어라. 너희도 항로를 알고, 미국도 항로를 알고, 그렇게 서로 알고 있으면 좋잖아.’
“그런 문제는 외교관들이 결정하는 거지. 나 같은 상인회장이 무슨 힘이 있다고 나를 찾아와서 이러는 겁니까?”
니가 일본군 첩자니까 그렇지.
쌍놈의 자식이 진짜 안 넘어오네.
“내가 이미 미국 영사관에도 로비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시모토 회장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아니, 나한테 그런 일들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나보고 계속 도와 달라는 겁니까?”
“왜 도움이 안 됩니까? 도쿄 졸부들의 돈을 털어먹을 기회잖습니까? 솔직히 일본에서 아편을 하면 죽지만, 여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나한테 아편을 팔라는 말이요?”
“아! 진짜 머리 안 돌아가시네. 그걸 왜 요시모토 회장님이 합니까? 저쪽에 가면 모든 것이 다 있지 않습니까?”
내가 난징루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자.
“아니, 그러니까 항공노선이 생겨봐야 저쪽만 돈을 벌 것 아니요?”
이 새끼는 진짜 돌대가리였다.
도쿄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여기서는 할 수 있다.
그것을 중간에서 중계만 해도 얼마의 수입이 생기겠는가?
손님을 데려오는 것은 모두 요시모토의 몫이다.
그럼 당연히 엄청난 수입이 보장된다.
그런데, 이 닭 대가리는 그것을 몰랐다.
“요시모토 회장님, 나는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손님을 모집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하겠죠? 그것을 요시모토 회장님이 하시면 돈을 얼마나 많이 벌겠습니까?”
‘제발 좀 물어라! 너는 돈도 벌고, 일본 해군은 상하이 일대 지도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하와이 지도는 덤이다.’
한참 대가리를 굴리던 요시모토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닭 대가리가 이제야, 눈앞에 돈이 쌓여 있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이거 생각해보니까 괜찮을 것 같군요.”
“괜찮을 뿐입니까? 도쿄 졸부들의 돈을 털어먹고, 상하이와 중국의 고위 인사들에게 도쿄를 보여 주면서, 대일본제국과 중국의 차이를 알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오! 그런 수가···.”
“생각해보십시오. 발전된 도쿄를 보면서 중국인들이 얼마나 자괴감을 느끼겠습니까?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모습에 스스로 일본의 노예가 될지도 모릅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한참 꿈을 꾸던 요시모토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그런데 조지 씨, 당신은 왜 이렇게 일본 편을 들어 줍니까? 당신은 미국인이 아니오?”
“내가 미국인이면 어떻고? 일본인이면 어떻습니까? 나는 돈만 벌면 됩니다.”
“돈이요?”
“예, 돈이요. 내가 미국인이라고 해서 미국이 나한테 십 원 한 장 줍니까?”
내가 돈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만 나중에 편하다.
“이거, 어쩐지 조지 씨와 말이 통할 것 같습니다. 우리 술이나 한잔 더 하러 가시겠습니까?”
* * *
일본의 조계지인 훙커우는 유흥 시설이 별로였다.
그래서, 나와 요시모토는 난징루로 자리를 옮겼다.
왈츠에 맞춰서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리고, 무대에서는 원피스 비키니나 짧은 스커드를 입은 무용수들이 음악에 맞춰서 흥을 돋우고 있었다.
자리에 앉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요시모토는 무대 위 무용수들의 다리를 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이놈들은 진짜 특이해! 뭔가를 훔쳐보면서 흥분하는 것을 보면, 진짜 특이한 족속들이라니까’
나는 댄스홀을 올 때마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윤호의 기억이 믹스 패치가 끝난 후로는 댄스홀의 모든 것이 허접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특히, 조명은 답이 안 나왔다.
레이저와 무빙 머신이 번쩍이고 스모그가 피어나는 조명을 이미 알고 있는데 그저 전구가 깜빡이는 수준은···. 진짜 개 노답이었다.
그때, 춤을 추는 사람 가운데 눈에 띄는 여자가 있었다.
대부분의 중국인 여자들은 화려한 치파오에 굽 낮은 단화를 신고 노는데, 저 여자는 분홍색 투피스 정장에 레이스로 장식한 보라색 모자까지 쓰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얼굴이 눈에 확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춤을 추는 자세도 옷을 입은 품격도 남달랐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보는 눈이 대개 비슷하듯이, 그 여자를 탐내는 남자들의 시선이 여러 곳에서 느껴졌다.
여자를 바라보는 내 모습을 요시모토가 보면서 비웃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조지 씨가 보기에도 미인이죠?”
“누구요?”
“지금까지 보고 있던 저 여자 말이요?”
내가 여자를 쳐다본 것은 미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데, 요시모토의 생각을 바로잡아줄 필요까지 없어서 그냥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저 여자가 청 제국의 마지막 공주라고 하더군요. 일본에서 교육받았고. 결혼을 했지만 어쩌다 이혼하고 상하이로 왔다더군요.”
말은 바로 해야지.
청 제국의 마지막 공주가 아니라 숙친왕 산치의 딸이지.
가만, 왕의 딸이니까 공주가 맞기는 하군.
“아! 그렇군요. 어쩐지, 남다른 기품이 느껴지더니 공주님이셨군요.”
“공주여서 기품이 남다르겠습니까? 일본에서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아서 그런 거죠.”
요시모토가 너무나도 어이없는 개소리를 하도 자연스럽게 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일본제국입니다. 천박한 만주족을 저렇게 품위 있게 교육하다니···.”
“우리 대일본제국은 이미 유럽의 한나라로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잖소?”
“그러니까 항공노선을 만들자니까요. 중국 놈들을 도쿄에 풀어만 놓으면, 차원이 다른 도쿄의 발전상에 얼마나 감동하겠습니까?”
“나도 조지 씨의 말처럼 힘을 좀 써볼 테니까 너무 보채지 좀 마시오.”
그래 자식아!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요시모토 회장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진짜 돈이 눈앞에서 어른거립니다.”
“아이고, 알았다니까요.”
한참을 남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춤을 즐기던 여자가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녀가 앉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들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이 무섭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Foreign Y.M.C.A.에 드나들면서 서로 인사를 나눴던 국민당 주요 간부들이 여자의 동석자들이었다.
더구나 쑨원의 아들로 국민당 최고위급 간부인 쑨커가 여자의 파트너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젠 확실하네. 저 미친년이 만주국 사태와 1.28 사변의 주범이었네. 저기 앉아있는 병신들이 저년한테 속아서 정보를 모두 넘긴 거였군.’
가와시마 요시코, 중국명 금벽휘. 저년이 범인이었다.
만주 사태를 감추기 위해서 상하이를 침공하게 만들고, 중국군에 허위 정보를 흘려서 중국군이 다 이긴 전투를 포기하게 만든 여자였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거요? 혹시, 공주님이 마음에 듭니까?”
요시모토의 말에 나는 살짝 웃어주면서
“왜요? 내가 마음에 들면 소개라도 해주려고요?”
“뭐, 소개 정도야 못할 이유가 없지요.”
“내가 요시모토 회장님께 저런 미인을 소개받는다면 영광이죠. 그런데, 보면 볼수록 참 마음에 드는군요.”
“하하하, 조지 씨는 미국에서 생활했다더니 그거 혹시 거짓말 아닙니까? 미국에서 살면 하얀 피부에 늘씬한 여자들이 많지 않소?”
“그런 백인 미녀들이 우리 같은 동양인을 사람 취급이나 한답니까?”
“내가 알기로는 조지 씨도 부인이 백인인 것으로 아는데, 혹시 아닙니까?”
역시나 일본 정보원들도 나에 대해서 이미 파악을 하고 있었다.
“내 아내는 좀 특별한 사람이라서···. 하하”
“내가 자리를 한번 만들어 드리겠소. 내 은혜를 잊지 마시오.”
“소개나 해주고 은혜를 말씀하십시오.”
“아무튼, 내가 소개해줄 테니까 며칠만 기다려 보시오.”
“요시모토 회장님, 저 여자는 굳이 소개해주지 않아도 되니까, 상하이 도쿄 간 항공노선이나 만들자니까요?”
“그 이야기는 알았으니까 그 정도만 합니다. 내가 분명히 약속하는데, 나도 힘을 써보겠소.”
* * *
기억 속에 가와시마 요시코는 1931년부터 상하이에서 주로 활동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아무래도 기록의 오류로 보였다.
만주와 일본 그리고 상하이를 돌아다니면서 첩자 짓을 한 것으로 보였다.
‘일단, 요시모토가 소개해주면 만나보고 결정을 하겠지만, 가와시마 요시코가 사라지면 역사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긴 하다.'
요시모토를 만난 다음 날도 관동군이 파견해 놓은 첩자를 만나서, 항공노선을 만들면 얼마나 일본에 이익이 되는지 설명하고 또 술을 퍼마셨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힘을 써 줄 만한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아내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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