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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세계의 ‘정청’을 떠 올리게 하는 남자. (10/225)

10. 신세계의 ‘정청’을 떠 올리게 하는 남자.

10. 신세계의 ‘정청’을 떠 올리게 하는 남자.

난징루 쉰시지에(신세계).

상하이 갑부 황추지우가 만든 위락시설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무대에는 패키지 무용수들과 함께 노래하는 가수가 눈에 들어왔다.

무용수들과 가수는 하얀색 중절모를 쓰고 하얀색 원피스 비키니에 빨간색 깃털 솔을 두르고 화려한 무대를 연출하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한잔하고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바이러문(백락문) 클럽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샘슨은 이런 유흥업소에 자주 놀러 다녔는지 노는 자세가 자연스러웠다.

상하이 총회 멤버들이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접대하는 여성들이 우리 옆에 한 명씩 앉았다.

“자! 자! 모두들, 오늘의 주인공인 조지 리를 위해서 한 잔씩 듭시다.”

샘슨이 손에 술을 한잔 들고 서서 다 같이 건배를 하자고 제의했다.

“조지, 상하이 입성을 환영해.”

“조지, 상하이에서 대박 날 거야.”

다들 내가 상하이에서 성공하길 기원해줬다.

‘그래, 고맙다. 너희들의 말처럼 나는 상하이에서 꼭 성공할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술을 한잔 들고 멤버들의 축원에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상하이에서 모두 성공하실 겁니다.”

“치어스!”

“치어스!”

술잔을 비우자, 옆에 앉은 접대 여성들이 빈 술잔을 재빨리 채웠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은 내 눈에는 그다지 흥겹지도 화려하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지 분위기가 즐거워 보였다.

무대에는 악단들이 왈츠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파트너를 데리고 나가서 춤을 추면서 즐기고 있었다.

“사순, 오랜만에 들렸군.”

걸걸한 중국어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렸더니 험악한 인상의 호위들에 둘러싸인 중년의 중국인이 보였다.

“오! 두 선생, 바쁘지는 않으십니까?”

샘슨과 다른 일행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년의 중국인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저자가 두웨성인가? 탄탄한 체구에 강렬한 인상, 그가 맞는 것 같군.’

“저 친구가 오늘의 주인공인가? 사순이 예약까지 해서 누군가 했더니, 혹시 일본인은 아니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중년의 중국인이 뭐라고 말을 하자 샘슨이 나를 보면서

“조지! 여기, 이분은 두 선생님이시네. 상하이에서 사업을 하려면 반드시 알아둬야 할 분이시니까, 어서 일어나서 인사라도 드리게”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온 조지 리라고 합니다”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나를 대신해서 샘슨이 통역을 해줬다.

“두 선생, 여기 이 친구는 미국에서 온 조지 리라고 합니다. 이번에 상하이에 사업차 왔습니다.”

“아! 그래. 나는 일본인인 줄 알았다.”

“아이고, 아닙니다. 조지는 확실한 미국인입니다. 미군 장교 출신이거든요.”

샘슨과 중국인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옆에서 보고만 있자니 좀 답답했다.

아무래도 사업을 위해서라도 중국어를 배워야만 할 것 같았다. 

“나도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은데 옆에 호위들 때문에 불편해서···. 차라리, 자리를 옮기지 않으시겠습니까?”

“두 선생, 잠시만요.”

샘슨은 중국인과 이야기를 하다 멈추고 나를 보면서

“조지, 두 선생도 함께하고 싶다는데 어떤가?”

“나는 괜찮습니다.”

“그럼,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 괜찮지?”

“예, 다른 곳도 한번 가보죠.”

* * *

쉰시지에(신세계)를 나와서 바이러문(백락문) 클럽의 대형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도 쿵작거리면서 신나는 왈츠 곡이 흘러나왔고, 많은 사람이 춤을 추면서 화끈하게 밤을 불태우고 있었다.

“여기는 내가 자리를 마련할 테니까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상하이를 장악한 폭력조직 칭방(청방)의 3대 대형으로 불린다고 하더니 사람을 상대할 줄 알았다.

사람들을 관리할 줄 알고 사람을 구별할 줄도 알았으니까 ‘상하이 밤의 황제’라고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두웨성은 곧 암살 위기가 다가온다.

“샘슨, 두 선생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통역 좀 해주겠습니까?”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두 선생 신상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냥, 내 말을 통역만 해주면 좋겠는데 안 됩니까?”

샘슨이 두웨성에게 뭐라고 말했고 두웨성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나를 불렀다.

“두 선생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여기는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말하기 곤란해요. 잠깐만 조용한 방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샘슨과 두웨성은 다시 이야기했고 두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서 룸을 나갔다.

“자! 여기는 조용한 곳이니까 해줄 말이 있으면 해봐.”

“며칠 있으면 국민당군이 공산당군을 습격할 거예요. 그때, 공산당 하수인들이 말이 뛰노는 절에서 두 선생을 습격할 거예요.”

“뭐라고? 조지, 그게 정말이야?”

내 말에 샘슨은 표정이 확 변하면서 엄청나게 놀란 표정이었다.

“어서, 두 선생에게 말해요.”

샘슨의 말을 들은 두웨성의 표정도 놀란 듯 변했다.

“조지, 두 선생이 국민당군이 공산당군을 습격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데?”

“내가 가끔 미래를 내다볼 때가 있어요. 좋은 인연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가끔 그런 일이 생겨요.”

샘슨이 다시 두웨성에게 내 말을 전했지만, 두웨성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조지, 좋은 말로 할 때 어디서 들었는지 말하라는데?”

“훗!”

나는 샘슨의 말을 듣고 피식거리면서 코웃음을 쳤다.

“샘슨, 사람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믿으라고 하세요. 내가 가끔 미래를 본다는 것을 믿기 싫으면 말라고 하십시오.”

샘슨이 다시 내 말을 전했고 두웨성은 큰 소리로 웃어 재꼈다.

“하하하, 이거 뜻밖에 귀인을 만났군.”

“조지, 너한테 귀인이라고 한다.”

귀인?

내가 두웨성에게 있어서 귀인은 맞다.

만약, 두웨성이 끝까지 나와 함께 한다면 편하고 안락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샘슨, 두 선생에게 습격 사건이 끝나고 나면, 일주일간은 절대로 훙커우에는 가지 말라고 하세요.”

샘슨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정말이야? 거기는 또 왜?”

‘이 자식이 갑자기 말이 짧아지네. 나중을 위해서 진짜로 중국어를 배워야겠다.’

“어서, 전해 주기나 해요. 훙커우에 가면 공산당으로 위장한 일본군들이 저격에 나설 거예요.”

“진짜야?”

아오!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진짜니까 어서 통역이나 해라!

“빨리 통역이나 하세요.”

샘슨의 말을 들은 두웨성은 이번에는 진짜로 놀란 표정이었다.

“훙커우는 절대 가지 말라는 말이지···.”

혼자서 뭐라고 말을 한 두웨성은 샘슨에게 뭐라고 말하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조지, 만약 당신의 예언이 틀리게 되면, 당신은 상하이에서의 사업은 포기해야만 할 거예요.”

나도 잘 안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고

두웨성은 미신을 좋아하고

미래에 일어날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두웨성과 연대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하는 것이 좋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 *

두웨성은 징안스(정안사) 경마장으로 수익금을 받기 위해서 가면서 며칠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생전 처음 보는 미국인의 찜찜한 예언. 

만약, 자신이 국민당 고문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국민당군이 공산당군을 습격한다는 사실까지 예언을 했기 때문에 믿지 않기에는 뭔가 좀 불안했다.

그렇다고, 상하이의 진정한 주인인 자신이 겁을 집어먹고 피할 수는 없었다.

두웨성이 타고 있는 인력거가 커브를 틀자 주위에서 길을 걷던 사람들이 갑자기 권총과 칼을 꺼내 들고 인력거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따꺼! 습격입니다.”

“탕!”

“탕!”

“저, 개새끼를 죽여라!”

“죽여!”

두웨성이 탄 인력거와 경호원들에게 온갖 욕설을 내뱉으면서 권총까지 쏘면서 달려왔다.

“막아!”

“이런, 개새끼들이 따꺼를···.”

몇 명의 경호원들이 권총에 맞아서 쓰러지자 칼을 든 습격자들은 쓰러진 경호원들에게 칼을 쑤셔 박았다.

죽어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본 두웨성은 눈이 뒤집혔다.

얼마나 아끼는 동생들인가?

얼마나 사랑하는 제자들인가?

그런데, 그런 동생들이 그런 제자들이 눈앞에서 쓰러져 가고 있었다.

두웨성은 만약에 대비해서 인력거 안에 숨겨뒀던 기관단총을 꺼내 들었다.

“모두 고개 숙여라! 개새끼들아! 너희는 다 죽었어!”

“두 두두 두두!”

두웨성의 기관단총이 불을 뿜어내기 시작하자 인력거로 다가오던 습격자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빨갱이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 * *

공산당 하수인들에게 습격을 받은 두웨성은 며칠 지나서 일본의 조계지인 훙커우를 찾았다.

상하이 주재 일본 상인회장인 요시모토의 초청으로 방문하고 있었다.

“두 선생, 이렇게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훙커우도 상하이인데 내가 어딘들 못 가겠습니까? 그래,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우리 일본인들이 홍커우를 벗어나서 장사하려면 누군가 꼭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두 선생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굳이, 훙커우 밖으로 나올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안전하게 훙커우에서 장사하면 되잖습니까?”

시류에 영합해서 살아가는 다른 폭력배와 다르게 두웨성은 공산주의자와 일본을 극도로 싫어했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거나 린치를 가했다.

“두 선생, 우리는 서로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는데, 어째서 계속 우리 일본과 엇나가는 겁니까?”

요시모토의 물음에 두웨성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난 그다지 당신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내자는 겁니까?”

“그냥, 훙커우 밖으로 나오지 마시오.”

“흥! 분명, 두 선생, 당신은 후회하게 될 거요.”

“후회? 날 후회하게 만들어 보시든지···. 그럼, 이제 할 이야기는 끝난 거요?”

두웨성은 요시모토와 회담을 끝마치고 일본 조계지를 벗어나자 인력거에서 내렸다.

그리고, 대기 중이던 뷰익 자동차로 갈아탔다.

두웨성으로 위장한 부하가 인력거를 타고 달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웨성의 귓가로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

“탕!”

“이런 개새끼들!”

“빨갱이와 쪽발이는 이제 내 평생의 적이다. 네놈들은 앞으로 절대로 상하이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주마!”

* * *

오늘도 나는 상하이 총회에 출근해서 카드 짝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때, 총회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검은색 비단 창파오를 입은 두웨성이 나를 향해서 걸어왔다.

내 앞으로 걸어온 두웨성의 두 눈은 약간 충혈이 돼 있었고, 표정은 결의 찬 표정이었다.

“조지! 넌 앞으로 내 가족이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뭔가 멋진 말인 것 같은데···.’

두웨성의 뒤에서 젊은 남자가 한 명이 튀어나와서 두웨성이 한 말을 나한테 재빨리 통역을 해줬다.

“대형께서는 오늘부터 조지 님을 가족으로 생각하시겠답니다”

나는 두웨성을 향해서 포권의 예를 취했다.

처음 볼 때부터 영화 ‘신세계’의 ‘정청’ 같은 느낌이더니, 정말로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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