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오늘도 출근했다. (9/225)

9. 오늘도 출근했다.

9. 오늘도 출근했다.

상하이.

‘동방의 파리’라고 불리는 도시.

봉건과 반봉건,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 착취와 탐욕 그리고 아편과 환락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도시.

상하이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집을 구하기 전까지 호텔 생활을 시작했다.

동양인인 내가 미국인인 아내 그리고 아이들까지 무려 10명의 가족을 데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자, 바로 상하이 호사가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다.

나는 켈리와 머피를 데리고 영국인들이 만든 사교 클럽 상하이 총회의 문들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세 분이십니까?”

검은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빨간색 조끼를 걸친 상하이의 총회의 웨이터가 다가와서 물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면서 자리로 이동하는 동안 나를 주시하는 시선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다들 나를 주목하고 주시해라.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누군지까지 알아내라’

자리를 안내받고 웨이터에게 팁을 주면서 내가 앉은 테이블 주위의 다른 테이블에 손님을 받지 말라고 했다.

“저, 신사님들 그러면 저희가 손해가···.”

“내가 나갈 때 옆 테이블까지 같이 계산하지. 그럼 되겠지?”

“네?”

아무리 졸부가 넘쳐나는 상하이라고 해도 나 같은 미친놈을 본 적은 없었는지 입만 벌리고 대답이 없었다.

“그러면 되냐고 묻잖나?”

“예, 그러셔도 됩니다. 그럼 주위 테이블은 비워 두겠습니다”

“그래요. 가봐요.”

웨이터는 공손하게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켈리, 인천의 고무신 공장은 완공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연말이면 공장 가동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연말이라···.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당기세요”

“사장님,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가 실제 고무신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최대한 공장 건설을 서둘러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봅시다.”

“예···? 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중에 보면 알 거예요. 그러니까 내 말대로 좀 서둘러서 완공해주세요.”

고무신 공장을 막상 인천에 짓고는 있지만, 실제로 내가 노리는 시장은 조선이 아니었다. 

나는 대가리 숫자가 어마어마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주 시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무신을 찍어내는 성형 기계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디자인과 일본의 게다짝과 비슷한 디자인 그리고 동남아시아용 샌들을 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상표도 박을 것이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V자 바로 조선의‘나이키’다.

“켈리, 그리고 일할 인부들은 모두 구했어요?”

“예, 조선인 직원들을 뽑아서 기술 교육을 하는 중입니다”

“일본 놈들이 뭐라고 하지는 않고요?”

“뭐, 가끔 찾아오기는 했지만, 특별히 방해하고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조선인 직원들을 잘 좀 챙겨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앞으로 웬만하면 조선 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켈리가 계속해서 공장을 잘 관리하세요”

“아니, 사장님 왜요?”

“나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시간을 내기가 힘들 것 같아요”

“머피, 자바의 고무 농장들과 계약을 잘 마무리 지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자바에서 인천까지 원료 수송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공장 완공 시기를 연말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일부터 바로 배부터 알아보러 다닙시다.”

* * *

와이탄에는 외국계 금융 시설과 해운 회사들이 몰려 있었다.

1.5KM 구간에 영국계, 미국계, 일본계 은행들과 상사들이 자신들만의 성을 짓고 중국의 부를 약탈하기 위해서 꽈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먼저 찾은 곳은 미국계 회사인 사순 양행이었다.

아편 판매와 해운업을 하던 곳이었는데, 요즘은 부동산업으로 업종을 바꾸느라 상선이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영국계 해운 회사인 이태 공사를 찾았다.

용선을 담당하는 서기가 우리를 맞이했지만 나는 이태 공사 지배인과 만나기를 원했다.

“조지 리 씨, 안녕하십니까?”

이태 공사의 지배인은 벌써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저를 아시는군요? 그런데 지배인님의 성함은?”

“제임스 그랙입니다.”

“그랙 씨였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 그런데 조지 리 씨, 용선 담당 서기 대신 저를 찾으셨다고 하시던데 무슨 이유 때문이십니까?”

“우리가 장기 계약을 맺고 싶은데, 이태 공사는 몇 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있습니까?”

“계약 기간은 조지 리 씨가 원하는 대로 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그럼, 일 년마다 갱신되는 용선 계약을 합시다. 그리고 배에다 가끔 특별한 물건을 실어도 됩니까?”

“특별한 물건이 어떤 거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문제가 생길 물건은 안 됩니다”

내가 여유가 있다면 직접 해운 회사를 하나 만들고 싶은데 돈이 부족했다.

“그랙 씨, 그럼, 특별한 물건을 운송할 때마다 특별 운임을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조지 리 씨, 특별 운송은 너무 위험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회사가 문을 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제임스 그랙은 내가 말하는 특별한 물건이 아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들었다.

“사순 양행에 보증금을 입금해 놓도록 하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보증금으로 해결하십시오.”

아편 운송은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해운 회사에도 엄청나게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제임스 그랙은 아편 운송은 큰 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랙 지배인이 결정할 때까지 앉아서 차분히 기다려줬다.

“조지 리 씨, 특별 운송을 자주 하실 건가요?”

“아뇨.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달라질 겁니다.”

“음···. 좋습니다. 수익은 어느 정도까지 보장해 주실 겁니까?”

“kg 당 거래 대금의 10%로 합시다.”

“너무 박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루트를 개척하려면, 처음에는 이익이 남지 않습니다. 대신, 다음 계약 때 수익을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음···.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이태 공사와 용선 계약을 끝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머피가 내 팔을 붙잡았다.

“사장님, 정말로 아편 거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남들도 다 하는데 뭐가 문젭니까? 상하이까지 왔는데 돈을 벌 수 있는 만큼 벌어 봅시다”

“사장님, 하지만 아편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사형입니다.”

사형?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왜냐면, 아편 거래를 단속하는 사람이 아편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도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이나 사러 갑시다.”

“사장님, 우리는 아편 거래처도 없는데 어떡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참 걱정도 많다.

거래처가 없으면 새로 뚫으면 될 것이 아닌가?

“내일부터 거래처를 뚫으러 다닐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이나 보러 가자고요.”

머피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 * *

쓰난루는 1900년대 초 서양식 고급 빌라가 들어서며 외국인을 비롯해 상하이 정부 관료들과 유명 인사들이 모여 산 동네다. 

한적한 주택가로 가로수와 함께 고풍스러운 유럽식 주택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며칠간의 호텔 생활을 마무리하고 유럽식 저택으로 이사를 했더니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넓은 정원을 뛰어다니면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제1차 상하이 사변이 걱정됐다.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상하이도 살기에는 나쁘지 않네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아내가 곁으로 다가와서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면서 말을 걸어왔다.

“그랬어?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뭐가 얼마나 다르겠어?”

“그런데, 아이들을 보는 당신 얼굴이 별로 편안해 보이지는 않던데, 또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확실히 아내는 눈치가 빨랐다.

작은 표정 하나까지도 십 년 이상 같이 살아온 아내의 눈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응, 뭐 하나 걱정거리가 있어서 그랬어.”

“무슨 걱정거린데요?”

“아직은 다가오지 않는 미래의 일이야.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당신도 편하게 즐기면서 살아.”

아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샤본, 나는 내일부터 좀 바쁠 것 같으니까, 당신도 상하이 귀부인들의 친선 모임 같은 곳에 가입하는 것은 어때?”

“나는 아이들이 안정될 때까지는 좀 지켜보고요.”

“아! 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말고 가정교사를 불러서 수업하는 것이 나을 거야.”

“왜요?”

“상하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골목 하나만 잘못 들어가도 큰일이 나는 곳이야. 그러니까 당신도 아이들도 다들 조심하라고”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정말 그래요?”

“응! 내가 경호원을 구할 때까지는 항상 조심해. 알았지?”

“예. 알았어요.”

* * *

나는 고무신 공장을 켈리와 머피에게 맡겨 놓고 매일 상하이 총회에 출근했다.

출근해서 주로 하는 일은 상하이 경제인 언론인 그리고 중국인 유명 인사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일이었다.

귀족들의 스포츠인 당구를 치고, 카드를 하면서 매일매일 사람들을 소개받고 알아 나갔다.

“헤이, 조지, 한 게임 할 텐가?”

사순 양행의 대표인 샘슨은 내가 사순 양행에 거금을 입금하자 그다음부터 부쩍 친한 척을 했다.

“샘슨, 내가 좀 활동적이어서 그런지, 이렇게 앉아서 카드를 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 이번에는 사양할게”

“그래? 그럼, 내일 오전에 테니스 한 게임 할 텐가?”

“아니, 내일은 내 비행기가 도착하니까 비행기를 타고 오랜만에 하늘을 날아볼 생각이야.”

내 대답이 끝나자 주위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모였다.

“조지, 비행기도 있었었나?”

“아! 내가 비행기 조종사라는 것을 말을 안 했군. 내가 예전에 뚜들겨 팬 독일공군기들이 꽤 된다네”

“오! 정말인가?”

“샘슨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미국 육군항공대 최초의 동양인 장교야. 자! 이 반지를 보게. 이건 공훈 반지이고, 집에는 십자 수훈 훈장도 있네”

“와! 진짜야?”

뭘 그렇게 놀라시나?

이 반지와 훈장을 받기 위해서 피똥 싼 것을 생각하면···.

내 주위로 순식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조지, 나 반지 한 번만 보여줘. 어쩐지 반지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되더라니, 이게 그 유명한 공훈 반지였었군.”

“조지, 자네 비행기는 1인승인가? 2인승인가? 혹시, 2인승이면 나도 하늘을 날아볼 수 없겠나?”

“조지, 이리 와서 유럽에서 전쟁에 참전했던 이야기 좀 들려주게”

그때, 샘슨이 모두의 말을 막으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이봐! 우리가 조지의 환영식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세상을 구한 조지를 위해서 환영식을 여는 것은 어떤가?”

“아! 정말, 우리가 조지의 환영식을 열지 않았군.”

“다들 조지의 환영식에 참가할 텐가? 모두 저녁에 쉰시지에(신세계)에서 만나는 것은 어떤가? 내가 두 선생에게 미리 연락해놓겠네.”

잉?

사순 양행의 샘슨이 두웨성과 친분이 있었던 거야?

이야! 그럼, 앞으로 샘슨과 더욱 친하게 지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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