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슬슬 떠나 볼까?
8. 슬슬 떠나 볼까?
북부 캘리포니아 상공으로 두 대의 전투기가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앞서서 날아가는 전투기가 뒤쪽에서 따라붙는 전투기를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앞선 전투기가 회피를 하기 위해서 선회하면 따라서 선회하고, 급강하하면 같이 급강하하고 만약 모의 전투가 아니었다면 곡예비행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오! 또, 뒤를 잡혔네. 저 자식은 진짜 괴물 같은 자식이네”
헨리 아놀드 소령은 정유회사의 시험 비행사로 일하려던 제임스 둘리틀 대위를 월급을 네 배를 받게 해주겠다고 꼬셔서 나한테 보내줬다.
“부아 아 아 앙!”
“부아 아 아 앙!”
모의 전투를 끝마친 P-10 전투기들이 월로우스 비행장에 차례대로 착륙했다.
“지미!”
나는 기체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둘리틀에게 달려갔다.
“지미!”
“왜?”
나이가 동갑이고 해서 둘리틀과 나는 서로 친구가 됐다.
그런데 이 자식이 시크한 척하면서 은근히 무시하는 눈빛이었다.
“야! 한번 봐주면 안 되냐? 어떻게 한번을 안 져주냐?”
“조지, 내가 너를 한 번씩 잡을 때마다 내 월급이 올라가는데 너 같으면 봐주겠냐?”
‘아오! 내가 괜한 내기를 해서···. 부하들 앞에서 온갖 우세를 다 타네.’
10년 전에 문을 닫은 월로우스 비행장을 육군부 장관에게 청원해서 다시 임대했고, 10년 전에 뿔뿔이 흩어진 월로우스 비행학교의 한인 훈련생을 다시 모았다.
예전에는 교관 5명과 훈련병이 2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 규모까지 모으지를 못햇다.
처음에 헨리 아놀드 소령이 제임스 둘리틀 대위를 교관으로 보내 줬을 때 나는 역사가 나를 돕는 줄 알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면, 둘리틀 대위가 도쿄 폭격을 나서기 전까지 훈련하던 곳이 바로 여기 월로우스 비행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도쿄를 폭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뭔가 운명적이지 않나?
“지미, 오후에 한판 더하자”
“OK, 언제든지 말만 하라고···. 돈을 버는 일은 언제나 즐겁지.”
미국 최고의 곡예 비행사인 둘리틀과의 일대일 전투는 테크닉이 뛰어난 나도 쉽게 이길 수가 없었다.
둘리틀이 전투기를 다루는 테크닉은 일반 조종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교관님, 저도 신청합니다.”
“교관님, 다음 순서는 접니다.”
월로우스 비행학교에서 둘리틀의 인기는 말 그대로 최고였다.
둘리틀과 모의 전투를 한 번씩 하면, 훈련생들의 전투 테크닉이 일취월장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지미, 훈련병들은 어때?”
월로우스 비행학교를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둘리틀의 종합적인 평가를 들어보고 싶었다.
“조지, 내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조종사들보다 열정과 끈기가 넘치고 훈련병들의 지능도 굉장히 영리한 것 같더라”
“그래?”
“응, 내가 친구인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냐? 네 부하는 우리 육군항공대보다 실력이 확실히 더 뛰어나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 나는 훈련병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자료가 없었는데, 네 말을 들으니까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런데 조지? 저쪽에 저 친구들은 비행훈련을 받는 것도 아니던데, 저 친구들은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거야?”
둘리틀의 시선이 닫는 곳에는 10여 명의 한인 청년들이 군장을 멘 채로 연병장을 뛰고 있었다.
월로우스 비행장을 임대하면서 남는 부지에 육군 장교를 교육할 수 있는 시설도 같이 만들었다.
앞으로 일본군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첩보활동과 친일파와 적을 암살하려면 반드시 육군 장교들이 필요했다.
“지미, 앞으로는 공군이 대세가 된다고 하지만, 결국 마지막 마무리는 육군이 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나는 육군 장교들도 같이 키우는 거야”
“조지, 넌 정말 일본과 전쟁을 할 생각이구나?”
“전쟁? 솔직히 전쟁은 무리고, 한 여름밤에 모기처럼 일본군을 괴롭힐 수 있을 때까지 괴롭힐 생각이야.”
“하하하, 모기?”
“응, 모기 몰라? 모기가 얼마나 짜증 나냐? 앞으로 일본은 잊을만하면 내 이름을 떠올리게 될 거다.”
한여름 밤 모기떼에 당해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모기라는 생물이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 존재인지.
하늘이 참 맑고 높았다.
“지미, 한판 뜨자.”
둘리틀은 같잖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콜! 가자. 이번에도 10달러?”
“OK, 10달러. 오늘은 내가 분명히 이긴다.”
파란 하늘을 향해서 P-10 전투기 두 대가 동시에 날아올랐다.
다시 비행훈련을 시작하면서 둘리틀을 보고 숙련된 테크닉을 가진 조종사를 상대로 테크닉으로 상대하려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그렇게 내 꼬리를 잡겠다고 따라와야지.”
둘리틀은 평소처럼 내 꼬리를 잡겠다고 달려들었다.
내가 그동안 둘리틀을 상대하면서 느꼈던 점은 테크닉이 뛰어난 조종사를 상대로 절대 선회를 시도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부 아아아 앙!”
나는 기체의 엔진 토크를 높여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둘리틀은 둘리둥절했다.
그렇게 거리를 벌린 내 기체는 급상승해서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처음으로 둘리틀의 기체를 잡을 수 있었다.
“나이스! 드디어 잡았다.”
처음으로 가상 격추를 당한 둘리틀은 둘리무록한 표정으로 내가 훈련병들에게 강의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좀 전에 너희들이 봤듯이 테크닉이 뛰어난 조종사를 만나면,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기체의 성능을 최대한 이용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
처음으로 둘리틀의 패배를 목격한 훈련병들은 내 강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항공대는 반드시 2인 1조로 움직인다. 우리 보다 경험이 많은 조종사를 상대하면서 기사도를 외치는 놈은 설마 없겠지? 있다면 그 놈은 병신이다. 살아남는 사람이 승자다.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살아남아야 일본군을 또 죽일 수 있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난 너희들에게 기사도네 무사도네 따위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놈들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기를 원할 뿐이다.”
그날 이후로 월로우스 비행학교의 훈련 방법이 변경됐고. 최대한 팀워크를 이루면서 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배워 나갔다.
* * *
월로우스 비행장에서 더부살이하는 육군 장교 훈련병들은 해가 져야만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주목!”
“우리의 훈련 목표는 일차적으로 침투와 첩보 획득 그리고 암살이다.”
나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 모인 훈련병들보다는 육군 장교가 되기 위해 모인 훈련병들에게 훨씬 더 애정이 갔다.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건 남자들이었다.
“우리 미주 한인들은 군인이 될 사람을 아무리 모아봐야 겨우 몇백 명이다.”
“그럼 이 병력으로 어떻게 일본군과 싸워야 할까?”
“방법은 하나다. 적의 우두머리를 날려버리면 된다.”
밤마다 진행되는 교육 시간을 통해서 이윤호의 기억 속에 있는 모든 군사 지식을 최대한 가르쳐 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각종 격투술도 30대 1의 전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서너 명 이상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게 단련시켰다.
* * *
아내와 아이들은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생활이 마음에 드는지 뉴욕에서보다 표정들이 훨씬 밝아져 있었다.
아내는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온 나를 위해서 간식을 챙겨주면서
“조지, 상하이에서 연락이 왔어요.”
“상하이에서? 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아니요. 인천에 짓고 있던 공장이 이제 거의 완공 돼 간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바에서 고무 농장 계약도 마무리가 됐다고 해요”
내가 비행학교를 신경을 쓰는 동안, 아내가 나를 대신해서 그동안 사업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건가?”
“응, 아무리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낯선 곳에 그 사람들만 보내 놓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그래도 켈리하고 머피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일을 잘해줬군.”
“예, 그런 것 같아요.”
공장도 마련했고, 고무 농장과도 계약이 끝났다면, 이제는 진짜 상하이로 가서 일해야 할 시간이다.
“샤본, 그럼 이번에 당신이 데려온 아이들도 데려가야 하겠지?”
아내는 내가 질문 한 문제를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상하이가 아무리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는 발전된 도시지만,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촌 동네인데, 그런 곳에 우리 가족이 가는 것도 불안한 판국에 형편이 어려워서 대신 돌봐주는 아이들까지 데려가야 하는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그 아이들이 어디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데려가자”
아내는 대공황이 시작되고, 다니던 성당을 통해서 아이들을 한 명씩 데려오더니 벌써 데려와서 키우는 아이가 다섯 명이나 됐다.
“그래도 돼요?”
“그럼, 어떡할 거야? 아이들을 버려?”
“안 돼요. 그럴 수는 없어요.”
정말로 내가 아이들을 버리고 갈까 봐서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걱정하지 마! 나도 어릴 적에 어렵게 커봐서 잘 알아. 그냥 아이들도 모두 데려가자. 당신이 원한다면 아이들을 아예 우리 가족으로 입양해도 되고”
“정말요?”
“응, 내가 지켜보니까 우리 아이들하고도 잘 지내는 것 같던데. 당신이 원하면 그렇게 해도 돼”
아내는 내가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아이들을 받아 드릴 줄 몰랐던지 나에게 안겨 오면서 계속해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 * *
캘리포니아를 떠날 준비를 마친 나는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맡아서 운영해줄 세 명을 내 방으로 불러 모았다.
“내가 처음부터 여러분께 말했지만 이제 비행학교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나도 사업을 하러 가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
“그럼, 이제 상하이로 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으니까.”
“조지, 그럼 이제부터는 미국인도 훈련병으로 받아들인다?”
“응, 그렇게 해줘. 내가 상하이에 가면 내년 안으로 항공사를 만들 거니까, 미국인 조종사들도 필요할 거야”
상하이 도쿄 간의 항공노선을 한인 조종사들만으로 운행한다면 일본 군부가 의심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미국인 조종사를 훈련해서 용병으로 쓸 생각이었다.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서, 삼 년 계약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하면 아마 엄청나게 줄을 설 거다. 아니, 육군항공대를 그만두고 나올 친구들도 꽤 있을걸”
“우리는 조종사가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훈련병 숫자를 절대로 10명을 넘기면 안 돼. 지금,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인력은 딱 그 정도 적당하니까”
“OK, 알았어.”
시선을 돌려서 박하성과 오창호를 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문했다.
“박하성은 지금처럼 둘리틀을 도와서 정예 조종사를 양성하고, 1기생들의 훈련이 끝나면 상하이로 와”
“예, 알겠습니다.”
“오창호는 내년까지는 내가 알려준 것들은 완벽하게 소화하고, 다음 기수들을 확실하게 교육하도록.”
“예!”
“이젠 너희들을 코치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다음 기수를 교육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저희와 동일한 능력자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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