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알바 뛰는 십성 장군, 헨리 아놀드.
7. 알바 뛰는 십성 장군, 헨리 아놀드.
어느새 세상은 만물이 생동한다는 봄, 3월이 됐다.
그리고 석 달 동안 진행되던 청문회도 전공 재심사도 모두 끝났다.
“빰빠라밤빰 빰 빰 빰!”
의장대와 군악대가 도열해 있는 연병장의 단상으로 육군부 장관이 올라가서 연설하기 시작했다.
“조지 리 중위는 1918년 6월 프랑스 전선에서 용맹스럽게 독일군 전투기와 교전을 벌여서 두 대의 적기를 격추했고 아군을 보호했다. 그뿐만 아니라 초인적인 인내력과 책임감으로 6개월 동안 무려 156회의 출격을 통해서 적의 침입을 방어했다···.”
육군부 장관의 연설이 끝나고 드디어 훈장이 수여됐다.
“조지 리 중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이렇게 늦게서야 중위의 전공을 챙겨줘서 미안하다. 대신,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예. 알겠습니다.”
내 가슴에 훈장을 걸어주고 육군부 장관은 덕담과 사과를 했다.
장관과 악수하고 돌아선 나를 향해서 아내와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소리까지 지르면서 안겨 왔다.
“오! 조지, 축하해!”
“우와! 아빠, 축하해요.”
“아버지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모습을 보니까 저도 나중에 군인이 되고 싶네요”
응?
아들 너 왜 이래?
“제이슨, 너 정말 군인이 되고 싶니?”
내가 훈장 받는 모습을 보고, 어린 마음에 군인이 멋있게 보여서 하는 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예, 아버지 저도 군인이 되고 싶어요”
“왜? 군인이 되고 싶은지. 아빠가 들을 수 있을까?”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멋있어 보여서요. 그리고, 내 손으로 우리 가족을 지키고 싶어요.”
제이슨이 군인이라···.
제이슨은 나보다는 아내를 닮아서 얼굴에 동양적인 선이 약간 보이는 것만 빼면 확실히 백인으로 보였다.
‘그래, 일단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을 일은 없고, 그럼, 문제는 의원들의 추천인가?’
나중에 제이슨을 사관학교에 보내려면 앞으로 루스벨트에게 후원금을 많이 보내줘야만 할 것 같았다.
미국의 사관학교는 반드시 의원들의 추천을 받아야만 입학할 수 있다.
앞으로도 대통령이 될 루스벨트를 후원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 * *
나한테는 루스벨트 주지사 말고도 후원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헨리 아놀드 소령이 교육받고 있는 캔자스주 포트 레번워스의 육군참모대학을 찾았다.
‘이윤호의 기억을 각성하고 벌써 9개월이나 지난 건가? 생각보다 쓸데없이 시간이 너무 많이 써버렸네.’
“에이, 썩을···.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나간 거냐?”
아놀드 소령을 면회 신청한 나는 아놀드가 생계 때문에 농장으로 아르바이트하러 갔다는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헨리 아놀드를 만나면 어떡하던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었던 내 계획은 시작부터 틀어져 버렸다.
뭐, 어쩔 수 없이 참모대학 관계자들에게 물어 물어서 아놀드가 일하러 나간 농장을 찾아갔다.
‘지평선’이 보이는 널따란 농장 위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복엽기 한 대가 열심히 씨앗을 뿌리고 날아다녔다.
‘저렇게 농장에서 씨앗을 뿌리고 농약이나 뿌리던 사람이 나중에 별이 10개짜리 원수가 될지를 누가 알까?’
헨리 아놀드는 2차 세계대전 때 육군항공대 원수였지만, 나중에 공군이 창설되면서 공군 원수가 됐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헨리 아놀드를 십성 장군으로 불렸다.
별이 다섯 개라고 선전하는‘장수 돌침대’의 그런 별이 절대 아니다.
아놀드가 조종하는 구닥다리 복엽기는 봄밀을 파종하느라고 부지런히도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했다.
* * *
비행기에서 내려서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는 아놀드에게 다가갔다.
“헨리 아놀드 소령님, 안녕하십니까?”
“누구신지···?”
생전 처음 보는 동양인이 반갑게 아는 척을 하자 아놀드는 조금 경계하는듯한 표정이었다.
“아! 저는 윌리엄 빌리 미췔 준장님의 소개로 소령님을 만나러 온 조지 리 중위입니다”
윌리엄 단장의 이름을 듣고서야 아놀드는 다소 경계를 푸는 것 같았다.
“윌리엄 미췔 준장님이 소개해서 오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윌리엄 미췔 준장님께서 조지 리 중위를 나한테 보내셨습니까?”
“여기, 윌리엄 단장님의 소개 편지입니다”
한참 동안 편지를 읽던 아놀드는
“윌리엄 미췔 준장님께서는 조지 리 중위를 도와주라고 하셨는데, 보다시피 내가 현재 그럴 형편이 못 됩니다.”
“아! 소령님께서 뭔가 오해를 하셨군요. 저는 소령님께 다른 사람을 소개를 받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소개요?”
“예, 그런데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농장 한가운데에서 소똥 냄새까지 맡아가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 * *
나와 아놀드는 육군참모대학 근처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으로 들어가면서 낯선 장소라서 안쪽을 살피면서 두리번거렸더니 아놀드가 또 오해했다.
“여기가 그래도 근처에서 평판이 괜찮은 곳입니다.”
“아이고! 소령님 그게 아닙니다. 제가 처음 가는 장소에서는 항상 이렇습니다”
이윤호의 기억이 믹스 패치가 되면서 국정원 요원들의 행동 요령이 자연스럽게 나타났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식당이 허접해서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그래, 조지 리 중위는 누굴 소개받고 싶어서 나를 찾아온 겁니까?”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뛰느라 피곤했었는지 얼굴은 피로에 절어있었지만, 아무래도 천성 탓인지 아놀드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제가 아놀드 소령님을 찾은 이유는 두 가지 용건이 있어서입니다.”
“사람이 필요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까?”
“예, 지금부터 제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 용건은 헨리 아놀드 소령님을 제가 후원하고 싶습니다”
“후원이요? 지금 저를 후원하겠다는 겁니까?”
“예, 저도 육군항공대 조종사 출신인데, 미래 육군항공대의 사령관이 될 분이 주말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로 농약을 뿌리고 씨앗을 뿌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순간 아놀드는 후배의 후원까지 받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졌는지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헨리 아놀드 소령님, 제가 소령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소령님이 진짜로 미국 항공대 사령관 되실 분이라서 그러는 겁니다. 절대로 다른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조지 리 중위가 앞으로 나를 후원하고 싶다는 겁니까?”
“예, 아르바이트하실 시간에 조종술을 더 가다듬고 항공 전술을 익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육군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육군항공대를 공군으로 독립시키기 위해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죽을 맛인데 내가 놀리는 줄 안 모양이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겁니까? 아니면···.”
“제가 소령님을 놀리려고, 평생 육군항공대를 위해서 일하신 윌리엄 단장님의 편지를 가지고 찾아왔겠습니까?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건 제 순수한 마음입니다”
이치를 따져봐도 기껏 자기 하나 놀리겠다고 윌리엄 준장의 편지까지 들고 오겠나?
그리고 내 표정은 지금, 단, 한점의 거짓도 없이 진지했다.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이 당시 미군 장교들은 유력한 인사들의 후원을 받아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면 장교들이 받는 월급이 짜도 너무 짜서 장교들의 생활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놀드 소령님의 월수입에 세배 정도의 후원금을 매달 보내드리겠습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아놀드 소령의 월급은 현대 환율로 바꾸면 200만 원이 약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윌리엄 단장님 이후로 항공대를 공군으로 독립시킬 수 있는 분이 소령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두 번째 용건인데, 소령님을 통해서 계속해서 유능한 비행 교관을 소개받고 싶습니다”
“첫 번째 용건이 나를 후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용건이 비행 교관을 소개받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어떤 비행훈련을 하려고···?”
“장거리 조종이 가능한 교관이 필요합니다. 소령님께서는 얼마 전에 독일군의 첩보전에 대비해서 팬암항공사를 만드셨잖습니까? 저는 일본군을 방어하기 위해서 새로운 항공사를 만들 생각입니다”
“일본이요?”
한동안 전운이 흐르기도 했던 미국과 일본의 사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지금은 소강상태였다.
하지만 일본을 다시 잠재적인 미국의 적으로 규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 소령님께서 독일을 마음속에 적으로 생각하시듯이 저는 일본을 제 마음속의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아놀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이었는지 눈까지 반짝이면서 집중했다.
“조지 리 중위는 일본이 독일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예, 작년에 시작된 공황은 이제 전 세계에 영향을 줄 겁니다. 미국과는 다르게 독일과 일본은 주변국을 침략하는 것으로 경제 위기를 벗어나려고 할 겁니다. 그것이 가장 쉬운 탈출 방법이니까요.”
“그래서, 일본이 미국을 침략이라도 한다는 건가?”
내 말이 아놀드가 듣기에는 얼토당토않았는지 말이 살짝 짧아지고 있었다.
“헨리 아놀드 소령님, 이미 20년 전에도 미국과 일본은 서로 전쟁할 뻔했습니다. 혹시 모르십니까?”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과 조선을 놔두고 서로 충돌할뻔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가스라 태프트 밀약이 맺어졌었다.
“음···.”
“일본은 몇 년 안에 만주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시간 좀 더 흐르면 중국을 공격할 것이고, 미국과 영국은 일본이 혼자서 중국을 독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견제를 시작할 겁니다.”
“정말, 조지 리 중위는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다시 아놀드의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제가 일본의 침공 예상 시간까지 알려줄까요? 일본은 언제나 10년 주기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제 곧 그 십 년이 다가옵니다. 일본군의 목표는 당연히 만주입니다”
“그래서, 조지 리 중위는 일본을 경계하기 위해서 항공사를 운영하겠다는 거군요?”
“예, 제가 경계만 하겠습니까? 때가 되면 언젠가는 보복도 해야죠”
이 시대에 GPS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동항법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전투기의 항로는 하루 이틀 운행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조종사들이 같은 코스를 계속해서 운행하면서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아놀드는 이미 식사는 뒷전이고 내 이야기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내가 장거리 조종이 가능한 비행 교관을 소개하면 훈련을 받을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군요?”
“예, 정확히 몇 명이나 모일지 모르지만, 훈련받다가 멈춘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내가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노백린 선생과 김종림 선생들이 힘을 모아서 월로우스 비행학교를 만들었었다.
그러나 운이 없었는지 경제적 후원을 하던 김종림 선생의 농사가 망하면서 비행학교도 문을 닫았었다.
일단은 월로우스 비행학교 출신들로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헨리 아놀드 소령은 육군항공대의 독립을 위해서 일하시고, 나는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일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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