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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끝판왕,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만났다. (6/225)

6. 끝판왕,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만났다.

6. 끝판왕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만났다.

전화기를 붙잡고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아내가 흔들어서 깨웠다.

“조지, 무슨 일이야?”

“응?”

“통화하다 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아! 잠깐만”

아내의 일깨움에 정신을 차린 나는 티모시 소령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티모시 이 개자식 때문에 훈장도 못 받고, 진급도 못 하고, 연금도 못 받은 거였어?’

이 개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찾아가서 멱을 따 버릴까?

그때, 전화기 안에서는 나를 애타게 찾는 헤이우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지!”

“조지!”

“조지!”

“응, 헤이우드 미안하다. 잠깐 딴생각을 했다.”

“그래? 그럼, 넌 앞으로 어떡할 거냐?”

“너하고 내가 육군부에 찾아가서 전공을 되찾고 싶다고 해봐야 들어줄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루스벨트 주지사를 만나서 탄원을 하자”

“그래?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지?”

“응, 그리고 헤이우드 고맙다. 니가 그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묻혔을 것 아니냐?”

“아냐. 지금이라도 네 전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려서 다행이지. 그럼 내가 루스벨트 주지사하고 약속을 잡고, 너한테 다시 연락할게”

“응, 알았어. 그렇게 해”

이미 십 년이 훨씬 지난 일을 가지고 육군부에 찾아가서 따져봐야, 우리 말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육군부가 아무 말도 못 할 정도의 강력한 힘으로 압박을 해야만 한다.

다행히 나는 헤이우드라는 친구 덕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라는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아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지, 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화가 났어요?”

“응, 군대 생활할 때 옛 상관이 내 전공을 감췄다고 하네”

“당신 전공을요? 왜요?”

“그가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무공훈장을 못 받았던 것 같아”

“그럼, 이젠 당신 전공을 다시 찾을 수는 있는 거예요?”

“아니, 지금부터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지. 그래야 우리가 여객기 사업을 할 수 있으니까”

여객기 사업이 아니라 광복군 항공대를 만들 수가 있다.

광복군 항공대를 만들어야 일본을 잿더미로 만든 커티스 르메이처럼 할 수 있다.

* * *

헤이우드는 루스벨트 주지사와 약속을 잡아놓고 계속해서 내 일을 파헤쳤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하나를 더 밝혀냈다.

티모시 소령은 내 전공을 그냥 묻어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장교의 전공으로 둔갑시켜놨다.

“조지, 너와 내 출전 기록이 제임스 중위와 오언 소위의 출전 기록으로 바뀌어 있었어.”

제임스 중위와 오언 소위의 얼굴이 떠올랐다.

둘 다 인간성이 나쁜 장교들은 아니었지만, 항공대장인 티모시 소령에게 처세를 잘했던 장교들이었다.

‘어쩐지 티모시 소령에게 잘하더니 티모시 소령이 내 전공을 자기들 전공으로 바꿔줘서 그랬었구나’

“헤이우드, 니가 증거를 찾아낸 거야? 아니면 증언을 들은 거야?”

“응, 내가 증거를 찾아냈어. 이젠 육군부에 증거를 들이밀면 빼도 박도 못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헤이우드,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

“뭘? 겨우 이런 것을 가지고···. 넌 내 생명의 은인이잖아”

이러면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헤이우드의 노력으로 내 전공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됐다.

“조지,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최대한 강조해서 니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내야 해.”

이번 일로 다시 한번 느끼지만, 헤이우드는 진심으로 나를 챙기고 위해줬다.

“그래, 알았어. 그럴게”

헤이우드가 말하지 않아도 나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이미 육군부는 우리에게 약점이 잡혔다.

만약, 이 문제가 기사화되고 의회에까지 알려지면 육군부는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 * *

비서가 주지사실의 문을 열었다.

잘생긴 중년 남자 한 명이 자단목 책상 너머에 휠체어를 탄 채로 앉아있었다.

루스벨트의 첫인상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 강렬했다.

내가 어릴 적에 봤던 박용만 선생님이나 안창호 선생님과는 조금 다른 의지가 얼굴에서 느껴졌다.

두 분에게서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의지가 느껴졌지만, 루스벨트는 병으로 반신불수가 된 것을 극복한 인간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프랭키”

“어서 와. 헤이우드”

어라?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헤이우드는 허리를 구부리면서 루스벨트를 가볍게 포옹하고 아는 척을 했다.

헤이우드와 루스벨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친한 사이인 것으로 보였다.

내가 걸음을 멈추고 둘을 쳐다보자

“조지, 루스벨트 주지사님하고 나는 원래 집안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야.”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볼 필요 없어요. 아버님들이 철도 사업을 같이한 사이입니다”

“아!”

어쩐지 이상하더라

이제 겨우 37살 먹은 기자에게 정책 자문받는다고 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전부터 서로 알고 있던 사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리 와서 앉아요”

루스벨트는 휠체어를 타고 직접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아! 내, 감사합니다”

지금부터는 진짜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20세기 끝판왕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실질적인 종결자를 만나는 자리다.

그리고 루스벨트의 선택에 따라서 대한민국의 역사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자리에 앉기 전에 허리를 숙이면서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이고, 이런···. 그런 인사는 내가 좀 어색합니다”

‘이런, 내가 너무 비굴하게 보인 건가?’

속으로 뜨끔하고 있을 때 헤이우드가 나를 말렸다.

“야! 조지, 루스벨트 주지사님은 그런 격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니까 편하게 해”

“그래요. 그냥 편하게 이야기합시다”

“예, 감사합니다. 그럼, 편하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헤이우드에게 전해 듣기로는 군시절 전공이 사라졌다고,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던데 맞나요?”

“예, 맞습니다”

“내가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1917년 징집이 돼서 텍사스와 뉴욕의 비행학교를 거쳐서···. 중략···. 1918년 12월 종전과 함께 전역했습니다.”

루스벨트가 원하는 대로, 나는 처음 모병소를 찾아갔을 때부터 전역할 때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이야기했다.

“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루스벨트는 바로 입을 열지 않고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음, 내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점은, 조지가 군에서 상당히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것 같은데 맞나요?”

“예,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프랭키, 조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나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나선 헤이우드를 말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외국인이 징집되는 것이라 어느 정도 불이익은 감수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공에 대해서만큼은 신상필벌이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루스벨트 역시 내 의견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죠. 다른 것은 몰라도 전공을 속이면 안 되죠. 그럼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될까요?”

“재심사를 받을 수 있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지금은 재심사 신청 자체가 안된다고 합니다”

“본인 전공에 대한 재심사만 받으면 되나요?”

“예, 그렇습니다”

“프랭키, 내가 예전에 죽다 살아났다고 한 적이 있잖아요. 그게 바로 이 이야기에요. 조지가 나를 살려 준 건데, 이게 다른 사람 전공으로 올라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육군부에 확실한 재심사를 해달라고 해주세요”

헤이우드는 내 요구 조건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전공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올라간 사실까지 이야기를 했다.

“전공을 숨긴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맞아요. 프랭키, 다른 것은 몰라도 군인들의 전공만큼은 확실히 챙겨줘야 하잖아요?”

“음···.”

“말로만 평등을 외치면 뭐 해요?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사실 저는 루스벨트 주지사님께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내 말에 루스벨트와 헤이우드가 나를 쳐다봤다.

“루스벨트 주지사님,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입니다”

“그렇죠.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죠”

“이런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작은 것, 하나하나를 차별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미국이 진정한 이민자들의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미국은 같은 백인인데도 아일랜드인들이 이민을 왔을 때도 차별을 했고, 이탈리아인들이 이민을 왔을 때도 차별을 했다.

오죽했으면 아일랜드인과 이탈리아인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총을 들고 마피아가 됐겠는가?

그리고 동양인인 중국인 이민자들은 아예 처음부터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다.

“저는 동양인 이민자로는 미군으로 처음 참전했고 최초로 전투기 조종사가 된 사람입니다. 제가 걸어가는 걸음 하나하나가 동양인 이민자들에게는 선례가 됩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전공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받고 싶습니다”

“음···.”

“주지사님, 앞으로도 수많은 이민자가 미국으로 올 겁니다. 저는 그들이 꿈꾸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이민자들이 생각하는 아메리칸드림이 진정으로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당장 바뀔 일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 하느냐면,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앞으로 미국 대통령이자 세계지도자가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순간에 지도자의 결정 하나 때문에 세상의 역사가 바뀐다.

내가 사대주의자로 보일 수 있지만, 힘없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나는 루스벨트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민족을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루스벨트 주지사의 전공 재심사 요구에 육군부 장관은 사건을 검토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바로 청문회를 열었다.

나와 헤이우드는 물론이고 117 항공대원들은 청문회에 줄줄이 불려 나가서 당시 상황을 진술해야만 했다.

청문회와 전공 재심사 진행이 막바지에 다가왔을 때 육군부 서훈 관리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헨더슨 소령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헨더슨은 나를 떨떠름한 시선으로 보면서

“조지 리 상사 왔나? ”

니가 불렀으니까 내가 여길 왔지?

처음 만날 때도 사람을 비웃고 깔보는 것 같더니 지금도 표정이 그랬다.

“조지 리 상사 덕분에 세 명의 장교가 징계를 받게 됐다. 상사의 기분은 어떤가?”

뭐가 어때?

잘못했으면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지.

그런데, 애는 왜 이러지?

혹시, 그 세 명 가운데 동기나 친구가 포함돼 있나? 

“저는 별다른 감정이 없습니다”

“그래? 징계를 받는 장교들에게 미안해해야 하지 않나?”

“어째서 그렇습니까?”

“상사 한 명 때문에 장래가 창창한 세 사람이 이젠 장교로서 운명이 끝났는데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건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그럼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들이 벌을 받는다고 울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소령님 저를 찾은 이유나 그냥 말씀해 주시죠?”

“세 명은 징계를 받고, 그 덕분에 상사는 훈장을 받는군”

훈장?

리얼리?

앗싸! 진짜로 훈장을 주는구나.

내 전공이 훈장을 받을 수 있는 전공이었지만, 정말 훈장까지 챙겨줄 줄은 몰랐다.

“흠흠”

내가 표정 관리를 잘못했는지 헨더슨 소령은 나를 노려보면서

“좋은가? 하긴 동양인으로는 처음일 테니까 기쁘겠지.”

아오! 개자식들 진짜 징글징글하다.

사람을 사람으로만 봐야지. 왜 이렇게 피부색을 가지고 차별을 하는지.

“그리고 조지 리 상사는 비록 예비역이지만, 이번에 두 계급 특진했다. 이젠 장교가 됐으니까 장교답게 품위 있게 처신하고 다니길 빌겠다.”

오! 에스!

드디어 장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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