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어쩐지 훈장을 안 주더라니···. (5/225)

5. 어쩐지 훈장을 안 주더라니···.

5. 어쩐지 훈장을 안 주더라니···.

윌리엄 단장을 만나고 바로 육군부를 찾아갔다.

육군부 인사국에 계급 정정 신청을 하고 서훈 담당관인 헨더슨 소령에게 윌리엄 단장의 편지를 전해줬다.

편지를 한참 동안 읽던 헨더슨 소령은

“조지 상사, 상사가 원하는 것은 육군항공대 공훈 반지 수상자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원한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소령님”

“상사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아무리 서훈 수상 내용이 있다고 해도 서훈 당시에 진급하지 못했다면 비록 예비역일지라도 사실상 진급은 힘드네”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초장부터 안된다고 거절을 당하니까 화가 났다.

“소령님, 전혀 방법이 없겠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방법이 없네”

이러면 절대 안 된다.

하사관 출신 대장이 장교를 지휘하는 군대는 없다.

어떡하든지 예비역 소위 계급이라도 반드시 얻어내야 했다.

“저, 소령님 제가 현역으로 진급시켜달라는 것도 아니고 예비역 계급을 진급시켜달라는 건데, 그것이 그렇게 힘들다는 소립니까?”

“상사가 공훈 반지를 수여 받았을 때 진급이 됐어야만 했었는데, 그때 누락이 된 것이라서 지금은 힘들 것 같다.”

나도 어느 정도 예상하였지만, 내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개자식들! 헌법에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고 써 놓지를 말던가?

왜? 나만 진급을 시켜 주지 않냐고?

“계급 조정 신청을 하려면 재판을 청구해야 합니까?”

헨더슨 소령은 내 질문에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왜? 재판이라도 신청해 보려고?”

“다 같은 미합중국 국민인데 저만 차별을 받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 같은 미합중국 국민이라···.”

비웃고 있는 헨더슨 소령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조지 상사가 재판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서훈 담당관실을 나와서 육군부 건물을 나올 때까지 마주친 모든 인간은 전부 백인들이었다.

백인들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유색인종의 비애라고 할까?

하지만 나는 지금 너희들이 항상 강조하는 자유와 평등에서 평등을 간절히 원한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헤이우드 브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 * *

겨울이 다가오면서 10월 말에 시작된 대공황의 여파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한껏 멋을 부리고 다니던 사람들로 가득했던 맨해튼 거리는 이제 꼬질꼬질한 차림의 구직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이제 서서히 전 세계에 영향을 줄 것이다.

상하이가 대공황의 영향을 받기 전에 빨리 가야 할 텐데, 세상일이란 것이 정말 뜻대로 안 됐다.

“표정을 보아하니까 단장님을 만나서 일이 잘 안된 모양이구나?”

평소와 다름없이 신사클럽에 도착해서 헤이우드를 기다리면서 혼자서 똥 씹은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었더니, 헤이우드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도착을 알렸다.

“왔냐?”

“응, 그런데 일이 전부 안 된 거야?”

헤이우드는 테이블 건너편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다.

“단장님은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셨는데 육군부에서 거절당했어.”

“그래? 왜? 뭐가 문제라는데?”

“공훈 반지를 받을 때 진급이 됐어야만 했는데, 그 당시에 진급을 못 한 것을 인제 와서 정정해 줄 수는 없다고 하네”

“그럼, 공훈 반지 받을 때 진급을 안 시켜 준 놈들을 조지면 되겠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헤이우드처럼 속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한테는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내가 뉴욕주지사하고 좀 친한데 부탁을 한번 해볼까?”

“뉴욕주지사?”

“응, 루스벨트 지사가 좀 진보적인 사람이라서 나한테 정책 자문을 가끔 구하거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알아 두면 무조건 도움이 될 사람이었다.

내가 좀 비굴하고 추접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미래를 위해서 안면을 틀 수가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헤이우드, 나도 같이 만나 볼 수 있을까?”

“당연히 네가 가서 직접 설명해야지. 나 혼자만 보낼 생각이었어?”

가만, 그런데 루스벨트가 힘을 쓰면 내가 진급을 할 수 있나?

“헤이우드, 루스벨트 주지사를 만나면 일이 해결되기는 할까?”

“조지아주 상원의원 출신에 뉴욕주지사인데 그 정도 힘이 없겠냐? 사람이 괜찮으니까 한번 만나보자”

“그래? 그럼 약속을 잡고 연락 좀 주라”

“OK, 내가 널 구해줬으니까 오늘도 니가 밥 사라”

“밥이 문제냐? 뭐든 다 시켜서 먹어라!”

뭐든 다 먹어라!

루스벨트를 만나게 해주고 나를 진급시켜 줄 수 있다면 뭘 못 해주겠냐?

* * * 

샤본과 같이 고무신 디자인을 궁리하고 있을 때 헤이우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헤이우드”

“조지, 니가 무공훈장을 왜 못 받았는지 알아냈다”

“훈장? 그건 윌리엄 단장님이 무공훈장을 상신했지만 상부에서 거절당했다고 했잖아?”

“야! 그게 아니었어. 니가 나를 살려준 날, 그날 전투 기록이 빠져있더라”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헤이우드를 살려준 날이면 프랑스 전선에 배치돼서 첫 번째 출격을 했던 날인데

“헤이우드 자세히 좀 말해줘 봐”

“말 그대로야. 너하고 내가 첫 출격 했었던 전투 기록 자체가 없다고, 아마 짐 티모시 항공대장이 전투 보고를 하지 않은 것 같아”

“진짜?”

나는 그냥 인종차별 때문에 훈장을 못 받은 줄 알았었는데,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티모시 소령이 기록을 누락시켰으니까 네 전공 자체가 확 줄어들잖아? 그러니까 니가 막판에 개고생한 것만으로는 훈장을 못 받지”

헤이우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프랑스 서북부에 있었던 전투 현장으로 이동해있었다.

두 대의 P-12 전투기는 파란 하늘을 비스듬히 선 채로 날아가고 있었다.

헤이우드 소위가 앞서서 날아갔고 나는 45도 각도 옆에서 50M 정도 뒤처진 채 따라가고 있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뒤쪽을 한 번 쳐다봤더니 언제 따라붙었는지 독일군 포커 전투기 두 대가 우리를 쫓고 있었다.

“제기랄 언제 따라붙었지?”

조금만 늦게 발견했으면 뒤를 제대로 잡혀서 적에게 당하는 줄도 모르고 죽을뻔했다.

“헤이우드! 헤이우드! 뒤쪽에 포커다!”

헤이우드 소위가 들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소리라도 질러서 적을 알려주고 바로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엔진 토크를 올리면서 바로 상승을 시도했다.

“부아 아 앙!”

내 전투기는 급상승을 시작했고, 헤이우드의 전투기는 앞으로 속도를 높이면서 도주를 선택했다.

“저, 병신! 하필이면 앞으로 튀냐?”

적 전투기가 후미에 따라붙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직진이다.

어차피 속도가 거기서 거긴데 튀어봐야 얼마나 도망가겠는가?

일단 헤이우드는 잊고 나부터 살아야 했다.

적 전투기 중 한 대는 헤이우드를 쫓아서 앞으로 계속 날아갔고, 다른 한 대는 나를 쫓아서 상승을 시도했다.

“그래그래, 그렇게 따라오는 거야”

“타 타 타탄 탕!”

“아오, 시발놈이 디질라고.”

급하게 조종간을 옆으로 틀었다. 

그리고 5초를 세고 다시 반대로 조종간을 틀었다.

“1, 2, 3, 4, 5”

“타다 다다 당!”

“병신! 1, 2, 3, 4, 5”

손에서 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반대로 턴, 한 번만 더 방향을 바꾸고 기술을 쓸 생각이었다.

“너무 뻔한 수작인가? 그냥 지금 기술을 쓸까?”

지그재그로 세 번 방향을 바꿨다가 바로 엔진의 토크를 떨어트려 버렸다.

그럼 어떻게 되냐고?

어떻게 되긴 추락이지.

갑자기 급하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속도 차이에서 나오는 눈속임이다.

내 전투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를 쫓던 포커 전투기는 급하게 상승을 시도했다.

“그렇지! 이젠 너하고 나하고 반대다. 개새끼야! 기다려라!”

상승하면서 선회하는 포커 전투기의 뒤를 따라붙어서 기관총을 난사했다.

“타 타 타당!”

“어라! 니가 피해?”

“타 타 타당!”

전투기는 절대 뒤와 위를 잡히면 안 된다.

그것은 곧 죽음이다.

“투 다다 다탁! 피웅!”

기관 총알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고 포커 전투기는 검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커 전투기의 엔진에서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잘 가라! 굿바이”

추락하는 포커 전투기를 보면서 언젠가는 내가 저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21년간 쌓였던 분노를 폭발시켰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그래 바로 이거지! 아자! 아자!”

“그런데, 이 자식은 어디로 튄 거야?”

헤이우드는 계속해서 직진했는지 내가 기지 쪽 방향으로 날아가자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오로지 직진이야? 쟤는 항공학교에서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제일 앞에 P-12 전투기 그다음에 독일군 포커 전투기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나까지 세 대의 전투기가 나란히 날아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눈치를 챌 때도 됐는데, 아직도 내가 뒤에 붙은 것을 모르나?”

이제야 나를 발견했는지 독일군 전투기는 갑자기 상승을 시도했다.

“그래! 그렇지. 그렇게 도망을 가야 정상이지”

나도 서둘러 상승해서 포커 전투기를 쫓았다.

이번 적기 조종사는 실력이 뛰어났다.

포커 전투기는 삼엽기라서 선회능력이 다른 전투기에 비해서 탁월한데 그걸 제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제길, 이러다 내가 뒤를 잡히겠는데···. 어! 저 자식은 그냥 기지로 튀지. 여기로 왜 다시 오는 거야?”

헤이우드의 P-12 전투기는 기체 뒤쪽에서 작은 연기를 피워내면서 다시 전투 현장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자식, 그래도 의리는 있네”

헤이우드의 전투기가 돌아오자 독일군 포커 전투기를 나를 버리고 헤이우드를 다시 노리고 달려들었다.

“야! 시발놈아! 네 상대는 나라고!”

작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헤이우드의 전투기를 따라붙는 모습이 보였다.

“어떡하지?”

아무래도 헤이우드는 다시 뒤를 잡힐 것 같았다.

“에이! 모르겠다. 남자는 주먹이지.”

내 전투기도 크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헤이우드의 전투기 뒤에 붙은 독일군 포커 전투기 정면으로 날아갔다.

헤이우드의 전투기는 나를 피해서 지나갔고 뒤를 쫓던 포커 전투기는 기관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마주 보고 달려들 때는 간이 적은 쪽이 진다.

왜냐면 포물선을 그리는 순간 뒤를 내주게 되기 때문이다.

내 P-12 전투기와 적 포커 전투기는 정면으로 서로를 향해서 마주 보고 달려들었다.

“타 타 타당!”

“타 타 타당!”

“덤벼 새끼야! 니 마빡이 더 센지, 내 마빡이 더 센지 한번 박아보자”

포커 전투기의 조종사는 경험과 실력은 있었지만 담은 나보다 작았다.

먼저 기수를 꺾은 것은 그였다.

“타다 다다 당!”

“투 두 두 탁탁!”

포커 전투기의 후미에 내가 쏜 기관 총알이 계속해서 박히기 시작했다.

“펑!”

이겼다.

상대보다 내 간땡이가 더 컸다.

* * *

두 대의 P-12 전투기가 정찰을 나갔다가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오자 부대는 난리가 났다.

부대에 전입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입 조종사 두 명을 내보낸 것부터 문제가 됐고, 그 두 명의 신입들이 적기를 잡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난리가 났다.

아니, 그럼 나하고 헤이우드하고 자작극을 벌였다는 거야? 뭐야?

그리고 그 후로 나와 헤이우드는 117 항공대장 티모시 소령의 명령으로 전투기 대신 정찰용 비행선만 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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