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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 계급을 돌려주세요! (4/225)

4. 내 계급을 돌려주세요!

4. 내 계급을 돌려주세요!

사람들이 가끔 미군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국에 공군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공군이 생겼다.

그러면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전투기와 폭격기는 뭐냐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들은 전부 육군과 해군 소속의 항공대다.

그럼 누가 미국에 공군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미국의 역사상 유일한 십성 장군인 헨리 아놀드 원수다.

그럼 이런 항공대를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굴까?

그것은 바로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윌리엄 빌리 미첼 준장이다.

“오! 조지 이게 얼마 만이냐?”

윌리엄 준장은 양팔을 벌리고 다가와서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예, 저는 잘 지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단장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상관은 여전히 나를 아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전선에서 윌리엄 준장의 명령으로 진짜 똥 쌀 시간도 없이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했었다.

뭐, 그 덕분에 육군항공대 공훈 반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미소가 가득한 얼굴의 윌리엄 단장은 우리 가족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래 아이들은 잘 크고?”

“예, 단장님, 다행히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그래 다행이다. 샤본은?”

“샤본은 작년에 장인이 돌아가셨을 때 충격을 좀 받은 것만 빼면 아주 잘 지냅니다”

“모두 잘 지낸다니까 내가 한시름 놓겠구나.”

윌리엄 단장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서 농장 주변 길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지, 식사 전에 운동 삼아서 좀 걸을래?”

“예, 단장님.”

말이 없이 한참을 걷기만 하던 윌리엄 단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전에 니가 보낸 편지를 보니까 헨리 아놀드 소령을 찾던데 무슨 일 때문이냐?”

“제가 이번 대공황이 오기 전에 운이 좋게도 사업을 정리했었습니다.”

“오! 정말이냐? 역시, 너는 행운의 사나이야”

내가 윌리엄 단장의 저 말에 속아서 육 개월 동안을 하늘에서 살았었다.

“제 생각에는 미국에서는 당분간 사업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아시아로 사업을 옮겨서 상하이와 도쿄 간의 여객기를 운항해볼 생각입니다”

“아! 여객기 사업을 하려고? 그런데 그게 헨리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어서?”

“단장님, 상하이에서 도쿄까지 거리가 1,800KM입니다. 미국에서 헨리 아놀드만큼 장거리 비행술이 뛰어난 조종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헨리가 여객기 조종이나 하려고 할까? 헨리도 꿈이 있고 야망이 있을 텐데”

역시 내 예상대로 윌리엄 단장과 아놀드 소령은 공군 창설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서로 교류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단장님, 헨리 아놀드 소령에게 여객기 조종을 맡길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직접 할 생각입니다”

“조지 니가 직접?”

“예, 훈련을 다시 받고 제가 직접 조종할 생각입니다”

걸음을 멈춘 윌리엄 단장은 나를 한참을 쳐다보더니

“조지, 니가 전역하고 십 년 이상이 지난 것 같은데 그것이 가능하겠냐?”

“단장님께서도 제가 가진 강점이 끈기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가능합니다”

“그래그래, 조지 너라면 가능하겠지. 그럼 훈련은 어떡할 생각이냐?”

“오늘 단장님을 뵈러 온 것은, 제 비행훈련과 그리고 제 계급 문제 때문입니다”

“조지, 네 계급?”

“예, 단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예비역 상사로는 고객들의 신뢰를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최소한 장교 계급으로 바꿔 주실 수는 없는지 상의드리러 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서 15번이 넘게 모병소를 찾아갔고 어떻게 겨우겨우 비행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미국 사회 전체에 만연하는 인종차별이었다.

똑같이 훈련받았고 내가 더 나은 실력을 갖췄음에도 비행학교를 졸업할 때 내 계급은 중사였다.

이것이 이제 와서 무슨 문제냐고 하겠지만, 미래의 항공대장을 꿈꾸는 나한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대장은 상사 계급이고 부하들은 장교 계급이면 누가 내 명령을 듣겠는가?

세상 어느 나라 군대도 하사관이 장교를 지휘할 수는 없다.

특히, 공군은 조종사가 전체가 장교다.

“음···.”

“단장님! 단장님께서도 제가 실력이 부족하거나 조종사로서 능력이 떨어지지 않다는 것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잘 알지···. 하지만···.”

윌리엄 단장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임시로 만들어졌던 항공대를 공군으로 만들려고 엄청나게 노력한 사람이다.

항공기가 정찰용이 아닌 공격용 수단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고 항공대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윌리엄 단장의 주장은 육군 고위 장성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또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은 간첩으로까지 몰리면서 이렇게 버지니아 미들버그에 농장을 만들고 은거에 들어갔다.

“제가 무공훈장을 달라고 청원하는 것도 아니고 현역으로 복귀를 시켜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윌리엄 단장은

“그땐 정말 미안했다.”

당연히 미안해해야지.

그때만 생각하면 미국의 백인 종자들에게 이가 갈린다.

육군항공대 대장인 윌리엄 준장은 나에 대한 훈장 수여를 신청했지만, 육군 수뇌부는 유색인종이 장교가 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훈장 수여를 거절했다.

“그때 니가 훈장을 받았다면, 자연스럽게 장교로 진급이 됐을 텐데”

“단장님, 그때는 제가 다시 조종사를 해야 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지만, 이젠 저도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발 길을 알려주십시오”

“흐음···.”

쉽지 않을 것이다.

윌리엄 단장이 현역에 있었다면 서류를 조작해서라도 해줬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윌리엄 단장은 은거 중이었다.

“조지, 니가 나를 힘들게 만드는구나!”

“죄송합니다. 단장님”

윌리엄 단장에게 허리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사과를 받은 윌리엄 단장은 다시 말없이 걷기 시작했고 나도 말없이 단장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꽤나 긴 시간을 말없이 걷기만 하던 윌리엄 단장이 

“식사하고 갈 거지?”

“예,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래, 그럼 식사라도 하면서 더 고민해보자”

“예, 단장님”

미국인들이 식사하자는 소리는 상대를 인정할 때 하는 소리다.

아마 어느 정도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 * *

빵을 수프에 살짝씩 찍어 먹던 윌리엄 단장은 나를 보면서

“육군 항공국에 청원 편지를 써 줄 테니까 가서 서훈 담당자를 만나봐라”

“서훈 담당자를 말입니까?”

“응,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니가 청원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무리 육군 수뇌부의 미움을 받고 있다고 해도 윌리엄 단장은 장성 출신이다.

장군들은 그들끼리의 네트워크가 있어서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행훈련은 내가 너를 추천해주기는 부적절한 것 같다. 그것은 니가 따로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냐?”

이러면 내가 원하는 것 중에 제대로 이뤄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저, 단장님···.”

“그래, 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안다. 하지만 지금 내 처지가 니가 알다시피 큰 힘을 써줄 만큼 좋지는 않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프랑스 전선에서 네가 한 일을 생각하면 뭐든 다 들어주고 싶지만 못 해줘서 내가 미안하다”

윌리엄 단장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까 더는 부탁하기도 힘든 분위기였다.

“그럼 단장님 헨리 아놀드 소령에게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조종사를 소개해 달라는 편지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헨리에게?”

“예, 상하이에서 도쿄까지 비행하려면 장거리 조종에 능숙한 조종사가 꼭 필요합니다”

“음···. 그래 좋다. 헨리에게도 편지를 써주마”

“단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거듭되는 감사 인사에도 윌리엄 단장은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고만 있었다.

자신의 부하 중에 미국에서는 사람 취급 못 받는 유일한 동양인이고, 자신의 부하 중에 유일하게 전공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부탁을 모두 들어준 윌리엄 단장은 식사 자리 내내 육군 수뇌부를 씹어댔다.

“내가 직접 전투기로 전함을 격침을 시켰으면 공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텐데 윗대가리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군대가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군대에서 혁신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머리에 똥만 찬 것들이 아직도 소총을 들고 돌격을 외치는 시대인 줄 알고 말이야.”

“저도 매우 안타깝습니다. 미래에는 공군이 전쟁의 주역인데 왜 그것을 모르는지···.”

“조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당연하잖습니까? 저도 조종사인데 공군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까?”

윌리엄 단장은 들고 있던 포크를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테이블에 던져 버렸다.

“너도 알고 있는 것을, 워싱턴의 밥버러지들은 왜 모를까?”

순간 내 이마에 피가 몰려서 힘줄이 드러날 뻔했다.

직속상관이었고 내 전공을 인정하는 사람인데도 은연중에 나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지금 너희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동양인이겠지만, 나중에는 너희들이 나를 영웅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주마!’

내 속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아쉬운 것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진짜 무슨 생각들일까요?”

“조지, 술이나 한잔하고 갈래?”

“예, 술이라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마음속에 울분을 털어낼 기회가 없었는지 윌리엄 단장은 나를 붙잡고 끝없는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의 쓰레기들이···.”

“이 새끼들이 모두 그만둬야 공군이 생길···.”

“대통령은 도대체 뭘 하는지···.”

“내가 직접 보여 줬으면 알아쳐먹야지···.”

결론은 왜 공군은 만들어 주지 않냐는 소리였다.

이것이 미군 육군항공대에 속한 모든 조종사의 마음이었다.

* * *

윌리엄 단장은 그동안 마음고생과 잦은 음주 때문에 몸이 많이 상했는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햇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일어나서 내 부탁을 들어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조지! 이 편지는 육군 항공국으로 가지고 가서 청원을 넣고, 이 편지는 헨리 아놀드 소령에게 쓴 거니까 네가 가서 잘 설명해봐라”

나는 윌리엄 단장에게서 두 통의 편지를 건네받고

“단장님 덕분에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윌리엄 단장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거뿐이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도와주신 단장님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나중에 또 들리겠습니다”

윌리엄 단장에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몇 걸음 걸었을 때, 등 뒤에서 윌리엄 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지! 나는 니가 원하는 일이 이뤄지길 하늘에 기도하마!”

윌리엄 단장의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윌리엄 단장은 내가 무엇 때문에 비행기를 다시 타려고 하는지 눈치를 채고 나를 도와준 거였다.

‘아! 시발, 깜짝이야! 어젯밤에 단장님 욕한 것은 모두 취소할게요.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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