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공황이 꼭 발생해야 할 텐데.
3. 대공황이 꼭 발생해야 할 텐데.
‘친애하는 동료 조지 리 상사에게
..........헨리 아놀드 소령은 현재 포트 레번워스 육군참모대학에 있다네. 그런데 헨리는 왜 찾는 건가?
..........시간이 나거든 농장에 한 번 들리게. 오랜만에 만나서 식사나 하세
프랑스에서 함께 싸운 친구를 추억하는 윌리엄 빌리 미췔’
윌리엄 단장의 편지로 이윤호의 기억은 모든 것이 사실로 판명이 났다.
더글러스 맥아더도 체스터 니미츠도 그리고 헨리 아놀드도 모두 이윤호의 기억과 같은 계급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내가 이윤호의 기억을 각성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느님이 이윤호의 기억을 내 머릿속에 때려 박았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이제부터는 대공황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 * *
앞으로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레이놀즈 타이어를 정리하고 다음 사업을 준비해야만 한다.
준비를 하다가 보니까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이윤호의 기억에는 하나의 허점이 존재했다.
대공황이 언제 시작하고 어떻게 전개되고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알 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회사가 살아남고 어느 회사가 망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투자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이거 완전히 빛 좋은 개살구네. 이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잖아?’
일단 내가 생각하는 독립운동을 하려면 무조건 상하이로 가야 한다.
그리고 상하이에 근거지를 두고 할 만한 사업을 찾아내야 했다.
‘내가 아는 기술은 합성 고무하고 비행기 조종하고 대학에서 공부한 전기까지 세 가진데, 상하이에 가서 무엇을 할까?’
일단 타이어를 만들면서 축적된 합성 고무 제조 기술을 살려서 고무신을 만들어 보기로 정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일왕의 대가리에 폭탄을 떨궈 주려면 도쿄 항로를 알아야 할 텐데 그걸 알아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작정 비행기를 몰고 날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일본 전투기에 격추돼서 죽기 딱 좋았다.
합법적으로 일본의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사업이 필요했다.
“OK, 결정했다. 먼저 인천이나 부산에 고무신 공장을 만들고, 그다음에는 상하이에서 호화 여객기 사업을 해보자”
* * *
레이놀즈 타이어는 나 혼자만의 사업체가 아니다.
레이놀즈 타이어는 장인인 에이든 레이놀즈와 내가 십 년을 고생해서 만든 회사다.
그래서 공장을 정리하려면 아내인 샤본 레이놀즈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줘야만 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고 홍차를 한 잔을 들고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나름 여유를 즐기려는 아내에게 대공황을 이야기하기에는 미안했지만, 시간이 다급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샤본, 아무래도 조만간 미국에 큰 경제 위기가 올 것 같아”
홍차를 홀짝이고 있던 아내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경제 위기요? 혹시 옛날에 있었던 그런 거야?”
“응, 맞아.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사람들은 미국의 대공황이라고 하면 모두 1929년만 떠올리는데, 사실 미국에서 대공황은 두 번 정도가 더 있었다.
1870년대와 1890년대에도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주식 시장이 붕괴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생겼었다.
“조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에요?”
“샤본, 얼마 전에 연준이 금리를 대폭 인상했잖아?”
샤본 레이놀즈도 고등 교육을 받았고, 레이놀즈 타이어에서 회계를 보기 때문에 웬만한 경제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네, 그랬죠”
“연준이 아무래도 금리 인상 시기를 잘 못 택한 것 같아. 그리고 금리 인상 폭도 너무 컸고”
아내는 찻잔을 감싸 쥐고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금리를 크게 인상하면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
“대출이 많은 곳은 이자 부담 때문에 대출을 먼저 갚으려고 하겠지요”
“그렇지? 그런데 요즘 시장에서는 물건 가격은 좋은데, 물건은 안 팔리고 있어. 사실 요즘 경쟁이 너무 치열하거든, 그럼 이런 상황에서 대출이 많은 회사는 어떻게 대출금을 갚아야 할까?”
아내는 선 듯 답이 떠오르지 않는지 대답이 없었다.
“내 생각에는 빚이 많은 회사는 다들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할 거야. 노동자의 숫자를 줄이면 그 돈으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으니까”
“아! 우리는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서 그 생각을 못 했네요”
레이놀즈 타이어의 근로자들은 대부분이 아이리시 들이라서 서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까지 근로자를 해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샤본, 근로자들이 실직하면 돈이 없어서 물건을 사질 못하니까 그때부터는 더욱 물건이 팔리지 않겠지?”
“당연히 그렇겠지요”
“공장은 물건이 안 팔리면 대출금과 이자를 갚을 수 없어. 그럼 또 노동자를 해고하겠지? 그리고 물건의 판매가격을 다운시키겠지?”
“어! 이건···.”
“그래 맞아. 이제 악순환의 반복이 시작될 거야”
그리고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 주식을 사는 사람들 상당수가 빚으로 주식을 사고 있어. 이번 금리 인상으로 빚이 많은 투자자는 주식을 팔기 시작할 것이고, 그럼 주식 시장부터 빠르게 무너질 거야”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은 아내는 정말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떡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다.
“조지, 그럼 우리 회사는 어떡해야 해요?”
“내 생각에는 다 같이 길바닥에 나 앉기 전에 공장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럼, 공장의 아저씨들을 모두 해고하자고요?”
“회사를 넘길 때 고용 승계를 해준다고 해도 앞으로 힘들어지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코앞까지 다가온 대공황을 막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 같은 경우에는 막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공황이 생겨야만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기회가 생긴다.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언제 독립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저씨들을 모두 해고할 수는 없잖아요”
이번 대공황은 예전 두 차례 때와는 다르게 10년짜리 장기 공황이란 것을 말할 수도 없고 조금 답답했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걸 하려고 할지 모르겠네”
“뭔데요? 내가 아저씨들을 설득해 볼게요”
“이번에는 어쩌면 전보다 더 심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공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농사를 짓든지 아니면 식료품을 만들어서 팔면 좀 나을 거야”
“공장 노동자들한테 농사를 지으라고 해요?”
“응, 방법이 그것밖에는 없어. 사람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먹고는 살아야만 하잖아? 그러니까 농사를 짓든지 아니면 식품 가공업을 하면 버틸만할 거야”
아내는 파란색 눈을 깜빡이면서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떡해요? 레이놀즈 타이어를 정리하고 아무리 힘들다지만 계속 놀 수는 없잖아요?”
“우리 가족은 미국을 떠나서 상하이로 가자”
대공황이 온다는 말에도 별로 놀라지 않던 아내가 깜짝 놀랐다.
“상하이요? 미국을 아예 떠나자는 말이에요?”
“미국을 완전히 떠날 생각은 없어. 제이슨이 대학에 가야 할 때는 다시 돌아올 거야”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할 것 같아요?”
“상황이 상당히 많이 심각할 거야”
“음, 그럼 조지, 상하이에서는 무슨 사업을 할 생각인데요?”
“아시아에서는 합성 고무로 신발을 만들어 신는다니까 우리도 고무신을 만들어 보자”
“고무신요? 거기 사람들도 구두를 신는 것 아니었어요?”
미국이라는 나라는 원래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미국인들은 그런 경향이 더욱 심했다.
“내 고국이나 중국 그리고 인도차이나, 태국까지도 고무로 신발을 만들어 신는다고 하니까 사업을 해볼 만할 거야”
아내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지만, 과연 고무신이란 것이 사업성이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아시아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 우리가 아무리 싸게 팔아도 충분히 사업이 될 거야. 그리고 고무신이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상하이 도쿄 간의 여객기 사업을 해볼 생각이야.”
여객기 사업은 미래 전망이 좋다는 것을 아내 역시도 잘 알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난 언제나 당신을 믿어요. 당신 뜻대로 해보세요”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는 고무신 사업
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다른 고무신 공장들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타이어를 만들면서 쌓은 특허, 그것은 고무신 밑창이 잘 닳지 않고 오래 가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고무신에 굽도 만들고 상표도 붙일 생각이다.
하얀색 고무신의 윗면에 살짝 기울어진 V자, 그것은 바로 조선의 나이키다.
그리고 상하이 도쿄 간의 여객기 사업은 폭격기 항로를 미리 익히기 위한 술수였다.
* * *
아내가 마음을 정하고 나서부터는 최대한 빠르게 회사를 인수할 사람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내 걱정과는 다르게 경기가 폭발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인수 의사를 밝혔고, 그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인수 금액을 제시한 포드자동차에 회사를 넘겼다.
우리는 포드자동차에 레이놀즈 타이어를 넘기고 350만 달러를 받았다.
이 돈이 얼마나 큰 돈이냐면 현대의 환율로 환산하면 8,750만 달러였고, 이것을 다시 원화로 바꾸면 990억 원이 넘는 큰돈이다.
나는 아내와 약속한 대로 아이리시 들을 위해서 스태튼 아일랜드에 목장을 만들고 근처에 버터 공장까지 만들어 줬다.
그리고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과 휴식을 즐겼다.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대공황이 시작되는 날이 다가왔다.
사흘
이틀
그리고 오늘, 과연 이윤호의 기억처럼 주식 시장이 정말로 폭락할까?
뉴욕 증권 거래소는 10월 24일 검은 목요일과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두 번의 경이로운 대폭락이 연달아 일어났다.
‘우와! 씨발 진짜 다행이다. 혹시 대공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졸였는데, 씨발 진짜 다행이다.’
전 세계가 아마겟돈에 빠지는 대공황이 시작됐는데 좋다고 난리 치는 놈은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뿐일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나를 보고 미친놈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대공황 덕분에 대한민국의 독립이라는 수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들과 잠시 휴식을 즐기면서 내가 구상한 독립운동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나는 조선인이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할 생각이다.
한인 애국단이나 의열단 그리고 흑색공포단처럼 일본의 주요 인사를 암살도 하고, 리하르트 조르게나 엘저 히스와 같은 소련 간첩들을 이용해서 우리나라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마지막으로는 미군의 플라잉 타이거스가 돼서 일왕의 대가리에 폭탄을 떨굴 생각이었다.
광복군의 참전으로 전승국 지위를 얻는다.
이건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소리다.
수천만이 싸우는 전쟁터에서 돈 없고 가난한 우리가 광복군을 얼마나 키워낼 수 있을까?
해방 전 한반도에 우글거리던 수십만의 일본군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안되는 것은 빨리 포기하고 실현 가능한 범위 안에서 독립운동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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