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80화
더 이상 장소에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지하실은 좁았기에 많은 수의 하수인들 소환할 수 없었다.
또한, 서울에 있는 이들이 언데드 하수인들을 보면 혼란에 빠질 것을 알았기에 그것 역시 불가능했다.
하지만 심현섭에 의해 서울에 남아 있는 인원은 없었기에 그들의 피해 또한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백종인을 처단하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나 역시 함께했다.
“나와라! 하수인들이여!”
땅을 내려찍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언데드 하수인들.
해골 병사부터 둠나이트, 버닝부터 밴시까지 그 종류와 숫자에 상관없이 모든 소환할 수 있는 하수인들을 소환했다.
그리곤 손가락을 튕겼다.
훈련을 시켰던 모든 하수인들의 앞에 총기가 생겨났고, 그들은 익숙하게 그것들을 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손가락을 튕기자 이곳저곳에서 거대한 무기들이 생겨났다.
주변에선 포탑이 솟아 나왔고, 기관총이 생겨났다.
대포부터 박격포, 저격총, 화이트의 마나를 이용한 총기까지.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총기를 계속해서 소환시킨 것이었다.
“이, 이건? 자네가 한 건가?”
“원하는 무기들을 들고 싸우세요!”
갑작스럽게 나타난 언데드 몬스터들과 무기들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나를 보며 안심했다.
내가 했다는 것을 파악한 그들은 의심 없이 소환된 무기들을 집으며 공격에 나섰다.
수천 명이 모여 노리는 것은 오직 한 사람. 백종인이었다.
“죽어라라라앗!!”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졌다.
백종인은 마나석을 이용해 사람들을 공격했고, 그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방어력 또한 얼마나 강한지, 그의 몸을 둘러싼 마나 실드에 빈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이트에 대항하는 우리 역시 만만치 않았다.
숫자의 우위는 물론, 그들 역시 하나같이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그들은 각종 스킬과 마법, 주위에 무수히 많은 무기들을 이용해 공격해 나갔고, 백종인을 압박했다.
강력한 공격이 들어와도 모두 힘을 모아 이겨냈고, 막아냈다.
다시 일어서며 싸우고 공격을 강행했다.
계속되는 공격은 이윽고 백종인의 마나 실드에 금이 가게 만들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철컥.
“끝이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때 저격총을 들어 올렸고 능숙하게 장전했다.
총구에서 푸른빛의 마나가 뿜어지는 순간.
탕!!
쨍그랑!
무수한 회전과 함께 날아간 마탄이 백종인의 마나 실드를 깨버렸다.
“……!”
그는 놀란 듯 얼어버렸고, 사람들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모든 공격은 쉴 틈 없이 그에게 쏟아졌고 벌집을 넘어 그 형체가 남아 있지도 못하게 되는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허무하리만큼 간단하게 진압된 백종인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 *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한쪽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마나석을 향해 공격을 날렸고, 우리는 잠시 모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 공격을 쏟아부었음에도 끄떡하지 않는 마나석을 어떻게 파괴할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래, 금이 갔다고?”
계속되는 회의 끝에 심현섭이 눈썹을 씰룩이며 물어왔다.
그 대상은 강신우.
마나석에 난 흠집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아, 예…… 어쩌다 보니.”
“그 힘을 더 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모든 힘을 쏟아냈습니다. 더는 무리에요.”
그들이 도착하기 전 신우의 발도.
귀도를 이용해 쏟아낸 검기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실제로 아무리 공격을 쏟아부어도 흠집조차 낼 수 없던 마나석에 손톱 정도 크기의 틈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가까이에서 확인하지 않는다면 발견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천 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있는 지금 그것조차 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신우는 힘을 다 써버린 듯 완전히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순간적으로 발휘된 그 힘이 신우의 모든 기를 쏟아낸 것이었다.
“저한테 생각이 있습니다.”
“응?”
“제 말에 모두 따라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하게. 여기서 자네 말에 따르지 않을 자는 없을 걸세.”
조용히 나서자 심현섭이 동조해 주었다.
다른 이들 역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소속된 집단이 없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모두에게 설명하자 고개를 그덕였고, 생각할 것 없이 바로 시작했다.
잠시 마나석에 대한 공격을 멈춘 우리는 다시 모였다.
“시작합니다!”
“알겠네!”
철컥. 탕!
내가 먼저 장전하며 공격을 시작하자 모두의 스킬과 공격이 같은 곳으로 이어졌다.
모인 이들에게 부탁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특별할 것 없이 그저 내가 공격하는 곳을 함께 공격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공격한 것은 신우가 흠집 낸 마나석의 그곳이었다.
흠집이 작아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푸른빛까지 뿜어져 나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시야석 반지가 있었고, 그동안 단련시킨 저격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쉽게 노릴 수 있도록 내가 먼저 그곳을 향해 공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흠집이 난 곳에 모든 화력을 집중시키자는 의견을 낸 것이었다.
‘효과가 있어!’
효과는 확실했다.
모든 공격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부었을 때와는 달리, 한곳으로 집중시키자 흠집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더! 더 강한 스킬을 쏟아부워!”
효과가 있자, 모두에게 소리쳤고 자신들의 모든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나 역시 모든 마나를 쏟아부으며 마탄을 갈겨댔고, 이윽고 마나석에 금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쾅!!!
그리고 마나석이 금이 퍼지며 약해진 순간, 주위에 소환했던 모든 포탑의 공격을 마나석에 쏟아부웠고.
쨍그랑!
마나석이 깨졌다.
“…….”
마나석이 깨지는 순간, 그 안에 푸른빛의 에너지가 터져 나왔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강렬한 빛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이내 빛이 사라졌을 무렵.
모든 이에게 변화가 생겨났다.
“……어.”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몸 안에서 뭔가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언데드 하수인들은 소환이 해제되고, 주변의 무기들은 사라졌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꽃을 뿜어냈던 자는 불꽃을 뿜어낼 수 없게 됐고.
전기의 구를 만들어냈던 자는 전기의 구를 만들 수 없게 됐고.
육체가 강인해졌던 자들은 평범한 육체로 돌아왔다.
마나가 사라지고, 스킬이 사라진 것이었다.
마나석의 파괴와 함께 동기화는 멈췄고, 그렇게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 * *
마나석을 파괴한 뒤,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눈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으며, 마나 역시 사라졌다.
스킬을 다룰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며, 몬스터 역시 존재를 감췄다.
그들에 의해 망가진 세상은 그대로 였으나,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사라졌기에, 더 이상 사람들은 위협당하지 않았다.
단숨에 건물을 수리하고, 지을 수는 없었으나 사람들은 착실하게 건물들을 수리하고 지어나갔다.
마나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내고 불을 뿜어낼 수는 없었으나, 그 역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루어 나갔다.
사람들은 배려하고 도우며 다시 처음부터 마을을 재건하고 도시를 건설해 나갔다.
시간이 걸리지만 해야 할 일이었고,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몬스터가 살던 세상에서 느꼈던 공포는 사라졌기에 모두가 웃음을 띠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민혁 씨, 의뢰가 들어왔어요.”
주현이 서류를 건네주며 말했다.
의뢰를 맡을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종이를 받아들며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나갔다.
요약하자면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내용.
“양아치들을 처리해 달라는 거군요.”
“단숨한 양아치들은 아니에요. 어디서 무기를 구했는지 모두 무장을 하고 있다고 해요.”
“음…….”
“사람들을 협박해서 돈을 갈취한다고 해요.”
“재건 중인 마을에서요? 뺏을 돈도 없을 텐데?”
“그러니 의뢰를 맡긴 거겠죠?”
“훗, 제가 갈게요.”
“그럴 줄 알았어요. 이제 막 생겨난 범죄 집단인데, 꽤 규모가 있는 녀석들로 보여요. 최소한 10명 이상은…….”
“혼자 다녀오죠.”
“네? 민혁 씨? 민혁…….”
잠시 주현의 말을 듣고 있던 민혁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섰다.
이민혁 역시 다를 것 없다.
더 이상 무기를 소환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은 사용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그 역시 생각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던 중, 주현에게 제안을 받았다.
그녀는 강성곤, 김낙현과 용병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모아 용병단을 새로 만들었다.
더 이상 몬스터는 없었지만, 그들의 존재는 아직 필요했다.
몬스터가 사라지자 곳곳에서 범죄 집단이 생겨났고, 그들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들을 처리하는 집단이 바로 용병단이었던 것이다.
민혁은 스킬을 사용할 순 없었지만, 총기를 다루는 그 능력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기에 그들을 처리하는 데 큰 역할이 되어주었다.
세상이 재건되는 동안 그 역할을 맡아서 할 임시정부가 생겨났고, 민혁은 드디어 전역을 인정받았다.
군복을 벗어 던진 그는 용병단의 이민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철컥.
“어때요? 쓸 만하죠?”
“나쁘지 않은데?”
본격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민혁은 무기를 구하러 왔다.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것은 현지.
조그마한 가게이지만, 구할 수 없는 총기가 없는 그녀의 가게였다.
새로 생겨난 임시정부는 사람들의 총기를 허용했다.
언제 다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몬스터를 경험했던 모든이들은 그에 동의했고, 현지는 총기 사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의 가게를 지어준 건 강신우.
그의 집안은 유명한 건설 기업이었고,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기술을 배우는 동안 사람들과 함께 그녀의 가게를 건설해 주었다.
“그나저나 왜 용병일을 해요? 더 쉽게 살 수도 있겠구만.”
“응?”
“다 알아요.”
무기를 고르는 동안 현지가 물어온 질문.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대답하지 않았다.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동안, 민혁의 활약은 모두에게 알려졌다.
소문은 소문을 타고 커져만 갔고, 그는 어느 순간 모두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임시정부에서는 그에게 정치를 하라며 자리를 권했지만 거절했다.
“이게 좋겠네. 계산은 나중에 해도 되지?”
“네? 안 돼요!”
“흐흐, 달아놔! 간다!”
“이봐요! 안 돼요! 민혁, 민혁 씨!”
다급하게 부르는 현지를 뒤로하고 민혁은 곧장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러고 향한 곳은 범죄 집단의 아지트로 쓰이고 있다는 낡은 건물.
철컥.
익숙하게 장전한 그는 순식간에 몸을 놀렸다.
탕! 탕! 탕! 탕!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마다 범죄자들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반응할 수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민혁은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단숨에 수십 명을 제거해 버린 그는 몸을 숨기며 빠르게 장소를 훑었고 남아 있는 이들을 살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탕!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