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77화
“비트레이가 잘할 수 있겠습니까?”
“괜찮을 거야. 아마도…….”
건물의 앞에서 우리를 기다고 있던 남자의 등장.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전날, 화이트의 내부를 돌아다니며 얻었던 정보에 의하면 경비 중 낯선 이가 도착하면 그를 데리고 마나석으의 제물로 바친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직급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는 그가 나타나 비트레이를 인솔해 가버린 것이었다.
예상과는 다른 상황에 당혹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다시 그를 따라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비트레이가 잘해주길 믿을 수밖에 없었다.
* * *
“어떻습니까? 마나석이라고 불리는 물질입니다.”
“…….”
“많이 놀라셨나 보군요. 혹시 저희가 배포한 마정석을 가지고 계시나요? 마정석은 바로 이 마나석을 연구해 만든 복제품입니다.”
서울을 찾아온 낯선 여행자를 데리고 간 남자.
그가 비트레이를 데려간 곳은 화이트의 지하였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돌덩이.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영혼이 빠져들 것 같은 그것을 자랑하듯 소개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흠흠. 반응이 없으시군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눈앞의 남자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누구든 마나석을 처음 본 이라면 놀라 자빠지거나 감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반면 이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감탄도 내뱉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쯧. 마나의 힘도 모르는 애송이인가 보구만.’
물론, 가끔 이런 경우 역시 있었다.
마나와 마정석, 스킬의 힘을 모르는 플레이어.
그들은 애초에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했기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는 눈앞의 남자 역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흥. 죽기 전에 좋은 경험을 시켜줬건만, 그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니…… 어서 빨리 제물로 바치고 가야겠구만.’
마나석을 보여줬음에도 반응이 없는 눈앞의 남자.
제물이 되기 전 친히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건만, 시간만 낭비한 듯했다.
안 그래도 내일의 일정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건만.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한시라도 빨리 눈앞의 남자를 처리해야겠다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흠흠. 여행을 하시면서 얻게 된 무기나 아이템을 가지고 있습니까?”
서울을 찾아온 플레이어라면 누구든 듣게 되는 질문이었다.
무기와 아이템.
플레이어들은 모험을 통해 일반적인 퀘스트와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평범한 무기와 아이템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그중에는 특별한 것들이 숨어 있었고, 그것은 화이트에게도 좋은 쓰임새로 여겨졌다.
더구나 서울을 찾아올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실력 있는 자들이 더러 있었기에, 제물이 된 그들의 물건을 회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스으윽.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남자였으나 지금 이 시점에 서울에 온 것을 보면 꽤 오랜 기간 여행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마나에 대해서도 모르는 이가 지금까지 생존했다면, 필히 무언가 그 이유가 있을 터.
슬쩍 물어본 그 물음에 그는 독특한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오오, 이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독특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방망이를 살펴보며 묻자, 그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살(殺)!”
“……!”
순식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망이를 양손으로 들며 독특한 자세를 취했고, 눈을 깜박한 순간.
“별거 아니군.”
비트레이를 무시하던 그는 살아 있지 못했다.
자신의 눈앞에 피범벅이 되어 머리통이 깨진 그를 무심히 바라보며 비트레이가 내뱉은 말이었다.
쉬이이이이-
그 순간 마나석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나석에서 넘쳐나던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죽은 그의 시체를 감싸 안았고, 그의 영혼이 빨려 들어갔다.
시체는 수분 한 점 머금지 못한 것처럼 말라 비틀어졌다.
“…….”
모든 형상을 지켜보고 있던 비트레이는 다시 한번 조용히 도깨비방망이를 들어 올렸다.
“안개비!”
쾅!!!
그 순간, 엄청난 양의 안개가 구름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안개는 화이트의 건물을 넘어 서울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
자신이 사용한 스킬이었으나, 비트레이 역시 놀랄 정도의 효과.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마나석을 보며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유추했다.
* * *
“비트레이가 성공했나 봅니다!”
“가자.”
서울 전역에 피어오르는 연기.
그것은 경비를 서고 있던 민혁과 신우에게도 포착되었다.
엄청난 속도로 영역을 넓혀가는 연기는 귀신의 숲에서 보았던 그것보다 더욱 강렬했다.
신우의 외침에 민혁은 바로 방벽의 문을 열어젖혔고, 서울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각각 자신의 마을에 있던 심현섭과 주현의 앞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적혀 있는 서울의 상황과 도움을 요청하는 글귀.
현지가 심현섭에게 받은 ‘고성능 정보 전달 새’를 사용해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다.
“때가 왔군.”
“성곤 님, 낙현 님. 모두 준비시키세요.”
심현섭과 주현은 각각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메시지를 천천히 읽어나갔고, 그 즉시 행동을 시작했다.
* * *
방벽을 통과하자 보이는 것이라곤 뿌연 안개들뿐.
하지만, 이전의 으스스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안개들.
“대성공이야.”
비트레이에게 부탁한 것은 안개의 효과를 이용해 사람들을 재우는 것이다.
한두 명의 사람이 아닌.
서울 전역의 모든 인구를 안개를 이용해 재우라 명령한 것이었다.
비트레이의 검인 귀도는 신우에게 있었지만, 그에겐 도깨비방망이가 있었다.
자신의 일족의 무기인 도깨비방망이는 영혼을 다루는 그들의 특성을 증폭시켰고, 마나석으로 인해 가득 찬 마나 또한 영향을 준 듯했다.
비트레이는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었다.
“이쪽으로 와! 바로 이동하자!”
“예, 이 병장님.”
우리는 곧바로 포탈을 이용했다.
푸른빛의 포탈에 몸을 던지자 순식간에 화이트의 건물로 이동되었다.
‘좋아,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어.’
도착하니 보이는 것은 쓰러져 있는 사람들.
비단 일반 시민들뿐만이 아닌, 화이트의 복장을 입고 있는 이들 역시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비스트리의 안개의 효과가 일반 시민이 아닌 화이트의 직원들마저도 잠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쉽게 풀려가는 상황에 쉬지 않고 화이트의 건물로 들어갔다.
“이 병장님.”
“그냥, 뛰어넘어!”
출입을 막고 있는 자동문,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열어주거나, 직원 카드를 인식해 열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단숨에 문을 뛰어넘어 건물의 내부로 들어갔고, 그대로 지하로 향했다.
“으햐햐햐앗!!!”
깡! 깡! 깡!
지하로 도착함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타격음.
비트레이는 자신의 방망이를 이용해 연신 마나석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한쪽에 시체는 미라처럼 쓰러져 있었고, 다행히 주변에는 그 누구도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허억, 허억.”
얼마나 애를 썼는지 숨을 헐떡이던 비트레이는 우리가 도착하자 뚜벅뚜벅 걸어왔다.
“제 힘으로 저것을 파괴하기엔 부족합니다.”
“…….”
비트레이게 명령한 것은 안개뿐이 아니었다.
기회가 된다면 마나석을 부수라 했고, 그는 지금껏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나석은 그 혼자의 힘으로 부수기에는 너무나도 단단했다.
“신우야!”
“예!”
자신을 부르자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아 드는 강신우.
나 역시 K2 소총을 꺼내 들며 자리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마나석을 향해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 * *
“허억, 허억, 젠장.”
나의 마탄, 신우의 귀도, 비트레이의 도깨비방망이까지.
우리는 모든 힘을 쏟아부었지만, 마나석엔 기스조차 낼 수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모두가 멈춘 순간.
이대로는 부족했다.
“모두 뒤로 물러서.”
“이, 이 병장님?”
“알겠습니다. 주군이시여.”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신우는, 아무런 의심 없이 뒤로 물러서는 비트레이트를 보며 자신 역시 뒤로 물러났다.
딱!
펑! 펑! 펑! 펑!
그리고 그런 그들을 확인하며 손가락을 튕긴 순간.
마나석에 버금가는 거대한 포탑이 생겨났다.
“이, 이게? 이 병장님이 하신 겁니까?”
심히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하는 녀석.
그것은 비트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운데의 마나석을 중심으로 거대한 포탑 4개가 일순간 생겨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딱!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사방에서 각종 무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동권총, 소총, 저격총, 대포, 바주카포, 대물저격총 등등
수십, 수백 개의 무기들이 사방에서 그 종류에 상관없이 엄청나게 쏟아져 내렸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그리곤 원격제어 장치를 발동시켰다.
사방에 펼쳐져 있던 모든 무기들은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또한, 포탑 역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스며든 포탑은 웅장한 소리를 내며 조준을 시작했고, 모든 포신은 마나석을 겨냥했다.
공중에 떠오른 무기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소리치는 순간.
“발사!!!”
타당! 탕! 탕!
쾅! 파방!! 팡!! 콰!! 콰광!!!
모든 공격이 마나석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천둥이 치는 소리와 버금갈 정도의 굉음.
건물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할 정도의 총공격이 이어진 것이었다.
검다 못해 매캐한 연기가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마나석이 파괴됐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연기로 가득 찬 그때.
지하실의 문이 열렸다.
“……!”
“이, 이 병장님!”
“주군!”
문이 열림과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그들은 순식간에 우리를 포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한 사내.
저벅. 저벅.
앞서 들어온 이들과 달리 느린 걸음으로 들어온 그의 곁에는 두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붙어 있었다.
화이트의 제복을 입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말끔한 양복 차림의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백발의 머리가 인상적인 그는 마나석을 한번.
그리고 우리를 한번.
지하실 전체의 상황을 한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반갑네, 나는 화이트의 대표 백종인이라고 하네.”
“…….”
“…….”
“…….”
그리고는 난데없이 인사를 건네왔다.
웃으며 자신을 소개한 백종인이었으나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살기였다.
그 어떤 몬스터, 보스 몬스터보다 강한 살기.
그것은 분명 나만이 느낀 것은 아니었다.
신우와 비트레이역시 그가 등장한 순간 말이 없어졌고, 긴장한 듯 보였다.
아무런 대답없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
그사이 총공격으로 인한 연기는 날아갔고, 마나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젠장, 이걸로도 역부족이라니.’
자세히 살펴볼 순 없었지만, 힐금 바라본 마나석의 형태는 온전했다.
그 순간, 백종인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