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76화
‘어, 엄마. 아빠!’
강신우는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부모님을 지켜보았다.
쏟아지는 눈물에 당장에라도 달려가 부둥켜안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자신을 밝히면 그들이 바깥의 상황을 알게 될 것이고. 오히려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을 알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놈은 걱정하지 말래두. 군대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우리보다 더 안전할 거네. 비상사태가 끝나면 바로 볼 수 있을 거야.”
신우의 어머니가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은 커피잔을 들어 올린 그.
신우의 아버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겠죠? 신우가 덤벙대는 구석이 있어서 걱정이에요…… 누구든 이끌어주는 이만 있으면 잘해내는 녀석인데…….”
“흐음…… 걱정하지 말래두. 내일이면 비상도 끝난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제 그만 하시게.”
“……알았어요. 저는 이만 들어가 잘게요.”
신우 어머니의 계속된 걱정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들고 있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는 그를 보며 신우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흠…….”
그녀가 들어가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벗었다.
피로한 듯 눈을 감싸며 생각에 빠진 그가 누구를 생각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흑, 흑.’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신우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을 빠져나왔다.
잔디로 뒤덮인 정원을 가로질러 다시 담장을 뛰어넘은 그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민혁과 마주했다.
마지막으로 눈물을 닦으며 손에서 루핀의 반지를 빼내었다.
“어, 부모님은 만나 뵀어?”
“예, 다행히 두 분 다 건강하십니다.”
“다행이네.”
민혁에게 다시 반지를 건네자 그가 받아들며 웃어 보였다.
“그보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갑작스러운 신우의 말.
울기라도 한 듯 그의 눈은 시뻘겠고, 눈가엔 눈물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꺼낸 그 말에 집중하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내일. 내일이랍니다.”
* * *
신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신우의 아버지가 말했던 내일.
그것은 비상사태가 끝나는 날.
즉, 마나석이 완성되는 날이었다.
화이트는 마나석의 완성이 다가오자 서울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렸고,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던 것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기에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마나석의 완성.
그것을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고, 그 제물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우리는 날이 밝음과 동시에 다시 화이트의 건물로 이동했다.
“하하하, 드디어 내일이구만.”
화이트의 3층 탈의실.
근무복으로 갈아입는 사이.
동료로 보이는 남자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박지운이 아닌 다른 이었으나, 당연히 알아볼 리 없었다.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가길 바랐으나, 그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자네들 벌써 출근한 건가?”
“예? 아, 예.”
“그래? 잠시만 이민기, 오지호…… 저녁 9시에 근무인데?”
그는 종이를 꺼내보며 우리의 이름을 찾는 듯 보였다.
근무 시간표로 보이는 그것에 손가락으로 찾아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어제 하루 종일 근무여서 오늘 낮에는 근무가 없는데 무슨 일로?”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보는 그의 표정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내, 내일이 그 날이서요. 긴장이 되서 미리 왔습니다.”
“아! 하하하하, 그럴 만도 하구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였지만, 그는 이해한다는 듯이 웃어넘겼다.
근무시간이 저녁이었을 줄이야.
그런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이해하네, 나도 어제 한숨도 못 잤으니.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어이쿠 나는 근무시간이 돼서 먼저 가보겠네.”
그는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토닥이고는 급하게 탈의실을 빠져나갔다.
‘큰일 날 뻔했다.’
가슴 한쪽을 쓸어내리며, 신우를 바라보자 그 역시 긴장한 듯 식은땀을 쓸어내렸다.
“더 조심하는 게 좋겠어. 우선 우리도 나가서 둘러보자. 뭐든 알아낼 만한 정보가 있는지 찾아야 해.”
“예, 알겠습니다.”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탈의실을 빠져나왔고, 화이트의 건물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건물의 생김새부터 심상치 않은 곳.
평범한 빌딩의 모습이 아닌, 마나와 스킬을 이용해 건축한 것으로 보이는 건물은 역시나 특이했다.
건물의 내부는 일반적인 그것과 다른 점이 없어 보였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다.
“건물의 중앙이 뚫려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지하부터 천장까지, 건물의 중앙이 휑하게 뚫려 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이런 식의 모습으로 건물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마나석의 위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병장님, 저기…….”
“응.”
건물 어느 층에서든 중앙의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대한 돌덩이가 보였다.
마정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푸른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돌덩이.
지하에는 거대한 마나석이 존재했던 것이다.
‘저걸 부숴야 한다.’
목적은 간단했다.
내일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저기 있는 마나석을 제거하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화이트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마나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될지 알 수 없었으나, 제물이라는 목적하에 죽게 될 모든 이들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저것을 제거해야 하는가.
“위치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쉽지 않겠어.”
화이트의 위치는 서울의 한복판.
더군다나 주변엔 민간인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마나석을 부수려 한다면 전투가 일어날 것은 분명했다.
화이트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
그들 역시 전부 능력자로 이루어져 있는 집단이었기에, 전투가 일어나게 된다면 민간인들의 피해 역시 피할 수는 없었다.
심현섭과 용병들을 데려온다 해도, 방벽이 문제였다.
방벽을 부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몬스터에 노출된다.
오히려 더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될 터.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면서, 화이트와 전투. 그리고 마나석을 파괴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했지만,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우선, 정보를 모으자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신우와 나는 그렇게 화이트 내부의 우리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둘러보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9시가 다가왔을 때 우리는 다시 모였다.
* * *
“수고하게.”
“그래, 가서 쉬도록 해.”
화이트의 독특한 총기를 들어 올리며 두 명의 남자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경비근무를 교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텔레포트를 통해 완전히 떠나간 동시에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이익. 치이익.
-교대했습니까?
치이익. 치이익.
-예,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근무교대를 원활히 했는지 물어오는 무전기.
그것에 대답함과 동시에 우리는 근무지를 벗어났다.
무전기가 있었기에 미리 상황을 들을 수 있었고, 근무지에는 신우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했다.
“민혁 씨, 신우 씨!”
“기다렸다. 개굴!”
“…….”
가장 먼저 만난 것은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 그리고 비트레이였다.
우리가 없는 동안 몸을 숨기고 있던 그들이었으나, 우리를 보며 다가온 것이었다.
그들에게 지금껏 알아온 정보를 모두 털어냈고, 상황을 설명했다.
“내일이요?”
“네, 시간이 없습니다.”
“어, 어떻게 할 생각이냐. 개굴.”
당장 남은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내일이면 마나석이 완성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기에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현지 씨는 심현섭 님과 주현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네, 알겠어요.”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심현섭과 주현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서울로 떠나기 전 심현섭이 우리에게 준 아이템.
[고성능 정보 전달 새]
[메시지를 입력 후 마나를 주입시키면 원하는 대상에게 전달할 수 있다. 1회 사용 가능.]
전화를 사용할 순 없었기에 그의 마을에서 제작한 이것을 건네준 것이었다.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다수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기에 지금이 적당한 때라 여겨졌다.
“그리고 비트레이.”
“예. 주군이시여.”
“저번에 사용했던 그 안개. 사용 가능해?”
“안개 말씀이십니까?”
비트레이가 사용했던 안개.
신우의 모습을 한 그가 귀신의 숲에서 사용했던 스킬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홀리게 하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지 물어본 것이다.
“그곳은 음기가 가득해서 사용이 가능했으나, 이곳은…….”
“불가능한 거야?”
비트레이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다.
그리고는 고개를 까딱이더니 눈을 감고 무언가 느끼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뭣 때문에 그래?”
“이곳은 음기는 부족하지만, 마나가 매우 넘쳐납니다. 충분히 가능할 거라 봅니다.”
“좋아.”
혹시나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다행히 돌아온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귀신의 숲에서 그가 펼친 스킬은 그곳이 음기로 가득 차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서울은 음기는 없었으나 다른 곳보다 마나가 넘쳐났다.
다른 이유가 아닌 마나석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
마나석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던 것이다.
비트레이의 확답을 듣고 나자 남은 것은 개구리 인간 종수뿐이었다.
“나, 나는 뭘 하면 되냐. 개굴…….”
자신 없는 표정으로 물어보는 그는 긴장되는 듯 떨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해주시면 됩니다.”
* * *
다시 방벽의 정문으로 돌아와 우리는 경비를 맡고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 앞에 있는 낯선 남자.
도깨비방망이를 이용해 변신한 비트레이였다.
무전기를 들어 올려 작동시켰다.
치이익. 치이익.
-새로운 모험자가 찾아왔습니다.
치이익. 치이익.
-마나석으로 인솔 바랍니다.
무전기에 대고 새로운 모험자의 도착을 알리자,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열리는 정문.
눈빛을 주고받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이동했다.
포탈을 타고 이동하자 화이트의 건물 앞엔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서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리고 비트레이를 보며 환한 웃음과 함께 악수를 건네는 자.
“예, 반갑습니다.”
잠깐 눈치를 본 비트레이는 그의 손을 잡으며 악수를 나눴다.
“행색을 보니 플레이어이신가 보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곳엔 우리 화이트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따라오시지요.”
“…….”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깐의 조사만 할 뿐입니다. 이곳에 몬스터는 없습니다. 두 분은 돌아가셔도 됩니다. 이분은 제가 인계하겠습니다.”
비트레이에게 상냥한 웃음을 보내던 그는 우리를 보며 무뚝뚝한 얼굴로 명령했다.
그만 돌아가 경비를 서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뒤로 돌아 다시 포탈을 타고 이동했고, 비트레이는 그를 따라 마나석으로 걸어갔다.
“…….”
그리고 마나석이 있는 지하에 도착한 순간.
비트레이는 도깨비방망이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