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74화
툭.
무심코 확인한 그곳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병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왜 그래요?”
“…….”
놀란 듯한 반응이 신경 쓰인 신우와 현지의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집중했다.
서울의 경비를 맡고 있는 화이트의 직원들.
그들은 낮에 보았던 그 얼굴들이 분명했다.
그리고 한 사람.
플레이어로 유추되었던 낯선 남자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다.
죽은 채로.
‘무슨 짓을 한 거야?’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그 광경.
화이트의 두 남자는 커다란 포대를 한쪽씩 잡으며 반동을 주기 시작했고, 그것을 던저 버린 것이었다.
대충 막아놓은 그 포대 안에 보이는 옷이며, 상처, 얼굴은 분명 낮에 본 그가 확실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그 남자의 상태였다.
낮에 확인한 그는 초췌하고 꾀죄죄하기는 하였으나, 분명 건장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플레이어로 유추한 것 역시, 손에 든 검 이외에도 건장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대 안에 비춘 남자의 시체는 완전히 말라 버린, 미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흠.”
꽤 많은 경험을 하였으나, 그 끔찍한 모습은 먹었던 고기를 게워내고 싶을 정도였다.
억지로 헛기침을 하며 참아냈고, 그들의 행동을 더욱 자세히 관찰했다.
‘또 뭐야?’
화이트의 그들은 낯선 남자의 시체를 버린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경비를 서던 중 한 남자가 걸어 나왔고, 포대 위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액체를 뿌려댔다.
“……!”
그러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킁킁킁.
크르르르.
주변의 몬스터들이 서서히 그곳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둘 어디선가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은 홀린 듯이 포대를 향해 갔고, 굶주린 배를 채워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시체는 뼈만 남았고, 몬스터들의 식사가 끝난 순간.
그들의 총질이 이어졌다.
몬스터들을 죽이기 위한 총질이 아닌, 그들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바닥을 향한 총구가 불을 뿜자, 몬스터들은 어지럽게 뛰어다니며 뿔뿔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감쪽같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방 뛰어다니며 난장판을 피우는 몬스터들 탓에 남아 있던 뼈는 바스러져 흩어졌다.
그곳은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만 같았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그야말로 노련한 녀석들.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이트 그들은 이방인을 데려갔고, 반나절이 지난 지금 그는 시체가 되어 나왔다.
시체조차 몬스터를 이용해 순식간에 처리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베테랑이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죄책감이나 죄의식 따위를 느끼는 일말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 이곳에서 지켜볼 필요는 없었다.
* * *
“비트레이, 잠깐 줘봐!”
“예! 여기 있습니다.”
펑!
펑!
명령을 하자 비트레이는 자신이 들고 있던 도깨비 방망이를 건네줬다.
그것을 받아들며 나와 신우의 머리를 강타하자 각각의 머리에선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둔탁한 방망이의 타격과 함께 모습을 변신시킨 것이었다.
비트레이를 통해 변신을 했다면 더욱 정교했겠지만, 그는 경비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하게 된 것이었다.
척! 철컥.
화이트 경비병의 모습으로 변신한 채로 무기고에서 저격 총을 꺼내 들었다.
장전과 함께 한쪽 무릎을 굽히며 조준했고,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김과 동시에 두 명의 경비병들을 명중시켰다.
“가자!”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화이트 경비병의 모습으로 변신한 나와 신우뿐만이 아닌,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 비트레이까지 마찬가지였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조심하세요.”
“기다리고 있겠다. 개굴.”
이미 짰던 계획대로 신우와 나는 쓰러진 그들의 무기를 주워들며 경비를 섰고.
현지와 종수, 비트레이는 그들의 시체를 데리고 돌아갔다.
“잘할 수 있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그들을 보며, 옆에 긴장한 듯 보이는 신우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저만 믿으십시오.”
자신 있게 대답하는 녀석을 보며 다시 경비를 서듯 앞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제 곧 교대를 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올 것이다.
일주일 동안 밖에서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 것은 모두 지금의 잠입을 위해서였다.
화이트 경비병들의 교대 시간과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서 지속했던 관찰.
그것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할 시간이 온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이봐, 교대할 시간이야.”
“수고했습니다.”
서울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걸음소리.
그곳에서 두 명의 새로운 경비병들이 다가왔다.
경비의 교대 시간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며 교대를 준비했고, 우리역시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에너지원이 찾아왔다면서? 귀찮았겠구만, 수고했어.”
“하하하 고생했습니다. 오랜만의 에너지원이네요.”
으레 하는 말인 듯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말.
그들이 말하는 에너지원은 낮에 찾아온 낯선 남자를 뜻하는 것이었다.
“별다른 인계 사항 있나?”
“없습니다.”
“알겠네, 들어가서 쉬게.”
마지막으로 그들은 물었고, 느낌상 선배인 듯한 그에게 대답했다.
그들은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고, 그렇게 그들과 교대했다.
신우와 나는 자연스럽게 교대 후 서울로 들어갔다.
* * *
“이 병장님…… 저기.”
“그래, 포탈이 보일 거야.”
화이트의 경비의 모습을 한 신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푸른빛이 흘러나오는 공간.
그것은 다름 아닌 포탈이었다.
화이트의 직원이었던 강성곤과 김낙현에게 미리 정보를 들었기에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경비를 맡은 화이트의 직원들은 포탈을 통해 본부로 이동한다고 했다.
그때 이용하는 것이 바로 포탈.
마나의 힘으로 작동시키는 그것은 그야말로 혁신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 그 어디에 있어도 포탈이 설치된 장소라면 단번에 이동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이동 장치였다.
텔레포트와 같은 기능이었지만 조금 달랐다.
‘확실히 장단점은 있나 보군.’
텔레포트의 경우 수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먼 거리를 이동시킬 수 있었지만, 그만큼 소모되는 마나의 량과 제사용 대기시간이 길었다.
그에 비해 포탈은 원하는 장소에 설치해 두면 언제든지 이용이 가능했다.
다만, 그 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기에 서울에서만 사용이 가능했고, 그만큼 원하는 장소에 미리 설치를 해야 한다는 점이 존재했다.
‘그래도 대단한 기술인 것은 부정할 수 없겠어.’
신우와 함께 멈춰선 곳은 푸른빛이 구의 형태로 휘몰아치는 그것의 앞이었다.
“여기는……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우가 조금만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
그것은 우리의 눈앞의 포탈을 보고 한 말이 아니었다.
포탈 역시 신비롭고 굉장했지만, 그보다 포탈의 뒤에 펼쳐진 서울의 풍경 때문이었다.
높은 건물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무심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다니는 그들의 얼굴엔 불안감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마나와 스킬의 발달로 풍경 자체는 꽤 많이 변해 있었다.
그 용도가 무엇인지 추측할 수 없을 정도의 독특한 형태의 건물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마나로 이용된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 멀리 보이는 가장 크고 거대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건물.
그곳이 포탈과 연결된 화이트의 본거지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우와 내가 놀란 것은 사람들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변화는 있었겠지만, 그것은 몬스터의 존재로 인한 마비가 아닌 스킬의 발달로 인한 발전일 터.
강성곤과 김낙현의 말대로 서울 대부분의 사람들은 몬스터의 존재를 직접 본 적이 없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
왠지 모르게 씁쓸한 광경에 입맛을 다시며 신우를 툭 쳤다.
우선 우리의 일을 해결하자는 뜻이었고, 그렇게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수우욱.
뒤따라오는 신우를 한번 확인하고 포탈의 푸른빛의 안으로 들어가자 순식간의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눈을 깜빡한 순간, 화이트의 건물 앞으로 이동된 것이었다.
“와아…….”
신우 역시 같은 경험을 한 후, 신기한 듯 감탄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곳은 화이트의 본거지.
서울의 입구에 비하면 화이트 내부의 직원들이 수도 없이 많이 지나다녔고, 그런 신우를 보며 눈치를 줬다.
그러자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신우와 함께 눈앞의 거대한 건물로 발걸음을 향했다.
깨끗한 유리로 제작된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바리케이드가 우리를 막아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티 나지 않게 살펴보자, 위쪽에 보이는 조그마한 카메라.
그것을 슬쩍 확인한 순간.
바리케이드가 저절로 열렸다.
‘우리를 확인하고 누군가 열어준 모양이군.’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우리가 모습을 하고 있는 자들과 친분 또는 안면이 있는 자가 우리의 신분을 확인후 문을 열어준 것으로 보였다.
자연스럽게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다가왔다.
“이민기, 오지호 퇴근하냐?”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남자.
그의 시선과 발걸음은 분명 신우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 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색하게 손을 들며 인사하자 그가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오늘 한 건 했다며?”
“응?”
“에너지원 말이야, 에너지원.”
“어, 어…… 그렇지 뭐.”
“좋겠다. 복이 제발로 들어오는구나.”
친근함을 표시하며 다가온 그 남자는 수다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그가 말을 이어갔다.
“에너지원이 귀찮긴 해도. 회사에서 보너스는 두둑하게 주잖냐. 부럽다. 부러워.”
“…….”
그제야 그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진의를 확인한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당장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옆에 있는 신우 역시 표정이 어두워지며 주먹을 떨었지만, 행동하지는 않았다.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낯선 남자.
그는 갑자기 생겨난 몬스터와 세상의 변화로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찾아왔을 것이다.
서울을 지키고 있는 방어벽과 경비병을 만난 순간 그는 희망을 되찾고 안심했을 터.
하지만 이들은 그를 그저 보너스나 주는 귀찮은 존재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이 남자의 주둥이에 권총을 갈겨 버리고 싶었지만, 충동을 억제하며 차분하게 심호흡을 했다.
“그건 그렇고, 지금 퇴근하지? 어서 옷 갈아입고 나와 술이나 한잔하자.”
“술?”
“그래, 요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빨리 3층에서 옷갈아입고 나와.”
그리고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를 지나쳐갔다.
“이 병장님?”
그가 사라지자, 신우가 다가와 조심스레 불렀다.
어떻게 할지를 묻는 것이었다.
“3층이라 했지? 옷 갈아입고 오자.”
“수, 술을 마실 겁니까?”
“저 남자. 입이 가벼워. 들을 수 있는 정보가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가지 않으면 의심을 살 수 있어. 우선 3층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