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73화
“이 병장님, 오늘도 관찰하시는 겁니까?”
“응, 주변에 부탁 좀 할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서진 한쪽 벽에 수그리고 앉아 쳐다보고 있자 강신우가 다가와 물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현지가 발견한 무너진 건물 안에 위험이 될 만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쓸 수 없게 된 가구들과 잡다한 물건들이 전부.
그나마도 부서진 건물로 인해 천장이 없다 보니 모래들로 가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지내기에는 적당한 장소였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피해가 가장 적은 것도 한몫했지만, 서울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화이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시야석 반지가 있어서 다행이야.’
우리가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그들 역시 우리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시야석 반지 덕분에 그러한 점은 다행히 해결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이동한 거리에 비교했을 때였다.
화이트 경비병들과 우리가 머물고 있는 거리에서 맨눈으로 서로를 확인하긴 어려웠다.
아무리 시력이 좋다고 한들, 그들의 눈에는 우리의 건물이 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시야석 반지와 망원경을 통해 나만이 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도 신우 씨랑 같이 다녀올게요.”
“네, 그러세요.”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는 현지 역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들을 관찰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는 몬스터.
우리가 거점으로 잡은 건물은 물론, 서울의 방어벽을 둘러싼 주위에는 서성거리는 몬스터로 가득했다.
그 종류와 숫자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고, 무엇보다 그들은 너무나도 포악했다.
인기척을 느끼는 것 만으로 공격을 해왔고, 그들 하나하나의 힘 역시 지금껏 만나온 몬스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역시 몇 번이나 그들과 마주쳤고, 신우와 현지, 개구리 인간 종수와 비트레이가 역할을 맡아 공격해오기 전에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젯밤에는 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몬스터를 발견한 것 같아요. 오늘 녀석을 잡으면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오, 오늘은 돼지고기를 먹는 겁니까?”
“운이 좋으면요.”
또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단순히 위협에 대비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주변의 몬스터들을 통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신우의 ‘식재료 탐구’ 스킬을 이용해 몬스터들을 판별하고 그들을 사냥하고 요리했던 것이다.
아직까지 심현섭의 마을에서 챙겨온 식량은 남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비상식량.
그 양이 많지 않을뿐더러, 만약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흘러간 선택이었다.
“이 병장님, 그럼 저희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신우와 현지가 사냥을 떠나고 남은 것은 나와 개구리 인간 종수 그리고 비트레이였다.
“개굴. 내가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고 관찰해라. 개굴.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말해주겠다. 개굴.”
신우와 현지가 나가고 나자, 나를 제외한 그들의 역할은 바로 이어졌다.
바로 경비를 맡는 것이었다.
내가 화이트 경비병들을 관찰하는 사이, 무방비해진 우리의 거점에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살피는 것이었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비트레이는 물론, 개구리 인간 종수 역시 그동안 끊임없이 성장했기에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신호를 주는것이었다.
“그럼, 이제 다시 살펴볼까?”
모두 각자의 역할을 맡아하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서울로 들어가는 그 문을 지키고 있는 화이트의 경비병들을 다시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주일 정도 지켜본 그들의 역할은 다름이 아니었다.
그곳을 지키고 서 있으면서 다가오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구역이 있는지, 서성거리던 몬스터가 그곳에 한 발자국이라도 발을 들여놓으면 그들은 가차 없이 총구를 들었다.
‘마나를 이용한 총’
화이트의 경비병에서 시선을 이동시켰다.
그들이 무차별적으로 처리한 몬스터들의 시체로 시선을 바꾼 것이다.
자세히 살펴본 그 시체들의 상처는 총알에 의한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몬스터들의 피부를 너무나도 깔끔하게 꿰뚫은 자국이며 주변의 털이 열기에 의해 탄 자국.
그것은 마치 마탄을 이용한 그것과 비슷했다.
실제로 화이트의 경비병들이 쏘는 총의 모양은 독특했고, 그들이 몬스터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마치 레이져 같은 푸른빛의 광선이 뿜어져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나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화이트 경비병들의 손에도 역시 푸른빛이 뿜어져 나갔기에 알 수 있던 사실이었다.
“……엇!”
숨죽이며 그들을 확인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쪽이 아닌, 서울을 향해서.
‘플레이어로 보여. 꽤 오랜 모험을 한 모양이야.’
허름한 옷차림의 그 남자의 손엔 기다란 검이 들려 있었다.
고생을 했는지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는 그는 플레이어가 분명해 보였다.
지금껏 서울을 향해 오는 것을 목표로 했는지, 그는 화이트의 경비병을 본 순간 환호의 표정으로 바뀌었고, 한걸음에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나오는지 볼까?”
지키고 있던 화이트 경비병들 역시 그제야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발견한 듯했다.
인기척을 느낀 그들은 총구를 들며 견제했고, 달려오던 남자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다가갔다.
‘받아주는 건가?’
화이트 경비병과 플레이어로 유추되는 낯선 남자는 서로 대화하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
그리고 겨누고 있던 총구를 거두고는 남자의 몸을 수색하는 그들.
이내 남자는 기뻐하며 연신 만세를 해댔고, 그를 경비원들이 서울로 데리고 들어갔다.
‘음…….’
지금껏 관찰하는 동안 다른 이가 서울로 이동해 온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순순히 입장시켜 주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것은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직 확신은 없었기에 다시금 숨을 죽이며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 * *
“이 병장님, 저희 왔습니다!”
“돼지를 잡아 왔어요! 오늘은 포식이에요!!”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신우와 현지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왔구…… 그…… 그게?”
화이트의 경비병 역시 별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았기에 시선을 거두며 뒤를 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와 신우가 들고 온 거대한 몬스터의 시체.
돼지의 모습으로 보이는 그것의 크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엄청 실한 놈으로 데려왔습니다!”
강신우는 자랑이라도 하듯 돼지 몬스터의 시체를 떵떵거리며 보여주었다.
“으차”
쿵!
신우와 현지가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고, 다가가 확인했다.
족히 2미터는 될 것 같은 엄청난 크기.
부담스러움을 넘어 징그러움까지 느껴질 정도의 그것에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신우가 거들었다.
“하하하, 이 병장님이 봐도 먹음직스럽지 않습니까?”
“……이거 먹을 수 있는 거 맞지?”
“그럼요. 제 ‘식재료 탐구’ 스킬로 진즉 확인했습니다!”
“손질, 손질은 어떻게 하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질문에도 척척 대답해 오는 신우.
자신의 양팔을 거두며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신우, 모험의 초반에 그가 얻게 된 ‘식재료 탐구’는 생각보다 유용했다.
그동안 전투 스킬에만 집중했던 그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남은 코인으로 식재료 탐구에 투자했던 것이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전투 스킬에 비해 생산계열의 스킬은 성장하는 데 있어서 많은 코인이 소모되지 않았다.
신우는 식재료 탐구를 각성시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재료 손질’이라는 각성 스킬을 얻게 된 것이었다.
‘재료 손질’은 어떤 식재료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손질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킬이었다.
* *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양손에 단검을 든 신우가 모두를 보며 외치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는 ‘재료 손질’ 스킬을 발동한 듯 그의 손에는 마나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야얏!!”
쒸이익.
스윽. 스윽.
우우우두두둑.
파아앗!
“후…….”
그리고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우의 단검이 돼지 몬스터의 시체를 엄청난 속도로 손질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
단검이 춤을 추듯 돼지의 몸 구석구석을 스칠 때마다, 하나둘 분리되기 시작했다.
항정살, 목살, 삼겹살, 우둔살,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손질을 완료한 신우는 만족한 듯 숨을 내뱉으며 웃어 보였다.
짝. 짝. 짝. 짝.
그야말로 박수밖에 나오지 않는 그 솜씨에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가 박수를 보냈다.
“그럼 이제 먹어볼까요?”
준비가 끝난 신우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건물의 밖으로 나와 불을 피우고 저녁 식사를 가졌다.
화이트의 경비들이 불을 피운 연기를 보고 눈치채지는 않을까 걱정은 없었다.
이 주변의 몬스터들은 굉장히 많은 종류가 서식하고 있었고, 그들 중엔 지능이 발달한 이들 또한 종종 보이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불을 피우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기에, 화이트가 연기를 본다고 한들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후하…… 오랜만에 포식했어요.”
“맞다. 개굴. 떠나기 전에 각종 양념을 구매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개굴.”
“그래요? 하하하.”
모두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듯 자신의 배를 떵떵거리며 앉았다.
오랜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양념?”
“아, 제가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미리 구매해 두었어요.”
개구리 인간 종수의 말에 의문을 가지자 현지가 대답했다.
텔레포트로 떠나기 전 자유 시간.
현지는 모험에서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 소금, 설탕, 후추 등의 조미료를 사두었다는 것이었다.
“현지 씨가요? 오, 그럼 두 사람은 뭘 했어?”
의외의 준비성에 놀라며 신우와 종수는 자유 시간에 무엇을 했을지 궁금했다.
“저는 이미 말씀드렸지만, 모인 코인으로 스킬 레벨을 올리고 수련을 좀 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개굴.”
신우와 종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이번에는 그들이 질문을 해왔다.
“그보다 뭔가 변화가 있습니까?”
“음, 오늘 낯선 남자가 서울로 들어갔어. 아마 플레이어인 것으로 보여.”
“누, 누가 들어갔다고? 개굴?”
그들이 물어온 것은 화이트에 대한 것이었다.
하루종일 관찰하고 있는데 뭔가 알아낸 것이 있는가 물어본 것이다.
질문에 대답하자 개구리 인간 종수는 안그래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되물었다.
“응, 다시 한번 확인해 볼까?”
이 늦은 저녁에 뭐가 있겠느냐마는.
다시 망원경을 들어 그들을 살펴보는 순간.
“……어! 저, 저게 뭐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