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71화
오랜만에 느껴지는 익숙한 풍경.
트롤의 영역을 지나 도착한 심현섭의 마을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물론 마을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마을의 분위기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이 병장님 바로 심현섭 님을 만나러 가실 겁니까?”
“응, 지체할 필요는 없겠지. 다들 그래도 괜찮겠지? 아니면 마을에 다른 용무라도 있어?”
“저는 문제 없습니다.”
“저도요.”
“나도다. 개굴.”
“…….”
신우의 질문에 모두를 둘러보며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 외에 도깨비 비트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의 모습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도깨비의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너무 눈에 띄어…….’
마을 사람들은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종수에게조차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것은 종수 역시 알고 있었고, 그것은 아마 몬스터와 비슷한 외형을 가진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도깨비 비트레이.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도깨비의 모습이었다.
도깨비, 그 모습은 일반적인 몬스터의 모습과 다름이 없었고, 무엇보다 몬스터가 맞았다.
하수인이 된 비트레이는 다행히 모든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다.
다만, ‘영혼의 하수인’의 효과로 부하게 된 그는 소환을 해제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언데드 하수인을 소환하는 스킬이 생긴 것이 아닌.
그 자체가 하수인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것은 그가 죽지 않는 이상, 소환을 해제할 수 없다는 말이었기에 그와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적이었고, 큰 피해를 입힌 그와 동행하는 것이 꺼림칙하긴 하였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를 다른 곳에 두고 올 수도, 그를 죽이기도 애매했던 것이다.
혼자 남은 그가 다시 마음을 돌려 어떤 계획을 실행할지 알 수 없었기에 함께 다니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고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기에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외모.
몬스터의 외모를 가진 그의 외모가 문제가 되어 시끄러워질 것을 염려하여, 그의 외관을 바꾼 상태였다.
‘도깨비방망이는 잘 들고 다니네.’
어차피 지금의 내가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다닐 이유는 없었고, 비트레이의 검은 신우가 가지고 있었기에 마침 그에게 어울리는 무기가 없었다.
그의 동족인 도깨비들의 무기였던 도깨비방망이를 그에게 주었던 것이다.
신우의 모습을 하며 검을 사용하던 그때와 비교하긴 어려웠지만, 그는 도깨비방망이를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익숙한 무기인지 내가 사용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숙련도가 있게 사용하는 비트레이였기에, 그에게 방망이를 준 것은 아깝지 않았다.
방망이의 힘을 이용해 비트레이의 모습을 인간의 형태로 변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신우, 너는 어때? 괜찮겠어?”
“문제없습니다. 더 이상 검을 사용해도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트레이에서 신우로 시선을 이동하며 물었다.
자신의 허리춤에 놓인 검을 살짝 들어 올리며 대답하는 녀석.
그것은 칼집부터, 검날까지 완전한 흑색의 귀도(鬼刀)였다.
그동안 우리를 고생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검을 들어 보이며 대답한 것이었다.
‘문제는 전부 해결했으니…… 아무래도 괜찮겠지.’
신우는 물론, 우리 또한 다시 그 검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귀도를 사용할 때의 문제점은 모두 해결되었다.
귀도에 갇혀 있던 것으로 유추되는 비트레이의 영혼은 빼내어 하수인으로 만들었고, 더 이상 같은 상황은 반복되지 않았다.
또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이제는 ‘영혼의 하수인’ 스킬을 가지고 있었기에, 신우가 나와 함께한다면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귀도의 힘은 비트레이의 영혼이 빠져나왔음에도 여전했고, 그 힘을 사용하지 않기에는 너무나도 크나큰 손해라 생각되었다.
우리는 신우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였고, 그는 다시 귀도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여기야, 들어가자.”
마을에 들어와 걷다 보니 금방 도착한 건물.
심현섭이 있는 바로 그 장소였다.
마을의 중앙에 가장 크게 지어진 건물이었기에 그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곧장 건물의 입구를 지나 심현섭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 * *
“허허허, 그래. 돌아왔구만.”
“늦었습니다.”
“예상은 했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구만. 그래.”
사무실에 도착하자 두 팔을 벌리며 환영해 주는 노인.
오랜만에 만난 심현섭이었다.
마을의 실질적인 수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가 반가운 듯 체통 따윈 잊고 반갑게 맞아준 것이었다.
“그보다. 단순한 동맹 간의 거래가 아니었더군요.”
“허허허, 전부 들었나 보구만.”
나 역시 오랜만에 만난 그가 반가운 건 마찬가지였으나,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흘기며 따지듯이 물은 것이었다.
그가 우리를 보낸 것은 단순한 식료품과 물건들을 동맹관계에 있는 용병 마을에 전달해 주는 것.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용병 마을에 이재혁을 데려다주고, 화이트에 대해 알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그는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며 대답했다.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당당히 대답하는 그가 얄미웠으나, 원체 능구렁이 같은 그였기에 더 이상 뭐라 할 수도 없었다.
“후…… 일단 여기 거래 대금입니다. 받으시죠.”
“고맙네.”
우선 용병 마을에서 받은 코인에서 나의 몫을 뗀 나머지를 모두 건네주었다.
이미 전부 사용해 버린 코인이었지만, 다행히 지옥의 하수인들을 처치하며 얻은 코인들로 그것을 메꿀 수 있었던 것이다.
지옥에서 얻은 코인은 상당했기에 그에게 코인을 건네주고도 상당량의 코인이 남아 있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 생각은 어떤가?”
“…….”
코인을 받아든 심현섭은 미간을 씰룩거리며 지나가듯이 물었다.
하지만 그가 물어보는 것은 가벼운 주제가 아니었다.
바로 화이트.
용병 마을에서 화이트에 대해 들은 것을 알고 있는 그가 그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온 것이었다.
심현섭을 비롯한 용병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옆에 있는 개구리 인간 종수까지.
그들은 동맹을 이루었고, 그것은 단순히 마을 간의 거래를 뜻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서울에 자리한 화이트,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들을 처단하는 것이었다.
“제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구만. 당연한 얘기겠지.”
돌아온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들려준 화이트의 실체.
그것은 분명 충격적이었으며, 세상이 변한 것 역시 그들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사람들을 희생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사실은 이들과 함께하기에는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다만, 그것이 진짜인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네가 확인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럼 어떻게 확인할 생각인가?”
“계획은 있습니다.”
“그렇군…… 약속했던 텔레포트는 당장 내일이라도 바로 사용할 수 있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네. 준비하고 있겠네. 내일 아침에 이곳으로 오게나.”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은 것은 텔레포트.
이곳에 온 이유이자, 심현섭과 약속했던 것이었다.
그의 텔레포트는 단숨에 우리를 서울 근처까지 보내주는 엄청난 스킬이었다.
심현섭의 부서진 마나석을 고쳐준 것도, 그의 마나가 회복되도록 기다려 준 것도 전부 그것을 위해서였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하였으나, 그는 약속대로 재사용시간이 긴 텔레포트를 사용하지 않고 기다려 준 듯하였고, 다시 한번 약속을 확인하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아침까지, 시간이 있으니 다들 좀 쉬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알겠다. 개굴.”
“그래요.”
텔레포트가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고, 비트레이를 제외한 신우와 현지, 종수는 각자 흩어지며 내일 아침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나눴다.
* * *
동료들과 헤어진 후 나는 곧장 여관으로 향했다.
갈 곳이 없는 비트레이 역시 나와 함께했고, 다른 이들은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곳으로 향한 것은 다름 아닌 그동안 밀린 잠과 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트롤의 영역부터, 트롤킹, 비트레이와 지옥까지.
생각보다 험한 여정이었고, 제대로 쉰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잠깐 생긴 여유에 다른 것보다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털썩.
푹신한 침대의 매트에 몸을 던지며 누웠다.
‘…….’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눈을 감고 있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
‘각성이라…….’
비트레이의 영혼을 분리시키며 하수인으로 만든 ‘영혼의 하수인’ 그것은 각성 스킬이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의 레벨을 최대치까지 올리자 생겨난 새로운 스킬.
그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고, 그것은 주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을 각성시키자, 언데드 기사 중 최고의 클래스인 다크 나이트로 변할 수 있었다.
그녀의 각성 스킬인 ‘다크 나이트’역시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기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손 안의 무기고도 각성을 할 수 있는 건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생각이었다.
지옥에선 필요에 의해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을 최대치까지 올렸으나, 아무래도 지금까지 가장 도움을 받고 효과적이었던 스킬은 ‘내 손 안의 무기고’였다.
처음 세상이 바뀐 순간부터 함께 했던 스킬.
이것 역시 레벨을 최대치까지 올리고 나면 각성 스킬이 생길지 궁금해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분명 엄청난 스킬이 나올 터.
도움이 되면 됐지, 짐이 될 스킬이 나올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마침, 코인도 충분하고…….”
눈을 번쩍 뜨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심현섭에게 거래 대금을 전해줬음에도 지옥에서 얻은 코인은 상상 이상으로 많이 쌓여 있었다.
‘내 손 안의 무기고’를 최대치까지 올리는 것도 문제는 없을 터.
[내 손 안의 무기고 LV7-당신이 원할 때 어디서든 무기고를 열 수 있습니다. 무기고에서 원하는 무기와 탄약을 꺼낼 수 있으며, 개발, 제조, 수리, 저장, 취급, 개조할 수 있습니다.]
누운 채로 손을 펼치며 눈앞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천천히 스킬을 읽어본 후,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손 안의 무기고 스킬을 최대치까지 올려줘!”
외치는 순간, 홀로그램에 쓰여 있던 내 손 안의 무기고의 스킬 레벨이 변경되며 코인이 순식간에 빠져 나갔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띄워지는 홀로그램.
[내 손 안의 무기고 스킬이 Lv7 -> Lv10 으로 올랐습니다.]
[내 손 안의 무기고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각성합니다.]
[각성 스킬-‘걸어다니는 무기고’가 추가되었습니다.]
“걸어다니는 무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