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70화
“으으윽…… 어? 어어어어.”
얼마 만에 누워본 침대였는지, 누적된 피곤함에 금방 잠이 들었다.
순간 느껴진 인기척에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 병장님!”
“아이, 깜짝이야!”
순간 들려온 큰소리에 눈을 번쩍 뜨며 쳐다보자, 그곳에는 강신우가 있었다.
“이 병장님, 여기는…… 어딥니까?”
“너…… 역시 기억나지 않나 보구나…….”
“분명…… 용병 마을로 가는 길이었고…… 트롤들의 구역에서…….”
비트레이에게 몸을 지배당하는 동안의 기억은 나지 않는 듯했다.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애를 썼지만, 오히려 두통이 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됐어, 무리해서 기억하지 않아도 돼. 몸은 어때 괜찮아?”
“아, 예. 문제없습니다.”
그런 신우를 말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창밖을 바라보니 아직은 이른 새벽.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신우에게 말을 건넸다.
“다들 자니까 일단 나갈까? 어때 괜찮겠어?”
“예, 알겠습니다.”
혹여나 걷는 것이 불편할까 물었지만, 신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대답했다.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던 개구리 인간 종수를 뒤로한 채, 방문을 열고 길거리로 나왔다.
신우 역시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 나왔고,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며 걷기 시작했다.
“여기는 용병 마을이야.”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어느새…….”
“혼란스러울 거야.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네 기억은 4~5달 전에 멈춰 있을 테니까.”
“……자, 잘 못 들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혼란스러울 신우의 상태를 간간이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고,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있었어.”
“…….”
마을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쌀쌀했던 새벽 공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해가 뜨고 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상황을 설명해줬지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제가 모두에게 민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네가 고생했지. 그래도 다행이야. 너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주현 씨도 현지 씨도 모두 무사하니까.”
“아닙니다. 저 때문에…… 모두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생각을 마친 신우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괜찮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신 사과를 해오는 녀석.
자신이 입힌 피해가 크다고 생각한 신우는 좀처럼 미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줄 몰랐다.
“됐어, 그만 고개 들어.”
“하,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남아 있어.”
“더, 더 중요한 거 말입니까?”
그는 그제야 숙이고 있던 고개를 살짝 들며 쳐다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우리는 이제 서울로 갈 거야.”
“예,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화이트. 모르긴 해도 우리는 아마 그들과 전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화이트…… 라면…… 어째서 그들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녀석.
그러고 보니 신우는 아직 화이트의 진상에 대해 듣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것이 신우는 용병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정신을 빼앗겼고, 강성곤과 김낙현, 주현에게서 화이트에 대해 들은 것은 그 이후였다.
당연히 신우가 화이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없을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지만, 표정만은 결의에 차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이 병장님의 결정이 옳을 거라 믿습니다. 저는 무조건 이 병장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친 녀석은 바보 같지만 듬직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나만 믿고 따라오게 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펼쳐질 전투는 단순한 몬스터와의 전투 따위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더 크고 위험한 전투가 될 것이라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잘 들어…… 화이트는…….”
신우에게 화이트가 어떤 단체인지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고, 용병 마을에 들어와 들었던 그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가감 없이 얘기해 주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마정석과 마석.
몬스터의 존재와 대피소의 역할.
모든 것은 화이트와 연관이 있었고, 그들에 관해 설명하자 신우의 눈은 두 배로 커져 있었다.
“그럼……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것도…… 우리 부대원들이 죽고, 사람들이 죽은 것도 전부…….”
“……흥분하지 마. 내가 말을 꺼냈지만, 아직 속단하긴 일러.”
분노에 찬 신우가 흥분하려 하자 그를 제지하며 막아섰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상황들은 분명 이들이 말해준 화이트의 실체와 부합했지만, 아직 속단할 순 없었다.
우리가 직접 본 것도, 직접 겪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말만 믿고 무턱대고 행동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행동하기 전에 우선 화이트에 대해 알아볼 거야.”
“…….”
“그리고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때 행동하자. 아마 그렇게 된다면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해. 강신우, 네 도움이 필요할 거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무조건 이 병장님을 따르겠습니다.”
확신에 가득 찬 대답.
신우는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의 의견을 어필했다.
“그래, 고맙다.”
그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며 대답했다.
캉! 캉! 캉!
“이 병장님, 저기.”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에 신우가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른 새벽부터 그 소리는 망치로 철을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었다.
신우를 따라 나 역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망치를 들고 있는 한 사내가 무언가 작업을 하는 듯했다.
그 역시 인기척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고,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 민혁 씨! 신우 씨!”
그는 우리를 보곤 하던 일을 멈추곤 한걸음에 달려왔다.
망치를 들고 작업하고 있던 사내는 이재혁.
심현섭의 부탁으로 우리와 함께 이곳에 같이 온 그였다.
“재혁 씨! 오랜만입니다.”
“하하하, 돌아오셨군요! 어젯밤 소문은 들었습니다. 너무 늦어서 찾아오진 못했지만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재혁 씨는 작업을 하고 있나 보군요?”
“맞습니다. 이곳에 온 그 날부터 쉴 틈 없이 작업 중입니다. 어때요? 그래도 꽤 많은 변화가 있지 않나요?”
“음, 그러고 보니.”
이재혁 그의 직업은 엔지니어였다.
마을 전체에 관한 잡일이나 보수, 공사 등을 하는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뒤바뀐 세상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겪어야 했던 불편은 그의 스킬로 인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마나를 이용해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꽤 시간이 지나고 돌아온 마을은 변화가 있었다.
“마을의 하수도부터 시작해서, 전력까지 기초적인 공사는 거의 다 마무리했습니다.”
“어쩐지, 확실히 대단하시네요.”
그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마을의 발전을 돕는 것이었다.
마을에서 깨끗한 물은 물론 전기조차 사용이 불가했던 이곳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수도에선 깨끗한 물이 쏟아졌고, 너무나도 어두컴컴했던 밤은 전기로 인해 밝혀졌다.
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어 인지하지 못했지만,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던 것이다.
“혼자서 이런 것들을 전부 해결하신 겁니까?”
“하하, 아무래도 엔지니어 스킬을 가진 게 저뿐이니까요.”
“대단하네요. 아무리 스킬이라지만…… 혼자서…….”
“아닙니다. 원래 마을에 있던 하수시설이나 발전기 같은 시설들을 스킬을 이용해 마나로 돌아갈 수 있게 개조한 것뿐입니다.”
“……어렵군요.”
“이제 막 기초적인 작업들을 했을 뿐. 아직도 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지금만으로도 꽤 많은 변화가 있는 듯했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듯했다.
계속되는 칭찬에 그는 부담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말을 돌렸다.
“민혁 씨와 다른 일행분들은 그럼 이제 돌아가시는 겁니까?”
“네, 날이 밝는 대로 바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어서요. 재혁 씨는?”
“아, 저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어서요. 당분간은 계속 이곳에 머물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이재혁이 물어온 질문.
그는 우리가 심현섭과 한 약속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물어온 것이었다.
마을에 물건들과 그를 데려다준 후, 심현섭의 텔레포트 스킬을 이용해 우리를 이동시켜 주기로 약속한 것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고, 바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럼,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또 뵙겠습니다.”
“예, 저도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이재혁과 안수를 나누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그렇게 다시 신우와 함께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 * *
“뀨우우욱.”
“피노야!”
오랜만에 만난 피노는 반갑다는 듯이 다리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떨었다.
지난밤 자고 있었던 피노였기에 지금에서야 인사를 나눈 것이었다.
피노를 번쩍 안아 들며 교감하고 있자, 누군가 다가왔다.
“피노가 민혁 씨를 엄청 기다렸어요. 매일 잠도 못 자고 문 앞을 서성거리면서요…….”
“피노가요? 하하하, 이 녀석.”
“끼유유유유.”
그동안 피노를 돌봐주고 있던 것은 현지, 그녀였다.
트롤킹에게 다쳐서 회복을 하던 피노는 그새 완전히 회복이 끝나 활발하게 움직였다.
품 안에 안겨 있는 피노를 쓰다듬어 주며 주위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강신우와 현지, 그리고 주현과 강성곤 김낙현까지 모두 나와 있었다.
마을의 입구에 서 있는 우리를 마중해주기 위해서였다.
“조금 더 휴식을 취하셔도 되는데…….”
“맞네, 너무 그리 성급할 필요는 없네.”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느긋하게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만.”
주현과 강성곤, 김낙현은 벌써 떠나겠다는 우리를 배웅해 주며 아쉬운 듯 한마디씩 거들었다.
돌아온 주현과 나, 그리고 신우까지 모든 게 무사히 해결되자 조촐하게 축하하는 자리라도 가지고 싶다고 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며 돌아가겠다고 하자, 서운한 기색을 보인 것이었다.
그들 역시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그렇게 모인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돌아갈 생각인가? 설마 걸어갈 생각은 아닐 테고…… 원한다면 마을의 트럭을 가져가도 좋네.”
“아닙니다. 저희는 이 녀석이 있으니 문제없습니다.”
강성곤의 질문에 대답과 함께 들어 올린 것은 피노.
작고 조그마한 피노를 보여주었다.
그리곤 총기를 꺼내 피노에게 주자, 오랜만인 듯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오…… 과연…….”
모두가 감탄하며 지켜보는 것은 거대해진 피노였다.
우리는 마을까지 늠름하게 서 있는 피노를 타고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