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무기고 169화
“……시, 신우야!”
상황이 종료됨과 동시에 신우는 픽 하고 쓰러졌다.
쿵.
힘없이 바닥에 던져진 그를 보며 반사적으로 튀어나가 살펴보기 시작했다.
쌔액- 쌔액-
우려했던 상황과는 달리 그의 입에선 가냘픈 숨소리가 섞여 나왔다.
흉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모습에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자고 있는 거구나.’
몸에는 꽤 많은 상처들이 보였지만, 심각할 정도의 중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고 있는 것이었다.
“후…… 대충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네, 다행이네요.”
누워 있는 신우를 다시 한번 살펴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현에게 말을 건넸고, 그녀의 표정 역시 그제야 풀리는 듯 보였다.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경황이 없었기에 설명하지 못했던 상황.
주현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옆에 있는 도깨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주인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우뚝거니 서 있는 도깨비에게 그제야 관심을 주며 쳐다보았고, 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했다.
비트레이.
실제 그의 모습을 보는건 처음이었으나 분명 신우에게서 느껴졌던 그 분위기만큼은 그대로였다.
이마 양쪽으로 솟아난 뿔과 진지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도깨비.
그는 확실히 지금껏 보았던 도깨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느낌이 들었다.
“……제 하수인이 된 것 같습니다.”
주현에게 그를 소개라도 하듯 손을 펼치며 보여주었다.
“…….”
그러자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그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현 씨 말대로 죽음을 거부하는 자 스킬의 레벨을 10까지 올리자 각성 스킬이 생겨났습니다.”
“음…….”
“영혼의 하수인이란 스킬로 대상의 영혼을 빼앗아 하수인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신우 씨의 몸에서 비트레이의 영혼을 빼앗은 거군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스킬이 생길 줄 알고…….”
“아뇨. 전혀 몰랐습니다.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던 거죠.”
새로운 스킬에 대해 주현에게 설명해주자 그녀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어떻게 각성 스킬 중 ‘영혼의 하수인’이 생길 줄 알고 있었냐는 질문.
하지만 그것은 나 역시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예상외의 답변이었는지 그녀는 놀란 눈을 하며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다른 스킬이 생겼다면…….”
“……지금 신우는 여기 없었겠죠.”
“…….”
대답과 함께 서먹해진 공기.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스킬이 나타났기에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갔지만.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영혼의 하수인 스킬이 아닌 다른 스킬이 생겼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비트레이에게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됐다면 물론 신우의 몸도…….’
하지만 어찌 됐든 상황은 좋게 마무리되었고, 신우 또한 무사했다.
고개를 흔들며 좋지 않은 생각들을 떨쳐 버렸다.
“이봐.”
“예, 주인님.”
아직까지 옆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비트레이를 쳐다보며 명령했다.
“네가 쟤를 좀 들어야겠다.”
“예, 알겠습니다.”
손가락으로 누워 있는 신우를 가리키자 비트레이는 저벅저벅 다가가 단숨에 그를 들어 올렸다.
“이제, 정말 돌아가죠.”
“네.”
더 이상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것은 없었다.
신우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비트레이의 영혼이 빠져나와 하수인이 된 순간.
숲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주위에 가득했던 안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미로 같던 나무들 역시 평범하게 돌아왔다.
으스스했던 분위기는 그대로였으나 가득했던 위압감은 사라진 것이었다.
아자토스의 모습을 해제하자, 주현 역시 다크 나이트의 모습에서 돌아왔다.
원래의 모습을 한 우리와 신우를 들쳐멘 비스트레이는 함께 용병 마을로 발걸음을 향했다.
* * *
“미, 민혁 씨!”
“주현 님!!! 어디 가셨던 겁니까.”
“주현 님 돌아오셨군요!”
“시, 신우도 데려왔다. 개굴!”
용병 마을로 돌아오자 반겨준 것은 역시 동료들이었다.
현지와 개구리 인간 종수, 강성곤과 김낙현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함과 동시에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뛰어나왔다.
“두 분 다 무사했군요. 다행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된 거예요? 신우 씨는 괜찮아진 건가요?”
마을의 초입에 들어왔을 뿐인데 질문이 미칠 듯이 쏟아졌다.
꽤 오랜 시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주현과 나 그리고 자는 듯 쓰러져 있는 신우를 본 그들의 표정에는 기쁨과 슬픔 놀람과 당황 등 수많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
마치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한 상황에 어느 질문에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우, 우선 신우부터 어디에 눕힙시다. 그다음에 전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찌하지 못한 채 당황하던 중 신우의 모습을 보았고,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귀찮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신우는 어서 빨리 안정을 취해야 했기에 나온 말이었다.
주위에 모여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우를 보았고,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게 그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을 향해 들어갔다.
* * *
드르렁~ 푸우우우우.
방안 가득 울려 퍼지는 신우의 코 고는 소리.
침대에 누운 그는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신우 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깨어나 봐야 알겠지만. 심각한 부상이나 상처는 없다고 하네요.”
“다행이네요.”
“그보다. 저분은…….”
전문가에게 진료를 받은 신우의 상태는 다행히도 멀쩡했다.
오랜만에 만난 현지는 누워 있는 신우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다가와 맞은 편에 앉으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도깨비 비스트리.
눈을 흘기며 그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물어온 것이었다.
“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저자, 신우의 모습을 하고 있던 장본인 맞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맞습니다.”
현지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이미 그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신우의 모습을 하며 우리를 공격했던 비트레이였고, 그녀는 그에게 같은 기운을 느낀 것이었다.
현지에게 숨길 이유도, 비트레이를 감쌀 생각도 없었기에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어째서, 저자가 여기에……! 지금이라도 당장!”
쾅! 화르르르륵!
흥분한 현지는 순식간에 자신의 너클을 착용했다.
그리고 양손을 부딪치자 피어오르는 거대한 화염.
당장에라도 비트레이를 공격하려는 듯 뛰쳐나가는 그녀를 막아서며 말렸다.
“자, 잠시만요. 언제든지 두들겨 패도 되지만, 일단 힘 빼지 마시고 자리에 앉아봐요.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알겠어요.”
멀뚱멀뚱 자리를 지키는 비트레이와 반대로 현지는 씩씩거렸지만, 잠시 진정하며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큼큼.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설명할게요.”
“네.”
“알겠다. 개굴.”
현지가 진정이 되자 모두를 불러모았다.
개구리 인간 종수와 강성곤, 김낙현까지 전부 한 장소에 모이자 그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일 뿐.
그들은 설명에 끼어들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음…… 자네와 주현 님이 고생했구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네.”
“다른 차원이라……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믿지 않을 수는 없겠지.”
“그, 그런 일이 있었다니. 개굴.”
“결국, 또 아자토스의 잔당들 때문에…… 죽어서도 말썽이네요.”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공통적인 의견은 상황이 무사히 해결되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저희도 숲으로 갔었어요. 신우 씨를 구하고 민혁 씨와 주현 씨를 찾기 위해서요.”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나자, 이번에는 그들이 말을 이서 했다.
우리가 사라진 동안 그들의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그것 역시 궁금했던 참이었기에 이야기를 시작한 현지의 말에 집중했다.
“……된 거예요.”
현지와 강성곤, 김낙현 그리고 개구리 인간 종수까지.
그들뿐만이 아니라 용병 마을의 사람들까지 동원하여 그들은 귀신의 숲에 몇 번이나 갔었다고 한다.
신우를 구하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숲에서 사라진 우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들의 흔적, 하다못해 시체라도 찾기 위해 수도 없이 숲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숲의 안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갔고, 그와 더불어 숲의 크기 또한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숲에 들어간 그들은 계속해서 길을 잃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전부 숲에서 빠져나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귀신에 홀린 듯했고,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믿고 있었어요. 두 분 모두 돌아올 거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현지를 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비트레이 숲의 안개는 네가 한 거 맞지?”
“예, 맞습니다.”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는 도깨비 비트레이는 자신을 부르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대답했다.
“어떤 스킬이야? 영혼을 다루는 것과 관련 있는 거야?”
“맞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모아 안개의 형태로 만드는 스킬입니다. 안개에 노출된 이들을 현혹시켜 숲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곳에 들어온 자들은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지녔다 한들 쉽사리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했던 거야?”
“힘을 모아 새로운 군단을 만들려 했습니다.”
“……어째서 그 숲에서 몸을 숨긴 거지?”
“그곳이 가장 영기(靈氣)가 가득했기에 적합했습니다.”
“…….”
순순히 대답하는 비트레이.
그의 의도는 아무래도 아자토스의 뒤를 이어 자신의 군단을 새롭게 만들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귀신의 숲에 몸을 숨기며 힘을 모으던 중 다행히 계획을 실행시키기도 전에 당해버린 것이었다.
“민혁 씨, 저자 믿을 수 있는 거 맞죠?”
“예…… 일단은요.”
현지는 아직 그가 못 미더운 듯 눈을 흘기며 물어왔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는 지금 나의 하수인이 되었고, 다른 생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신우의 몸에서 빠져나왔고, 자신의 무기인 귀도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른 낌새가 보인다면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었기에 아직은 그대로 두어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민혁 씨 앞으로 계획은……?”
“이제,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을 겁니다.”
“그럼?”
“서울로 갈 겁니다.”
현지는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왔고, 고민할 것 없이 대답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목표는 완고했다.
화이트.
다음 목표는 서울에 자리한 화이트였고, 그들을 직접 살펴본 후 모든 것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